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이 우리 김여사님 생신인 관계로, 주말에 눈을 홈빡 맞으며 남녘땅을 밟고 왔는데, 어찌 기분이 좀 찜찜하더이다. 다른 건 매우 하등인데 직관은 우등이라, 어째 볼 일 보고 뒷처리 안한 께름칙한 마음이 드는 것은.....아, 우리 오라버니 김여사 생신을 잊었구나, 오라버니의 아내이자 내게는 올케되시는 '아차차 백선생'이 김여사 생신을 쌍으로 잊었구나. 뭐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혼자서 언능 간파한지라. 그러나 그때다. 꼬장꼬장 우리 언니 정양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이라.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받았다. 습관이란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아주 못마땅한 현상인게라.
내용은 간단하다. 아차차 백선생이 스스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차차 백선생이 무슨 죄를 지었는고 정양에게 물었더니,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김여사님의 생일을 잊은 죄,라 한다. 웃으면 안되는데 웃었다. 물론 꼬장꼬장 정양에게는 사레가 들렸다 둘러댔다. 여하간, 꼬장꼬장 정양은 내게 함구령을 내렸다. 아차차 백선생에게 어떤 정보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인게라. 음... 날이 더워 미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날이 추워 실성도 하는가 보다. 모든 것이 지구 온난화문제인게라, 우리 꼬장꼬장 정양은 아무 죄가 없다고 나는 그저 자위했다.
퇴근을 하면서 전화기를 든다. 여보쇼? 나요!
아가씨 왠 일?
백선생 내 말 잘 들으시오. 내일이 김여사 생신임을 잊은 거 잘 아오. 호들갑은 서로 생략하오.
다만 지금이라도 대책을 마련하오. 그리고, 내게서 전화받았다는 소리를 하면 그때는 내 손에 죽소. 이만 끊으오.
어맛!!!!!!! 아가씨 정녕 잊었네. 이를 어째야.....
그건 그대의 일이오. 다만 나와 통화한 사실은 없는 것이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야만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하오.
드디어 김여사님의 생일 그리고 불과 삼십 분 전, 김여사와 꼬장꼬장 정양의 전화를 연달아 받고, 나는 기진맥진이다.
두 분의 분노는 한결같다. 너지?
나의 대답도 일목요연하다. 뭐가?
추궁은 이어진다. 네가 한 거 다 안다.
나의 버티기도 만만하지 않다. 목적어를 말하시오.
믿지는 않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나는 혐의를 잠시 벗고, 전화도 끊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아차차 백선생의 연기가 신통치 않았던 모양인게라. 제보자의 안위를 걱정해서라도 그러면 안되는 것을, 그러나 어쩌면 나는 그래서 늘 아차차 백선생을 후원하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김여사님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꼬장꼬장 정양의 마음보는 참으로 혈연관계를 백지화시키고 싶은 심정을 들게 하니, 아프고 또 아프다. 정작 본인은 모르겠지만.
아차차 백선생이 김여사님 생신을 챙기기 위한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무슨 권리로 그것을 강제하냐는 말이다. 물론, 알아서 하면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이지만, 매년 실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들고 정신 사나우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을, 뭔 정의의 여신이라고 참으로 우리의 꼬장꼬장 정양은 언제나 어메이징하시다. 그대 그러지 마오, 심히 쪽팔리오.
장시간의 취조를 당하고 나니 시장했다. 책상 위 초콜렛 한 봉지(대략 10개 들었다)와 감자깡을 먹고 커피 한 사발을 들이킨다. 그리고 핸드폰을 본다. 어쩌자고 너는 이제 이런 용도로만 쓰인다더냐 싶어 집어 던지려고 했으나 그럴 수도 없다. 가난은 작은 것에도 분노하지 못하게 한다. 그 생각이 드니 더 배가 고프다. 또 다시 먹다 남은 앙금빵을 먹는다. 앙금이 크레이지하게 달다. 내 앙금도 달까? 그건 모를 일이고. 애써 기억을 더듬는다. 손길은 거칠지만 나름 최적화되어 있다. 빠르게 과거를 복기한다.
정녕, 한 때는 쉬지 않고, 아무 때나, 즐거움을 전하는 전화기였다. 물론, 그 즐거움의 원천인 그들은 더 이상 밝힐 수 있는 신분이 아니지만서도, 어찌되었건 그들은 ♥♥이라는 이름이었다. 별 짓 다했다. 칭얼대고, 옹알거리고, 지분대고, 음란하고...이런 저런 불장난으로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만들던 전화기였다. 아! 그 쿵쿵쾅쾅 나를 달구던 네가 어쩌자고 이리 되었던가. 오메!
돌아와라! 미친 척 돌아와라. 나를 가슴 뛰게 해라. 혈압 오르게 하지 말고. 전화기, 너 돈 먹은 만큼 토해내라. 은밀하고 뜨겁고 달달한 언어들을. 참으로 분통터지는 날들, 나 좀 살려다오.
전화기 반응한다. 놀란다. 열어보니 스펨이다. 오호라~~~ 그래도 나는 너를 버릴 수가 없구나.
꼭 가난해서 만은 아니다. 혹여 그런 시를 아느뇨? 아래 적는다. 너 읽거라. 그리고 반성하거라.
가슴에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어가도록 그 못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 윤효,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