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돈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듯이굴면서, 자기들을 물 위로 떠받쳐 주는 돈더미를 고상한 척무시하는 게 보기 싫어요. 저는 연 수입 6백 파운드의 돈더미를 딛고 서 있고, 헬렌도 마찬가지예요. 티비한테는 곧 8배파운드가 생기고요. 돈이 바다 속으로 부서져 들어가는 대로또 그만큼이 생겨요. 바다에서 말이에요. 그래요, 바다에서요. 

그리고 우리가 하는 생각은 모두 6백 파운드 수입을 가진사람의 생각이에요. 우리가 하는 말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우산을 훔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그걸 훔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리고 때로는정말 훔친다는 걸 잘 모르죠. 여기서는 농담인 것이 거기서는 현실이 된다는 걸요. - P82

마거릿은 우리 일상의 혼란된 속성을 깨달았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빚어내는 정돈된 배열과는 다르다. 우리의 생활은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는 잘못된 단서와말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엄청난 노력과 용기를 기울여서오지도 않을 위기에 대비한다. 가장 성공한 인생은 산이라도옮길 만한 힘을 낭비한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성공하지못한 인생은 준비 없이 기습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준비하고있는데 기습이 닥치지 않는 인생이다. 

이런 종류의 비극에 대해 우리 영국의 도덕은 당연히 침묵을 지킨다. 위험을 대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사람이건 국가건 완전 군장을 갖춘 채 비틀거리며 살아 나가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준비된 인생의 비극은 그리스인들을 빼고는 제대로 다룬자들이 없다. 인생은 진실로 위험하지만, 도덕이 말하는 방식의 위험은 아니다. 인생은 진실로 버거운 대상이지만, 그 본질은 전투가 아니다. 인생이 버거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이기 때문이고, 그 본질은 낭만적 아름다움이다.
- P141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무리에는 헛소리가 너무 많소. 당신이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서 다행이오. 자기부정은 인격 수양에는 좋은 수단이오. 하지만 생활의 안락함을 헐뜯는 자들은 참을수가 없소. 그 사람들은 가슴에 쉴 새 없이 갈아야 하는 도끼라도 품은 것 같소.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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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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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월, 재일 조선인 서경식 작가는 20년간 일해 온 도쿄경제대를 정년 퇴직했다. 디아스포라 소수자로 살아온 그.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재일조선인은 공립학교 교원이 될 수 없었다. 서경식은 쉰 살이 넘어 정식 교수가 되어 학교 측으로부터 노동조합 가입의 권유를 받았을 때, 자신이 마치 ‘특권’을 받는 사람같이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내 출신과 문화를 홀로 등에 짊어진 채 나는 다른 모든 학생들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짊어졌던 소년 서경식. 그는 책을 읽고 시를 쓰며, 문학 작품 속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찾으며 살아왔다.

 


가난한 재일 조선일들이 사는 교토에서 자란 서경식은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중학교에 들어간다. 소위 문화적 소양이 있는 친구들에게 둘러싼 그는 열등감, 동경, 경쟁심이 발동하여 더욱 문학작품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무엇보다도 글을 잘 써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했다. 일종의 과시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여 소수자로 주눅이 들었던 소년시절의 굴욕감에서 벗어나자 했다.

 


”나는 저소득층 피차별자의 세계로부터 중산층 주류들의 세계로 옮겨갔고 양자 사이의 경계에 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타자’인식을 촉구하려는 동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1967년 한일 조약체결로 인해 조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 1971년에는 재일 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그의 두 형이 구속, 수감되자 그는 형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 가담한다. 사회변혁의 현장에서 서경식은 김지하, 정희성, 박노해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란 “시대에 침묵하지 말아야 함”을, “시는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노래해야 함”을 되뇌었다.

 


서경식 작가도 사회변혁의 현장과 시대의 아픔, 소수자의 차별, 잃어버린 모어와 역사를 주제로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시를 읽을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했던 시인. 그에게 한국문학을 읽는 독자는 국경을 넘어선다. 그는 ‘한국문학’보다는 ‘민족문학’이라는 용어를 써서 한국문학을 접하는 독자는, 남한뿐 아니라 휴전선 너머에 있을, 보이지 않는 독자들 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조선인, 코리안 디아스포라까지. 재일 조선인 서경식의 글을 한국에 있는 독자가 읽고 있듯이, 일본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흩어진 이들이 쓴 문학도 한국문학에 포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란, ‘문학’이란 역사의 패배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준다. 식민지배를 부정하고 있는 일본인은 현재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고통을 통해 "자국이 식민지 지배를 하며 타자에게 강요해온 고통을 통감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보기 드문 만남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그 둘의 고통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시, 즉 문학의 역할이라고 보았다.

