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자본론 -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심숀 비클러.조나단 닛잔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인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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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industry)과 영리활동(business)을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구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설명을 들어야 아는 사람의 이분법이란 이렇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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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이번 주는 휴가다. 연구계획서 발표는 내용과 상관없이 마무리되었고, 참여하던 일거리도 모두 종료되었다. 전화가 오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늦잠을 자도 되고, 약속을 잡아도 된다. 신난다. 물론 이래저래 버티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이 온갖 방법으로 태클을 걸지만 그것도 약이면 약으로 잠이면 잠으로 다스리면 된다. 이또한 신난다. 

 

시간이 허락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은 많지만 지금은 그저 뒹굴거린다. 아침은 아침으로 저녁은 저녁으로.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다 집안에 온기가 필요하다 싶으면 장을 보고 음식을 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내가 있어 이또한 신난다.

 

지난 월요일쯤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드라마를 보라고 그러면 뒹굴거리는 일이 훨씬 재미있을 거라며 드라마 한 편을 추천했다. 이미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라서 흐름을 따라가려고 다운을 받아서 보기 시작했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예뻐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웃는 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소녀와 소년은 웃는 모습이 예뻤다. 그들은 내게 맑은 미간과 작아진 눈매 그리고 주름진 콧등과 하얀 치아로 삶의 에너지를 단 몇 초만에 전달했다. 어떤 풍광보다 어떤 분위기보다 나는 그들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지금도 무언가 기억하고 싶을 때는 그들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낸다. 그것만으로도 신나고 가끔은 격하게 살고 싶어진다. 그게 얼마나 예쁜지.

 

여튼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웃는 모습이 예쁘다. 처음에는 그러면 된거지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해졌다. 혹은 드라마 곳곳에 흩어져있는 작가의 기억이라면 기억이고, 욕망이라면 욕망이고, 의지라면 의지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저 쨍한 미소를 지닌 소녀를 데리고 와서. 하늘 아래 새 것이 뭐 있겠나 싶으니 설정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좀 신선해도 되는 것 아니겠는지요.

 

작가님, 상상하는 것만으로 따지만 제 유치함을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단언컨데 제가 이깁니다. 뭐 개인적으로 만난 적 없고 비교한 적 없으니 이것도 제 유치한 승부욕이라 하면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렇지만 그 유치함을 혼자 고이고이 모셔두는 것과 세상에 풀어놓는 것은 다릅니다. 이 유치한 상상도 생물이라서 의도와 다르게 자라고 번성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좀 수위를 조절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아니면 정녕 중력보다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기는 사랑에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을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혹은 실로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거나 그런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면, PPL이라도 조금 줄여주실 수는 없으신지. 뭐 저의 재미를 위해 작가님에게 너무 많은 걸 주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바꾸라는 건 어딘지 건방진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입맛에 안맞으면 안먹으면 그만인 것을. 무례를 용서하시길. 드라마 이야기는 여기까지.

 

여튼 다시 돌아와

웃는 모습이 예쁜 내 소녀와 소년들은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내게 눈부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산다. 그러니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그들 모두가 내게 신(神)인지도. 그러니 덕분에 나는 신들의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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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12-2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뒹굴거릴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여유가 생겼을 때 해야지 생각했던 일들,
막상 여유가 생겨도 잘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그냥 단순히 뒹굴거리는 거 저도 완전 좋아하는데요.
30일까지 꼬박 출근도 해야하고,
출근하면 또 정신없이 일해야 하는 일상이 슬프네요.

굿바이 2016-12-2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이 어수선한 시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안부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운 날들입니다.
매일 출근하는 분들에게 죄송할만큼 열심히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다시 생계와 학업을 위해 치열해지겠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 김상혁 시집 민음의 시 192
김상혁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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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치는 게 싫을 때가 있다. 어떤 상처들을 들킬 것 같아서. 그런데 너무 익숙해진 상처들은 들키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루해서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어떤 시들도 그렇다.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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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낙서와 형광펜 자국이 수두룩하다. 도서관에 가서 대출이력을 요청했다.  대출자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연락을 해서, 이런 빌어먹을 짓을 저지른 사람을 찾아야 이 모든 분노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만나서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 공공재와 같은 성격임을 모르고 했다면 일단 알려주고 망신을 줄 생각이었고, 알고도 그랬다면 한 대 후려칠 생각이었다. 이건 요즘 시절과도 맞물린 분풀이인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담당자는 이력을 알려줄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난감할 이유가 없다. 원칙이 그렇다면 내가 포기하면 그만. 도서를 반납하기 전 연필로된 낙서와 지저분한 선을 지웠다. 그래도 그 망할놈의 인간이 책장에 쏟아부은 힘의 흔적과 역한 형광펜 흔적은 그대로 남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공공의 것과 사적인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게 그리 어려운가. 아니면 알고 또 알고 너무 잘 알지만 알기만 하는가. 아니면  알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 것만 내 것이면 그만인 것을 싶은가.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마음껏 욕심껏 흠집을 내고 납기일에 맞춰 반납한 사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그 또는 그녀를 한 대 갈기지도 못했고, 힘껏 망신을 주지도 못했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쨍한 트라우마를 남겨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신이 지금처럼 혼미하고 매일매일 가슴이 벌렁이는 상태에서 그 또는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필시 나는 내가 사용한 폭력 때문에 아주 오래 스스로의 심신을 괴롭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나에게 허락한 수치의 범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럴싸한 명분을 두르고 개인적인 응징의 형태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굳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시험공부하다가 문자를 보낸다며 내 사랑하는 조카가 물었다. 이모, 상식이 뭘까요. 질문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지만 모른 척 했다.

