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지역에 있는 성혈(性穴) 을 보고 온지 2주 정도 됐다.

그런데 계속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은 강 옆 절벽이나 고인돌 위, 넓적하고 커다란 바위 위에 왜 이렇게 수많은 크고 작은 구멍을 팠을까 하는 것이었다. 별자리라고 추측은 하지만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는데 정말 별자리를 새긴 것일까? 별자리를 새겼다면 마을 가운데, 강 절벽 위에 왜 별자리를 새겼을까? 고구려 사람들처럼 이 지역 사람들도 별자리를 숭배했을까? 아무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정리가 안된채 시간만 보내다가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 까 궁금해 사진을 올린다.  

 

안계면 양곡리 성혈 (性穴)

마을 뒤 야트막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 크고 넓적한 바위에 크고 작은 구멍들을 수없이 파놓았다.이곳에 지표조사를 했다는 지인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 마을 이름이 태양리였다고 한다. 마을 이름과도 연관이 있는것 같다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별똥이 떨어진 흔적이라고 했단다. 프라나님은 마을 뒤편 산 능선 소나무를 정북 방향으로 잡아 수많은 별자리를 새겨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럼 이 곳도 선사시대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별자리를 관측하던 곳? 

 
 




 (가운데 볼록한 봉우리가 정북 방향이란다) 
 

안계면 교촌리 관어대 성혈(性穴)
성혈을 보러 갔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강을 옆에 끼고 쭈욱 이어진 암벽 위 편평한 바위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을 새겨놓았다. 2007년 5월 7일자 매일신문에 난 기사 일부를 인용해서 설명을 대신한다.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속칭 선돌마을 뒤 위천의 암벽(관어대) 25m 정상부 표면 두 곳에 지름 1~7cm, 깊이 0.5~12cm의 바위구멍 300~400개가 확인됐다’ 

동방금속문연구회장 박위호씨가 발견했다는 데 선사시대 사람들이 별자리를 관측하던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한단다.북두칠성이 새겨진 것은 확인 되었다고 한다.이곳을 보고 와서 왜?라는 의문이 머리 속을 맴맴 돌아 관련 자료를 찾아봤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온 건 없었다.  




  

(건너편 마을 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 곳이 정북방향이란다)  


비안면 용천리 고인돌 성혈(性穴) 
 

꼬불꼬불 농로를 따라 우왕좌왕 하다 찾아간 곳이다. 강 옆 숲속에 고인돌 무더기가 있었는데 고인돌 위에 별자리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구멍을 파 놓았다.  고구려 고분 장천 1호분 천장에 해와 달,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곳에 그려진 북두칠성 모습은 지금 우리가 그리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그 때 그 그림을 보면서 ‘고구려 사람들은 별자리를 정말 숭배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살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도 별자리를 아주 숭배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캄캄한 무덤 속이 답답하고 무서울까봐 하늘의 별을 새겨 영혼을 위로해 주었거나...이곳에 있는 고인돌은 자연석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다듬어서 얹은 거란다. 그 흔적이 고인돌 무더기 옆에 있었다.  




(이곳의 고인돌은 자연석이 아닌 인공으로 다듬어서 얹었다고 추정하는 근거가 되는 바위)

(고인돌 무더기가 있는 숲) 

 

금성면 탑리 5층 석탑 옆에 있던 성혈(性穴)

이곳은 의성 답사 가서 가장 먼저 갔던 곳이다. 성혈을 시리즈로 보고 와서인지 답사기를 정리하는데 국보 77호라는 탑리 5층석탑에 대해선 생각 나는게 없고 주변에 널부러져 있던 새까만 바위 위 구멍들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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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9일부터 일주일간 방학이어서 서울 가는 길에 논산에 들렀다 6시 20분에 집을 나서 기차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논산에 도착하니 11시였다.

