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피었군요. 기별도 없이 찾아온 그대를 보았을 때 처럼 저는 놀랍니다. 덕분에 지각을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렸거든요.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뭐랄까 꼭 마지막으로 보는 목련같았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짤리면 짤리라지,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혼자맛을 심지어 호연지기라 우기고 싶었습니다. 물론 3초만 지나도 후회할 일이지요. 압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꽃이 피면 온 몸이 근지럽고 살아있는 것이 그저 대견하고 신기한데 말입니다. 어찌되었거나 딱히 보고싶은 것도 없고 딱히 애타는 일도 없는 사월인데 늘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김에 커피도 한 잔 샀습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양해를 구한다구요. 야근을 하더라도 오늘 할 일은 다 하겠노라구요. 미친년이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지요. 혹시 압니까. 어쩌면 나는 이 밤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운명인지도. 그러면 저 목련을 또 어디서 본답니까. 저리 하얀 꽃을. 저리 거짓말처럼 탐스럽게 둥실 떠있는 꽃을 말입니다. 청맹과니라 손가락질 받아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바람이 무거웠으니까요. 이런 날 비가 오다니. 걱정이 앞섭니다. 혹여 목련이 다칠까 싶었습니다. 어리숙한 마음이지요. 그래서 빌었습니다. 이왕이면 살살살 흩어지는 봄비였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스리슬쩍 피해갈 줄 아는 봄비였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 적은 더러 있었는데 목련을 위해 기도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여튼 이런 기도는 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도 허연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아, 그저 목련이 좋아서만 이렇게 멈춰선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저 하얀 것을 두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싶었습니다.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허연

 

굳은 채 남겨진 살이 있다. 상스러웠다는 흔적. 살기 위

해 모양을 포기한 곳. 유독 몸의 몇 군데 지나치게 상스러

운 부분이 있다. 먹고살려고 상스러워졌던 곳. 포기도 못했

고 가꾸지도 못한 곳이 있다. 몸의 몇 군데

 

흉터라면 차라리 지나간 일이지만. 끝나지도 않은 진행

형의 상스러움이 있다. 치열했으나 보여 주기 싫은 곳. 밥벌

이와 동선이 그대로 남은 곳. 절색의 여인도 상스러움 앞에

선 운다. 사투리로 운다. 살은 굳었고 나는 오늘 상스럽다.

 

사랑했었다. 상스럽게

 

 

목련을 두고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애틋함과 아련함이 어깨동무하고 찾아온 것을 보면 정녕 꽃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직감했습니다. 이렇게 한 손을 들어 저 하얀 꽃봉오리에게 안녕,이라고 손 흔드는 날이 오늘 이후로도 몇 날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요. 뻑뻑해진 눈을 찡긋거리며 저 하얀 것들을 찾아다니는 날들이 또 그렇게 몇 날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봄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요. 아니 좀 더 살고 싶다는 것을요.         그러다보면 혹여 어찌 어찌 상스러운 살들을 잠시 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만 그저 희망합니다. 치열하지도 못했는데 이미 굳어버린 살들을 잠시라도 모른 척 하고 살 수 있기를 말입니다. 일 년 열두 달 그러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목련이 피는 시절에라도 말이지요. 아시겠지만 나뭇가지에 올려진 봄이라는 것이 얼마나 짧습니까. 그러니까 저도 아직 모리배는 아닙니다. 막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돌아가는 길에 사탕을 하나 쪽쪽 빨았습니다. 그런데 질 나쁜 사탕이 입천장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입천장을 타고 피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지요. 그런데 그게 무슨 계시라고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사랑했었다. 다디달게,라고 말입니다. 봄에는 누구나 쉽게 허물어지는 모양입니다. 입천장을 혀로 달래고는 혼자 웃었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2-04-1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아요, 굿바이님.
저 시를 꾹꾹 눌러 적어두겠어요!

굿바이 2012-04-12 21:33   좋아요 0 | URL
좋아해주셔서 제가 막 신나요!!!!!!

잘 지내시죠? 봄날^^

흰그늘 2012-04-1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련 위로 바람이 무거운 날, 어리숙한 마음의 혼자맛(호연지기ㅎㅎ)

서점에들러 우연히 책을 펼쳤는데 이 페이지를 보게 되었다면 아마도
사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몇 권을 더 사서 선물하고 싶은
그냥 읽기에는 미안한 그런 참 좋은 글이네요^^

잘 지내시죠?

어딘가로부터 시와그림의 '나의소망'이 들려와 잠들어 있던 어떤 기억들을
깨어주는 봄날
햐얀목련 꽃 나무아래 앉아 시와그림의 '푸른 그대와 休' 를 듣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네요^^

굿바이 2012-04-12 21:37   좋아요 0 | URL
흰그늘님도 잘 지내시죠?

잠깐 흰그늘님의 어떤 기억들이 궁금했습니다. 그저 좋은 그리고 아련한 기억들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이봄 무조건 행복하세요!!!

페크(pek0501) 2012-04-1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님, 저 왔어요.
으음~ 시에서 '끝나지도 않은 진행'이라는 말에 저는 왜 꽂혔을까요. ㅋ

님의 감수성에 감탄하며 그거 누르고 가요. ㅋ
저, 친정에 놀러 가는 길에 투표도 누를 것이고...

굿바이 2012-04-12 21:40   좋아요 0 | URL
투표는 잘 하셨나요?
개표방송 보면서 참으로....ㅜㅜ

저도 '진행형의 상스러움'이라는 문장에 한참 머물렀던 것 같아요.

風流男兒 2012-04-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목련은 올해도 어김없이 저토록 흐드러졌을까요. 아름답습니다. 정말.

굿바이 2012-04-12 21:40   좋아요 0 | URL
그치?! 어쩌면 그럴까 싶어.
잘 지내지? 무조건 잘 지내~!

웽스북스 2012-04-13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년 굿바이님의 목련통신을 기다릴 것 같아요.

꽃도둑 2012-04-2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스러움과 봄이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요...
나마저도 상스러워지고 싶어요...얼마나 고매하고 고상한지..,^^;
목련은 이제 지고...명자꽃이 이쁘게 피어있던데..
다른 통신 언능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