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산맥은 강건하다. 땅에 가득히 꽂히는 여름의 빗줄기는 살아 있는 것들의 물 속 깊은 곳에 가두어진 비린내를 몸 밖으로 밀어내 뜰과 거리에 가득 차게 한다. 비오는 날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엇갈리는 모르는 여자들도 비린내를 풍기고, 개집 속에서 대가리만 내밀고 빗줄기를 바라보는 우리집 잡종견조차도 생명의 날비린내를 주체하지 못한다." - 김훈, <풍경과 상처> 

케이크를 사자 빵가게 소녀가 묻는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아버지의 나이에 맞게 초를 달라고 하자니 꽂는 나도 보는 아버지도 지루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한 개를 달라고 했다. 어차피 한 해를 또 살아내셨으니 그거면 총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은 아버지의 생일을 핑계로 모였고 이제는 제법 커버린 조카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뭔가를 하느라 예전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다. 마당의 개도 짖지 않는 폭염이었고 조용한 생일잔치였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모인 가족들은 TV를 보거나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이야기했다. 에어컨이 뿜어 내는 차고 건조한 바람 덕분에 표정은 온화하였으나 그렇다고 딱히 행복한 얼굴들도 아니었다. 다들 시급한 문제가 있고 시급하지는 않더라도 복잡한 속내가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알 것도 같지만 알 수는 없는 마음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몽매하였으니 그렇게 퉁명스러울 것도 없는 밤이었다. 그저 아직 먹고 사는 걱정에 노출되지 않은 조카들을 바라보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인 그런 여름밤이었다. 

언니와 올케는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학교, 학원, 성적, 영어...... 둘은 점점 그들의 대화 속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어느 시간 이후로 조금 지루해졌다. 그래서 거실을 벗어나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냉장고에 차가운 맥주가 있는 것을 봐두었던 참이다.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갑자기 거실이 조용해 진다. 평소에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엄마의 낮은 목소리. 니들 아이들 이야기 그만 할 수 없니? 어쩌면 그렇게 니들 밖에 모르냐?
이어 거실은 조용해진다. 그럴 필요 없는데. 그게 아닌데. 그냥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나는 이제 나갈 수도 없는 주방에서 서성인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 거실로 나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여전히 묵찌바 놀이를 하고 있는 조카들에게 간다. 이모도 껴주라. 

자정이 가까워지고 나는 이층으로 올라왔다. 창문을 열자 비린내로 치면 최상급일 바다 냄새가 묵직하게 몰려온다. 나는 항구에 가깝게 있음을 실감한다. 장마가 끝났으니 뜨거울 일 밖에 없을 것 같지만 이내 간간한 냄새 뒤로 헐겁게 따라 붙는 기운이 있음을 느낀다. 여름도 길 것 같지는 않다. 창문에 기대어 밖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오신다. 주무실 시간이 지났는데. 아버지가 이층을 올려다 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어서 창문을 닫으라는 손짓이다. 어서 자라는 얼굴이다. 그리고 마당에 있던 전자 모기체를 휘두르신다. 불빛이 튄다. 내 탓에 죽어나가는 모기가 여럿이다. 소리도 빛도 괴기스러운 모기체다. 나는 가만히 생각한다. 감전사가 잔인할까 압사가 잔인할까 아니 화생방이 잔인할까. 주린 배 한 번 채우자고 달려드는 모기 신세가 비장하기까지 하다. 창문을 닫는다. 애먼 목숨 그만 죽어도 되는 밤이기에.   

김훈은 잡종견조차도 생명의 날비린내를 주체하지 못한다고 썼는데 내게도 그런 비린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아버지가 왕성하게 윙윙거리는 모기에게 화풀이를 하시는 이유가 거기 있는지도 모른다. 딸에게는 없는 비린내. 여름 한 철 모기에서도 풍기는 그 비린내. 의도하지 않은 불효이지만 의도한 것 보다 강력하다. 김훈의 책 제목이 <풍경과 상처>였다는 것을 다시 떠올린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내가 작가보다 더 한 말들을 알고 있다 해도 그런 밤 이보다 적확한 말은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느 날 당신도 나만큼 난처했었는지. 막막했었는지. 