보고 싶은 곳은 많았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욕심을 버렸다. 쌍계사 한 곳만 보기로 하고다른 곳을 더 볼 수 있으면 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1시간에 한대씩 있는 쌍계사 입구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10분이 지나도 안오고 15분이 지나도 안 오고 20분이 지나서야 슬금슬금 나타났다. 차가 늦게 나타나도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도 없고, 나도 그냥 탔다.  그 차를 타고 가면서 왜 차가 제 시간에 안오는지 알았다 .시내버스 승객 대부분이 연세드신 어른들이었는데 차를 내리거나 탈 때 한~ 참이나 걸렸다.

시내 버스를 타고 가다 양촌면 중산리 입구서 내려 2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서 들어가니 저수지가 보였다.왼쪽에 부도밭도 보인다. 다 온 것 같다. 


저수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니 부도밭이 왼쪽에 있다. 고만고만한 9기의 부도가 있다. 부도 밭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찬찬히 살펴보니 밖에서 휘리릭 봤던 거와는 달리 각자 개성이 있다  





쌍계사는 일주문이 없다. 누각 아래로 들어가다 대웅전 건물을 봤다.  새벽 바람 맞으며 길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쌍계사 대웅전 문창살이 볼만하단 이야긴 참 많이 들었다. 역시 볼만하다.   그런데 나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측면 문과 그 주변 풍경이 참하고  예뻤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인지 경내에 아무도 없었다.

대웅전 안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했다. 대웅전 기둥들을 보고 있으니 '아름드리'라는 말이 실감났다. 양팔을 쫘악 벌려 기둥도 안아보고 정성이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한 건물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한참을 구경했다.누군가가 이 건물을 두고 장엄하다고 표현했던데 공감이 갔다. 웅장하고 위엄있고.  

 

나오는 길에 보니 큰 북이 찢어진 채 방치돼 있다. 이 절엔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없나보다.  

밖으로 나오니 눈도 아닌 비가 슬금슬금 내린다.
추웠으면 논산읍으로 나와 바로 서울로 올라 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보슬비라 기온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시간을 보니 논산읍 가는 길에 있는 문화재 서너개는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쌍계사를 오면서 봐둔 성삼문 묘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대도 안했는데 얼결에 차를 얻어타고 성삼문 묘랑 보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윤증 고택이랑 노성향교,궐리사까지 돌아봤다.   덤을 얻은 것 같다

(성삼문 묘) 

 


(윤증고택)  

 


(윤증 고택 사랑채 현판)  

  
(궐리사 입구 )


(궐리사 표지석?)  

 


(노성향교 명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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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운조루랑 사도리 석불을 보고 화엄사를 가는 길에 먹음직스럽게 생긴 연잎 대통밥을 광고하는 플랫카드를 봤다. 대통에 인삼 한 뿌리랑 밤, 붉은 대두 몇 개를 넣어 만든 밥도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화엄사 별식, 무한지대 큐 추천 맛집!’이라는 글도 믿음직스러워 점심은 ‘ 이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화엄사랑 금정암, 구층암 답사를 마치고 우리가 봐 둔 ‘그 집’에 연잎 대통밥을 먹으러 갔다. 두 사람은 먼저 자리를 잡고 4인분 식사를 시키고, 나랑 나머지 한명은 뒤에 조금 늦게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광고 덕분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랑날랑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앉자 마자 밥 2개와 반찬이 차려졌다. '생각보다 빨리 나오네' 했는데 서너 테이블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사람 둘이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상을 쳐다봤다. 눈치 빠른 일행 한 명이 아무래도 저 사람들이 밥이 우리 한테 잘못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서빙 하는 아가씨를 불렀다.

“아가씨, 이거 2인상 아니예요? 두부도 2개, 도토리 묵도 2개, 아무래도 2인상 같은데. 그리고 저기 두 사람이 우리 보다 먼저 왔거든요. 저쪽으로 갈 상이 우리한테 온 것 같은데요.”

 

그랬더니 서빙 하는 아가씨가 부랴부랴 우리 앞에 놓았던 음식을 그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밥을 그대로 두고 나가버렸다. 괜히 우리가 민망했다.

