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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츠 오브 컨트롤 - The Limits of Contro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하는 사내(이삭 드 번콜)는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허구의 세계]라면, 다른 한 잔은 [현실]이다. 그 어느 것도 착각하지 않겠다는 일념인지, 언제든 착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성냥갑으로 전달되는 작은 쪽지를 삼키는 일에 그는 언제나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하는 사내는 킬러다.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킬러를 비웃기라도 하듯, 스페인의 어느 골목에서 만난 꼬마들은 그에게 [미국 깡패]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답한다. 그런데 잘 차려입은 수트는 어색하다. 걸음은 어딘지 단단하지 않고, 그의 뒷모습은 불룩 솟아오른 어깨뼈를 제대로 감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끈없는 구두를 신은 그는 킬러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킬러인지.
에스프레소 두 잔을 주문하는 사내는 기다린다. 여자를 기다리고, 남자를 기다리고, 성냥갑을 기다리고, 빵을 기다리고, 기타를 기다리고, 드라이버를 기다린다. 그들은 시종일관 스페인어를 할 수 없는 사내에게 음악을, 영화를, 과학을, 다이아몬드를, 보헤미안을, 환각을 이야기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과 끝이 두루뭉술하다. 또한, 그들을 기다리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헬리콥터의 소음도 존재한다.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을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우리들 중에 우리가 아닌 것이 있다는 팁이 존재한다.
머리에 가발을 쓴 사내(빌 머레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갇혀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는 사내는 킬러와 킬러의 세계를 비아냥거린다. 그의 말도, 그가 타고다니는 헬기의 소음도 유난히 시끄럽다. 소음을 없애야 하는 말없는 킬러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소음을 음악으로 다스린다. 그에게 건내진 기타의 줄을 푼다.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허구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 물론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주문할 수는 있다. 어떤 잔을 선택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No Limits No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