"저무는 연안의 선착장에는 낡은 어선 한 척 묶여 있고 갑판위에는 빈 소주병과 고추장 말라붙은 양재기 몇 개 뒹굴고 있다. 땅에 들러붙은 것들의 괴로움과 땅에 들러붙지 못한 것들의 괴로움은 결국은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저녁의 빛들은 정주하는 문명의 가장자리를 스치며, 개펄 위를 지나 바다로 나아갔다. 일몰의 서해에서는 시간의 빛깔과 공간의 빛깔이 구별되지 않았다. 말들의 구획이 무너지듯이 빛깔들은 서로를 향해 무너졌고, 건너갈 수 없는 빛의 다리가 와 닿는 선착장에는 누렁개 한 마리와 여자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저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엉덩이를 깔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개의 뒷모습과 무릎을 세우고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뒷모습은 형제처럼 닮아 보였다. 그것들은 바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은 포유류들이었다."-김훈, <풍경과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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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07-19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비린내도 그런 날비린내에 들어가려나요. ㅎㅎ 비가 주룩주룩 오던 요 몇주, 제가 맡은 냄새들을 가만 종합해보면 비린내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바다만이 흩뜨릴 수 있는 그런 것과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나름은요.

굿바이 2011-07-19 17:42   좋아요 0 | URL
아마 그렇겠지~^^
이번 달에 시간이 되면 맥주나 한 잔 하세!(이렇게 쓰니 쫌 술꾼의 비린내가 나는 듯 싶어 흡족하구려)

風流男兒 2011-07-20 16:44   좋아요 0 | URL
좋지요. 정말 생각만 해도 청량해지는데요. 그럼 날 잡아 연락드리겠나이다

굿바이 2011-07-21 09:19   좋아요 0 | URL
꺄~ 신나는구나^^

현탁 2011-07-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호, 읽어 보려해요..감사^^ (꾸벅)

굿바이 2011-07-21 09:21   좋아요 0 | URL
현탁님, 좋은 글들이 많은 책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감사하죠. 이런 별 볼일 없는 글을...^^
 

5월에 귀연이와 함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기로 했는데 귀연이도 나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귀연이의 진술에 의하면 너무 바빠서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단다. 내 변명은 '이모가 두통이 심했어'다. 여튼 7월 중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니까.  

나는 귀연이의 일상을 물었다. 매우 빡빡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스스로 하고 싶어서 배우는 것들이란다. 그래도 나는 살짝 걱정이 되어 묻는다. 정말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귀연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그럼. 나는 또 묻는다. 네가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해? 귀연이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한다. 이모는 이모가 좋아하는 것들을 어떻게 확신하는데? 나는 말한다. 몰라. 

우리 귀연이의 주장에 의하면 뭐든 처음 배울 때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마구 열심히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느끼기에 잘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도 칭찬을 해주고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되는데, 그러던 어떤 순간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즉 뭐든 자신이 잘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인데 잘하기 위해서는 재미없는 순간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재미있는 건 대부분 좋아하게 되더란다. 와우~ 이 어린 경험론자 앞에서 이모는 일순간 숙연해진다. 우리 귀연이 짱 먹어라!!!  

여튼 이렇게 꼬마 철학자 반열에 오른 우리 귀연이게도 스스로 절제하기 힘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음식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으니 더는 할 말이 없고, 요즘 라면이라는 신물질을 접하고 매우 힘들어진 모양이다. 귀연이의 모친인 꼬장꼬장 정양은 절대 라면을 끓여주는 분이 아니고 절대 끓여주지 않는 라면을 밖에서 사먹게 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를 둔 귀연이가 아뿔사 친구집에서 라면이라는 신세계를 만난 것이다. 조미료를 거의 먹지 않고 자란 귀연이에게 그 맛은 천국의 맛이었을 수도 있다. 혀에 있던 수용체가 일제히 이 놀라운 자극에 나자빠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그 자극을 느끼고 싶을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물론 꼬장꼬장 정양은 분노할 현상이지만 말이다.  

귀연이는 이모가 자신의 모친을 설득해 자신에게 광명의 하늘을 열어 달란다.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라면을 라면이라 부르며 자신의 거처에서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귀연이의 요구사항이었다. 물론 나는 꼬장꼬장 정양이 조카들을 위해 뼈가 빠지게 준비하는 밥상에 대해 언제나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그 노력과 철학, 실천이 뭐랄까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아이들의 몸에 보약보다 좋은 효과를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귀연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금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예방주사를 빼고는 병원에 간 적이 없다. 하연이도 그렇고.

