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 오르면 나는 정과리선생의 책을 아니 더 적확히 정과리선생의 문장을 읽는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 더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언어에 매달려 있는 그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만 어찌되었건 선명함에 있어서 정과리의 언어와 규칙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1월의 시작, 어느 지점에 오면 정과리의 책을 꺼낸다. 선명해 지고 싶은 순간이니까. 여튼 오늘 내 책상에 있는 책은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읽히지가 않는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지,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어떤 문장도 단어도 심지어 인용된 어느 시구도 와닿지가 않는다. 더는 내게 스며들지 않는 활자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본다. 1월인데 나는 벌써 지친걸까.

 

이번에는 책꽂이를 본다. 사두고 읽지 않은 책.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_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시>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 기대 없이 읽는다.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용한 사람이 된다, 시를 읽는 일의 쓸모를 찾기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날마다 시를 찾아서 읽으며 날마다 우리는 무용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최소한 1시간은 무용해질 수 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뭔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걸 순수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김연수의 말이다. 이상하다. 한 번도 위로받은 적 없는 사람처럼 나는 저 문장에서 바들거린다. 무용해질 수 있다,는 말이 이렇게 큰 원을 그리며 내게 스며든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정과리의 책을 한 켠에 밀어 놓고 김연수의 시간으로 편입한다. 

 

 

그때에도

 

신해욱

 

나는 오늘도

사람들과 함께 있다.

 

누군가의 머리는 아주 길고

누군가는 버스를 탄다.

 

그때에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고 있을 테지.

 

그때에도

당연한 것들이 보고 싶겠지.

 

신해욱의 시가 동공을 키운다. 그때에도 당연한 것들이 보고 싶겠지,라고 말하는 시인은 어떤 상징이나 은유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내 마음에 스미는 것이리라. 보고 싶다는 것은 더군다나 당연한 것들을 보고 싶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 당연한 마음을 '아, 오늘 밤에도 별이 뜨는구나'와 같은 어조로 말할 수 있는 시인이 고맙고 부러웠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말하는 것. 이것 참 낯설어진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놀라워하는 것이겠지. 무슨 창피가 그리 많아 당연한 것들이 왜 당연한지 묻기만 했던 것일까. 그냥 한 번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인데 말이다.

 

이제 다시 돌아와 정과리의 책을 편다. 56쪽 이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정현종

 

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알았다고 깔깔거릴 것도 없고

낄낄거릴 것도 없고

너무 배부를 것도 없고,

안다고 알았다고

우주를 제 목소리로 채울 것도 없고

누구 죽일 궁리를 할 것도 없고

엉엉 울 것도 없다

뭐든지 간에 하여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정현종의 시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의 일부분이 그곳에 있었다. 정과리는 이 시를 옮기며 "시가 딴죽 거는 자리에선, 나도 이젠 세상살이를 알 만큼은 안다고 자부하던 마음이 대책 없이 무너져내린다."라고 썼다. 더 나아가 "나는 내가 방금 쏟았던 탄식, 내 깨달음의 헛됨에 대한 탄식 자체가 지나친 과장이고 또 하나의 앎의 포즈임을 깨닫는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것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라고 의심하고 이어서 내 짐작을 확인한다. 물론 내 짐작이 틀렸을 수도 있다. 선생은 선명한 문장을 쓰고 있지만 내가 습관처럼 오독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튼 정과리는 정현종의 잠언에 가까운 시를 분석하며 "길의 눈부신 길 없음"이라고 글을 맺었다. 물론 이 문장 역시 정현종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길의 눈부신 길 없음,이라는 말이 또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나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다시 신해욱의 시를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과리선생의 글보다 오늘은 이 시가 그리고 이 시를 소개하는 김연수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과리선생이 이 시를 읽었다면 그리고 내 오독이 오독이 아니었다면 그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싶다.

