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립 기린과 달팽이
알렉스 쿠소 지음, 자니크 코트 그림, 윤경희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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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포장을 뜯고 표지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선명한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땐 사실 '잠'과 관련있는 책인가 생각했었다. 편안한 잠을 부르기 위한 잔잔한 내용의 책이려나 했는데 표지부터 색깔, 책의 내용까지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겨갔다.

표지에서 처음 만난 이 책의 주인공, 캥거루 '슬립'은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비주얼로 거리감없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책을 넘기며 함께 찾아간 해변가... 추운 계절에 받아 본 바다의 모습은 따뜻한 나라의 해변에 있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그런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할만큼 매력적인 장면이었다. 해수욕을 하고 싶은 '슬립'에게 필요한 그것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주머니에서 꺼내어 지는 물건들은 말그대로 예측불허 상상불가이다. 그것 하나를 찾기 위해 계속 물건을 꺼내는 슬립과 그 과정을 꾸짖거나 탓하지 않고 도와주는 동료들,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이 다채롭게 활용되는 모습들이 너무나 유쾌하고 정감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그것...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단 한 순간도 방심할 틈 없이 몰아치는 위트가 보는 내내 웃음짓게 한다.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캥거루의 주머니에서 어떤 물건이 나올까? 이 물건의 용도는 무엇일까? 왜 이런 물건들이 주머니에 있을까? 슬립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일까? 슬립에게 필요한 물건의 용도는? 나는 이 물건들로 무엇을 할까? 등등 슬립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물건에서 만들어질 새로운 이야기들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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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말이야!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09
토네 사토에 지음, 엄혜숙 옮김 / 봄봄출판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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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해를 맞이해서인가??? 노란 바탕에 발그레한 볼이 인상적인 흰 토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들려줄' 거라고 예상했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이 책은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게 꿈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평소 잘 알고 한 번쯤 꿈꿔봤을 여러 가지 직업을 너무나 귀엽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한 눈에 들어오게끔 그려놓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사실 많이 조심스럽다. 특정 직업으로 한정해서 가르치기엔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으며, 우리 세대에서 꿈꿨던 이상적인 모습은 이제 더이상 매력적이거나 그만큼 가치있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진로교육을 할 때 주로 '어떤' 어른으로 자랄 것인지,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성장할 것인지에 더 초점을 맞춰왔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책이기는 하나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본다면 직업을 소개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보다는 시각적인 표현이나 창의적 표현을 더 강조해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하나 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다보니 그림 속 주인공은 토끼와 그 앞에, 또는 그 주변에 놓인 닭(또는 병아리?)이 담긴(혹은 장식된, 혹은 그런 모양의) 컵이다. 토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모자를 쓰고, 또는 어떤 소품을 들고, 어떤 색의 옷을 입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관찰이나 표현 수업을 이끌어간다면 아이들의 시선을 충분히 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더불어 컵이 어디쯤에 몇 개 있는지, 그 속에 있는 닭(혹은 병아리)이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등등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업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직업을 어떤 색깔과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림 속 사소한 디테일에 대한 관찰까지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의 관찰력과 표현력을 신장시키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많은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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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몬스 - 제44회 샘터 동화상 수상작품집 샘터어린이문고 69
장유하.김윤아.이용호 지음, 전미영 그림 / 샘터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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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의 제목은 첫 이야기의 제목을 따 '안녕, 몬스'이다.