그러나 귀연이의 마음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몸이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건강한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귀연이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이 생기는 것도 싫다. 라면을 먹는 일이 경범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를 속인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점점 그렇게 변하겠지만 꼬장꼬장 정양과 귀연이 사이에 너무 많은 비밀이 존재하는 것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모지만 이럴 때 뭔가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양에게 전화를 했다. 

나 : 잘 지내시오?  

꼬장꼬장 정양 :  잘 지낸다. 왜?

나 : 우아하게 답하시오.

꼬장꼬장 정양 : 왜? 귀연이가 전화했냐?

나 : 돗자리를 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소.

꼬장꼬장 정양 : 용건만 말해. 귀연이 때문에 속상해 죽겠으니까.

나 : 귀연이가 왜?

꼬장꼬장 정양 :  옷에 라면 국물을 묻혀왔어.

나 : 푸하하! 미숙하기는. 여튼 언니 속상한 건 알겠어. 그런데 좀 융통성이 있으면 안될까?

꼬장꼬장 정양 :  나 위해서 이런 거 아니잖아. 

나 : 알아. 그래도 귀연이가 자꾸 언니에게 숨기는 게 생기면 좋아? 그것도 고작 라면으로.

꼬장꼬장 정양 : 그게 정말 속상해. 라면 먹으면 안된다고 말했지만 더 심한 야단은 안쳤어.
                      그런데 안하던 거짓말을 하는거야. 친구가 먹다가 묻혔다고.

나 : 언니 귀연이는 지금 거짓말을 해서라도 엄마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거야. 알잖 
      아. 귀연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뭔지. 언니, 귀연이를 더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라면이라고.

꼬장꼬장 정양 : 그렇게 하나 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나 :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예를 들어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결혼을  
      하겠다도 하면 내가 언니보다 먼저 말릴께.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꼬장꼬장 정양 : 그거 안먹는게 그렇게 힘들까?

나 : 언니, 나도 커피 못 끊어.

꼬장꼬장 정양  : 너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나 : 귀연이랑 이야기를 먼저 해 봐. 그리고 어차피 언젠가 먹게 될 거라면 언니가 그것도 가르쳐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즐기는 방법을 말이야. 

꼬장꼬장 정양 : 정말 모르겠다. 나쁜 건 멀리하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

나 : 불가능해. 그건 귀연이가 해결할 일이고. 그리고 언니, 꼭 죽는 날까지 좋은 장기를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장기기증의 큰 뜻을 품어서 그런다면 모를까 나는 적당히 나이 들면서 몸도
      상해야 한다고 생각해.  

꼬장꼬장 정양 : ㅎㅎㅎ. 귀연이랑 이야기 해볼께.
                      그나저나 너는 귀연이 일 아니면 전화도 안하냐?

나 :  언니, 나중에 통화해~ 안녕!    

언니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왜 모르겠는가. 그 애틋하고 위태로운 마음을.
그리고 언니는 내 말에 내심 서운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처지를 몰라준다고. 너는 이모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험에 의하면 뭔가 금기를 만들 때는 신중해야 한다. 영원한 불구가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또한 꼬장꼬장 정양이 알는 지 모르겠으나 귀연이가 내게 각별한 이유는 꼬장꼬장 정양의 딸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꼬장꼬장 정양을 위로하기도 하고 귀연이의 마음을 가볍게 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김소연의 <마음사전>을 뒤적인다. 그리고 발견한 글들. 첫번째 글은 꼬장꼬장 정양에게, 다음은 귀연이에게, 마지막은 내 마음이다. 역시나 이럴 때 이만한 책이 없다. 단언한다.  

기대

기대하는 마음은 기대하는 대상을 조금씩 갉아먹어 가면서 무너뜨리며 동시에 자신도 무너져 내리게 한다. 누군가를 향해,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품었던 기대가 실망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 -173쪽  
배신의 개운함

배신은 신뢰의 가면을 탈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잘 자고 난 아침처럼 개운하다. 당장은 아니고 천천히. 그렇지만 완벽한 믿음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더 완벽하게. - 178쪽
반하다

'반하다'라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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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6-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사전을 두루 추천할 수 있는 월요일이에요. 저도 마음사전을 읽어야겠습니다.^^

굿바이 2011-06-27 16:56   좋아요 0 | URL
마음사전이 참말로 필요했던 오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사진은 마노아님인가요? 매우 우아한 표정 혹은 각도입니다~

