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붉은 거울 문학과지성 시인선 288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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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꿈꾸는 시간에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 내가 새파랗게 어리고, 붉게 질려 있는 경우에는 사방이 온통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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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특강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 삼천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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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사적인 경제 권력`과 `국가의 강제적 권력`의 작동을 통해 설명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두 권력의 조화와 대립은 `생활세계`의 질과 밀접하게 연동되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역할이 차지하는 범위와 정도가 시장실패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막장으로 내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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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재계약을 할 때면 어김없이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세금은 어차피 세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인데 그걸 뭐하러 그렇게 꼬박꼬박 올리는지, 추후 돌려줘야 할 돈이 부족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런 푸념을 하니 잘 아는 선배가 하는 말. "너는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어서 그 속내를 모르는거야, 돈을 굴려본 적이 없으니 그게 이해가 안가지."          그래. 나는 부자였던 적이 없다. 유년기에는 부모에게 얹혀 살았으니 그건 내것이 아니고, 지금은 말그대로 시장에서 노동력을 팔아야 쌀을 살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 역시 누군가 내 노동을 사야 가능한 교환이고.        

 

역시나 권력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부려본 적 없는 힘의 짜릿함을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할뿐이다. 상상력도 일천해서 어느 지점 이상은 나아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국가라는 권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너무 크고 너무 멀어서 도통 한눈에 볼 수도 없는 그것을.          그렇지만 적어도 국가의 권력이란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라 '폭력과 정의'를 구별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배웠거나 믿는다. 물론 또다시 누군가 "너는 힘을 책으로 배워서 권력이라는 괴수의 이빨을 상상할 수 없지. 그 무엇이든 살아있는 것들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을 때, 이빨 사이로 번지는 그 비린내와 찰진 식감을 알 수 없지. 씹어본 적 없으니까. 그러니까 쉰소리는 그만하지"라고. 힘을 가져본 적 없으니 그래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힘에 의해, 권력에 의해 잘근잘근 씹혔던 사람이, 권력이라면 이제는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려야할 것 같은 사람이, 도리어 국가권력이란 '폭력과 정의'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은수미국회의원이 그 사람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자세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10시간이 넘게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기막히게 어쩔 수 없는 인간들에게 이가 갈려 멸종을 고대하는 나에게 그녀는 힘을 쭉빼는 감기약과도 같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멸종을 고대하더라도 그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함께 있겠노라고, 뭘 할 수는 없어도 그저 함께 있겠노라고, 어느 길목 어느 공원 딱 오십미터의 거리에서 나도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겠노라고 다짐할 뿐이다.          긴 시간 들이마신 공기와 내뱉은 공기로 헛헛할 당신을 위해 허연의 시 한 편 보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세

 

허연

 

 위대한 건 기다림이다. 북극곰은 늙은 바다코끼리

가 뭍에 올라와 숨을 거둘 때까지 사흘 밤낮을 기다

린다. 파도가 오고 파도가 가고, 밤이 오고 밤이 가

고. 그는 한생이 끊어져가는 지루한 의식을 지켜보

며 시간을 잊는다.

 

 그는 기대가 어긋나도 흥분하지 않는다. 늙은 바

다코끼리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먼바다

로 나아갈 때. 그는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다시 살아난 바다코끼리도, 사흘 밤낮을 기다린

그도, 배를 곯고 있는 새끼들도, 모든 걸 지켜본 일

각고래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자세'일 뿐이다.

 

 기다림의 자세에서 극을 본다.

 

 근육과 눈빛과 하얀 입김

 백야의 시간은

 자세들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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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경제학
이정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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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이지만 성장成長이라는 산모는 애당초 분배分配를 잉태하지 않겠노라 작정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피임을 했고, 이를 눈치챈 성장의 정부情夫는 신약개발에 몰입하여 무능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약물을 제공하기 시작하였으니, 성장을 엄청 사랑하는 국민이는 언제 그의 자식을 안아보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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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모델 - 캐나다 퀘벡의 협동조합 사회경제 공공정책
김창진 지음 / 가을의아침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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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의 모델들이 복제되고 확산되어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컨텍스트의 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모델의 형식만을 복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확산을 한다고 해서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저자는 퀘벡모델을 통해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한 영감을 주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이 모델의 경우 주정부의 의지가 강하고 개입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퀘벡모델을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유독 주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퀘벡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뒤로 하고, 주정부의 역할만을 주목한다면, 필경 정부 또는 지자체 주도의 계획들이 수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혁신 또는 사회적경제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아주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이 성실하고 저자의 주장이 아름다워서 오히려 걱정이고, 태생적으로 물 건너 들어오는 어떤 것들이 미덥지 못한 성정때문인지 읽으면서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순전히 독자의 문제다. 책은 매우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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