"이반 표도티치, 이 구두를 벌써 8년째 신고 계신데 정말 대단하십니다그려. 이 구두가 공장에서 나오고 아이들이 태어나 글을 배우고 그들중 일부는 죽기도 했으련만 이 구두는 이렇게 끄떡없이 살아 있군요. 키작은 관목들이 숲을 이루고 혁명이 지나가고 수많은 별들이 사라지기도했으련만 이 구두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군요. 불가시의로다!"

이반 표도티지가 이 말을 받아 말했다. "자하르 팔리이치, 여기에 바로 질서가 있는 겁니다. 삶은 제멋대로 날뛰지만 구두는 온전히 그 모습그대로입니다. 이것이 신중한 인간 이성이 낳는 기적이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 더 좋을 듯싶습니다. 선생도 나처럼 구두수선용 왕좌에 앉게될 테니까요."
- P98

"종교란 무엇입니까?" 시험관은 멈추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카를 마르크스의 선입견이며 민중들의 밀주입니다."
"어째서 부르주아의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까?"
"민중들이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요."
- P129

푸호프는 구두 밑창을 땅에 꼭 밀착시켜 걸었다. 구두 가죽을 사이에두었지만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마치 땅을 꼭 껴안듯 맨발 전체로 땅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방랑자들은 잘 알고 있는 무상의 기쁨이었고, 푸호프도 이 기쁨을 맛본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땅을 걷는일은 언제나 그에게 육체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걸을 때면 그는 거의 성적인 욕구에 이끌려 땅을 밟을 때마다 좁은 구멍이 땅 위에 생기는것을 상상했고, 또 정말로 그런지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방랑자에게 자기가 처녀임을 보여주기만 할 뿐 그것을 허락지는 않는어떤 커다란 몸에 달린 손처럼 바람은 푸호프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또 푸호프도 기쁨에 피가 출렁였다.
- P161

"내가 자네들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네." 푸호프가 대답했다. 물론사람의 한 걸음은 1아르신밖에 안 되네. 더 걸을 순 없지. 하지만 오래 계속 걷다 보면 멀리도 갈 수 있다는 거네. 난 그렇게 생각해.그래, 물론 걸을 때는 베르스타가 아니라 한 걸음을 생각하기 
마련이지. 그렇지 않으면 한 걸음조차 못 걸을 테니까."
- P164

부르주아들은 자기 집을 제 피보다도 가까이 느끼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부르주아들이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악착스레 아끼는 것은 그게 다 훔친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 그것을 자기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에 반해 우리는 손수
 집을 만들고 기계를 만듭니다. 말하자면 피로 빚는다고 할까. 
피처럼 아끼고 절약하는 우리들의 태도는 여기서 나오지요. 
우리는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산에 인색하지 않지요. 또다시 만들면 되니까요. 하지만 부르주아들은 쓰레기 잡동사니를 쌓아놓고 아끼느라 벌벌 떨지요.
- P191

마옙스키는 이제 전쟁에 신물이 났다. 그는 인간 사회를 신뢰할 수없었고, 그래서 도서관을 전전했다.
‘과연 그들이 옳은가?‘ 그는 자기 자신과 죽은 자들에게 물었다. 아니다. 결코 옳지 않다. 인류에게는 오로지 고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은 서로를 괴롭혀왔다. 이제 서로 흩어져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 마엡스키는 역사를 
끝내느니 자신을 끝내는 것이 훨씬나은 방법이란 것을 죽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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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영은 누군가의 사회적 지위가 우연한 이유로 정해짐을 성찰하는 것이 꽤 득이 된다고 보았다. 덕분에 승자와 패자 모두 자기 인생은 자업자득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현행 계급질서를 마냥옹호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역설적인 효과를 준다. 직업과 기회가 능력에 따라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않는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재구축은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가졌다는 생각을 굳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격차를 더 벌려놓는다.
- P192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모두 그들의 노력과 재능의 소관이다.

 그 누구도 편견이나 특권에 따라 억지로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려질 수 없어야 한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 P199

롤스는 말한다. "비록 사회적 우연성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완벽하게이뤄지더라도, 공정한 능력주의는 여전히 능력과 재능의 자연적 배분에 따라 부와 소득이 분배되는 것을 허용한다.  자연적 재능에 따른소득 불평등은 계층 차이에 따른 불평등보다 전혀 더 정의롭지 않다.

"도덕적 차원에서 두 가지는 똑같이 자의적이다." 따라서 참된 기회평등을 달성한 사회라 해도 반드시 정의로운 사회는 아니다. 그에 더하여 각자의 타고난 능력차에 따라 빚어진 불평등까지 살펴야만 한다.
- P209

롤스는 ‘차등의 원칙은 ‘자연적 재능의 분배 상태가 공동 자산이며,
그 분배에서 비롯되는 편익은 무엇이든 공동체적으로 향유되어야 한다‘는 합의를 나타낸다.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유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가 누구든 가장 불우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한에서 그 행운의 몫을 향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는 반드시 "우연한 배분이 가장 불운한 사람들에게 이롭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10