잘잘라 2011-06-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심 신상라면이요.. 그러니까 장혁이 선전하는,
과대광고 판정받은 그 라면이요. 깜장라면인가..
뭐 아무튼, 내 몸을 위해,라던가 건강을 위해,라던가 하는,
라면 떨어졌는데, 한번 먹어볼까요? 그럼? ㅎㅎㅎ
사람이 이래요. 저도 그 광고 보면서 엄청 비웃었더랬는데요.
이젠 먹어고보고싶기까지.. 아 이젠 뭐 삼시 세끼를 라면만 먹는다해도
누구 하나 뭐랠 사람도 없고.. 아.. 저도 마음사전 읽어야겠습니당.

굿바이 2011-06-27 17:01   좋아요 0 | URL
뭘 먹어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어 신나기도 한 굿바이입니다만 어딘지 쓸쓸하기도 하네요~!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랄까 그게 이데올로기처럼 작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뭐랄까 그렇게 영원히~영원히~ 건강한 육신으로 죽어야하는 이유도 모르겠구요.
아참, 신라면 깜장 먹어봤는데 뭐랄까 좀 풍성한 맛이에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또 아주 형편없지도 않아요. 가까운데 계시면 라면 한 그릇 쯤 사드릴 수도 있는데 아쉽네요~

블리 2011-06-2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사전], 가끔 들춰보면 어찌나 적절한 풀이인지 놀라곤 해요.
이 생의 목적이 마음 경영이라는 시인의 말이 인상 깊었는데,
언니의 글로 만나니 더욱 반갑네요. 아, 라면 먹고 싶다~ㅋㅋ

굿바이 2011-06-28 09:54   좋아요 0 | URL
라면은 먹었니? ^^

김소연작가의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마음을 돌아보는 그 집요한 노력도 그렇고 그걸 글로 옮기는 재주도 그렇고.

치니 2011-06-27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 님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지만 ㅠ 그럼 이런 경우는 어때요?
18세 난 아들이 자꾸만 오토바이를 몰고 싶어하며, 그걸 타고 심지어 전국일주 하고 싶다고 하는데 글에서 말씀하셨듯, 금기를 만들어 내게 거짓말과 비밀을 만들게 하기도 싫지만, 그보다 더 죽도록 말리고는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논리적 설득을 해보려 했지만 '무조건 일단 타 보고 싶어'라는 이유 앞에서는 설득도 어렵습디다.
아, 물론 진짜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답 주시지 않아도 돼요. 걍 나에게도 귀연이 이모 같은 분이 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푸념하는 거야요. 흐.

(아시다시피 꼬장꼬장은커녕 물렁물렁 그 자체인 저는, 라면 이딴 건 맨날 먹어도 말 한 마디 안했단 말입니다. 술도 막 권했단 말입니다. 아흑 그런데 왜 하필 오토바이를 들고 나와서리. ㅠㅠ)

굿바이 2011-06-28 10:44   좋아요 0 | URL
엄훠~!
치니님 아드님이 영국에서 귀국한 모양입니다. 일단 상봉을 축하드려요~!
그나저나 꼭 오토바이를 타겠답니까?
아드님 음악을 들어봤었는데 개인적으로 오토바이보다 자전거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아드님이 속도를 즐기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는 걸까요? 아니면 그 나이 남자아이들의 뭐랄까 로망 혹은 가오로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걸까요?
요즘 꽤 멋있는 남자들이 멋진 자전거를 많이 타던데 어떻게 그런 자료를 가지고 살살 꼬셔서 자전거로 여행을 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요?

그렇지만 '무조건 일단 타 보고 싶어'라고 말한다니... 아참 원동기 면허라든가 운전면허증은 있습니까? 물론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타는 분들도 있지만 또 위험한 것도 사실이라서 정말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치니님! 아드님과 뭔가 거래를 할 만한 그런 건 없으세요?
혹은 연애를 시키면? 오토바이보다 연애가 더 위험할 수도 있겠군요...ㅡㅜ

아~~~~~~ 안타깝습니다.

