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현대 미술전이 열린다는 기사를 읽은지가 제법 됐는데 지금까지도 하고 있을래나 '
이러다가 수업 한팀을 끝내고 막간을 이용해 부산 시립 미술관에 갔다. 그런데 갈 때마다 길이 헷갈린다. 두어바퀴 돌아서야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매표소로 올라갔다. 그런데 입장료가 700원 밖에 안한다.
'비엔날레 같은 국제적인 전시회가 열릴 때는 만원 이쪽저쪽인데? 그럼 인도 현대 미술전도 끝났나?'
이러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하고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아깝다. 볼만한 설치 미술작품들 중에는 카메라 촬영이 허용된 작품들이 몇 개 있다.
2층에는 시간의 홈에서와 젊은 시각 시선 2006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시간의 홈에서
한순자씨는 원을 이용한 그림들을, 안종대의 작품은 녹슨 못과 곰팡이, 얼룩 같은 것들로 천에 종이에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 냈다. 한명옥씨는 실을 꼬아 포크나 숟가락 위에 또아리를 틀어놓았다. 주부들의 일상을 표현하려 함인가 식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작품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김성수씨의 작품 속 인물들은 표정이 황망하다.
-젊은 시각 시선 2006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훔쳐보기. 동화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동화의 소재로 쓰도 괜찮을 것 같다. 전시 공간을 하나의 커다란 방, 그 가운데 커다란 짙은 베이지색 토끼 한 마리가 조각보 이불을 덮고 자고 있다. 공간 4면에 크고 작은 창들이 있고 그 창 밖에는 다양한 모습의 토끼들이 잠자는 토끼를 훔쳐보고 있다.문을 빼곡 열고 한쪽 눈만 내밀거나, 키가 작은 토끼는 겨우 눈만 내밀고, 키큰 토끼는 온전히 서서 창문에 얼굴을 대고 보고 있다. 그런데 왜 창밖의 토끼들은 자고 있는 토끼를 훔쳐보고 있을까?
그리고 강태훈의 내 머릿속의 수도꼭지,참 창의적이다.
사람의 입에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기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물조리개에도 수도꼭지가 달렸다. 죽어가는 식물도 물조리개가 뿜어내는 물을 마시도 살아나는 기적을,알,전화기,시계에도 수도꼭지가 달렸다. 그렇지, 이런 것들도 기적을 부르지.
이 분은 초등학교 6학년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전국체전 메스게임 연습을 하느라고 몇 개월동안 동원이 된 적이 있단다. 그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을 하다가 10분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수돗가로 달려갔단다. 그 수돗가에서 마셨던 한 방울의 물, 그 때 경험했던 기적의 기억이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이 되었단다.내가 이해되는 작품들을 만나면 미술품 관람이 아주 재미있어진다.
3층, 이탈리아 판화 400년 전
16,7세기 판화들은 대부분이 성당의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그림들이라 그리스 로마 신화, 예수,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사랑에 빠진 에로스와 프쉬케 그림도 있고,안드로메다가 제물로 바쳐진 모습을 그린 판화도 있다. 안드로메다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의 교만함에 화가 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에디오피아를 황폐화 시키자 안드로메다를 바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페르세우스가 지나가다 보고 구해주었다는지 아마.그런데 우리 나라 행주산성에 얽힌 이야기와도 비슷한 그림 한점. ‘시에나의 여인들’.1553년 피렌체와 전쟁 중 시에나의 여인들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몬탈시노성 안에 돌을 나르고 있는 장면.그런데 다른 점은 가운데 아름다운 여인 한명이 서서 이 돌을 나르는 여인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행주 산성에선 어림없는 모습이지만 나는 그 여인에게서 ‘조선의 여걸 박씨 부인’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미켈란 젤로가 1536년부터 1541년까지 6년에 걸쳐 그렸다는 ‘최후의 심판’을 조르지오 만토바노와 지아코모 로지가 12점의 판화로 제작한 것도 전시해 놓았다. 그런데 아주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예수가 ‘최후의 심판’을 하려는 순간을 알리는 그림이다.7명의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서 ‘최후의 심판’이 곧 있을 것임을 알리고 있고 7명의 천사 아래로 선한 일을 한 사람들과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책을 보고 있는 또다른 천사가 있다. 그런데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한 천사는 얕고 작은 책을 들고 넘기고 있는데 왼쪽에 있는 천사 둘은 두껍고 큰 책을 들고 넘기고 있다.오른쪽에 있는 천사가 든 책은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고 왼쪽에 있는 천사들이 뒤적이고 있는 책은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란다. 인간이 죄를 짓기는 쉽지만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선하게 살기가 그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인도 현대 미술전
전시된 작품들 대부분이 이해가 쉽지 않다.그런데 독특한 작품이 하나 있다. 틸루 LN.이라는 분의 작품 ‘과식증’. 부처가 고급스럽게 치장을 한 반야용선을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의 설치물이다. 부처 몸은 녹이 쓸고 쇠가 삭아 형체조차 불분명한데 반질반질한 은빛의 배만 볼록하다.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는 부처가 이 세상에 왔다간 의미가 많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오늘 700원으로 호사를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