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1 (양장) - 제1부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개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조나탕 웰즈는 회사에서 쫓겨나고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그의 삼촌 에드몽 웰즈에게서 집을 한 채 물려 받는다.
그리고 <절대로 지하실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도 받는다.
어둠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조나탕은 지하실로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고
가족들에게도 지하실에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날 애완견이 지하실로 들어가고 애완견을 찾으러 들어가는 조나탕.
그곳에서 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어떤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결국 그는 지하실에서 실종되게 되고 그의 아내 뤼시 또한 그를 찾아나서다 실종된다.
그들 부부를 찾으러 떠났던 형사와 구조대원들 마저 실종되고 그의 아들은 고아원에 맡겨진다.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서지만 결국 그들과 보안요원까지 실종되는데...
과연 저주받은 지하실의 정체는 무엇일까?

개미들의 세계에 사는 수개미 327호는 동료 개미들과 정찰에 나섰다가
전혀 본 적도 없는 무기에 모든 동료들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된다.
도시로 돌아온 그는 동료개미들에게 그 사실을 전하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여왕개미에게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하지만 여왕개미의 반응도 좋지 않다.
혼자서 그 비밀무기의 정체를 밝히기로 생각한 수개미 327호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일개미 103683호와 암개미 56호와 함께 의문을 해결하러 나선다.
그런 그들에게 바위냄새를 풍기는 병정개미들이 다가와서 그들의 목숨을 노린다.
그들의 목숨마저 빼앗아가면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비밀은 무엇이고
비밀무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개미들의 세계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

책에서 묘사하는 개미들의 도시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웃을 정도의 문명을 이룬다.
인간의 그 어느 도시보다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망과 건축양식들,
인간의 어느 체제보다 더 잘 짜여진 분업화와 농경, 수렵 등의 세분화 된 작업들,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종족에 대한 충성과 희생정신.
겨우 300만년의 역사를 지닌 인간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1억년 개미 문명의 실체들.
그 모든 것이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오랜 기간동안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해 온 작가의 과학적인 실험과 논리적 추론에 의한
지극히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것이다.


인간의 시각을 버리고 개미의 시각으로 바라 본 세상의 모습.

'6개의 성냥개미로 4개의 정삼각형을 만드는 방법'
소설에서 에드몽 웰즈가 지하세계로 진입하는 입구에 만들어 놓은 문제이다.
그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그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 문제의 답은 결코 평범한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의 변화, 관점의 변화가 있어야만 풀어낼 수 있는 문제.
에드몽 웰즈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문제.
결국 그가 원하는 자격이란 기존의 틀에 잡혀있지 않는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문제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소설은 인간의 시각이 아닌 개미의 시각으로 바라 본 세상을 이야기 한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소설의 주인공인 불개미들은 갓난아기도 눌러 죽일 수 있는
정말로 하찮고도 하찮은 벌레에 지나지 않지만
개미의 시각으로 본다면 자기들보다 훨씬 작은 존재들 위에서 군림하는 강력한 종족이다.
진딧물을 사육하고 통제하여 꿀물을 얻어내고 버섯을 재배할 수 있으며
전쟁으로 잡아 온 다른 종족의 개미들을 노에로 부리고 곤충들을 사냥하여 단백질을 보충하는
1억년이 넘는 세월동안 존재해 왔고 그 세월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이들.
원폭이라는 사상 최악의 재앙 마저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지구의 진정한 주인.
그것이 바로 개미의 시각으로 바라 본 개미의 모습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 신화의 시작

이 책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시절에 난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독서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기도 하거니와 지나칠 정도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파피용>이라는 소설로 베르베르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 때의 충격과 놀라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나에겐 충격이었던 작가.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는 <파피용>이 베르베르 답지 않은 작품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그런 평가가 나왔을까?
작년에 신작 <신>을 읽기 위해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을 읽으면서
그런 평가들에 대해 조금씩 동의하기 시작했다. 그 작품들이 너무 좋았기에.
그리고 이제 <개미>을 읽고 나서야 그런 평가에 100% 동의할 수 있다.
과연 이 소설이 한 사람의 머리속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이야기란 말인가?
개미도시에 대한 치밀하고 상세한 묘사는 독자가 개미도시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하고
다른 개미들과의 전쟁장면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이 박진감있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통렬한 비판.
단순히 재미를 주는 소설이 아니라 개미의 눈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철학이 있는 소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했는지, 왜 사람들이 그를 보고 천재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문명의 충돌. 그 결과는...?

