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국영화 최고의 10경 - 영화평론가 김소영이 발견한
김소영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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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교수가 쓴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은 작품을 선택한 안목, 그 작품들을 횡단하는 사유 모두 나무랄 데 없어 보였다. 특히, 소수자로 내몰린 사람들과 소수자들이 밟고 있는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그럼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숱한 경계들에 대한 사유는 영화평론가라는 이름보다 철학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 싶었다. 나는 내심 작가의 사유에 질투를 느꼈지만,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이미 몸소 배운 지라, 이내 유순한 독자의 탈을 쓰고 즐거운 영화의 풍경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을 좀 들여다 보자. 이 책은 경계_근대의 원초경_미묘한 감흥_근접 섹스_이만희 무드_트라우마의 지형_백 번째 경관_홍상수가 발견한 경관_김기덕의 집과 시간_섹슈얼리티의 경계라는 소제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각 소재목에 따른 영화들은 인쇄물을 통해서건 실제적인 관람을 통해서건 개인적으로 그리 낯선 영화들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영화들은 주로 영화와 관련된 잡지들에서 그 내용을 엿보았을 뿐이지만, 간혹 운좋게 EBS를 통해 다시 볼 수 있었던 영화들도 있었다. 여튼, 작가가 서문에 밝힌 것 처럼 한국영화를 이해하고, 조선영화와 한국영화에 바치는 헌정물이라는 작가의 포부에 적지 않게 동의하고 동감한다.  

그럼에도, 작가의 빛나고 영특한 사유가 부럽고, 작가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고,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진지하게 책이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았다. 책에 몰입할 수 가 없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불편했다. 작가가 차용한 적확하지 않은 개념, 모호한 정의,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현학적 문장, 생경한 어휘들. 물론, 이 불편함은 온전히 개인적인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문제를 개인적인 불편함이라고 규정한다 할 지라도, 지식 생산체계 밖에 존재하는, 수적으로는 다수자이지만, 지식을 생산할 권위도 능력도 없는 소수자 집단의 일원으로서 내 불편함을 항변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나 같은 대중, 지식 생산체계의 밖에 서 있는 소수자도 접근할 수 있는 대중 서적이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영화평에서 그렇게 천착한 소수자의 문제가 그저 특정한 영역에 대한 사유로만 그친다면, 정작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사유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작가가 취한 글쓰기 방식은, 좋은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음에도, 야박하게 표현하면 오만하고 덜떨어졌다.  

김소영이 쓴 <한국영화 최고의 10경>을 두고 봉준호 감독은 "실로 근래 보기 드문 풍경이다."라고 평했다. 나도 봉준호 감독의 흉을 내어 이 책을 평한다면 "실로 근래 보기 쉬운 낯선 풍경이다."라고 일갈하고 싶다. 내 평가가 매우 불손하다는 것을 알지만, 내 불손함은 작가에 대한 적의가 아니다. 오히려 안타까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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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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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식이 매우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책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 산업사회의 폐단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 작가의 노력때문일 것이다. 관계라는 것이 아름다운 점도 있고, 위안을 가져다 주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 또한 또다른 방식의 억압이라는 것을 체험하다 보니 그것말고 뭐 다른 것은 없나,하는 생각이 계속 차고 올랐다. 그렇지만 어찌되었건 이 작품을 두고 외설 논쟁을 벌이거나 에로티시즘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소모적인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무엇이 아쉬웠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럴 근거가 별로 없거나, 있다고 치더라도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시대적 배경이 1차 세계대전 이후고 공간적 배경이 영국이다 보니, 작가의 눈에 비춰지는 산업화의 속도나 돈에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양새가 역겨웠으리라. 2010년을 사는 내가 느끼는 욕지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것은 하나도 없었으리라. 그 마음이 클리퍼드를 하반신 불구로 설정했을 터이고, 코니와 멜러즈를 자연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성정으로 설정했으리라.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납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임에는 틀림없었다. 또한, 계급의 상층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나 하층민이나 모두 돈에 미친 아귀같은 존재로 그려내는 대목은, 가난하거나 억압당하는 자들은 선량하고 순박할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데올로기, 즉 검증되지도 않았고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사실무근인 헛소리들을 쏟아내지 않았다. D.H 로렌스라는 작가의 위대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인간은 걸치고 있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과 무관하게 누구나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심지어 이기적인 존재다. 물론 간혹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존재하는 극소수다. 따라서 쓸데없는, 심지어 허구적인 감상에 빠져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외면하는 작가는, 혼나야 한다. 매우.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훌륭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자꾸 나는 그 사랑이라는 것, 좀더 협소한 의미로서의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다 뭣이다냐,하는 생각이 들어 책과 무관하에 계속 곁가지만 치고 있었다. 언제나 잿밥에만 눈이 돌아가는 이 꼬라지는 언제쯤에나 바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한때 사랑이라는 것에, 또는 신념이라는 것에 내가 가진 알량한 것들을 몽땅 걸었던 적이 있었다.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 한심해 보여, 싸그리 그리고 아쌀하게 사랑이든, 일이든, 뭣이든 해야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 얻은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내가 허망하다고 지껄이던 목숨이라는 것을 혹은 내가 가진 몇 푼 안되는 돈과 이력과 온전하다고 믿었던 감정들을 그렇게 꼭 다 걸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이제와 돌아와 거울앞에 선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가슴 철렁했던 시절의 모퉁이를 돌아 헛헛한 마음으로 골방에 들어앉아 보니, 허망하다고 말했던 것들이 정녕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허망하기 때문에 지켜야 했던 것이 나였는지, 허망하기 때문에 버려야 했던 것이 나였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책 표지의 그녀, 코니의 뒷모습은 이쪽이 아닌 저쪽으로 가라는 표지 같았지만, 내 깜냥에 이미 강을 건너버린 것 같은 마음은 또 다른 저쪽이 어디인지 이제는 가늠할 수가 없다. 그저 길을 잃고만 싶었던 청춘은 이제 정말 길을 잃은 셈이다. 아,아,아, 채털리 부인의 연인쯤은 아니더라도 선운사 동백꽃 지는 날, 같이 울어줄 사람 하나 있었으면. 아,아,아 푸른 달빛 부서지는 밤 담벼락 아래서 그렇게 가만히 곁에 서 있어줄 사람 하나 있었으면. 오다가다 오도가도 못할 마음 하나가 채털리 부인 앞에서 서성이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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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채털리부인의 연인 1,2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10-02-17 19:10 
    책읽는 부족의 독후감 : 호호야님:http://blog.daum.net/touchbytouch/16847320 쟁님: http://zanygenie.tistory.com/30 서민정님: http://blog.daum.net/crabbit/16522600 동우님: http://blog.daum.net/hun02..
  2. 채털리 부인의 연인 : 깊은 관찰 없이는 독자에겐 불륜
    from moratorium life 2010-04-06 01:05 
    채털리 부인의 연인 1(세계문학전집 85) 저자 D. H. 로렌스 지음 | 이인규 옮김 출판사 민음사 펴냄 | 2002.12.15 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음락한 호색 문..
 
