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소설과 현실의 관계는 단선적인 반영의관계가 아니라 섭취,흡수,소화의 관계인 탓에 확실히 소설에서 현실의 인력을 투명하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자본의 활동이 초국가적,전지구적 층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그것의 운신과 패악도 점점 미시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던 시대에 소설은 그 금지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제 소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이제는 현실과 실재의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성숙한 소설의 덕목이 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상호작용과 생산과정에서 연루된 현실적 사람들의 사회적 현실인 반면, 실재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결정하는 자본의 냉혹하고 ‘추상적인‘ 유령적인 논리이다."(지젝)
재현의 구성적 요소이지만 그 자체 재현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실재라 명명한다면, 오늘날 초국적 자본의 전방위적 인력이야말로 실재의 심급을 차지한다.그것이 재현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우리는 현실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무중력공간‘이 존재한다고 간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 P42
살아갈수록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 몽롱한 것들과 확실한 것들. 희뿌연 것들과 뚜렷한 것들은 뒤섞인다. ‘살아갈수록‘ 이라든지 ‘뒤섞인다‘ 같은 말들은 사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다.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은 살아갈수록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뒤섞여 있는 것이며,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것들을 분별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토기』 79쪽) - P45
김훈의 인물들은 영웅이 되기보다는 다만 자신의 삶의 구체성들에 충실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할 뿐이다. 이순신은 바다의사실에 입각할 뿐이고, 우륵은 소리의 본질에 충실할 뿐이며, 인조는임금의 도리를 다할 뿐이다. 그들의 내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담론은 그야말로 고담준론이다.
이는 김훈의 소설이 정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좋다. 그의 소설들은 근본적으로 반정치적소설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적인 소설로 읽히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의미심장한 경향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거부다. 마치 정치 같은 것은 본래 없었다는 식이다. - P55
" 가을이 오듯 한 생명은 죽는다." 바로 이것이 김훈의 소설을 막막하게 만든다. 역사와 자연의 우열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이런 식으로 김훈의 역사소설은 역사소설이되 역사의 목적과 진보를 승인하는 역사주의 와는 무관한 곳으로 간다.
그는 이미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인간으로부터 역사를밀쳐내버릴 것을 도모" 하였다. 이 반(反) 역사주의가 내장하고 있는 사관은 차라리 ‘자연사(自然史)‘의그것에 가깝다. 굳이 명명해야 한다면, 그의 소설은 ‘역사소설‘ 이 아니라 ‘자연사소설‘ 이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무상한 것이라는 인식이 소위 ‘자연사의 이념‘ 이다.
역사는 몰락의과정일 뿐이고, 역사가 남긴 것은 잔해와 파편일 뿐이라는 인식이 그이념 안에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특정 시기의 국면을 인류 역사 전체로 확대해서 일반화하는 무지의 소치이며, 역사의 진행을 무위로 돌리는 반동적인 입장인가. - P57
"나는 아무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남한산성』 김훈의 소설은 끝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우는 울음이다. 이 울음이인간과 역사에 대한 필사적인 진정성의 표현이자 순도 높은 예의가 될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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