1편에서는 등장인물과 개미들에 대한 소개와 개미문명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개미세계와 인간세계가 서로 엇갈리듯 돌아가던 스토리가 1편의 마지막에서 접점을 찾는다.
이제 인간의 문명과 개미의 문명. 2개의 발전된 문명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
그 문명의 충돌이 과연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
또한 그 충돌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인지 다음 편을 빨리 읽어야 겠다.
에드몽 웰즈와 벨로키우키우니 여왕의 첫번째 접점은 어이없이 사라지고
조나탕과 새로운 벨로키우키우니의 새로운 접점이 생겨난 시점.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차별없는 세상은 그저 Imagine일 뿐인가? 

내가 읽은 게이고의 작품들은 모두가 추리소설이었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강한 반전으로 나의 뒤통수를 치던 뛰어나 추리작가.
분명 추리소성인데도 다 읽고나면 가슴 한구석에 슬픔이 묻어나는 슬픈 추리소설 작가.
그렇기에 카페 회원들이 이 책을 추천했을 때도 당연히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내가 지금껏 알지 못한 게이고의 모습을 보았다는 느낌일까? 

발표시기로 보면 이 책이 내가 읽었던 다른 그의 작품들 보다 먼저라고 한다.
만약 내가 이 작품을 먼저 접했다면 그의 추리소설들이 어쩜 더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이 책과 그의 추리소설들 사이에는 느낌의 차이가 있다. 

가난하지만 나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 온 다케시마 츠요시.
배운게 없어 육체노동을 하던 그에게 허리부상은 치명적인 문제가 되었고
그의 가장 큰 희망이던 동생의 대학진학을 위해 도둑질을 하게 된 그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접하고 살인을 하게 된다. '강도살인'.
그에게는 15년의 징역형이 내려지고 홀로 남게된 그의 동생 나오키.
나오키의 인생을 그 순간부터 무수한 차별과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차게 되고
그 모든것을 견디며 이겨가는 나오키의 발목을 번번히 잡아끄는 형의 편지.... 

세상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 그의 가족들, 즉 가해자의 가족들은 아무죄가 없다고...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윤리적으로 옳다고 세뇌되어 버린 말.
'저 사람 형이 죄를 지었어도 저 사람은 차별해서는 안되'라는 강요된 윤리의식.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그의 이웃이나 그의 동료나 그의 애인이 된다면?
말로는 항상 이야기하고 이성적으로는 인정하는 일들이 실제로 그의 앞에 벌어진다면?
과연 그 때도 우리는 강요된 윤리의식으로, 노래 Imagine의 가사처럼 차별없이 대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이웃들, 동료들의 모습이 너무도 현실적이라서 부끄럽다.
나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을기에.... 

작가는 한가지 더 이야기 하고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갔다온다고 해서 과연 그가 죄값을 다 치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범죄가 뿐만 아니라 범죄자의 가족까지 고통을 받는 것은 어쩌면 잘못된 부조리가 아니라
진정한 '죄값'의 일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두가지의 생각에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결론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가해자의 가족에 대한 차별이 잘못이라는 의견과
그러 차별마저도 어쩜 가해자에 대한 제제의 일부라는 의견.
이 책에서 내리지 못한 결론이 어쩜 최근에 나온 '방황하는 칼날'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그는 가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적대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법이 아닌 피해자의 복수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방황하는 칼날'과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생각을 떠나서 책을 읽는 내내 나오키의 처지에 가슴이 아팠다.
나오키의 절망과 노력과 작은 희망과 되풀이되는 절망을 보면서
함께 슬퍼하고 함께 땀흘리고 함께 기뻐하고 다시 함께 슬퍼했다.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사람들을 욕하고 형에게 등을 돌리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마지막에 끝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참 지독히고 발목을 끄는 그의 형. 그러나 끝내 버리지 못하는 그의 형.
책은 다 읽었지만 계속될 나오키의 불행이 안타깝고
계속될 그의 인생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오키. Fighting !!!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람들이 응원은 해도 자기 손을 내밀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나오키가 잘살기를 바라긴 하지만 관계를 맺고 싶진 않은 것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좋을텐데-이게 그들의 진심일 것이다.

