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탈놀음 즐기기-수영야류 -

  영남지방에는 3가지의 탈놀음이 전승되고 있다고 한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상류에는 하회 별신굿이, 낙동쪽 서쪽에는 오광대가, 동쪽에는 들놀음(야류)이 그것이다.

  나는 세가지 탈놀음 중 부산 지역에서 전승 공연되고 있는 수영야류와 동래 야류를 보았다. 먼저 수영야류


  10월 8일, 1시부터 2시까지 벡스코 앞 마당에서 수영야류 공연이 있었다.

  수영야류는 부산 수영구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극이다.

  현재 공연하고 계신 분들은 기능 보유자 3분(수양반 역을 맡으신 태덕수, 괭과리 치시는 윤추만,영감역을 맡으신 조흥복)과 일반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내가 앉은 곳이 공연하시는 분들의 베이스캠프 앞이었는데 주요 등장인물들과 사진도 찍고 인터넷에서 뽑아간 자료들 중 잘못 된 자료들이나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공연을 관람했다.


  널찍한 마당에서 한마당놀이를 시작으로 수영야류 공연이 시작되었다. 농악대 , 팔선녀, 각 마당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음악에 맞춰 흥겨운 춤을 한바탕 추었다. 괭과리 소리, 북소리가 울리자 마침 벡스코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고 있었던지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 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객들이 햇볕 때문에 놀이마당과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다. 놀이꾼과 구경꾼이 함께 즐기던 공동체 놀이가 구경꾼, 놀이꾼이 따로 놀게 생겼다.

(동래야류 다른 점은 팔선녀가 놀이 전 마당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놀이는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과장은 양반 과장.  수양반, 차양반, 셋째 양반, 넷째 양반, 종가도령이 놀고 있는데 말뚝이가 등장을 한다. 말뚝이가 양반들을 조롱하는 재담이 재미있다는 데 멀찍이 떨어져 보는 바람에 못 들었다.

  둘째 과장은 영노과장. 시커먼 옷을 걸친 ‘저승의 사자’ 같이 생긴 영노(상상속 동물)가 등장해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수양반을 잡아먹는다.

(영노가 수양반을 위협하고 있는 장면)

  셋째 과장은 할미, 영감과장. 수영야류에서 하이라이트는 제 3마당이었다. 1시간 공연에서 20분 정도가 할미 영감마당 공연에 소요되었다. 공연하시는 분 말로는 제대로 하면 제 3마당만 해도 1시간 10분정도가 소요 된단다.

  할미가 영감을 찾아 다니다가 영감을 만나 흥겨운 춤을 추다가 퇴장하자 영감이 제대각시(첩)를 데리고 들어와 노닥거리고 있다. 그때 본처가 등장해서 제대각시를 영감으로부터 떼 놓는다. 영감과 할미만 남자 영감이 자신이 없는 사이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러자 할미가  솔방울에 맞아 죽고 .....애지중지 하다 죽고 아무튼 다 죽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영감이  할미에게 발길질을 했는데 할미가 그 길로 쓰러져 못 일어난다. 당황한 영감이  용하다는 의원을 부르고, 눈먼 봉사를 불러 굿도 해 보지만 이미 숨이 끊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상여를 매고 장례를 치르면서 3마당이 끝난다. 제 3마당은 7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더러 볼 수 있었던 일부 처첩제도의 폐단을 보여주었다. 할미와 영감의 재담도 재미있고, 눈먼 봉사가 등장할 때 몸짓도 우스광스럽다.

(할미가 죽어서 장례 치르는 장면)

 넷째 과장은 사자춤 과장. 자그마한 범이 덩치 큰 사자를 자꾸 건드리며 귀찮게 하자 사자가 범을 잠아먹는다.

 

 

 공연하는 동안 인라인을 타는 아이들과 오고 가는 사람들로 놀이에 제대로 집중이 안될 만큼  산만했다. 그런데다 빙둘러 앉아 공연을 즐길 수가 없고 멀찍이 떨어져 그냥 멀뚱멀뚱 바라 보려니 공연하는 사람들도 보는 사람들도 흥이 나지 않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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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 축제 즐기기-

10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범어사 개산 문예대제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는 '문 없는 문을 열다'.

첫쨋날에는 다비식 시연, 길놀이, 범주 스님 달마 그리기 퍼포먼스, 범어 음악회 같은 공연이있었고,

둘째날에는 범패 한마당, 타악 뮤지컬 같은 공연이 있었다. 나는 첫째날 1시부터 시작된 다비식 시연과 정태춘 박은옥이 나왔던 범어 음악회를 보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 못갔다. 그래서 둘째날 있었던 공연과 축제 기간 동안 열리는 전시회를 보고 왔다


  범어사에 도착하니 정오무렵, 주차할 곳이 없었다. 한참을 밑으로 내려가 길 옆에 겨우 차를 주차시키고 한참을 걸어 다시 범어사로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 쯤 다다르니 대중 가요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쿵작쿵작 음악 소리도 들린다. ‘엥~ 산사 축제 맞나?’이러면서 올라갔더니 박물관 무대 옆에는 실버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연세드신 어른들을 위한 문화행사란다.

