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물이 어느 생물을 낳았는지에 관한 실마리, 
생명이 흘러가는 방향에 관한 실마리, 
인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실험에 관한 실마리,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을 개선하기 위한비결에 관한 실마리를, 
샛비늘치는 정확히 어떻게 빛을 발하는 것일까? 불가사리는 팔을 어떻게 재생하는가? 날치는 어떻게 나는것인가?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류를 더 높이 끌어올리기위해 어떤 적응 방법을 빌려올 수 있을까?
- P105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 P125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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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백화처럼 소복수북 쌓이는 밤,
됫병으로 사 두고 데워 먹는 백화수복은 또 어떻고,
백화수복은 이름도 터무니없게 아름답다.
주문같고 기도 같고 축복같아,
백화수복 수복강녕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술과 시와 나와 나타샤와 흰 막걸리
_허은실)

다시 고백하자면 나는 술이 좋다.
구체적으로는 술을 마실때의 기분이.
정확히는 연분홍 빛깔의 적당한 취기와 몽롱이.
영롱보다 몽롱
또롱또롱보다 헤롱헤롱이 좋다.
(그러다 고롱고롱 메롱메롱이 된다) - P29

술은 책과 비슷한 데가 있어서 한 병을 사면 다른 한 병을 또 사게 된다. - P62

혼자 술 마시는 여자들, 혼자 우는 여자들,
서성거리는 여자들, 중얼거리는 여자들,
욕을 하는 여자들, 심장이 터지게 달리는 여자들,
두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들, 엑셀을 밟으며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
눈알이 번뜩이는 여자들, 그 여자 정신이 아주 나가 버렸네. 그런 여자들을 나는 알지.

친애하는 나의 자매들.
누구도 알아 주지 않고 아무도 안아 주지 않을지라도
술은 그대들을 안아 주기를.
이 밤 안전하게 취해 있기를.
내내 안녕히, 안녕하기를.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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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천천히 읽은 <모비딕>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피쿼드호를 타고 있다. 멜빌은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어떤 상황 속에서 썼을까, 에이해브, 모비딕, 피쿼드호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너새니얼 필브릭은 바다에 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모비딕>이 쓰이기 전까지의 과정에 관심이 많은 저자. 그는 <사악한 책, 모비딕>에서 28개의 소제목을 달아 허먼 멜빌이 <모비딕> 쓰면서 겪었던 고투, 참고했던 책, 그리고 소설 속 인물과 미국의 시대사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비딕>을 쓰는 동안 멜빌은 <주홍 글자>의 작가 호손과 편지 왕래를 하고 만나서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둘의 만남은 멜빌이 <모비딕>초고를 완성했을 때였다. 초고에는 에이헤브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멜빌은 호손의 작품에서 "어둠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고 에히헤브를 구상한다. 1849년 2월에 큰 활자판 셰익스피어의 작품집을 손에 넣은 멜빌은 <오셀로>, <햄릿>, <리어왕>에 등장하는 악인을 모델로 삼아 에이해브 선장을 완성해 나간다.


저자는 <모비딕>을 미국의 유전자 코드가 담긴 책이라 말한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재건 시기였던 미국.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탄 피쿼드호는 자본주의 시장의 축소판이었다. 실제 포경선을 탔던 멜빌은 육체노동의 현장의 증언자였다.정치가들이 아무리 자유를 외치더라도 인간을 짓눌리는 반복된 노동은 멜빌에게 신체적 형벌과도 같았다. 고래를 잡으면 이를 해체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잠시 숨을 돌릴까 하다가도 이내 눈앞에 고래가 잡혀온다.



"이건 사람잡는 일이다...우리 인간들은 한참을 노역하여 이 세상처럼 거대한 덩치에서 적지만 소중한 고래 기름을 얻어내고, 녹초가 된 채로 참을성 있게 더러운 오물을 몸에서 닦아내고 영혼의 깨끗한 성소에서 사는 법을 익힌다. 그러자마자 고래가 물을 뿜는다."



인종과 살아온 배경이 아닌 노동을 할 수 있느냐가 포경선에 탈 인부를 뽑는 요건였다. 그러기에 멜빌은 피부색을 떠나 사람들을 평등한 눈으로 묘사하기가 가능했으리라. 삼등 항해사 플래스크가 고래를 더 잘 보려고 거구의 흑인 작살잡이 다구의 어깨 위로 올라간다. “당당한 흑인이 차분하고 무심하고 느긋한 뜻밖의 야만적 위엄을 지나고 버티고 있었고, 그의 탁월한 육체는 바다의 흔들림에 어우러져 자연스레 흔들렸다...올라탄 사람보다 떠받치는 사람이 더 고귀해 보였다.” 저자는 멜빌이 노예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류의 ‘신성한 평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모비딕>이 ‘사악한’ 작품인 이유는 멜빌이 온 정신을 소모하고 갉아먹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책을 뜯어내는 과정은 오래된 그림을 패널에서 떼어내는 일처럼 까다롭고 위험스러운 일이다. 안전하게 떼어내려면 뇌 전체를 긁어야 했다.” 이는 일 년 내내 <모비딕>번역에 고투했던 황유원 시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번역을 다시 하느니, 원양어선을 타겠다.” 멜빌과 번역가에게도 사악했던 소설.