"당연한 것들로 붐비는 시는 슬픔이니"라고-

 

그리고 오늘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위로는

"당연한 것들을 모르고 사는 삶은 슬픔이니"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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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1-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굿바이 2012-01-12 23:02   좋아요 0 | URL
헤헤^_______^

라로 2012-01-1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굿바이님 페이퍼로 김연수를 만나요,,,그러면서 정과리책을 보관함에 슬쩍,,,^^;;

굿바이 2012-01-12 23:03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어요?
저도 나비님 글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

꽃도둑 2012-01-1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만나는군요 굿바이씨,

이성과 감성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가 굿바이님 페이퍼 읽고는 중간지대로 들어서는
기분이에요. 시, 한동안 잊고 있었네요..시평론,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올해들어 아주 큰 바람이 생겼어요. 하루종일 책만 뒤적이는 거, 그거 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면 감성과 이성의 빈공간에 뭔가 채워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행복한 상태를 찰랑차랑 넘치지 않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만보고 어떻게 살아? 아니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흑흑
내게 있어 당연한 것들이여~~
아침부터 투정을 하게 하시니 굿바이님, 너무하셔요..ㅡ.ㅡ



굿바이 2012-01-12 23:06   좋아요 0 | URL
무조건 바람이 이루어지길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시는 그렇게 잊고 있다가 또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랄까 와락, 덜컹, 털썩, 이런 심정으로 만나야 제대로 읽히거나 아무렇게나 읽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나저나 이런 투정이라면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_______^

흰 그늘 2012-01-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쉰들러리스트' 보신적 있으시죠?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그장면 있잖아요 쉰들러의 유태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태운 기차가 서류상의 실수로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을때

그 곳 목욕탕 안에서 이제 가스가 나오겠지 이제 죽는 거구나..라며 모두가 공포에 떨며
체념하고 있었을때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목욕탕의 샤워기에선 당연히 물이 나오는데도 그러한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그 당연함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 환희에 찬 모습들이 참 오랜시간
기억에 남았드랬는데..

살아가다 보니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날들도 있더라구요.. 그럴때면 슬퍼거나
서럽다기 보다 서글퍼지던걸요
한데.. 그 당연함이 처절함이 되었던 날들 또한 찾아 오더라구요.

'빛' 과 너무나도 빛 같았던 빛 사이에서 참으로 절실해 지던건
정말 '선명함' 이었어요.

굿바이 2012-01-16 22:29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영화의 장면이 저도 생각납니다.
영화를 볼 때도 먹먹했었는데 복기해도 여전히 그렇군요.

빛 같았던 빛 사이에서 '선명함'이 절실했다는 말씀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그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절실함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순간들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매번 실패합니다.

잘 지내시나요?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내실 지 모르겠지만
그저 기쁜 날들의 연속이었으면 합니다. 욕심이겠지만 말입니다.
 

다음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인터뷰로 그가 사망하기 3년 전 칠레의 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이러한 인터뷰를 <프루스트 인터뷰> 또는 <프루스트 질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떤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아주 짤막하고 재치있는 질문으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고 싶은 이유는 어제밤에 있었던 황군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여튼 나는 이책 115쪽을 폈다.

이책은 다름아닌 이녀석. A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답이고 A'는 나의 대답이다.

 

 

 

 

 

 

 

 

 

 

우선 몇 가지 질문들을 옮기면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

A' 오호 어쩌면 나와 이렇게 동일한 생각을 하다니.

 

Q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요?

A 비타협, 권력 남용, 관용의 부족

A' 나와 비슷한 단점들

 

Q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가요?

A 사랑을 나누다가(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죽고 싶을 겁니다)

A' 목욕하고 코코아 마시고 잠옷 입고 잠들어서 깨지 않는 것

 

Q 죽은 다음에 다시 지구에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나 물건으로 돌아오고 싶습니까?

A 가능하다면 뭄무게가 채 2그램도 되지 않는, 새 중에서 가장 작은 새인 벌새가 되어 돌아오고

   싶습니다. 아니면 스위스 작가의 책상, 아니면 소노라 사막의 도마뱀

A' 무조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야 한다면 무조건 고래

    혹은 돌고래

 

Q 소설 속 인물을 택한다면요?

A 마이티 마우스, 벅스 버니, 스피디 곤살레스

A'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로빈슨 크루소, 그리스인 조르바

 

Q 어떤 단어나 문장을 가장 많이 사용하시나요?

A <젠장>과 <씨발>

A'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래>, <여튼>, <물 좀 주세요>

 

Q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A 아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

A'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오고, 전쟁이 나고 그래도 막 살아남는 것

 

Q 어떤 재능을 가지고 싶습니까

A 기타를 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축구를 하고 당구도 잘 쳤으면 좋겠습니다.

A' 우와~ 너무 많네요. 몸을 쓰는 모든 행위. 머리를 쓰는 모든 행위.

