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건물 틈 어딘가에 쌓여있던 눈이었습니다. 눈이 녹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만 같았습니다. 전화가 오긴 왔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새삼 무슨 소용이겠어요. 한파가 잠시 물러간 사이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습니다. 반갑고 들뜬 마음에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춘은 2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저는 잠시 둥둥 떠오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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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1-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시간에우리는 잠시봄이라고좋아하고있었어요언니~ 저도 이시간에 어딘가에 일기를 쓰고 있었던 ㅋㅋ

굿바이 2010-01-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곳에서우리는 겨울도지나갈것이라고믿고있었구나웬디야~ 심심상인!ㅋㅋㅋ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한 15분 동안 얼마나 추웠는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논현역 근처에 내려 다시 지하철로 거의 뛰었다. 뛰다가 나는 멈췄다. 

좌판도 아니고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열쇠고리를 파는 모녀가 서있다. 털모자를 쓰고, 귀마개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오리털잠바를 입었다. 어린 딸은 내 조카 하연이만한 아이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지나칠 수가 없다. 다가가자 아이는 눈만 보인다. 덜덜 떤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쇠고리가 얼마냐고 나는 묻는다. 여자는 꽁꽁 얼었는지 발음도 부정확하다. 오백원이란다. 지갑을 뒤졌다. 삼만원이 잡힌다. 아이는 덜덜 떤다. 여자에게 삼만원을 건냈다. 그리고 오늘은 그만 들어가시라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본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황군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펑펑 울었다. 울면서 말했다. 아이가 덜덜 떤다고, 이 추위에 아이가 어미랑 꽁꽁 얼어 열쇠고리를 판다고, 그래서 내가 가진, 삼만원을 줬다고, 황군이 잘했다고 한다. 그 모녀 오늘은 찜질방에서라도 잘 수 있겠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너 사업 하지마라, 인권단체에서 일하지도 마라, 정치도 하지마라, 너는 그냥, 그냥, 아니다 몸이나 녹이자,라고 말한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삼만원이 남은 돈 전부였다고 했다. 황군이 말한다. 괜찮으니까, 그래, 귤 먹자,라고 한다.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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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0-01-1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보는 저도 속상한 글을 보면 뭐라고 댓글을 남겨야 할지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남기고 가요, 추운날 감기걸리시면 안됩니다 누나 ㅎ

굿바이 2010-01-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진환씨^^
진환씨도 감기 조심하고,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동우 2010-01-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니마미님도 글을 맛갈스레 참 잘 쓰시고.
굿바이님 역시 참 글을 잘 쓰신다는 말씀 아니 드릴수 없습니다.

........./"괜찮으니까,그래,귤 먹자."... /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사람의 심금을 건드립니다.

아이티의 참상.
굿바이님이 르포를 쓰신다면 지구인의 따뜻한 마음 더욱 동하게 하실듯.

굿바이 2010-01-1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니마미님 글은 따뜻하고 치우침이 없어 참 좋습니다. 동우님의 글은 일단 제가 가늠할 사이즈가 아니라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ㅜ.ㅜ
아이티가 겪고 있는 재난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저와도 연관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데, 그저 얼마의 성금만으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녀, 운다.  

어쩌자고, 또 우냐고 나는 물었다. 어쩌자고....K는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한 30분을 울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이제 어쩌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K가 어떻게 사랑하고 또 어떻게 헤어져야 했는지, 나는 쭉 지켜봤었다. 그러니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바닥까지 다 드러낸 기특한 사랑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잊어라,하자니 내 마음이 철렁하고, 지나가게 두자,라고 하자니 바닥이 까무룩 멀어진다. 살아있는 한 따라다닐 시간이고, 따라다닐 기억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뭐든 오래 붙들고 생채기를 내고 그렇게 뒹구는 사람들.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제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알았다고 K는 내게 말한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한다. 커피 5잔을 축냈다. 그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사실 K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밥을 먹일까 싶었다. 얼마간 굶었을 것이고, 얼마간 울었으니 허기도 질 것이다. 그런데, 차마 밥먹자는 소리가 안나왔다. 그때, 눈은 다시 내리고 우리는 각자의 기억 어디쯤으로 잠시 피신할 수 있었다. 살아있어 다행인 밤, 그렇게 다시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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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성공한 친구 녀석이, 이 대목 나는 목이 메인다, 직원들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직원에게 선물할 책이면 네가 골라라, 라고 했더니, 성질을 그렇게 쓰니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이 모양으로 살지 않기 위해 친구의 돼먹지 못한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친구에게 추천한 책은 모두 스무권이다. 뭐든 있으면 사고 없으면 할 수 없고, 아무쪼록 정초부터 욕먹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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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꽝"없는 굿바이표 책선물 리스트_여름휴가
    from 에밀 시오랑을 기억하며 2010-07-20 12:53 
    역시나 똑같은 친구의 부탁으로, 사실 협박으로, 책선물 리스트를 또 보내주기로 했다. 올 초, 직원들에게 선물할 책을 좀 골라달라는 제안에 스무권의 책을 추천했는데, 호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여름 휴가를 맞아 선심을 쓰고 싶은 C양은 내게 전화를 했다. 따끈따끈한 녀석들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화를 냈다. 선물을 할 요량이면 네가 골라라, 나한테 부탁을 할 작정이면 좀 공손해라, 공손할 수도 없으면 돈을 내라, 정도가 내 주장이었는데
 
