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덟명의 아이들과 충청북도 어느 산골로 떠난다. 그 생각만으로도 걱정이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이 또 존재하지 않는 걱정을 만들었다. 늙었다는 것을 이렇게 속절없이 확인한다.

물오른 여름이 버티고 있는 산골. 용감한 매미들은 겁없이 울고 잠자리들도 낮게 날으며 폭염에 맞서고 있었다. 매미와 잠자리의 호의를 받으며 마을회관으로 향한 우리는 짐을 풀었다. 기다리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을 쪼갰다. 언어가 개입할 수 없는 풍경과 냄새였다. 나는 잠시 어지러웠다. 꿈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으로 달렸다. 비가 온 덕에 물은 적당히 불어있었고 차가웠다. 발을 담그니 이내 땀이 식는다. 아이들은 그곳이 아주 익숙한 것 처럼 놀았다. 계곡을 기어다니고 물고기를 잡고 서로에게 물을 뿌리고 웃고. 그때다.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퍼부었다.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계곡에서 끌어올렸다. 주먹만한 소나기였다. 맞으면 아팠다. 아이들을 마을회관으로 데리고 갈 지 고민했지만 소나기를 맞기로 했다. 이것도 추억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너무 어린 아이들은 호두나무 아래로 피신시켰다. 나는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조그마한 어린 생명이 온 몸으로 여름을 겪는 모습을 보았다. 아찔했다. 소나기가 그치고 다시 천지가 끓었다.

어둑해지는 산골의 오후는 낮과 다르게 선선했다. 마을회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앉아 석양을 보았다. 아이들은 낮게 탄성을 지른다. 나는 뼈가 시렸다. 지병이 돋는다. 외로웠다.

밭에서 아이들이 수확한 채소들로 반찬을 만들어 저녁을 먹고 다시 돗자리에 누웠다. 별이 쏟아졌다. 여름 밤의 별자리를 찾고 별자리에 얽힌 머난먼 나라의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제법 많은 이야기를 아는 녀석들은 중간중간 어려운 질문을 던져 나를 시험하곤 했지만 나는 큰 시험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개구리들의 힘찬 울음이 내게 시련이었다. 마음이 어딘가로 끌려가려는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게 다 연륜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우리는 온몸으로 여름을 통과했다. 놀고 웃고 먹고 만지고 보고 들으면서.

헤어지는 날, 눈인사로 마음을 전했다. 알아들었으리라. 몰라도 할 수 없는 일.

나는 돌아와 다시 서울이다. 서울도 폭염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잘 있을 것이다. 아주 잘.

 

 

음악들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

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

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

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압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

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

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

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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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7-3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앙 - 굿바이 님.

굿바이 2012-07-31 22:07   좋아요 0 | URL
으어어엉 - 치니님!!!! 그곳의 여름은 어떤가요? 눈부시죠?

비로그인 2012-07-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낮게 탄성을 지른다. 나는 뼈가 시렸다. 지병이 돋는다. 외로웠다"


그래 ..
그래 ..

굿바이 2012-07-31 22:00   좋아요 0 | URL
알아주는 그대가 있어 가끔은 말이 필요없어. 참 좋지 그래서. 잘 있지?

흰 그늘 2012-07-3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지내시죠?^^

어린날의 교회 수련회와 교사가 되어 갔었던 수련회가 생각이 나네요..
영화 '은교'를 보니까 별을 모르던 그이는 여전히 별을 모르던데.. 굿바이님은 별들의 저편까지도 아실것 같아요^^

가입만 해놓은 페북이지만..
페이스북에 보니까 감명을 주는 사람을? 기입하는 란이 있던데 '굿바이님' 이라고 기입할까
봐요^^ 그러면 제가 무례를 범하는 건가요..?

늘.. '글'이.. '생각'이.. '마음'이 좋아요..

굿바이 2012-07-31 22:06   좋아요 0 | URL
독한 여름, 어찌 지내시나요?

흰 그늘님에게 늘 감사해요, 마음을 전해주셔서요. 그런데 또 이렇게 넙죽 받기만 합니다. 염치없습니다 ^_____^





風流男兒 2012-07-3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세듯 시를 읽었어요. 숨이 가빠요. 날씨탓만은 아닐텐데.. 항상 좋아요. ^^

굿바이 2012-07-31 22:47   좋아요 0 | URL
돌아와라!!!!!!! 긴말 필요없다!!!!! 보고싶다 ^________^

라로 2012-07-31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얘기가 필요 없어요,,참 좋군요, 굿바이님.

굿바이 2012-08-03 11:27   좋아요 0 | URL
감사 또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12-08-01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긴 얘기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글 좋아요. 그리고...

"마음이 어딘가로 끌려가려는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에 제 마음이 붙잡혀 버렸어요. ^^

굿바이 2012-08-03 11:26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아주 혼났습니다. 다른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