 

Q 가장 거슬리는 게 있다면

A 버릇이 없는 것

A' 집중력 장애

 

Q 당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A 나의 책들

A' 없어요

 

Q 여자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A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명석함과 착한 마음씨. 세 번째로는 유머 감각. 물론 명석하고 착하면

   유머는 거저 따라오긴 하지만.

A' 볼라뇨씨 여자를 너무 모르시는구나^^ 체력과 지구력(?)

 

Q 그렇다면 남자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A 오호, 이 질문에는 이미 답한 것 같은데요. 네 번째 것을 추가하자면, 있으면 좋지만 꼭 필수적인

   건 아닙니다. 용기.

A' 체력과 지구력(?)

 

 

이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조금 선명해진 사실. 이런 짧은 물음과 답변으로 한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는 것. 타인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타인을 알아간다는 것은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것. 여튼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한 것일까. 그런 노력을 다 했다고 믿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을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타인을 알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에라이~! 하등에 쓸모없는 생각들로 바쁜 월요일. 나는야 공식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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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굿바이 님 따라하기
    from 음... 2012-01-09 15:52 
    이름도 처음 듣는 아저씨, 로베르토 블라뇨의 인터뷰를(정작 책은 그다지 관심도 안 두고 있;;) 굿바이 님 서재에서 보고 냉큼 따라해본다. 이런 거 안한 지 참 오래인데, 오늘은 왠지 이걸 하면서 생각 정리가 될 것 같은 기분 ~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A'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고, 성미가 급해서 결론을 빨리 내리려는 태도. (사실 이것 말고도 많겠으나
  2. 굿바이님 따라하기 2
    from 晩秋佳景 2012-01-09 16:42 
    로베르토 블라뇨의 인터뷰를 (정작 책은 표지만 보고 알고 있었으나 그다지 관심도 안 두고 있;;) 굿바이 님 서재에서 보고 치니님이 따라한다고 하는 것을 보고 냉큼 따라해본다. 이런 거 안한 지 참 오래인데, 오늘은 시간은 촉박하지만 꼭 따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ㅋㅋ ●굿바이님●치니님●나비님,,ㅋㅋ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A' 오호 어쩌면 나와 이렇게 동일
  3. 굿바이님 따라하기 3
    from 아름다운 그대에게 2012-01-09 17:16 
     헤헷 그렇다면야 나도 잠깐.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A' 살찌고 게으른 것? 이를테면 인간 돼지...  Q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요?A 비타협, 권력 남용, 관용의 부족A' 비열함, 비공존하려는 마음가짐, 뻔뻔함 Q 어떻게 죽음을 맞고
 
 
치니 2012-01-0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미있어요. 단편적이긴 해도 굿바이 님이 지구상에서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건 알 것 같은데요.
근데 왜 다시 태어나면 고래 혹은 돌고래일까, 그건 모르겠어요! 궁금 궁금.
힛, 저도 해볼래요.

굿바이 2012-01-09 16:41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셨어요? ㅋㅋㅋ 신나요!!!!

저는요, 혹등고래가 초음파로 노래하는 걸 들었거든요, 감동적이었어요.
육중한 몸으로 큰 원을 그리며 아가 고래랑 노래하고 친구 고래랑 노래하고
북극의 차가운 바다와 적도의 뜨거운 바다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참으로 글로벌한 그 삶이란... 보일러도 없이 냉장고도 없이 그저 자유롭게 유영하고 솟구쳐오르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살육의 축제도 없고...
게다가 돌고래는 또 어찌나 예쁜지....뭐 그런 이유에요. ^____^
참고로 저는 침대에 북극곰과 고래인형을 두고 자요.

라로 2012-01-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저도 굿바이 님 따라 해볼래요, 저는 공식 백수지만 비공식 보따리장수, 흑

굿바이 2012-01-09 16:43   좋아요 0 | URL
비공식 보따리장수요? 유후~~~~ 살짝 감은 오는데, 그건 혹시라도 나중에 나비님을 뵈면 그때 여쭈어볼래요!!!!

이진 2012-01-0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힛, 제가 이제껏 본 문답형식의 글 중에 제일 알찬 것 같아요.
역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여성들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알라딘의!