처음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예상은 했다. '몬스는 몬스터인 것 같아. 괴물에 대한 이야기인가보군. 어떤 괴물이지?' 흔한 동화들의 설정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 속 괴물, 두려움, 약점 등등의 몇 가지 후보군을 추려보았다. 책을 읽고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뻔한 내용일까 살짝 두려웠다. 그 때 갑자기 등장한 비둘기들은 솔직히 살짝 당황스러웠다. 뜬금없기도 하고 조금은 억지스럽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황당한 우연의 사건을 통해 아이들이 또다른 기회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진짜 아무렇지 않아진다'는 비둘기의 이야기는 좀 많이 씁쓸했다. 정말 그럴까? 실제로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들은 힘들 때 공격적으로 발산하기도 하고 한없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도 한다. 차라리 뭔가 표현해주면 한 번 더 관심을 갖고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너무 기성세대, 꼰대, 교사인 걸까? 아이들 입장에선 너무 심각하게 내 안의 몬스를 불러내는 것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는 게 더 나은 걸까? 여러 가지로 의문을 많이 남기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매사에 깊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하루 온종일'인 아이와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덤벙이'의 만남... 흔한 버디무비의 어린이버전이랄까.... 교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의 아이들이고, 이런 아이들이 함께 할 때 서로 맞지 않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 나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서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주는 관계를 우리 아이들도 맺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가득차게 한 이야기에 웃음이 차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배꽃 마을 상점 이야기.... cctv의 시선으로 바라본 양심 가게 이야기이다. 여러 고객들의 사연이 소개되고 그중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7살 초록이... 초록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내 불편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대가가 아닌 자신만의 경제관념, 자기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는 떼쟁이로만 여기고 끝날 뻔했다. 하지만 채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나 역시 배꽃 마을 상점에 딱 맞는 손님이 초록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만나고 가르쳐온 내가 어쩌면 가장 아이들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이가 아니었나 하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올랐다. 배꽃잎으로 계산하는 순수함을 어른의 잣대로만 평가해버린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 낸 의미있는 순간을 선물해 준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본인의 주관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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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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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온라인 서점과 신간 소개 코너에서 계속 눈에 띄던 한 권의 책,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인상깊게 보았던 드라마 제목과 비슷한 제목 때문인가, 눈을 청량하게 하는 초록색 표지 때문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아버지' 세 글자 때문인가...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꼭 읽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너무 궁금했다. 그러던 중 창비에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책을 받자마자 정말 단숨에 읽어내렸다.

장례식 3일 동안 펼쳐진 이야기인데 몇십 년의 근대사가 모두 녹아 있는 듯 했고, 가족이나 친지, 친구뿐만 아니라 조문하는 모든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과 아버지에 대한 그들의 마음과, 주인공의 마음이 한 데 얽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분명 아픈 역사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와 그걸 전하는 말투는 너무나 유쾌해서 눈물이 글썽하다가도 웃음이 픽 나오고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이상한 경험을 읽는 내내 해야만 했다.

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p.42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그 누구보다 애썼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아갈 때 평생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았던 딸의 마음이 되어 함께 미안해하고 이해하고 아파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이제야 알게 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아니 그것보다는 인간적인 이해라고 해야할까.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p.138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니 그러면 안 된다, 사람이니 마땅히 도리를 알고 남에게 피해 주면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항상 확신에 찬 내 마음에 이 책은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이니 마땅히 그러해야하지만 사람이기에 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또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 그 명쾌한 진리를 세상 유쾌하게 마음에 새긴다. 더불어 장례식장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이번 방문 땐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져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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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3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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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끝에서 용기를 주는 성장소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던 띠지의 문구... 그 짧은 문구에 강렬하게 이끌렸고 거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용기'와 '성장'이라는 낱말이 가지고 있는 아니 그 낱말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얼마나 견고하고 편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휴가 나온 악마와의 만남... '만약에' 한 마디면 달콤하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끝까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더 나은 생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에 대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지지(?)를 보내는 악마... 둘의 케미가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철이 들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린다. 악마와의 만남이, 그로 인한 깨달음이 아이의 생에서 조금은 더 나은 기회가 되기를, 평생 선택해 본 적 없는 아이에게 꿈꿀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악화되는 상황들에 나도 모르게 분노하고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그러하듯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끝을 맺지만 그 결말이 조금은 불만스럽기도 하다. 과연 그게 아이의 선택과 의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일까 싶은 마음에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밤은 주인공의 시간이야. -중략-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침이 되어 봐야 아는 거야. 인생도 마찬가지고. 마냥 어두은 것 같아도, 그 밤이 지나고 햇빛이 비출 때 어떤 모습일지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다." (130~131쪽)

 

 주인공 정인은 지금 밤을 지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가 맞는 아침은 어떤 시간일지 아무도 모른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하고 노력하라는 건 가난에 찌든 조손가정 아이에겐 가혹해 보인다. 

 이 책의 제목이 '클로버'인 것은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클로버가 응달에서도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클로버처럼 지금은 밤에, 응달에 가려져 작고 약해 보이지만 그 와중에도 예쁜 꽃을 피워낼 거라는 기대를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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