 
후니마미 2010-02-17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마 이 책은 지금 당장 독자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 독자 중에 클리포드의 입장에 있어서 바람난 여자를 마누라로 삼고 있는 남자가 없어서 그렇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코니와 멜러즈를 우리들처럼 자유의 뭣으로 자연의 뭣으로 운운하지 못할 거에요. 코니나 멜러즈에 대한 감상조차도 사실은 그 연애의 뒤끝이 어떻게 되는지 다 쓰지 않았고 애써 우리들도 그 미래를 좋게 보려고 해서 그렇지
대부분 우리들 주변의 연애라는 것, 또 그런 식으로 유부녀가 계급 아래인 남자, 연하 남자, 뭐 이런식으로 연결되면은, 대개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안 되잖아요
굿바이님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우리 두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며 공통으로 갖고 있는
사랑과 그 낭만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음을 느껴요
어쩌다 이렇게 젊었을 적 열정을 남의 이야기로 엿보는 때에, 주인공들에게 그런 거 언제까지 가나보자. 하는 못된 마음이 들더라구요
30대 때 볼 때 다르고 20대에 볼 때는 더 다르고
지금 마흔 줄에 들어서 보는 이야기가 또 다른 거에요
우리 경험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독후감상이 이렇게 달라져요
어느 게 내 맘인지 나도 몰라^^

동우 2010-02-19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으시고 적확하게 포착하신 '관계'라는 문제.
세상사 인생사 무엇 하나 관계 아닌것 있으리오마는.

그 놈의 관계.
따스하고 부드럽고 위선이 아니고 위악도 아니고 무식하지 않고 무교양하지 않으면서.. 제인부인과 토마스경과 같은 그런 관계.
선운사 동백꽃 지는 날, 같이 울어줄...푸른 달빛 부서지는 밤 담벼락 아래서 그렇게 가만히 곁에 서 있어줄... 그런 관계.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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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청文靑이 많은 사회는 어째 좀 우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저 일신의 즐거움을 위해 아쌀한 글, 툭 터지는 글, 여투어두게 되는 글, 절절한 글들이 우다다다다 쏟아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본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틀림없다. 작가의 고통이랄까, 뭐 이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글쓰기의 고통, 열망들이 어찌 작가만의 것이겠는가. 주위를 둘러보아도 알게 모르게 쓰고 지우는 일을 밥먹듯이 하는 이들이 꽤 많다.  