굿바이 2012-01-10 11: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이진님^^
알찬 내용으로 보였다니 다행입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웽스북스 2012-01-10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이거 하다 잤어요 어제 ㅋㅋㅋ

굿바이 2012-01-11 11:14   좋아요 0 | URL
궁금해요!!!!!ㅋㅋ

페크pek0501 2012-01-1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 내겐 야망이나 자신감이 없는데, 남들은 있다고 보고 오해 받는 것.
Q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가요?
- 할 일 다 해 놓고 유서까지 써 놓고 이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잠이 들었을 때, 잠이 드는 순간만큼이나 달콤하게 스르르... 죽음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싶어요.
Q 어떤 재능을 가지고 싶습니까
- 삶이 다하는 날까지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아는 것. 이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함.

(이것, 소이진님의 서재에 제가 댓글 쓴 것을 복사붙이기 했어요. 그냥 가기 섭섭해서요.)
두 개 추가합니다.

Q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 건강을 잃거나 삶이 추락하는 것. 누군가로부터 배신 당하는 것.
Q 당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넷북. (이것에 흠집내는 사람 있으면 유치하게 과잉반응함.)
아주 재밌어하며 갑니다.

굿바이 2012-01-11 11:16   좋아요 0 | URL
넷북 사용하세요? 찌찌뽕~^^

그런데 pek0501님은 벌써 원하는 재능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부럽습니다.
orz

風流男兒 2012-01-1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만큼은 많이 들어봤네요 정말!
떠올리며 잠깐 큭큭 웃었다는 ;;

근데 책값 정말 저 값이 맞네요. 설마 저 질문만 넣어놓고 저값에 파는 건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ㅎㅎㅎㅎ

굿바이 2012-01-11 11:18   좋아요 0 | URL
그지? ㅋㅋㅋ 쓰면서 나도 웃었다오^^
그나저나 나는 그대가 가장 많이 쓰는 말도 알고 있지.
<그러게요> 맞지? 우하하하하하하!!!!!

책은....읽어보면 알게 된다오 ^_______^
 

주변에 부쩍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늘었다. 또한 집에 놀러오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하여 뭔가 기쁘고 즐겁게 나눠 먹을 채식요리를 연습하려고 하던 중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한 요리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녀석은 바로 이놈이다.


 

 

 

 

 

 

 

 

 

 

 

 

 

 

보자마자 주문한 <Plenty : Vibrant Vegetable Recipes From London's Ottolenghi>라는 아름다운 요리책이 도착했다. 혼자 신이 나서 레시피를 훑어보다 이내 좌절했다. 소개된 요리의 70%정도는 오븐이 필요한 요리였다. 아------ 

집에서 쉬는 동안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좀 해볼 요량이었는데 정작 오븐은 없고, 오븐을 사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 아-------

우선 오븐이 필요없이도 할 수 있는 요리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는데 뭐랄까 이 수습할 수 없는 기분이란, 김수영시인의 시를 읽고 시는 절대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좌절감과 흡사했다.  

이 책은 야채 종류별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아------ 이런 생치즈랑 듣도 보도 못한 허브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오븐만 있으면 해결될 것처럼 황군에게 말했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아-------  

 

뒤숭숭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을 보면서 이 책을 같이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백석의 시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요리책을 만나서 오늘밤은 눈이나 푹푹 내려라,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요리를 못하는 것은 요리책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요리 같은 건 식욕이 없어서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요리책은 나를 유혹하고 어데서 진열되어 있는 오븐은 이런 내가 좋아서 후끄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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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1-12-2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굿바이님 덕분에 오늘 아침 웃어요 :>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사진이네요 쓰읍~

굿바이 2011-12-20 14:41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책을 열면 미치게 맛있어 보이는 요리들이 쏟아져요 :) 그래서 슬퍼요 ;)

또치 2011-12-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어, 아름답군요! 저는 오븐이 있습니다 히힛.
혹시 샨티에서 나온 <평화가 깃든 밥상>이라는 책 보신 적 있나요?
이 책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채식요리책으로 꽤 좋았거든요.