- p. 173

사람에게는 관계라는 게 있네.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 말일세.
누구도 그런 걸 함부로 끊어서는 안 되지.
그래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 걸세.
그런 의미로 보면 자살 또한 나쁜 거지.
자살이란 자기자신을 죽이는 거야.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려 한다 해도
주위 사람들까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할 수 없지.
- p. 3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타고난 전사인 '볼퍼팅어' 종족인 '루모'는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농장에서 평화로운 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눈을 뜬 '루모'는 농장식구들이 악마바위의 외눈박이 거인의 먹이로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되고
자신도 그들과 같이 외눈박의 거인들의 먹이가 되어 악마바위로 끌려가게 된다.
그 곳 은신처에 숨어 거인들의 먹이감이 되는 것을 피하며 살아가던 어느날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악취나는 웅덩이에서
'촐포탄 스마이크'라는 상어구데기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말을 배우고
차모니아의 전쟁과 전투의 이야기, 싸우는 방법들의 배우며 한마리의 '볼퍼팅어'로 성장하게 된다.
괴물들이 그를 먹이로 키우는 중에 '루모'는 '스마이크'와 탈출을 계획하게 되고 괴물들을 물리치고 악마바위에서 탈출하게 된다.
다른 먹이감들의 영웅이 된 루모는 자신의 의식속에 살아있는 '은띠'를 찾아나서게 되고
'스마이크'는 문명의 세께를 찾아 자신만의 길을 떠나게 된다.
그 후 루모는 '볼퍼팅어'들의 도시인 '볼퍼팅'에서 자신의 '은띠'인 '랄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과연 루모는 랄라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지...
지하세계의 음모에 빠져 최악의 위기에 빠진 자신의 종족들을 구출 할 수 있을지....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과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가 광대한 차모니아의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단 한권으로 나를 매료시켜 버린 독일 작가 '발터 뫼르스'
인터뷰와 사진찍기를 극히 거부하고 사생활을 전혀 노출하지 않아 수많은 소문을 만들어내는 기이한 작가.
이 책 또한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함께 그의 차모니아 연작 4편중에 하나이다.
4편의 연작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작품.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로 책장을 넘겼다.
과연 대단하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보다 훨씬 재미있다.
며칠동안 책을 따라서 차모니아라는 미지의 대륙을 여행하다 온 기분이다. 

자신이 창조해 낸 '차모니아'라는 대륙의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루모라는 볼퍼팅어의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그가 많나는 수많은 종족들에 대한 이야기와
각 종족들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이야기들까지...
방대한 이야기가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넘치는 유머와 함께 펼쳐진다.
유명 만화가 출신답게 6개월 동안 직접 그렸다는 삽화는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고
아이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죽음과 자유과 사랑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환타지가 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특히 발터 뫼르스의 작품은 더욱 그렇다. 

이 책의 미덕은 재미다. 일단 재미가 있다.
독자들은 깊은 고민이 없이도 '차모니아' 대륙을 여행할 수 있다.
물론 책값을 제외하면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 '꿈꾸는 책들의 도시' 보다 번역에서 개인적으로 좀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 낮 광화문 한 복판에서 사람의 목이 날아가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는 커녕 비디오로 찍어서 방송국에 보내 자신의 범행을 알린다.
사건 해결에 나선 종로경찰서 강력 8반.
강형사는 범인으로 지목된 서준필 교수의 연구실에서 일본풍의 춘화첩을 한권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춘화첩의 비밀로 인해
한.중.일 삼국의 비밀조직이 치열하ㅔ싸우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진시황 프로젝트'의 실체.
그리고 춘화첩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치열한 대결. 