이쯤되면 글쓰기를 도와주는 책들의 유용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책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역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안내서가 되기에 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일정을 기록하는 단순한 일부터 압축적으로 글을 기술하는 방법까지 친절하고 알기 쉽게 기술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건, 기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친절한 안내서가 있다고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이 좋은 글 한 편이 뚝딱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침판이 있다는 건 여러모로 든든한 일임에 틀림없다.  

간혹 경험하게 되는 일이지만, 무언가 끄적이다 보면 마음도 가라앉고, 생각들이 자리를 잡기도 한다. 그래서 누구에게 읽혀질 일이 없는 날것들을 그저 그렇게 기록하는 것 같다. 추위에 지쳐있건, 사람에 지쳐있건, 무엇에 지쳐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멜랑꼴리가 쳐들어 오고, 그러면 또 어김없이 무엇을 끄적이고 있는 내가 있다. 그것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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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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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조직은 강하고, 개인은 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하면 개인이 조직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나를 설명함에 있어, 내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관계에서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노력들이 창피하다는 사실과 어떤 관계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 나는 내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온전한 개인으로서 나를 설명하고, 인정받으려고 했다. 물론 이러한 발상도 유치찬란 혹은 가오(?)였다는 사실을 지금은 뼈저리게 통감하지만, 여튼 그래서 선택했던 일이 사회운동가,정도로 불릴 그런일이었다.  

거기서 나는 박원순선생님을 만났다. 상상했던것 보다 몇 갑절은 강철같은 선생님에게서 나는 뭐랄까 힘을 얻었었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는 너무 쉬운 착각에 빠져들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의 내 상념들과 현재의 나를, 이 책의 형식을 빌려 노래하자면 아래와 같다. 

희망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어떤 고백보다 달콤했었지 / 내 눈을 바라보며 거짓말하는 당신, 그래도 사랑해 / 웃자고 시작한 일에 죽자고 달려드니 남은 것은 마이너스 통장과 위장약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두려움, 그래도 사랑해 / 진심은 통할거라 내 마음을 다 드러내니 그것조차 자기기만이라고 했었지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탐구심, 그래도 사랑해 / 40킬로 쌀포대를 한 시간을 걸어 배달해준 할머니의 집에는 젊은 아들이 자고 있었지 / 내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친 당신의 연기, 그래도 사랑해 / 혼자서 아이를 낳아 분유값이 없다고 금반지를 내어 주니 다른 남자와 커플링을 맞췄더군 / 내 눈을 바라보던 너의 절절함, 그래도 사랑해 /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기획서를 써오라하네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피곤함, 그래도 사랑해 / 기부금 영수증을 아들 이름으로 만들어 달라던 타워팰리스에 사는 아주머니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알뜰함, 그래도 사랑해 / 수족을 쓸 수 없어 기증을 못한다고 찾아간 집에서 쓰레기 두 가마니를 내게 건낸 아저씨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불편함, 그래도 사랑해 / 약값이 없어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고 해서 버스요금까지 털어주고 걸어가는 내앞에서 택시를 타던 할아버지 / 내 눈을 바라보던 당신의 유쾌함, 그래도 사랑해 / 한 번만 믿어주면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너를 천 번은 믿었건만 / 내 눈을 바라보며 인내를 가르치는 당신, 그래도 사랑해 /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만 구호를 외쳤네 / 우리는 우리를 사랑했네

노래가 끝난 줄 알았는데, 몇 소절이 더 남았다. 마지막 몇 소절은 이 책을 쓴 저자와 이 책을 만든 출판사를 향한 것이다. 

사회운동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네 / 큰 그림을 그려주면 작은 그림은 알아서 그리라 하네 / 요즘 운동의 대세는 방관인가 보네 / 대중을 신뢰하는 것과 대중속으로 들어가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 같네 / 보고서로도 충분할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네 / 눈으로 보이는 실적에 연연하는 그대들이 안쓰러웠네 / 내용이 중요하니까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철학을 지닌 듯한 출판사 /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네 / 기획 의도를 정말 철저히 숨긴 것일까 / 편집자는 말이 없네 / 어쩌면 나는 다시는 시대의 창에서 출간한 책들은 읽지 않을 것 같네 / 이제는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나를, 나는 사랑하기로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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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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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으레 터널을 만나게 된다. 어디론가 뚫려있는 터널은 이제껏 조우한 고만고만한 경관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풍경으로 진입하는, 그래서 그 길이와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두려움과 기대를 갖게 한다. 이때 터널의 입구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터널 뒤의 세상과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의 신경증이라면, 터널안에서의 기대는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망상의 신경증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여행은, 현실에서 맞이하는 터널과 같은 것이다. 답답한 실존으로서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며, 숙명처럼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끝없이 설레는 정신병. 하므로 여행에 거는 기대는 처음부터 측정이 불가할 수 밖에 없고 떠나는 자의 기쁨이 여행지에서도 온전하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의 탈출을 조금이라도 도와 줄 조력자를 구하게 되는 것이리라. 가장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처음 채우게 될 어긋난 단추일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엘리아스 카네티를 통해 만난 모로코는 여행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십개의 불편함(예로 언어의 문제, 바가지 요금, 불친절한 여행사 직원, 난방시설이 고장난 호텔, 지독한 모기때, 잃어버린 여권 등등)보다 더 불편했다. 그러니 불편이라는 단어는 내가 작가에게 갖는 호의적인 감정의 마지막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힘들었다. 조금 지난 일이지만 한국의 중견작가가 집필한 인도 기행서를 읽을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를 시작으로 그를 답습한 인도 기행서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한결같이 슬프고, 비밀스럽고, 무기력하고, 가난한 인도의 이야기들이.