  조금 있으니 우리보다 늦게 온 옆 데이블에 상이 먼저 차려졌다. 가만 보니 서빙 하는 사람들이 우왕좌왕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의아스런 눈길로 서빙 하는 아가씨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번엔 우리 테이블에 반찬이 나왔다. 3인상이었다. 옆 데이블에 6명이 앉아 있어 3인상,3인상이 가고 우리 테이블에 4인상이 나와야 하는데 옆 테이블에 남은 3명에게 4인상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가 서빙하는 아가씨에게 옆 테이블을 보면서 그랬다.

“아가씨, 이거 3인상 아니에요?”

자기도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었다.

실소를 날리며 밥을 먹으면서 우리끼리 그랬다.

“정말 우리가 일어나서 나가야 되는 거 아니가? 대통밥을 먹어, 말어?”

“그리고 대통밥이 이게 뭐야?  플랙카드엔  그렇게 요란하게 광고해 놓고 설렁하기 이를데 없이 대두 몇 개만 넣어 지어주고.”

무한지대 큐에 나온 밥집이라고 여기저기 요란하게 플랫카드 걸어놨더니 그  프로 나올때만 그렇게 밥을 지었던 모양이다. 씁쓰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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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에피소드 하나-문수산장이 귀곡산장?

8월 15.16일 함양.남원, 구례 일대로 여행을 갔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5일이 3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인지라 차가 많이 밀렸다. 어찌나 밀리던지 부산에서 창원 언저리까지 가는 데만도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다 가는 길에 계획에 없던 구형왕릉 표지판을 보고 거길 들렀다가 가는 바람에 함양 벽송사와 남원 실상사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백장암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했다.   

 

  아쉬운 대로 어둠에 묻힌 백장암 탑이랑 부도를 보고 729번 도로를 타고 가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시간이 8시30분쯤. 하룻밤 자기로 예약해 놓은 곳이 지리산을 넘어가야 하는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문수사 밑에 있는 산장이었다. 걱정이 돼서 식당 가기전에 네비를 찍어봤다.  9시 50분정도에 도착하는 것으로 찍힌다.그럼 밥을 먹고 가면 11시? 넘 늦게 지리산을 넘어가긴 그렇긴 한데 우쨌든 점심을 차 안에서 대충 해결했던지라 배가  아주 고팠다. 늦게 도착하더라도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토종 삼계탕을 시켰다.  배도 고프고 시간도  늦고

했으니 빨리 나오는 산채 정식을 먹었으면 되었을 것을 몸 보신(^^)한답시고 토종 삼계탕을 시켰더니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았다.식당 쪽으로 고개를 쭈욱~ 빼고 기웃거리고 있으니옆에서 삼계탕을 드시고 계시던 아저씨게 이랬다.

  "한 시간쯤 기다려야 될걸요.우리도 한 시간 기다려서 먹었는데"

   배도 고프고 갈 길은도 먼데...우째 이런 일이.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끝내고 9시도 훨씬 넘은 시간에 뱀사골에서 달궁계곡을 지나 861번 도로를 타고 성삼재를 넘었다. 산 속을 한~~~참을 달리고 달려 재를 넘어오는데 밤이 이슥해서인지 도로 위엔 우리가 탄 외에 지나가는 차량이 별로 없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 지리산이 예전에 빨치산 근거지였잖아. 빨치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생긴 건 알제. 그 때 총각들이 그렇게 죽었단다. 그런데다 지리산 산행하다 죽은 총각들도 많단다. 그 혼령들이...”

 

  그러자 공기 너무 좋다고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던 처자가 재빨리 창문을 올렸다. 그리고 서늘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또 장난을 쳤다. 


  “만약에 총각 귀신이 나타나서 우리 차 앞을 딱 가로 막고 나는 뽀뽀도 한 번 못해보고 저승 가긴 너무 억울하다. 이러면서 뽀뽀한번 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래?” 
  그랬더니 세 처녀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그 중 한 명이 이런다. 
  “우린 아줌마예요.이러지 뭐.”