 


현대문학은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떤 보편성을 전할 수 있을까.  세계문학의 범위를 한 나라에 국한 짓지 말고 지리적 경계선을 내려보자. 예컨대, 세계 각지에는 오육백 만명이나 되는 조선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있다. 그들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삶의 현장은 한반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근대 이후 조선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그들이 쓴 문학은  ‘민족 문학’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그들의 문학은 다른 국가의 디아스포라의 삶과 공유할 수 있기에 보편적일 수 있다.


저자는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라고 고백하면서도 루쉰이 말할 것처럼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말을 따라,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리라 다짐한다. <시의 힘>은 재일 조선인이 문학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과정과 시에 담긴 섬세한 감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고뇌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다. 한반도의 바깥에서 조선의 역사, 모어에 대한 그리움, 시대의 변화, 역사적 사실과 현재를 시와 문학가들의 작품을 통해 찾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사유가 돋보인다. 문학의 새로운 보편성과 한국문학의 범위를 지역과 경계를 넘어 상상해보는, 시선이 열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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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인간 유한성의 근본 기분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에서 출발하여 고통을 사유한다. "고통은 작은 죽음이다. 죽음은 큰 고통이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고통과죽음과 사랑이 결합되는"  저 본질의 영역을 추적한다.

바로 타자의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이 에로스로서의 사랑을 일깨워 유지한다. 에로스는 내가 취할 수 없는 타자를 욕망하는 것이다. 죽음은 생물학적 과정으로 간주된 삶의 단순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특별한 존재 방식이다. "존재의 비밀"로서 죽음은 삶 속까지 미친다.

죽음은 "무無, 다시 말해 모든 측면에서 결코 단순한 존재자는 아니면서도 존재하는 것, 심지어 존재 자체의 비밀로서 존재하는 것이 담긴 함이다. 죽음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인간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완전한 타자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 P71

 예술은 "세상에대한 낯섦‘이라는 아도르노의 격언은 아직 유효했다. 아도르노의 말이 맞다면 쾌적한 예술이란 모순이다. 예술은 낯설게 하고, 교란하고, 당황하게 하고, 고통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예술은 어딘가 다른 곳에 머무른다. 예술의 집은 낯선 곳에 있다. 다름 아닌 낯섦이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고통은 완전한 타자가 들어오는 균열이다. 완전한 타자의 부정성이야말로 예술로 하여금지배적 질서에 대한 반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반면 만족을 주는 것은 동일한 것을 지속시킨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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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 발짝만 더 갔더라면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 가슴에 끌어안았을지도모른다. 그러나 내 속에 남아 있던 이성이, 아직 극복하지못한 모든 것들이 그런 식으로 말을 거는 것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짧은 순간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의 모든 생명을 눈에 담고 매력을 서로에게 발산하며,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저항하며,그러다 나는 굉장한 의지의 힘으로, 그리고 동시에 갑작스러운 실망의 씁쓸함을 맛보며 돌아서서 가버렸다. 여전히 침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사로잡혀 말을 할 수 없었던 걸까?
그리고 그녀는, 왜 그녀도 그렇게 말이 없었을까? 왜 그녀는 그렇게 매혹된 눈으로 내 앞에서 말없이 뒤로 물러섰을까?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마치 쇠가 자석에 끌리듯 그렇게 무심하고 불가피한 맹목적인 이끌림이었을까? 우리는 한 번도 얘기를 나는 적이 없다. 우리는 완전히 이방인이다.하지만 어떤 영향력이, 거인의 손아귀처럼 강력한 힘이 말없이 함께 휩쓸렸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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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여기는 일본
현해탄 너머 
나라를 사랑하려는
나의 슬픔을
이 나라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이 땅에서
흙이니 물이니 하늘이니 구름,
혹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조국을 사랑할 순 없다

나에게
조국을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
나에겐
조국을 느낄 살갗이 없다
- P59

대학 교단에 서면서 내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이다.그는 지식이 한없이 세분화되고 부품화된 현대 아카데미즘의 존재 방식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역사 서술이나 문학에 있어 지배층의 이야기에 피지배자 측의 대항적인 이야기를 대치하는 것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보편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는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지배층의 이야기에 대한,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입장의 대항적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 P53

복수의 아이덴티티를 끌어안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그야말로 분열된 상태다. 그 복수의 아이덴티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일 때 자기 분열의 고통은 한층 심해질 것이 뻔하다. 구 식민지에서시작된 디아스포라는 누구나 이러한 자기 분열의 고통에 시달리고있다.
- P54

나는 엄숙한 사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어디서 어떤 실천을 해야할까? 한시바삐 ‘원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찬 반도‘로 건너가 그 땅의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싸워야 하는 것 아닐까? 

참다운 현장에서 처절한 투쟁을 할 때 비로소 나의 문학도 존재할 수 있으리라. 일본이라는 허구의 현장에 얽매여 있으면서 도대체 무슨 문학을 할 수있다는 건가?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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