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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인은 보았다 - 개정증보판
요시다 타이치.김석중 지음 / 황금부엉이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유품 정리인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소할 지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 티비에서 '유품 정리인'을 접해봤던 기억이 난다. 연고가 없거나 처리가 어려운 고인의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일이다.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직업인지 '유품 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이 책도 일본에서 쓰여졌다. 유품 정리인이 가는 곳은 죽은 지 오래 되어 '방치'되어 있는 시체들이 있는 곳이다. 즉, 죽을 때까지 아무도 찾지 않거나, 찾기 힘들었던 사람들이다. 책을 읽으며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고 너무나 우리 일상과 밀접한 모습이 보여 새삼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유품 정리인이 새롭지 않을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유품 정리인의 수많은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머니의 유품 정리를 부탁한 한 아들의 의뢰이다. 아들은 유품 정리를 맡겨 놓고 사후 처리나 이와 관련된 모든 문서나 물품은 일절 받지 않으려 한다. 이제 더 이상 연관되기 싫다면서. 결국 모든 일이 다 끝나도 아들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다. 유품을 정리하다 그의 어머니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아들과의 추억을 발견한다. 이미 의뢰인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해버렸으니 생전 고인의 보물이었을 그 물건도 처분될 수밖에 없다. 유품 정리인은 의뢰인에 대해 발설해서도 안되지만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
죽은 후 그들의 숨겨진 모습들을 낱낱이 볼 수 있는 건 유품 정리인이지만 또 막상 그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세하게 알기는 어렵다.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까? 몰랐다면 유품 관리인을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알았다면 그는 어머니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죽은 후에도 보지 않으려 하는걸까? 유품 관리인은 죽은 이의 깊은 마음 속, 숨기고 있던 비밀까지 알게 되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더 먹먹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하게 듣던 진부한 말이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이 마음 속에 맴돌았다. 또 언제 떠나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도 느꼈다. 물론 내 행동에도.
또 죽은 뒤 이런 걱정은 조금 슬프게 들리지만, 누군가 내 사후를 수습해 줄 때 남에게 부끄럼없이 정리를 해둬야겠다고도 느꼈다. 내가 살아갈 동안 숨기고 싶었던 사실을 죽었다고 들키고 싶지 않을테니까. 글쎄, 죽은 후에는 어떻게 보이든 상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닌 생판 남에게는 내 소중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내 죽음 후엔 유품 정리인이 아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며 정리 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