치니 2011-06-28 11:05   좋아요 0 | URL
음, 아마도 속도감 때문이나 가오 때문이라기보다는, 모험심 때문인 것 같아요. 뭐든,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고 맘 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무서운 추진력의 소유자 ㄷㄷ 입니다. 위험하다니까 오히려 한번 얼마나 위험한지 실험해보고 싶어한달까. 하아 -

하지만 오늘 얘기해보니, 일단 지 애비 오토바이에 번호판도 없는 관계로, 동네에서 쫄쫄 타는 것만 허락될 모양입니다. 원동기 면허 당근 없고요. 따 봐야 번호판 없어서 무용지물. 헤헤 메롱이죠 ~ (그래도 동네라고 안심은 안 되지만요 ㅠ)

風流男兒 2011-06-2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숙하기는 . 이 말 웬지 중의적이에요 ㅋㅋ 그나저나, 귀연이는 정말 날마다 감탄만 나오게 하는군요. 대단해요 정말

굿바이 2011-06-28 10:46   좋아요 0 | URL
미숙의 의미를 알아보는 그대는 천재야!^^

아참 잘 지내지?

風流男兒 2011-06-30 16:40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ㅋㅋ 저 이거 아침 잘 지내지? 로 잘못봤었다는 ㅎㅎㅎ
이제야 좀 식탁의자니, 마무리 가구들이 들어와서 좋답니다.

매양 정리를 부르짖지만, 저는 정리에 있어서는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팍팍 드네요. ㅎㅎ

누나도 목사님도 웬디도 보고싶네요 곧 함 뵈어요! ^^

네꼬 2011-06-3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페이퍼 엄청 좋네요! 굿바이님, 안녕하세요? 물정 모르고 어리바리 있다가 귀연 양에게 좀 반했어요. *_*

굿바이 2011-07-01 11:29   좋아요 0 | URL
네꼬님 안녕하세요~!
귀연양에게 반한 네꼬님에게 저도 반해요^^

뭐든 신나는 금요일 보내세요!!!!!

꽃도둑 2011-07-0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짱꼬장 정양언니에 귀연이 조카에....
팔레팔레 굿바이님까지 등장한 글 잼있어요...^^
(팔레팔레가 뭔뜻인지 묻지 말아주세요. 나도 몰라요,,ㅎㅎ)
아 글구 마음사전에도 마음이 가구요,. 어떤가요? 구입해도 후회(?)하지 않을 물건인가요?..
아ㅡ 오랜만에 하루종일 파란하늘에 살랑살랑 바람까지 불어주고 있네요,
급행복해지는 오후입니다. 굿바이님도 행복한 시간이라고 믿으며...
귀연이 만나러 또 올게요.^^

굿바이 2011-07-04 09:38   좋아요 0 | URL
구입해도 후회없을 물건입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팔레팔레' 좋은데요~!
뭔가 비오면 나타나는 그런 언니들의 포스를 풍긴다고 할까요^^
 

사랑하기로 했다. 반짝거린 적도 눈부신 적도 없었던 안쓰러운 몸이지만 여튼 받아들이기로 했다.
깨달음으로 이르는 사건은 이렇다. 
친구가 물었다. 숨이 막히게 아쌀한 비키니는 어디서 사야하는가?
나는 말했다. 나를 따르라.  

나는 장담했고 친구는 20년 우정을 믿었다. 나는 기대에 보답했다.  
침이 꼴깍, 눈이 번쩍, 심장이 쩍, 손끝이 달달, 볼에는 홍조, 귀밑머리로 불어오는 춘심.
뭐든 가능하고 뭐든 꿈 꿀 수 있는 비키니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그 비키니가 가볍게 내려앉아야 할 몸과 전혀 다른 '대립쌍'을 이루었다. 

'존재하지 않는 여자'를 꿈꾸었던 죄일까. 정녕 우리의 존재는 아무런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없는 듯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할 언니들이 있지만 상관없다. 언니들에게 맞아 죽으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자결을 하거나 결과는 똑같을 터.  

친구는 물었다. 엉덩이를 가슴으로 보낼 수는 없을까?
나는 말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친구는 나를 패지 않았고 나는 20년 우정의 견고함을 맛보았다.
아니다. 그저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우리는 비슷했을 뿐이다.   

그런 쓸쓸함으로 그런 처연함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는 권혁웅의 책을 기억했다.
<두근두근_몸에 관한 어떤 散.文.詩>
그리고 펼쳐진 사백칠십칠페이지. 

너무 자주 만진 손잡이처럼

너는, 내게로, 열리며, 빛난다.