  지금 범어사에는 다양한 공연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작품 전시회도 열리고 있는데 처음 마주친 천연 염색전은 참 썰렁하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에 줄을 쳐 놓고 원색의 천 몇 개만 줄줄 걸쳐 놓았다. 천연 염색에 관심이 많는 엄마는 천연 염색에 대한 안내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정도는 있지 않을 까 기대를 하신 모양인데 아무것도 없자 “이기 다가? 뭐 가지고 물을 들였는지 설명도 하나 없고.” 라고 하셨다. 안타까운 생각에 안내를 맡고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 무엇으로 물을 들여 이런 색깔들이 나왔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작은 종이에 설명을 적어 집게에 꽂아 놓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헐~ ‘천연염색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들인 염색인지를 안단다.’ 하도 기가 막혀 ‘여기 전시회 보러 오는 사람들이 다 천연염색에 기본 지식을 가지고 오진 않는다. 이런 전시회를 통해 천연염색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럼 이 전시회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을 위해 여는 것이냐고 ’ 했더니 대답도 않고‘염색 천을 만지는 사람 제지하는라 사라진다. 조금만 신경 쓰면 훨씬 의미있는 행사가 될 수 있는데 안타깝다. 그냥 구색 맞추느라 폼으로 전시한건지.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나와 풍경 소리 전시회를 봤다.짧은 글귀 속에 커다란 울림이 들어있다. 내가 죽을 때 갖고 가는 것은 재물도

아니고 마음 하나라는데....


  점심을 먹고 보제루 앞 마당에서 범패 한마당 공연을 보았다. 작심을 하고 본 영산작법(전주)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범패와 작법(서울), 영산작법(전주), 불모산 영산재(마산)를 차례대로 공연 했다. 스님들을 두 종류로 나누면 이판과 사판으로 나눈단다. 이판은 공부하는 스님이고, 사판은 대중을 상대로 포교를 하거나 의식을 행사는 스님들이란다. 이번 범패와 작법을 공연하는 스님들은 사판 스님들이다. 범패는 죽은 사람을 위해 제를 올릴 때 행하는 소리로 대부분이 산스크리스트어로 되어 있단다. 판소리로 치면 ‘회심곡’과 비슷한 내용이라는데 어려운 범어라 그런가 아니면 소리 하는 사람이 감정을 실지 않아 그런가 다들 멀뚱멀뚱하다. 이 소리에 맞춰 추는 춤은 작법이라고 한단다. 소리를 하면서 징이나 북, 태평소, 괭과리 같은 전통 악기를 치면 그 소리와 리듬에 맞춰 바라춤과 나비춤을 번갈아 춘다.


(범패와 작법-서울)


영산작법(전주)을 공연할 때는 앞에 젊은 비구, 비구니 스님들의 바라춤과 나비춤 공연이 끝나고 고수 인듯한 네 분의 비구 스님이 나와 바라춤을  췄다. 이 때 맨 앞에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아 봤는데 이 분들이 춤을 출 때는 정신과 몸이 일체된 듯한 기운이 느껴져 나도 춤 사위 속으로 빠져 드는 흔치 않는 경험을 했다. 다른 스님들은 공연할 때 소리를 하는 스님 따로 춤 추는 스님 따로 노는 듯한(?) 부조화가 느껴져 색다른 춤사위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영산재-전주)

  불모산 영산재(마산) 공연은 전주나 서울의 범패와 작법과는 다른점이 몇 가지 있었다. 불모산 영산제 공연을 할 때는 전주 고수스님들의 춤 사위를 보고 볼 것 다 봤다는 심정으로 뒤쪽에 가서 어머니랑 이야기를 하며 간간히 춤 사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비춤을 추는 분들이 아무래도 일반인들 같다. 그래서 고개를 쭈~욱 빼고 살펴 보는데 뭔가 다른 점이 많다. 나비춤은 일반 신도들이 추고 바라춤은 비구 스님만 4분이 나와 추셨다. 그래서 바라춤이 다른 지역 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라춤을 추는 비구 스님과 나비춤을 일반 신도들이 함께 무대에 나와 춤을 춘다. 범패와 작법을 할 때 다른 지역에는 북을 치면서 하는데 마산지역 영산재는 의식용 괭과리를 대나무 틀에 매달아 들고 치면서 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한다. 그런데 소리 하시는 분 목소리가 탁해 듣기는 좀 거북했다.