농담을 하다가 웅변조로 말하다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넘실대는 <모비딕>의 서사. 허먼 멜빌이 포경선에서의 겪은 실제 경험을 담아서 그런지 포경선에서 벌어지는 일화들은 날 것 그대로다.  “백과사전적이고 세밀한 이 책을 외계인이 19세기 중반 지구에 존재했던 포경업을 재구성해 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다음 번에 <모비딕>을 깊게 읽고 싶다면 바다 속 아래에 잠겨있는 성서, 신화, 서사시, 철학, 호손의 소설을 우선 손에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 독서목록에 향유고래 한 마리의 무게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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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13 0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비딕>은 인류의 문화유산입니다!!!

청공 2022-02-15 07:43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blanca 2022-02-13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대한 작품이라 해서 언젠가 한번 꼭 시도해 보고 싶은데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평이 있어 망설여져요. 창공님 글 읽으니읽고 싶어집니다.

청공 2022-02-15 07:45   좋아요 1 | URL
집중할 시간을 요하긴 합니다만...
일단 잡으시면 초반부터 빠져들어가실 겁니다.
넘 재밌어요. 기이하고 심오하고 아름다운 단막극들. 이야기가 상상하지도 못한 곁가지로 뻗어가요.저는 요번에 꼭 완독하려고
지인 4명과 함께 읽었네요.책을 네부분으로 나누고 일주일 분량만큼 읽고 줌으로 매주 이야기하면서요. blanca님 꼬옥 읽어보세요.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비딕>

갱지 2022-02-13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필 시간이 짧았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역시 구상이 힘들었겠네요, 덮어도 계속 생각난다는 이야기에 공감입니다:-).

청공 2022-02-15 07:49   좋아요 2 | URL
멜빌은 3년 동안 포경선을 타고 난 후 <모비딕>을 쓰려고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모비딕 쓰느라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다음 책 쓰면서 눈이 엄청 시렸다고 하네요. 계속 맴돌고 싶은 책이네요:-)

mini74 2022-03-08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공님 당선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3-08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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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인간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라면 형벌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의’이다.˝
법은 얼마나 인간에게 관대하도록 만들어졌는가, 자유와 규제 사이의 적당선은 어디쯤 그을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제재는 필요한가 등등. 저자는 생생한 판례를 들어, 독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이라는 다소 멀게만 느껴지는 헌법의 가치를 각자의 경험으로 저울질하게 한다. 책모임에서 90분 토론하기에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책, 문유석의 아재 개그가 여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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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고하는 데 있어 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이모든 시행착오는 사상가들이 심장이 아닌 뇌가 핵심 기관임을 깨닫는 과정이 결코 어느 한 순간의 ‘뇌 중심적 통찰‘ 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가 보더라도 심장에 비해 훨씬 복잡하게 생긴 뇌특성은 생각과 감정이 뇌에 위치해 있으리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했지만,
관습의 무게와 일상 속 경험의 힘 탓에 16세기와 17세기의 가장 위대한사상가들조차 이와 전혀 상반되는 관념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 3막에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혼란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말해주세요,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나나요?
심장인가요 아니면 머리인가요 ?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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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0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데 거기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좀 놀랐어요. (아, 이건 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사랑을 혐오한 사람이라고 울프는 이야기 하던데, 셰익스피어 소설 거의 안 읽은 일인이라 뭐라 하긴 그런데,, <베니스의 상인> 간추린 편으로 읽었는데 인용하신 글 읽고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청공 2022-02-13 04:08   좋아요 0 | URL
에구, 이게 얼마만에 제가 답글을 다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ㅜ 셰익스피어가 사랑을 혐오한 사람이라...울프가 어떤 작품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궁금하네요. 요즘 맥베스, 햄릿,리어왕, 오셀로 비극을 다시 읽고 있는데요. 비극인지라 사랑보다는 내면의 갈등에 빠져드네요. 라로님 울프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댈러웨이 부인만 읽어봤네요. 등대로, 올랜도, 3기니 책만 잘 모셔놨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