굿바이 2011-12-20 14:45   좋아요 0 | URL
역시!!!! 오븐이 있으시군요 ㅜㅜ
<평화가 깃든 밥상>은 저희 집에 온 어떤 인간이 집어갔습니다. 엉엉~
오늘부터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합니다.
오븐이 있는 인간과 오븐이 없는 인간! 아~ 부러워요 ;)

라로 2011-12-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늘 하루 좌절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저는 이 페이퍼를 보고 좌절,,,ㅠㅠ
가지요리 표지가 정말 유혹스러워요~.ㅠㅠ

굿바이 2011-12-20 14:46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가지요리 좋아하세요?
저 요리에는 심지어 석류도 들어가더라구요. 가지에 뿌려진 보석같은 녀석들이 석류알이더라구요. 그럼 뭐합니까???? 구울 수가 없는데...ㅜㅜ

라로 2011-12-21 13:59   좋아요 0 | URL
저는 가지와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토마토,,,베이즐같은 허브의 환상적인 맛의 앙상블을 좋아해요!! 아~~~~먹고싶다,,,쓰읍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 페이퍼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우???ㅠㅠ

치니 2011-12-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백석이 살아 있었으면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패러디 같아요.
모두들 쉬면 요리를 해보자, 싶어지나 본데 전 왜 쉬면 더 쉬고만 싶으까요. ㅋ켁.

굿바이 2011-12-20 14:52   좋아요 0 | URL
백석이 억울해서 벌떡 일어날 패러디죠? ㅋㅋㅋㅋㅋ

당분간 요리와 요가를 좀 해볼 생각이었는데, 요리는 오븐이 없고, 요가는...말이 안나오네요. 서러워요 ㅜㅜ

웽스북스 2011-12-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효로 모양은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라며 응앙응앙 울을것이다~

굿바이 2011-12-20 14:53   좋아요 0 | URL
나타샤야 울음을 멈추어라~~~내 속은 타들어간다~~~~

웽스북스 2011-12-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저도 파/마늘/양파 없는 요리에 포스트잇 붙이는데 ㅋㅋㅋㅋ

굿바이 2011-12-20 14: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대를 위한 레시피를 발견했지 :) 또 다시 문제는 오븐!!!;)

웽스북스 2011-12-20 22:59   좋아요 0 | URL
앗 언니 근데 외국요리도 파랑 마늘 양파가 많이 들어가요? ㅜㅜ 슬픈데요 어쩐지.
원효면옥으로 오세요!! 이제 채식레스토랑으로 바꿔볼까요.
저녁에 야채 볶아먹었어요. (분명 한그릇 만들어서 다먹었는데 배고파요 ㅋㅋ)

쉽싸리 2011-12-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맛`이란 책 있는데요. 백석시에서 음식 관련된 엮어서 책으로 낸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요리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것도 굉장하죠. 오븐없으면 그냥 두껑 덮고 후라이팬에 굽죠 뭐!

굿바이 2011-12-20 14:57   좋아요 0 | URL
아, 그책 저도 알아요 :)

뭐랄까 겨울이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그런 로망이 있었어요. 물론 대부분 술판으로 번지지만요 ;)
그나저나 후라이팬 뚜껑이라도 덮고 한 번 시도해볼까 합니다!!

페크pek0501 2011-12-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님은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러니 요리도 잘 하실 테죠?
저는 요리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더 부러운 건 요리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 앞에 서면 괜히 제가 작아지죠. 그런데 설겆이는 이상하게 재밌어요. 이어폰 끼고 음악 들으며 물로 그릇들을 씻으면 내 마음을 씻어내는 기분이랄까. 더러운 그릇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도 재미를 주지요. ㅋㅋ 그래서 설겆이는 누가 해 준다고 해도 양보 안 해요. ㅋㅋ

음식 사진이, 맛있게 보여요.

굿바이 2011-12-20 15:00   좋아요 0 | URL
pek0501님 안녕하세요? :)

저도 요리 잘하는 분들이 제일 부러워요, 거의 마술에 가까운 사람도 봤는데 우와~ 정말 감동이었어요. 저는....못해요. 먹지 못할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형편없어요 ㅋㅋㅋ
그나저나 설겆이는 저도 나름 잘해요 :) 평균속도를 넘는 것 같고, 깨끗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거라도 잘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ㅜㅜ

風流男兒 2011-12-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그래도 뭔가 누나가 하면 엄청 맛있을 거 같은데요!
아-------- 맛있겠다 ㅎㅎㅎㅎ

굿바이 2011-12-21 17:35   좋아요 0 | URL
재료와 오븐만 있으면 누가 만들어도 맛있을 요리들인 것 같아^----^
오늘은 황군의 요청으로 떡볶이를 할 예정이지.
심지어 양지로 육수를 낸 떡볶이!!!!