아직도 나를 마주보고 나를 열고 빛난다고 믿어주는 그대가 있다면
나는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몸, 때나 밀기로 했다. 온천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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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6-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감에 불타 한마디) 속지마세요 여러분!!!!

굿바이 2011-06-14 17:30   좋아요 0 | URL
(억장이 무너져 한마디) 웬디양 더위먹었어요 여러분!!!!

웽스북스 2011-06-14 18:17   좋아요 0 | URL
언니 제가 밤 10시 넘어 맥주에 떡볶이는 먹어도 더위는 안먹어요
;p

굿바이 2011-06-15 10:35   좋아요 0 | URL
째려본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느뇨?
그나저나 나는 어제 10시 넘어 하겐다즈 먹었다오~

風流男兒 2011-06-15 17:56   좋아요 0 | URL
참 웬디님, 굿바이누나 기타는 시작 하셨는지요!! (기대돋음)

굿바이 2011-06-16 09:38   좋아요 0 | URL
풍류님의 조언이 필요한 대목이오~^^

웬디랑 지리산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결심한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고민이오.
아참, 생활은 신나오? 뭔가 없는 아들이지만, 아들을 장가보낸 심정이오.
허전하오, 알 수 없는 일이오 ㅋㅋㅋ

風流男兒 2011-06-16 13:58   좋아요 0 | URL
아아, 이거 정말 안타깝네요. 현실로 만들려면 모여야 할텐데, 결심한번 하려는 데 들어야 하는 게 은근 많네요 ;;

생활은 재밌어요. 근데 뭐라해야하지, 시간이 갑자기 두배로 가는 기분이에요. 적어도 집에선.

집 정리가 좀 되면 초대할께요 ^^ 흐흐 이제 많이 정리한 것 같아요 ㅎㅎㅎ

風流男兒 2011-06-1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는 웬디양이 옳습니다. 여러분

웽스북스 2011-06-14 18:01   좋아요 0 | URL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제가 옳습니다.

굿바이 2011-06-15 10:37   좋아요 0 | URL
그대들은 지금 그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D

Alicia 2011-06-14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굿바이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저는 비키니가 아니라 속옷가게에 갔었었더랬죠 히힛. 권혁웅시인 이 책 재밌었어요.ㅎㅎ

굿바이 2011-06-15 10:39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도 이 책 보셨군요 ^^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책입니다.
그나저나 속옷가게에서 비슷한 경험이라면....음...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아침입니다 ㅜㅡ
 

불필요한 논쟁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정책에 박수치는 회장님은 무슨 사회적인 이슈만 생기면 나를 떠본다. 오늘은 등록금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회장님이 현직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는 것에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회장님은 내가 현직 대통령의 정책에 호감이 없다는 사실이 괴로운 모양이다. 정녕 괴로운 것은 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할까. 설령 나를 설득한다고 해도 광화문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설득당할 것도 아닌데. 아~ 필요없는 논쟁에 매번 덜컹거리는 마음이 문제다. 참말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오후. 

광화문에 다녀 온 후배가 맥주 한 잔 사달라고 한다. 맥주와 함께 윤제림의 <그는 걸어서 온다>라는 시집 한 권 건내야겠다. 그리고 후배에게 읽어 주고 싶은 시 두 편을 미리 적어본다. 


재춘이 엄마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가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看月庵)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공군소령 김진평

싸리재 너무
비행운 떴다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
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
남양댁
소리치겠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진평이가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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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2011-06-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필요한 논쟁이네요. 회장님께 등록금 투쟁도 음모가 있다고 말씀을...


굿바이 2011-06-09 09:41   좋아요 0 | URL
네, 늘 허망한 논쟁이에요 ㅜㅡ

잘잘라 2011-06-0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저 이 시, 꾹 꾹 눌러 담아가요.
이름에 '춘'자 들어가는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은 자기 이름 부르면 질색팔색이거든요.
ㅋㅋㅋ 아~ 대책없는 장난기 발동합니다~~

굿바이 2011-06-13 10:29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어떻게 장난은 잘 치셨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블리 2011-06-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제가 좋아하는 윤제림씨 시.
반가워라.
전 그 시집의 '손목'에 울컥.

굿바이 2011-06-13 10:30   좋아요 0 | URL
야~ 블리가 윤제림씨 좋아하는구나.
알았으면 선물이라도 해줬을텐데.

