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 축제 즐기기-
10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범어사 개산 문예대제전이 열리고 있다. 주제는 '문 없는 문을 열다'.
첫쨋날에는 다비식 시연, 길놀이, 범주 스님 달마 그리기 퍼포먼스, 범어 음악회 같은 공연이있었고,
둘째날에는 범패 한마당, 타악 뮤지컬 같은 공연이 있었다. 나는 첫째날 1시부터 시작된 다비식 시연과 정태춘 박은옥이 나왔던 범어 음악회를 보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 못갔다. 그래서 둘째날 있었던 공연과 축제 기간 동안 열리는 전시회를 보고 왔다
범어사에 도착하니 정오무렵, 주차할 곳이 없었다. 한참을 밑으로 내려가 길 옆에 겨우 차를 주차시키고 한참을 걸어 다시 범어사로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 쯤 다다르니 대중 가요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쿵작쿵작 음악 소리도 들린다. ‘엥~ 산사 축제 맞나?’이러면서 올라갔더니 박물관 무대 옆에는 실버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연세드신 어른들을 위한 문화행사란다.
지금 범어사에는 다양한 공연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작품 전시회도 열리고 있는데 처음 마주친 천연 염색전은 참 썰렁하다.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에 줄을 쳐 놓고 원색의 천 몇 개만 줄줄 걸쳐 놓았다. 천연 염색에 관심이 많는 엄마는 천연 염색에 대한 안내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정도는 있지 않을 까 기대를 하신 모양인데 아무것도 없자 “이기 다가? 뭐 가지고 물을 들였는지 설명도 하나 없고.” 라고 하셨다. 안타까운 생각에 안내를 맡고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 무엇으로 물을 들여 이런 색깔들이 나왔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작은 종이에 설명을 적어 집게에 꽂아 놓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헐~ ‘천연염색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은 무엇으로 들인 염색인지를 안단다.’ 하도 기가 막혀 ‘여기 전시회 보러 오는 사람들이 다 천연염색에 기본 지식을 가지고 오진 않는다. 이런 전시회를 통해 천연염색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럼 이 전시회 기본 상식이 있는 사람을 위해 여는 것이냐고 ’ 했더니 대답도 않고‘염색 천을 만지는 사람 제지하는라 사라진다. 조금만 신경 쓰면 훨씬 의미있는 행사가 될 수 있는데 안타깝다. 그냥 구색 맞추느라 폼으로 전시한건지.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나와 풍경 소리 전시회를 봤다.짧은 글귀 속에 커다란 울림이 들어있다. 내가 죽을 때 갖고 가는 것은 재물도
아니고 마음 하나라는데....
점심을 먹고 보제루 앞 마당에서 범패 한마당 공연을 보았다. 작심을 하고 본 영산작법(전주)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범패와 작법(서울), 영산작법(전주), 불모산 영산재(마산)를 차례대로 공연 했다. 스님들을 두 종류로 나누면 이판과 사판으로 나눈단다. 이판은 공부하는 스님이고, 사판은 대중을 상대로 포교를 하거나 의식을 행사는 스님들이란다. 이번 범패와 작법을 공연하는 스님들은 사판 스님들이다. 범패는 죽은 사람을 위해 제를 올릴 때 행하는 소리로 대부분이 산스크리스트어로 되어 있단다. 판소리로 치면 ‘회심곡’과 비슷한 내용이라는데 어려운 범어라 그런가 아니면 소리 하는 사람이 감정을 실지 않아 그런가 다들 멀뚱멀뚱하다. 이 소리에 맞춰 추는 춤은 작법이라고 한단다. 소리를 하면서 징이나 북, 태평소, 괭과리 같은 전통 악기를 치면 그 소리와 리듬에 맞춰 바라춤과 나비춤을 번갈아 춘다.
(범패와 작법-서울)
영산작법(전주)을 공연할 때는 앞에 젊은 비구, 비구니 스님들의 바라춤과 나비춤 공연이 끝나고 고수 인듯한 네 분의 비구 스님이 나와 바라춤을 췄다. 이 때 맨 앞에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아 봤는데 이 분들이 춤을 출 때는 정신과 몸이 일체된 듯한 기운이 느껴져 나도 춤 사위 속으로 빠져 드는 흔치 않는 경험을 했다. 다른 스님들은 공연할 때 소리를 하는 스님 따로 춤 추는 스님 따로 노는 듯한(?) 부조화가 느껴져 색다른 춤사위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영산재-전주)
불모산 영산재(마산) 공연은 전주나 서울의 범패와 작법과는 다른점이 몇 가지 있었다. 불모산 영산제 공연을 할 때는 전주 고수스님들의 춤 사위를 보고 볼 것 다 봤다는 심정으로 뒤쪽에 가서 어머니랑 이야기를 하며 간간히 춤 사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비춤을 추는 분들이 아무래도 일반인들 같다. 그래서 고개를 쭈~욱 빼고 살펴 보는데 뭔가 다른 점이 많다. 나비춤은 일반 신도들이 추고 바라춤은 비구 스님만 4분이 나와 추셨다. 그래서 바라춤이 다른 지역 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라춤을 추는 비구 스님과 나비춤을 일반 신도들이 함께 무대에 나와 춤을 춘다. 범패와 작법을 할 때 다른 지역에는 북을 치면서 하는데 마산지역 영산재는 의식용 괭과리를 대나무 틀에 매달아 들고 치면서 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한다. 그런데 소리 하시는 분 목소리가 탁해 듣기는 좀 거북했다.
(불모산 영산제-마산)
범패 한마당이 열리는 바로 옆 보제루에 김순향 전통보자기 전과 최웅택 찻사발전이 열리고 있었다. 도토리, 쪽, 홍화,치자 같은 천연 재료로 염색한 모시 같은 조각들을 잇대어 보자기를 만들었다. 태극 문양이 덧대진 보자기가 눈길을 끌어 만드신 분께 여쭤보니 작품을 완성하는데 8개월이 걸렸단다. 한땀 한땀 잇댄 자국을 보니 예사 정성으로는 힘들었겠다. 일본에서 온 사진작가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사진속에 담았다.
저녁에는 타악 뮤지컬 공연이 있었다.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를 한국적 공연양식으로 풀어낸 색다른 뮤지컬이다. 빗자루 놀이, 공양놀이와 같은 주제가 있는 연극과 북 뿐만 아니라 빗자루, 공양 그릇, 책, 같은 생활 용품들로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공연을 풀어가는데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호응도 뜨겁다.
마지막으로 산사 영화제 ‘말아톤’ 상영.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영화를 봤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사에는 어둠이 짙어가고 불 밝힌 연등들은 가을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