네꼬 2011-12-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채식하면서 계란도 먹어도 되는 거예요? (사진 보고 묻는 거예요.) 그렇다면 안심이에요. (저는 채식 안 해요. 육식을 주로 하고 채식은 조금만 해요. 계속 육식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만 조금만요.) 채식하는 분들도 계란은 꼭 드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댓글 엄청 이상한 거 알아요. 그리고 진심이에요.) 그나저나

요리 같은 건 식욕이 없어서 버리는 것이다,

굿바이님 멋있어.

굿바이 2011-12-22 14:04   좋아요 0 | URL
채식도 단계가 많은 것 같더라구요.
계란이나 우유를 먹는 분도 있고, 전부 다 안 먹는 분도 있구요.
이책을 쓴 쉐프도 모든 육류를 거부하는 분은 아니라고 책에 썼더군요.
이분이 요리칼럼을 썼는데 요리에 달걀이나 치즈 기타 등등의 재료가 들어가서 채식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모양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저는 이 요리사가 교조적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저는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해 자주 먹지 않아요.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도 아니구요. 제가 채식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비웃죠. 원래 잘 안 먹던 걸 뭐하러 끊는다고 하냐구요 :)

그나저나 식욕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ㅜㅜ
 

11월 30일 

내가 일을 손에서(정말 손에서) 놓았다는 풍문은 멀리멀리 흩어져 J의 귀에 닿았다. 일을 그만둔 지 보름인데 소문은 참으로 빠르다. 여튼 J는 다급한 목소리로 얼굴을 보자고 했지만 다급함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대충 감을 잡은 나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은행잔고는 없는데 급전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쩌나, FTA를 우리 둘이 온몸으로 막아보세,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그러나 감은 틀렸다. 감나무에서 단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감도 떨어졌다. J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얼씨구.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사랑에 빠진 본인들의 입장에서 어디 쉬운 사랑이 있겠는가, 작은 돌뿌리도 태산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깊이 복식호흡을 하고 다 늙은 J와 마주앉아 J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에 빠진 J는 도리언의 초상화처럼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내심 부럽기도 했고 아득하기도 했다. 아- 이토록 언짢은 관음증은 정녕 질투인가. 오로지 쿠폰을 모으기 위해 주문한 스타벅스의 커피는 마침 무지하게 달았다. 뭔들.  

J는 어찌하면 좋겠냐고 했다. 뭘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물음은 먼저의 질문과 똑같았다. 그러니까 어찌하면 좋겠냐고. 나는 열심히. 간절히. 즐겁게. 후회없이. 사랑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랑만큼은 열심히. 간절히. 즐겁게. 후회없이가 답이라고 믿는 그러니까 내게는 거의 신앙에 가까운 원칙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틀어질 것은 틀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낮과 밤은 찾아오겠지만, 또 그것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아니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지 모르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젠장.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 권위라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냈다. 내 말은 우스워도 저도 나도 좋아하는 강신주선생의 말은 좀 들리지 않을까 싶었다. 강신주의 책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186쪽을 나는 힘주어 읽었다. 들어라 J여. 

사랑은 타자를 신과 같은 절대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가 나를 나만큼 사랑해주기를 강제할 수 없고, 단지 바라는 것 이외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기도의 이면에 사실 내 기도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숨은 욕망이 있는 것처럼, 내 사랑도 그에 걸맞는 대가를 무의식적으로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욕망 아닌가요? 그래서 바르트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내면을 다음과 같이 서럽고 아프게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 쓴 말이다. 들어라 J여.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며,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반대로 칩거하는 자, 움직이지 않는 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 않는, 마치 역 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같이 '유보된' 자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책을 내려놓고 J를 바라보았다. J는 울었다. 나는 J를 때리지도 않았고 겁박하지도 않았는데 J는 울었다. 따라서 울 수도 없고 난처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난처한 시간 동안 나는 J를 바라보았다. 예뻤다. 울고 있는 J도 예쁘고, J의 울음을 타고 흐르는 불사의 시간도 예뻤다. 물론 J가 울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돌로 쳐 죽일 놈은 뺀다. 그 놈이 내게 따져도 할 수 없는 일. 나는 무조건 J편이기 때문이다. 암뇨.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J는 내게 말했다.
두 번 다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가는 숨통을 끊어놓겠노라고.
아- 강신주도 바르트도 구제할 수 없는 저 무지한 인간이라니. 나는 탄식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J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웃었다. 더 정확히 J는 웃었다. 음- 숨통이 끊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J를 웃겼다. 내심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찻집을 나와 얼마를 같이 걷는 동안 J는 내게 말했다. 두렵다고. 
나는 또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어줄까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내게 두려웠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건 또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걸 어찌 말로 하나. 분명하지만 말로 할 수 없는 것들. 그저 몸과 마음에 꽂혀있기는 한데 실을 매달아두지 않아 찾을 수 없는 바늘처럼. 어느 날 똑같은 고통으로 느낫없이 이렇게 나를 찌르는데도 나는 말로 옮길 수가 없고 꺼내어 보여줄 수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J도 내 황망한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J에게 위안이 되었을 수도 있고. 다음에 만날 때는 뭐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했지만 또 사랑이야기,라고 해도 나는 괜찮다. 겨울 밤은 길고, 겨울은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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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0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아- 좋아요. 마냥 좋다고 하는 저는 J처럼 사랑에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좋구나 좋구나, 나도 사랑을 열심히 간절히 즐겁게 후회없이 해야지. 이러고 있네요. 한국의 제비들은 겨울이 오는데도 여전히 활동 중이군요.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굿바이님 서재, 새로운 글이네요. 이제 시작인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길 :)

