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인터뷰로 그가 사망하기 3년 전 칠레의 일간지에 실린 내용이다. 이러한 인터뷰를 <프루스트 인터뷰> 또는 <프루스트 질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떤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아주 짤막하고 재치있는 질문으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고 싶은 이유는 어제밤에 있었던 황군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여튼 나는 이책 115쪽을 폈다.
이책은 다름아닌 이녀석. A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대답이고 A'는 나의 대답이다.
우선 몇 가지 질문들을 옮기면
Q 자신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요?
A 나는 단점투성이인 사람입니다. 그 단점들 모두가 안타까울 뿐이죠.
A' 오호 어쩌면 나와 이렇게 동일한 생각을 하다니.
Q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단점 중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요?
A 비타협, 권력 남용, 관용의 부족
A' 나와 비슷한 단점들
Q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가요?
A 사랑을 나누다가(사실 누구라도 그렇게 죽고 싶을 겁니다)
A' 목욕하고 코코아 마시고 잠옷 입고 잠들어서 깨지 않는 것
Q 죽은 다음에 다시 지구에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나 물건으로 돌아오고 싶습니까?
A 가능하다면 뭄무게가 채 2그램도 되지 않는, 새 중에서 가장 작은 새인 벌새가 되어 돌아오고
싶습니다. 아니면 스위스 작가의 책상, 아니면 소노라 사막의 도마뱀
A' 무조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야 한다면 무조건 고래
혹은 돌고래
Q 소설 속 인물을 택한다면요?
A 마이티 마우스, 벅스 버니, 스피디 곤살레스
A'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로빈슨 크루소, 그리스인 조르바
Q 어떤 단어나 문장을 가장 많이 사용하시나요?
A <젠장>과 <씨발>
A'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래>, <여튼>, <물 좀 주세요>
Q 가장 큰 두려움이 있다면
A 아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
A'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오고, 전쟁이 나고 그래도 막 살아남는 것
Q 어떤 재능을 가지고 싶습니까
A 기타를 칠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축구를 하고 당구도 잘 쳤으면 좋겠습니다.
A' 우와~ 너무 많네요. 몸을 쓰는 모든 행위. 머리를 쓰는 모든 행위.
Q 가장 거슬리는 게 있다면
A 버릇이 없는 것
A' 집중력 장애
Q 당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은
A 나의 책들
A' 없어요
Q 여자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A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명석함과 착한 마음씨. 세 번째로는 유머 감각. 물론 명석하고 착하면
유머는 거저 따라오긴 하지만.
A' 볼라뇨씨 여자를 너무 모르시는구나^^ 체력과 지구력(?)
Q 그렇다면 남자에게서 가장 높이 사는 것은?
A 오호, 이 질문에는 이미 답한 것 같은데요. 네 번째 것을 추가하자면, 있으면 좋지만 꼭 필수적인
건 아닙니다. 용기.
A' 체력과 지구력(?)
이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조금 선명해진 사실. 이런 짧은 물음과 답변으로 한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는 것. 타인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타인을 알아간다는 것은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것. 여튼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한 것일까. 그런 노력을 다 했다고 믿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할 수 없는 지점을 안타까워하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타인을 알면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에라이~! 하등에 쓸모없는 생각들로 바쁜 월요일. 나는야 공식 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