  그러자 나머지 2명의 처녀들 “맞다맞다”이러면서 손뼉을 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줌마라도 괜찮아요. 이러면 어쩔건데?”

  그러니까 다른 한 처자가 이랬다.

  “그럼 할머니라고 해야하나?”

  암튼 총각 귀신을 물리칠 딱 한 마디를 생각하느라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착한 처자 하나는 “그냥 소원 들어  주죠 뭐.” 이런다.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남원에서 지리산을 넘어 구례 토지면으로 온 시간이 10시 30분쯤. 예약해 놓 문수 산장에선 우리가 밤이 이슥해도 안오니 바리바리 전화를 했다. 마을들이 이어진 길을 지나 네비 안내 따라 문수 산장이 있다는 문수 계곡 가는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산 밑으로 띄엄띄엄 불빛이 보였다. 계곡을 한참 들어갈 때까지. 그런데 어느 순간 울퉁불퉁한 길이 나오더니 산밑 마을에서 보이던 불빛이 안보였다. 그 불빛 중 어느 집이 우리가 잘 집이려니 하고 들어가다 불빛이 끊이니 간담이 서늘해 졌다.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만이 사방을 둘러쌓다. 그 속을 뚫고 산모퉁이를 도는데  무서움이 슬금슬금 몰려오기 시작했다.


  ‘문수 산장이 있긴 있는 건가? 혹시 귀곡 산장?’

불빛이 안 보이니 이젠 무서움을 넘어 공포감이 엄습하며 오만가지 생각이 일시에 들끓었다. 
  ‘괜히 총각 귀신 이야기를 해 가지고, 진짜 총각 귀신이 나오는 거 아니가? 어쩌구 저쩌구...’ 
  아~~~ 그런데 네비가 거의 다 왔다는 표시를 할 무렵 불빛이 보였다. 귀곡 산장은 아니었다. 휴~

  

(그런데 이 무슨 조환지! 금방 딴 생각이 든다.
   '환타지 한편을 완성할 뻔 했는데 ...^^'
  그런데다 산장에 도착하자 마자 한 처자가 이랬다.
  "언니, 총각 귀신 이야기 마져 해죠." 

  헉~사람 마음은 우째이리 변덕스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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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사



조선통신사가 왔을 때 숙소로 제공하기도 하고 조선과의 외교 실무를 담당하던 관저로도 쓰였다는 사찰이다.10대 도주 쇼 사타쿠니의 부인 니시야마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지금도 이  곳에는 사전에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 있다고 한다.내부에 들어서서 보니 정원이 아담하고 예쁘다.





모모래와 돌로 산수를 표현한다는 일본식 정원 모델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그런데 법당 안으로 들어갈 순 없다. 사전 허락을 얻어야 한다. 만송원처럼 이곳에도 일본인들의 납골묘가 가문별로 정리되어 있다.



오전에 이즈하라 시내를 걸어서 유적지를 돌아보고 대마도 여행을 마쳤다. 올 때 이즈하랑 항에서 배를 탔는데 부산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즈하라 항)

(이즈하랑 항 건너편 마을 모습)


(이즈하랑 항 입구에 서 있는 도로표지판.한국인들이 대마도를 많이 찾다보니 한글 겸용 표지판이 군데군데 보인다)

 

돌아와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다닌 곳을 기억해 보니 이즈하라 마을 구경한 것 외엔 제대로 기억나는게 없다. 메모를 제대로 하지 않은데다 가이드따라 우루루 몰려 다니다 보니 내 나름대로 본 게 없어 더 그런 것 같다. 다음에 4명 정도 일행을 맞춰 자유여행으로 자분자분 한번 더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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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8-0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세한 여행기 잘 봤습니다. 대마도에 느긋하게 다녀오고 싶어지네요.

다솜 2008-08-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과 더불어 느긋하게 쟈유여행을 다녀오면 좋을 것 같은 곳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