ps.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어주는 거, 저도 해보고 싶어요. 해볼 거에요. 겨울 가기 전에!

굿바이 2011-12-01 18: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말없는수다쟁이님 :)
바람이 차가워졌던데 오늘 하루 잘 지내시고 있나요?

뭐든 열심히 간절히 즐겁게 후회없이 하면 참-좋은데 말이 쉽지 그게 쉽지 않죠. 그래서 늘 사람들은 어딘가 기웃거리고 떠돌고 하는가 봅니다. 저 역시 그렇구요.
언제 짜잔-하고 모여서 가방에 있는 책 꺼내 아무 페이지나 낭독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신의 계시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근사한 놀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겨울 가기 전에 꼭 한 번 해보세요.
아참, 그리고, 감기 조심하세요!!!!


2011-12-01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밤 나는 봄밤을 꿈꾸오,라고 했더니 친구는 대뜸 표절이오,라고 답한다. 루시도폴이라는 친구가 어느 노래의 시작을 그리했다오,라고 덧붙인다. 나는 젠장이오,라고 말한다. 그랬더니 친구는 사실을 말하는데 화를 내다니 촌스럽소,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나는 말한다,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운치있는 것이오,라고.  

일주일동안 잠을 잤고 약을 먹었고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고 간혹 통화를 했다. 소란스럽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다르게 그 걱정들을 액면가로 받아들였다. 뭐랄까, 이것 역시 다 지나가리라, 뭐 그런 마음이랄까. 아니면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좀 더 세련되졌다고나 할까, 뭐 그런.   

일주일동안 읽은 책들 중 몇 권의 책은 감상을 남기도 싶은데 단어와 문장의 섬세한 규칙들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저자나 작품을 욕보일까봐 망설이고 있다. 물론 뻔뻔하게 나는 리뷰를 남길 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좋았으니까. 그리고 그 처음은 한강의 소설 <희랍어시간>이 될 것 같다.  

쌩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펼쳤는데 번쩍하며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Return here impossible.Storm."   
에이-그럴리가. 나는 어찌되었건 돌아갈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좀 민망하거나 아찔하더라도.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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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11-26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남겨주세요!! 기대기대

그나저나, 언니 저는 바로 저 문장 때문에 오늘 매우 오랜만에 루시드폴의 노래를 들었단 말이죠. 페이스북에 정확히 이렇게 썼단 말이죠. 그러니까, 짝퉁찌찌뽕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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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문득 듣고 싶어진 노래.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http://www.youtube.com/watch?v=SL157XCQJBQ

굿바이 2011-11-26 23:18   좋아요 0 | URL
급하게 좌절했소.
그렇지만 노래는 좋구려 ㅜㅜ

風流男兒 2011-11-29 15:26   좋아요 0 | URL
이 노래, 언젠가는 기타로 한번 쳐보고 싶어요 ㅋ
일단 많이 들어야지 ㅎㅎ

風流男兒 2011-11-2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먹고 많이 주무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곧 뵙날을 소원합니다 후훗.

굿바이 2011-12-01 13:45   좋아요 0 | URL
12월 중순에 뵈어요. 후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