소설은 크게 3개의 이야기로 나누어 질 수 있다.
광화문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하는 추리부분.
춘화첨의 비밀에서 드러나는 일제의 만행과 진시황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중국의 의식변화를 축으로 하는 역사의식.
강형사와 방형사, 그리고 채소연을 둘러싼 삼각관계를 축으로 하는 로맨스 부분.
3개의 이야기가 서로 어울리며 하나의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어느 한 축으로 치우치치 않으면서 균형감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본다는 작가의 이야기 처럼
이 작품은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구성과 빠른 전개가 긴박감을 끝까지 유지시킨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설은 독자들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소설처럼 독특한 상상과 아기자기한 심리묘사, 미소짓게하는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외국 소설들 처럼 환성적인 세계관이나 기가막힌 추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공하지 않는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 자기들의 세계에서는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다고 하고
문체가 유려하고 인간의 심성을 그린다고 하면서 스스로가 일종의 벽을 쌓는 느낌이다.
젊은 작가들의 기발한 작품들이 나오면 독자들은 열광으로 보답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설익은 어린 것들의 치기어린 작품으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물론 문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문제이긴 하나 그 정도가 특히 심한 곳이 문학이라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뉴에이브 문학상'의 제정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의 작가들도 힘들게 무거운 권위주의의 껍데기를 스스로 버리고
독자들과 함께 그들이 생각하는 진흙탕 속에서 구를 용기가 필요하다. 그 시작이 이 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제 1회 수상작인 이 작품은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 의의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책이 중간이 넘어갈 때 까지 '진시황 프로젝트'라는 것과 '춘화첩'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대결이 치열하게 그려지는데 결국은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특히 뭔가 대단한 일을 볼일 것 같던 일본의 공안 44 수장은 어이없이 사라진다.
서교수의 정체성도 문제이다. 사기꾼인지 지정한 스승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소설의 반전이 너무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한번의 반전으로 끝내도 되었을 것을 두번이나 만들어 버렸다.
두번의 반전을 한번으로 묶을 수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송곳'의 정체를 너무 쉽게 내가 예상해 버렸다는 것도 아쉽다.
마지막의 작은 트릭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눈치 빠른 독자라면 눈치채지 않았을까?
강형사를 구하는 것이 매번 방형사라는 것도 아쉽다.
물론 그 때마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지만
강형사는 너무 쉽게 위험에 빠지고 방형사는 너무 쉽게 강형사를 찾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작가가 지쳤는지
아니면 그대로 다루기엔 감당이 안되는 그 무엇이 있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마지막에 가서 힘이 떨어지고 김이 새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서툴고 아쉽다고는 하지만 그디어 한국의 문학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이 작품이 그 첫 시도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너무도 쉽게 읽어버렸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아쉬워도 즐거웠다.
이런 시도들이 점점 많아지면 언제가 독자와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한다.
오래간만에 읽은 한국 소설에서 기대하지 않은 즐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용의자 X의 헌신], [붉은 손가락] 단 2편의 소설로 나의 호감작가 목록의 상단을 차지해 버린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주문했으나 그간에 쌓아 둔 책이 많아서 이제서야 읽었다.
처음 책을 받아든 느낌은 묵직. 말 그대로 묵직했다. 무려 53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압박.
책의 크기가 작은 편이라 해도 그 두께의 압박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 책을 편 순간부터 책을 놓는 이 순간까지 한 순간도 지루함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심정은 그 두께마저 아쉼다는 느낌이 들 정도 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독자들은 한 순간도 그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뛰어난 작가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과 살아가고 있는 나가미네.
어느날 불꽃놀이를 갔던 딸은 돌아오지 않고 며칠 후 살해된 시체로 강물에 떠오른다.
딸의 죽음에 슬퍼하던 그에게 전해진 한 통의 음성 메시지.
그의 딸을 죽인 범인은 2명의 미성년자이고 그 중 한명의 집의 주소가 그에게 전해진다.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 집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를 보게 된다.
바로 딸의 성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비디오.
그리고 딸은 장남감 취급하며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 쓰레기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그 순간에 범인 중 하나인 아쓰야를 마주치게 된 나가미네.
현장에서 그는 아쓰야를 잔인하게 살해하게 되고 또 다른 범인인 가이지를 추격하게 된다.
딸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쫓는 아버지와 그의 또다른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쫓는 형사들.
그리고 나가미네에세 정보를 제공하는 미지의 인물...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의 '소년법'은 미성년자의 처벌을 제한하고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갱생'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법들(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이런 법이 있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피해자의 입장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 만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처음 얼마동안은 범인을 욕하고 피해자를 위로하지만
그 짧은 기간이 지나면 범인도 잊고 피해자도 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자신의 일이기에.
그런 그들의 입장에서 '갱생'을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법들은 부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오는 나가미네의 경우도 그에게 죽은 '에마'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고
그런 에마를 죽인 이들은 그들이 미성년자라 해도 결코 용서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되는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나가미네와 한 마음이 되어 그를 응원하게 된다. 그게 작가의 의도이다. 

현대 사회에서 '법치'를 이야기하며 개인의 복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 '법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는 법이라는 것이 피해자가 가해자 모두에게 부조리로 보여져서는 안된다는 전제이다.
피해자든 가해자는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법'이라는 것의 부조리가 있다면
그 부조리로 인한 개인의 복수는 또다른 '법'이 금지한다 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나를 대신해 복수할 수 없다면(법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도 복수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법의 취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갱생'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책의 범인들 처럼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시인하지 않고 '법치'라는 것을 이용하는 인간들,
그들에게 마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부조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법에는 예외가 있고 융통성이 있다.
우리는 그 융통성이라는 것을 선한 쪽으로만 쓰려고 한다.
이제는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아무리 법이 용서하라 하더라도 개전의 기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다는 법의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선한 쪽으로의 융통성이 아니라 악한 쪽으로의 융통성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의 맹점을 조금이나마 보안할 수 있으니까... 

나가미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마지막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결과론의 문제겠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작에 비해 반전의 크기도 적다. 차라리 없었어도 좋은 반전이 아니었나 싶다.
반전이 업어도 충분히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반전이라면 없었어도 좋았을 것을.
이 소설의 중점을 추리에 두지 않고 사회문제에 두었기 때문에 추리의 요소가 약한 것도 아쉽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선입견을 버리고 본다면  참으로 생각을 많이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장에 나 역시 기울어진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이라는 건 무엇일까? 경찰은 과연 정의의 편일까?
아니야, 경찰은 단지 법을 어긴 사람을 잡고 있을 뿐이야.
경찰이 지키려고 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법이란 말이지.
경찰은 법이 상처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어.
그런데 그 법이란 게 절대적을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법은 결코 완벽하지 않네.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 P. 5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