작가는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마라케시를 천천히 걸으며 낙타가 한끼 식사거리로 팔리는 낙타 시장에서 침통해 하고, 성고문에 시달리는 나귀의 오후에 구토를 느끼며, 수치심을 가난과 바꾼 거리의 아이들에게 동전을 주고, 히잡속에 감추어진 여자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뻔뻔하지만 천진한 젊은 실업자를 위해 편지를 쓰고, 거지인지 성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일개의 무리들을 예의바르게 관찰하고, 아내의 아랫도리를 팔아먹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처럼 그가 보고 들은 것들은 모로코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새겨놓은 기표를 말끔히 지워내는데 충분했다. 아니 저항이 없다면 새로운 기표를 만들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왜 끝까지 그의 표현처럼 성실하지만 무정한 여행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을까? 나는 그에게 쓸데없는 혐의를 씌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의 차례와 마주보는 지면에 그려진 마라케시의 도시 그림을 손으로 짚어 보았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글과 사진을 통틀어 나는 이 그림이 가장 좋았다. 이 도시 그림에는 위쪽부터 밥 두칼라 사원, 벤 유수프 사원, 제마알프나 광장, 쿠르비아 사원, 밥 아게나우, 바히아 왕궁등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어느 한 시절, 그림의 사원들에서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자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며, 수많은 학문이 연구되고 그들의 문화가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림의 왕궁에서는 강한 왕이 태어나 나라를 지키고 외국과 교류했을 것이며, 교육을 장려하여 부국강병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림의 광장에서는 명민한 이야기꾼이 영광의 역사를 이야기하거나 영웅과 아름다운 공주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도시의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을 것이다. 그림에는 없지만 그 곳의 사람들은 일하는 손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흥정으로 꾀를 겨루고 시장에서 기술을 겨루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작가에게, 적어도 품격있고 명망 있는 어른으로서의 그에게 기대했던 여행기는 낡은 성곽의 돌 하나, 광장의 돌탑 하나에서도 세월의 암호를 해독해서 보여주는 여행기였다. 나 같은 사람은 모로코를 옆집처럼 드나들어도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그런 여행기,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오도된 모로코를 그의 유려한 문장으로 온전히 살려낸 시간을 뛰어넘는 여행기, 그래서 나처럼 모로코라는 도시를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또는 앞으로 그곳을 찾을 사람들에게 작가가 보지 못한 이상의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여행기 말이다.

혹자가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며, 쓸데없는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 말하고 싶다. 내게 현실을 홀딱 벗겨 보여 줄 여행기라면 나는 읽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내가 모로코에 가면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공항에 도착해서 부터 지저분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며, 거지를 만나게 될 것이고, 지친 낙타와 나귀도 보게 될 것이고, 지겹도록 히잡을 둘러쓴 여자들과 마주 칠 것이고, 매춘부도 보게 될 것이라고. 나의 관음증으로 말한다면 절대 그대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여기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어렵게 구축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로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식으로 들여다 볼 필요도 없으며 그렇게 읽혀질 이유도 없다. 내가 실로 이 책을 읽으며 작고한 작가에게 어설픈 날을 세워가며 경계하는 이유는, 작가의 높은 명성과 본보기 될 만한 글쓰기에 휘둘려 생각없이 이 책을 베끼는 모로코 여행기가 넘쳐나지는 않을까,하는 기우 때문이다. 관음증이라면 대가의 그것 하나로 충분하다. 그런 것이라면 정말이지 그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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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28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제목도 지독하게 낯선 책들.
통찰한듯 낯선 것들을 수렴하면서 이토록 자의식 강한 사람이 누구였을까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하하
무수한 구상 추상의 인물들, 누구였을까..하하
굿바이님이 닮은 사람, 굿바이님을 닮은 사람.


굿바이 2010-01-2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야 너무 많은데, 다행스럽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고, 그리고 저를 닮은 사람이라....아마 없을거예요. 저는 좀..... 많이 실망스러운 사람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