부자와 권력자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거만해졌으며,
능력주의자들이 그들의 성공은 그들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다면 (점점 더 그렇게들 믿고 있다), 그들은 뭐든 자신들이 얻은 것은 얻을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 결과 불평등은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한때 평등을 목 놓아 외쳤던 이 당의 수뇌부에서는불평 한 마디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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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공허한 말을 지겹도록 반복할 때는, 그것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니라는 심증이 가게 마련이다. 바로 사회적 상승 담론이 여기에 들어맞는다.불평등이 위험수위까지 올라왔을때 이러한 담론이 가장 구역질나게 들렸음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부유한 1퍼센트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보다 더 많이 벌고 있으며, 중위소득이 40년 동안 줄곧 제자리걸음만 한 상황에서, ‘노력하고 열심히일하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리 있겠는가.
- P126

 오직 자기 외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말할 사람이 없다면 최고의 자리에 서는 사람과 최저의 자리에 서는 사람 각자의 사회적 위치가 정당화된다. 부자는 부자일 만해서 부자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가장 잘나가는 사회구성원이 자기 이외의 요인, 가령 행운이나 신의 은총이나 공동체의 지원 덕분에 그 자리에 섰다면 그런 사람이 다른 이들의 운명에힘을 보태줘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은 힘을 얻는다. 우리 모두가 공동운명체라는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운명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굳건한 미국은 사회민주주의 유럽보다 덜 관대한 복지국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삶이 자기 통제 밖의 변수에 더 많이 휘둘린다고 생각한다.  - P128

좋은 통치는 실천적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최고의 명문대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따고명문대에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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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만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날 아침사랑하는 장미꽃에 입 맞추고 나간 수용소 사령부에서 몇십만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 몰아넣어 학살해버렸다. 장미꽃에 바치는 사랑과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 힘러와 보르만의 정신분열증을, 나는 1988년 겨울 텔레비전에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 권력의 브레인과 집행자라는 자들에게서 발견하면서 치를 떤다. 상상컨대 대한민국의 힘러나 보르만도 새나 꽃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 어린 남편이고 아버지일 것이다(이렇게 상상하는 것 자체가 내가 순진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들은 단7년 동안에 그 많은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전국민을 사실상 감옥에 처넣었던 것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이다. 물에 빠진 뒤에 끌려나온 자리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광적인 자기변명을 할 정도니 물에 처박혀지기 전에야 어떠했겠는가?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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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가능한 언어들, 지나치게 명확한 행동 규범으로 삶을 규정했던평범한, 아주 정상적인 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끔찍한가. 말, 동작, 표정 등으로 가득 찬 작은 배를 이끌듯, 그 행동들이 그를 머나먼 망망대해로 이끌었다. 만일 이 배가 불분명한 일상이라는 암초와 충돌한다면, 이 배는임초와 충돌해 부서질 것이다. 순진한 승객은 물에 가라앉을 것이다.
맙소사, 평범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상적인 충격에도 이성을 상실한다.아니, 미치광이는 두뇌의 손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두뇌는 가벼운 공기 같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치광이의 두뇌는 통과하지만, 단순한 두뇌는 통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단순한두뇌는 파손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두뇌는 파손되었다.
- P321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실크햇을 바로잡고 어깨를 폈다. 그리고 썩은안개 속으로, 평민들의 썩은 삶 속으로 걸어갔다. 벽, 아치, 울타리 그물속으로 걸어갔다. 애처롭게, 힘없이 가라앉은 점액질 가득한 곳, 쓸모 없는, 썩은, 텅 빈 공동 화장실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뭉툭한 벽,썩은 울타리마저 그를 증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증오한다는 것을 아폴론 아폴로노비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낮에도, 밤에도, 그는 그들이 발산하는 적대감의 안개 속을 걸어갔다). 그들은 누구인가? 악취를 풍기는 하찮은 무리들인가? 아폴론 아폴로노비치가 두뇌의 유희로 눈앞에안개의 평면을 구축했다. 그런데 평면이 찢어졌다. 거대한 러시아 지도가 작게 보였다. 그들은 적인가. 적들은 이공간에 거주하는 거대한 종족 모두였다. 적은 수억이었다. - P335

소피야 페트로브나는 자유를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마가좁디좁았다. 이마는 좁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깊디깊은 감정의 활화산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카오스를 야기해선 안 된다. 여자의 카오스 속에는 온갖 잔혹함, 범죄, 타락, 온갖 광기가지상에 유례없는 영웅적 형태로 숨어 있다. 모든 여자는 악마적 기질을지니고 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여자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진정 신성함이었다. 

우리는 독립적인 두 개체 - 차가운 대리석과 진흙 개구리 - 로 분리된 니콜라이 아폴로노비치의 영혼을 독자들에게 곧 보여줄 것이다. 이런이중성은 여자의 속성이다. 이중성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속성이다. 둘이라는 숫자는 여자의 상징이다. 남자의 상징은 하나이다. 그래야만 셋이된다. 셋이 아니면, 가정의 평화가 없지 않은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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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을 정말 완독하신 거예요?
와.... 그렇다면 제가 본 유일한 완독자십니다. 전 딱 백 쪽까지 읽고 온 힘을 다 해서 내팽겨치고나서 쐬주 한 병 깠습니다. ^^;;

청공 2021-01-04 00:23   좋아요 0 | URL
아. 완독은 천천히요.
지금 4장까지 읽었어요.잠시 반나절 숨돌리렵니다
읽으면서 정신줄 놓친 부분도 많아요.ㅎ 허나, 묘하게 빠져드네요~~.falstaff 님도 완독이어가시길 강추드립니다.더불어 걸쭉한 falstaff님 독후감도 기대할게요^^
저도 맥주 몇잔 걸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