(불모산 영산제-마산)

 

  범패 한마당이 열리는 바로 옆 보제루에 김순향 전통보자기 전과 최웅택 찻사발전이 열리고 있었다. 도토리, 쪽, 홍화,치자 같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 모시 같은 조각들을 잇대어 보자기를 만들었다. 태극 문양이 덧대진 보자기가 눈길을 끌어 만드신 분께 여쭤보니 작품을 완성하는데 8개월이 걸렸단다. 한땀 한땀 잇댄 자국을 보니 예사 정성으로는 힘들었겠다. 일본에서 온 사진작가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사진속에 담았다.


  저녁에는 타악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를 한국적 공연양식으로 풀어낸 색다른 뮤지컬이다. 빗자루 놀이, 공양놀이와 같은 주제가 있는 연극과 북 뿐만 아니라 빗자루, 공양 그릇, 책, 같은 생활 용품들로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공연을 풀어가는데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호응도 뜨겁다.



 
 마지막으로 산사 영화제 ‘말아톤’ 상영.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영화를 봤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사에는 어둠이 짙어가고 불 밝힌 연등들은 가을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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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 박물관 부산 전시회를 다녀와서(3)

                                   -그리스  문화와 로마제국 -


  그리스 로마의 문화는 기하학 양식, 아르카익 양식을 거쳐 고전주의 양식으로 발전했단다.

  아르카익 양식의 유물들로 쿠로스의 토르소, 쿠로스 상, 소녀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을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왼쪽 발을 앞으로 오른쪽 발은 뒤로 해서 마치 걸어가고 있는 듯한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얼굴이 없는 ‘쿠로스의 토르소’ 상 빼고 얼굴에 알듯모를 듯한 미소를 띄고 있는다는 것, 입술이 약간 투툼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 망토를 두르고 있다는 것이다.아르카익의 미소’라고 불리는 소녀상은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니 웃는 모습이 모자리자의 미소보다 더 아름답다.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가 영혼이 참 맑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소녀의 은은한 미소가 자꾸 내 눈길을 붙든다. 그런데 이 시기의 조각품들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경직되어 있다.


 헬레니즘 시대(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사망 이후부터 30년 클레오파트라 7세가 사망할 때까지)에 만들어진 유물들은 좀 다르다. 근육이 강조되어 있어 입체감이 훨씬 뛰어나다. 특히 헤르메스 상은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의 특징을 잘 담고 있다.헤르메스는 여행, 도둑, 전령의 신이란다. 그래서 외부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역할을 했단다. 여행자가 햇빛 차단용으로 쓰는 페타소스 모자를 쓴 헤르메스는 근육이 아주 발달되어 있고 건장해 보인다. 아르카익 양식의 조각상들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 졌다는 디오니소스 상도 볼만하다, 디오니소스는 주신이다. 머리에 포도 넝쿨을 두르고 손에도 커다란 포동송이를 들고 서 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이 조각상은 망토의 주름이 아주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돌에 새긴 것인데도 방토 속에 갇힌 오른쪽 다리가 천 밖으로 밀려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조각을 봤을 때는 실제 천을 두르고 있는 줄 알았을 정도로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리이스 로마관 중앙에 서 있는 이 조각을 먼저 보고 다른 조각 작품들을 둘러 보았는데 이 조각을 먼저 봤던 탓인지  다른 유물들은 감동이 훨씬 덜했다.


  그리고 대리석으로 조각한 두상과 반신상들, 그 중에 하드리안 황제와 반신상과 안티노스 반신상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안티노스는 하드리안 황제의 친구(?)였단다.  아드리안 황제는 5,60대로 보이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이고 안티노스는 이제 겨우 20대전후의 꽃미남, 고대 그리이스 황제들은 동성애자들도 많았단다.하드리안 황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 꽃미남을 데리고 다니며 총애를 했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어린 안티노스가 황제보다 먼저 죽었는데 자살을 했다는 설이 있단다. 안토니오가 자살한 이유는 자신의 신체가 아름다울 때 죽어 그 아름다움을 황제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고 싶어서였단다. 생긴건 멀쩡한데 ..... 황제는 너무 슬픈 나머지 안티노스를 신격화 시켜 신전을 짓게 하고 안토니오의 머리에 담쟁이 덩굴을 두른 반신상을 제작해서 가는 곳곳에 배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조각은 보는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오른쪽, 왼쪽, 정면에서, 밑에서, 보는 방향에 따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표정, 수줍어하는 듯한 표정등 다양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조각상에서 황제에게 총애를 받는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우수에 가득찬 표정이 더 많이 느껴졌다. 조각가는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또래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안토니오는 비애를 표정 속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스 로마관은 서양 미술의 원류가 집약된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 만큼 조각들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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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 박물관 부산 전시회를 다녀와서(2)

                                     - 고대 이집트와 수단 -


  이곳에는 장례와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무덤 부조물, 비석,사자의 서,미라, 미라와 함께 관 속에 넣었던 부적들,미라 얼굴을 덮었던 초상화...