그나저나 더운 여름 잘 보내고 있니?
건강 조심하고, 시원한 빙수 생각나면 연락해~!
 

놀라운 일이다. 오늘 나는 올 해 들어 처음으로 무릎이 보이는 치마를 입었으니 말이다.
이런 날은 무조건 맥주를 마셔야 하고 시원시원하게 웃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그 빌미를 찾았다.  
수주 변영로선생의 <명정 40년>을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그리고 다시 읽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선생의 명정기를 읽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모지리들이나 하는 선택이다. 따라서 오늘 저녁 나의 선택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고 은혜다.
 
우선 선생의 연보를 보면 1919년 YMCA에서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했다는 이력과 1955년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는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어느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이력도 있다. 짐작하건데 시대가 시대였으니 온전한 지식인으로 사는 일이 힘겨웠으리라. 그런데 멀쩡한 정신으로도 휘청거리고 전쟁처럼 먹고 사는 일을 처리했을 시절에 흥겹게 마시는 술이야기라니.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뒤뜰도 없는 삶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온통 도덕적 순결함으로 무장한 지식인, 물론 무언가 할 수는 있을지언정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어떤 방식으로든 곁을 내주지 못하는 사람은 매력없다.   
  
여하간 선생의 책 <명정 40년>은 남자가 쓴, 그것도 장난기(?)와 재치와 넉살과 따뜻함이 콸콸 넘치는 남자가 쓴 책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다가다 돌 맞을 소리이지만 이런 남자는 왠지 처음 만난 자리일지라도 '우리 입이나 한 번 맞춰봅시다'라고 생글거려도 어디 한 구석 밉지 않을 것 같다. 아, 이럴 때 보면 나는 마초를 좋아하는구나. 빌어먹을 일이로구나.  
어찌되었건 쓰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명정 40년>에는 큰 웃음이 있다. 이 시원하고 큰 웃음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여차하면 쏟아진다. 독자는 그저 놀라고 그저 깔깔거리며 소나기를 맞으면 될 터. 이 즐거운 독서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또한 이 유쾌하고 발랄한 독서 뒤에 놓여있을 술병을 또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는가.
<명정 40년>에는 그간 듣기 어려웠거나 어르신들의 수필에서나 가끔 엿볼 수 있었던 1950년대 이전 풍류남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멸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연히 그 수가 준 풍류남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묘한 아쉬움이 차오른다. 아무렴,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물론 남자로 말이다.
말이 길었다. 억울한 마음은 이 책을 술술술 마시고 술술술 이야기하며 초여름의 목요일 밤을 붙들면 되는 일. 벌써 시간은 4시 30분을 넘었고.

그나저나 에피소드 중 그림같은 장면이 있어 하나 옮겨 적는다. 

역시 혜화동 우거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하룻날 바커스의 후예들인지 유령(劉伶)의 직손들인지는 몰라도 주도(酒道)의 명인들인 공초(空超,吳相淳), 성재(誠齋, 李寬求), 횡보(橫步, 廉尙燮), 3주선(酒仙)이 내방하였다. 설사 주인이 불주객이란대도 이런 경우를 당하여서는 별도리가 없었을 것은 거의 상식 문제인데, 주인이랍시는 나 역 술 마시기로는 결코 그들에게 낙후되지 않는 처지로 그야말로 불가무일배주(不可無一杯酒)이었다........우리는 참으로 하늘에나 오를 듯 유쾌하였다. 우아하게 경사진 잔디밭 위에 둘러앉았는데 어 서방은 술 심부름, 안주 장만에 혼자서 바빴다. 술은 소주였는데 우선 한 말을 올려다 놓고 안주는 별 것 없이 남비에 고기를 끓이었다. 
참으로 그날에 한하여서는 쾌음(快飮), 호음(豪飮)하였다. 객담(客談), 고담(古談), 농담(弄談), 치담(痴談), 문학담(文學談)을 순서 없이 지껄이며 권커니 자커니 마셨다.
이야기는 길고 술도 길었다. 이러한 복스러운 시간, 길이 계속되기를 빌며 마셨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고금무류의 대기록을 우리 4인으로 하여 만들게 할 천의(天意)랄까, 국면이 일변되는 사태가 의외에 발생하였다. 그때까지는 쪽빛같이 푸르고 맑던 하늘에 난데없이 검은 구름 한 장이 떠돌더니, 그 구름장 삽시간에 커지고 퍼져 온 하늘을 덮으며 비가 쏟아지기를 시작하였다.......처음에는 우리는 비를 피하여 볼 생의도 하였지만 인가 하나 없는 한데이고 비는 호세 있게 나리어 속수무책으로 살이 부를 지경으로 흠뻑 맞았다......그 끝에 공초 선지식(善知識) 참으로 공초식 발언을 하였다. 참으로 기상천외의 발언이었던바, 다름 아니라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 버리자는 것이었다. 옷이란 워낙이 대자연과 인간 두 사이의 이간지물(離間之物)인 이상, 몸에 걸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듯도 한 말이었다.......(51~54쪽) 