 
웽스북스 2010-01-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느껴져요 ㅋㅋㅋㅋㅋㅋ

굿바이 2010-01-0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 고마워요ㅋㅋㅋㅋㅋ

지윤 2010-01-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10권 부탁!

굿바이 2010-01-0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10대!(주먹으로 할까, 연장으로 할까?)

동우 2010-01-08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를 제외한 책읽는 부족들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가공할 독서량.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수 없지만, 주눅은 들지 않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하, 굿바이님.
그저 '내가 읽는 책이야기'에서 지정한 독서를 기본으로 하여 약간 웃도는 정도의 비교적 수월한 도서를 섭렵하기로.하하


굿바이 2010-01-0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우님!!!!! 주눅이라뇨!!!!!!

저는 그저, 정말 그저, 단지....
어찌 제가 다른 분들의 내공을 따라가겠나이까!!!
언제나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합니다.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래서 늘 책앞에서 서성일 뿐입니다.ㅜ.ㅜ
 

날씨가, 미쳤나보다고, 날씨가 너무 추운거 아니냐고,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말은 다 나의 거짓말이라고 툴툴거리는 친구 녀석이, 결혼이고 직장이고 다 때려 치우고, 아르헨티나로 떠날거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너 말 한 번 잘했다, 오냐, 잘 생각했다. 가거들랑 이참에 같이 가자, 거기가서 부채춤을 추던지, 심수봉 노래를 부르던지 밥은 굶겠냐고, 한참을 떠들다가 무심코 어묵을 파는 트럭 앞에서 나는 멈췄다.

어묵을 파는 아저씨가 만삭인 젊은 여자를 파리 쫓듯이 내몰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트럭으로 다가갔다. 아저씨는 거친 말투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고, 여자는 겁난 표정으로 얼마만큼 물러 서다가 또 트럭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여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오뎅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아저씨와 여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저씨, 어묵 한 꼬치 주세요." "칠백원 입니다."

나는 돈을 주고 건네받은 어묵 한 꼬치와 종이컵에 담은 국물을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잠시 멀뚱멀뚱 머뭇거리더니 그 짧은 커트 머리를 긁적이며 어묵을 건네 받았다. 아저씨가 갑자기 나를 쏘아보더니 어묵 꼬치를 여자의 손에서 낚아챘다.

"이럼 안되지. 한 번 이러면 계속 여기로 온단 말이오. 아가씨가 내 장사 책임질꺼요?"  "아저씨, 저 배 안보이세요. 만삭이라구요. 만삭!"
"그래서 저년 배가 내 짓이오? 이 아가씨 정신이 없구만."
"미친년이건 안미친년이건 저 배 속에 생명이 있다구요, 그리고 아저씨 허기가 뭔지 아세요? 배고픈거요, 그거 아시냐구요? 그리고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누구를 주건 버리건 아저씨가 뭔 참견이래요. 이리 줘요."

나는 정말 한 대 칠 자세로 심하게 아저씨를 째려보며 아저씨가 낚아챈 어묵 꼬치를 다시 뺏어 그녀에게 건냈다. 그녀가 웃는다. 빨간 볼을 씰룩거리며 웃는다. 아직 뜨거운 어묵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다. 어묵의 뜨거운 기운이, 달짝지근한 국물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고이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보도블럭 언저리에 녹은 눈처럼 그렇게 어묵 국물에 녹아드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어서 가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가장 큰 햄버거를 시켰다. 그녀의 불룩 솟아오른 배. 짧게 잘린 머리. 빨간 볼. 갑자기 가슴은 헛헛하고, 허기지고, 눈물 나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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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09-12-30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엉뚱하게 박순녀의 '영가'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아기 업은 남루한 여인이 보석상 쇼 윈도우 안 진열된 반지를 꼼짝않고 들여다보는 대목.
먹거리를 향한 고픔.. 마음의 고픔.. 자존의 고픔.
들창 너머 행복한 가정의 크리스마스 만찬을 들여다보는 성냥팔이 소녀.
그야말로 세밑의 겨울입니다.

굿바이님.
새해 건강과 행복을.

굿바이 2009-12-3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가"라는 소설이 궁금합니다.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동우님.
새해에는 동우님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계획하시는 일들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