 

늦은 저녁 알라딘에서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반가운 시집이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신간이다.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멈춘 어느 지면의 시를 먼저 읽는다. 내 조카가 조금 더 세월의 내공이 붙었다면 어쩌면 문자의 답으로 이 시의 한 구절을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여기 대신 짧게 옳긴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 학교 도서관 앞을 지나며 잠시 휘파람을 불었다. 은행나무 잎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 저녁 광장에서도 어쩌면 나는 휘파람을 불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거짓말처럼 은행잎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허수경, 이국의 호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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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니에게서 내 사랑하는 조카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다름아니라 조카가 연애인을 좋아한다는 것.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연애인을 좋아한다는 것이 뭐 그리 깜짝 놀랄 일이라고. 언니의 호들갑에 웃었지만 그간 워낙 특이한 녀석이었기에 나도 내심 놀랐다. 하여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 십대를 소환해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나는 연애인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고, 그 옛날 언니도 오빠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부 스스로를 너무 잘난 인간들이라 엄청난 착각을 했던 것 같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누구를 마음에 두기 보다 스스로를 사랑하기에도 바빴다. 돌이켜보니 참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었다 싶다. 반대로 조카는 우리와 다른 정상적인 녀석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다 싶고.

 

조카가 좋아하는 연애인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무개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 아무개를 검색하니 웃는 모습이 참 고운 청년이었다. 음........곱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그정도. 조카의 취향이 궁금해진 나는 아무개가 출연한 작품이 뭐가 있나 검색하고, 최근에 출연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몇 편을 다운받아 시청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은 역시나 웃는 모습이 곱고 나름 반듯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이 만들어낸 이미지라고 짐작되지만 마초같은 모습도 있었다. 여튼 소녀가 된 내 조카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싶으니 귀엽기도 하고. 아, 이 녀석에게도 이제는 이런 설렘과 이런 기쁨들이 찾아들겠구나 싶으니 기쁘고 짠하고 여튼 묘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 마초는 좋아하지 마라, 그것은 박복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일이란다, 뭐 이런 헛소리를 혼자 하고 있으니 나는 참 할 일 없는 이모다.

 

조카와 추석에 만나 수다를 떨려면 나는 그 고운 청년이 나오는 드라마를 좀 더 봐야할 것 같다. 그래야 조카의 상상과 설렘에 동참해 조금이라도 훈수를 두거나 깔깔거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라도 의식적으로 조카의 곁에 오래 머물고 싶은 것을 보면 나는 조카에게 약자다. 그래서 뭐 서운한 건 없고. 그저 제발 드라마가 재미있기를, 지나치게 억지스럽지 않기를, 캐릭터들이 적당하게 이성적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노파심에 소녀가 된 조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으니, 라 보예시가 쓴《자발적 복종》이다. 이 책이 조카의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지만 앞으로 종종 살아가면서 꺼내 볼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이 책은 모든 상황에서 타성적 습관과 자유의 망각이 가져 올 공포의 현장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랑도 그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랑에 접어드는 특수한 타이밍과 그것이 유지되는 지난한 시간들 안에는 누군가는 주인으로 또는 누군가는 마름으로 둔갑할 수 있는 여러 지점들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혹여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조카에게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럴 때마다 이 책이 조카의 머뭇거리는 발목을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결과적으로 소녀에게 줄 추석선물로 이만한 게 없다.

 

 

 

독재군주는 자신의 눈에 들고자 애쓰며 호감을 구걸하는 아첨꾼들을 항상 본다. 이런 자들은 독재군주가 말하는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군주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생각을 미리 알아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학대해가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고 군주의 일을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 군주의 즐거움에서 자신의 즐거움을 찾아야 하며 군주의 취향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본래의 취향 따위는 버려야 한다. 체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본성은 완전히 내던져야 한다. 군주의 말과 목소리, 그의 눈짓과 사소한 표정의 변화에 유의해야 한다. 군주의 뜻을 살피고 그의 생각을 알아내는 데 첨병 역할을 하지 못하는 눈과 손, 발은 군주에게 쓸모가 없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 행복할까? 그렇게 사는 것을 과연 인간의 삶이라고 부를 수조차 있을까? 그런 삶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또 있을까?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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