다음이 궁금하시면 <명정 40년>을 읽어보시라. 소설 <소나기>와는 또 다른 그림이 펼쳐질 터.
어찌되었건 나는 오늘 저녁 목울대를 울리는 좋은 맥주하러 간다. 좋은 사람 황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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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1-06-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술 한 잔 하러 가시는 군요.
저도 급땡기는데요. 여기저기 전화좀 넣어볼까? ㅎㅎ

일제시대에 씌여진 아련한 에세이들이 많죠.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태준선생의 것도 그렇고요.
맥주 맛나게 드시고 잘? 취하세요. ㅎㅎ

굿바이 2011-06-03 09:55   좋아요 0 | URL
어찌 전화는 좀 해보셨나요? ^^

그렇게 오래된 것들도 아닌데 잊혀지는 좋은 에세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소설도 그렇구요. 세계고전문학은 전집으로 빵빵하게 나오는데...
여튼 내일이면 또 연휴입니다. 뭐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치니 2011-06-02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이거 또 필독서 추가군요. :)

굿바이 2011-06-03 09:56   좋아요 0 | URL
치니님 이책은 문고판이라 휴대도 편하고 분량도 금새 읽혀요.
한 번 읽어보세요. 뭐 재미없으면 언제든지 항의하세요. 맥주 쏩니다~!

cyrus 2011-06-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로라고 하면 저는 <논개>가 떠올라요. 범우문고라면 얇은 분량의 문고인걸로
알고 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여기 대구는 날씨가 더운데 시원한 캔맥주가
땡기네요 ^^

굿바이 2011-06-03 09:5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시원한 캔맥주는 드셨나요?
범우문고는 휴대하기가 참 좋죠^^ 읽어보세요. 그리고 재미없으면 언제든 항의하십시오. 맥주가 되었건 책이 되었건 합당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

흰그늘 2011-06-0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글.. 좋은데요^^

묘하게.. 사람을 끄는 이들이 있는데.. 위의 '글'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이런류의 사람들에.. 정감이 가더라구요^^ 처음 '시' 를 좋아하게 되었던 날이.. 천상병 할아버지의
후일담들을 들으며.. 그분의 '시집' 을 보았던 날이었나봐요..


'뒤뜰'이 활자가 순간 크게 다가왔고.. '우리는 모조리 옷을 찢어버리자는 것이었다'..에서
웃음이 나오네요..

굿바이 2011-06-03 10:45   좋아요 0 | URL
정말 천상병 할아버지와 그분의 사모님 이야기를 참 놀랍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흰그늘길님은 이 초여름 잘 보내시고 있나요?
언제든 찾아가서 쉴 수 있는 그런 뒤뜰 하나 만들어 놓으시면 좋겠어요~

風流男兒 2011-06-03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풍류 넘치시는 풍류달인 변샘님. ㅎㅎ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마음에 쏙 들어오는 말들 이 정말 많아요! 저는 어제 저녁을 해먹는데 대충 준비하고 먹기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더라구요 맛있게 먹으니 어찌나 잠이 솔솔오던지요 흐흐. 현충일이 낀 황금같은 주말을 맞게 되어 어찌나 떨리는지. 아침부터 그냥 신나네요 ㅎ

굿바이 2011-06-03 10:05   좋아요 0 | URL
오호~ 두 시간!!!! 야~ 얼마나 근사한 신혼의 밥상이니!!!!!

나도 떨린다. 이 연휴가.ㅋㅋㅋㅋ
연휴 재미있고 달콤하게 보내.
물론 나는 지리산 어디쯤에서 길을 잃을 지도 모르지만~!(이건 뭐랄까, 그대와 함께 할 수 없음에 심통난다는 뭐 그런 아주 작은 앙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