 

  이집트 인들은 사후 세계에서 또 다른 삶을 산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부활의 의미가 담긴 부적이 많다. 사람이 죽으면 뇌와 내장을 꺼내 카노픽 항아리에 넣어 무덤 주위에 묻고 , 신체는 방부처리하여 눈 위에는 눈 부적을, 심장 위에는 심장 부적을 넣어 미라를 아마포로 감쌌다. 미라를 끈으로 7등분을 하여 묶었는데 이것은 우린 나라의 장례 풍습과 같다고 한다. 7이라는 숫자가 부활을 의미하는 건가? 아니면 사후 세계에서 행복을 누리라는 뜻인가? 그리고 하늘의 신과 같은 여러 가지 무늬를 정교하게 새긴 관을 만들어 미라를 넣고 가슴에 쇠똥구리 모양의 부적을 얹어 놓았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쇠똥구리가 스스로를 부활 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 가슴에 쇠똥구리 부적을 올려 놓으면 저승세계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은 이의 초상화를 그려 얼굴에 덮어주고 하늘의 신과 같은 다양한 상징들을 조각해서 채색한 미이라 관을 만들어 미이라를 넣어 묻어주었다. 무덤 벽에 죽은 이의 모습을 새기고 ,저승에서 다시 살 수 있게 ‘死者의 書‘ 써서 함께 묻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고대 이집트 관에 전시되어 있다.

 

  일명 ‘불행의 미이라’라고 해서 유명해진 미라를 덮은 관을 보니 관이 아니라 아리따운 여성이 솔을 두르고 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서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무늬들로 꽉 채워진 관 자체가 훌륭한 조각품이다. 무덤에서 미라와 관련된 유물 뿐만 아니라 미라까지 파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고대 이집트 인들의 바램처럼 죽어서도 생명을 얻어 지금까지 썩지 않고 남아 먼 타국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면 지금처럼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는 않을테지만 영혼은 안식을 취하고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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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 박물관 부산 전시회를 다녀와서(1)  

                          -고대 근동관-

                                    

  10월 9일까지 부산 시립 미술관에서 대영 박물관 부산전이 열린다. 아무리 궁리를 해 봐도 추석 연휴 첫날 오전 아니고는 시간이 날 것 같이 않아서 다녀오기로 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부산전 100배 즐기기 안내 자료를 대충 훑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영 박물관 역사관을 지나 고대 근동관, 여기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찬란한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전시되고 있는 유물 중 꼭 보기를 권하는 ‘유물 베스트 10’에 소개 되었던 ‘푸아비 여왕의 수금’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고대 순장제 풍습에 따라 왕비와 함께 순장되었던 여인 중 한명의 손이 이 ‘수금’의 줄 위에 놓여져 있었다고 하니 죽어서도 여왕을 위해 수금을 타려고 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곳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 중에 기원전 2,600년경에 유물이라는 우르왕족묘지 매장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600여년 전부터 왕족들은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장신구 사용을 즐겼던 모양이다. 홍옥수(붉은색),라피스라즐리(푸른색을 띠고 있는데 홍옥수와 더불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지 않는 보석이란다. 홍옥수는 인도 등지에서 라피스라즐리는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수입을 해 와서 장신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금을 재료로 만든 팔찌, 반지, 목걸이, 머리 장식물은 요즘 사람들이 착용해도 될 만큼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왕족들의 장신구를 만들던 장인들의 감각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모양이다.

 

 그리고 바빌론의 마르독 사원에서 출토되었다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념비(기원전 900년~800년경)에 새겨진 설형문자, 이 문자를 보면 루이브라유가 만든 점자와 많이 닮았다. 점의 개수, 위치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점 6개로 이루어진 브라유 점자. 설형문자도 대문자 와이 같은 작대기 몇 개가 방향과 길이, 개수를 달리하며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되던 글자가 언제부터 왜 지금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아마도 어휘가 늘어나면서 단순한 설형문자로 모든 어휘를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페르시아 제국의 유물 중에는 장례용 가면이 눈에 띄었다. 왜 유체 위에 가면을 만들어 씌웠을까?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나? 우리 나라는 사냥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면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는데, 더불어 가면극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데 아무튼 이 곳에 전시된 유물들은 수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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