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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교양으로 읽는 마약 세계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 세계적으로 OTT 서비스가 인기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쿠팡 플레이 등 국내외 OTT 사업자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는 즐거운 선택의 숙제에 빠져 있다. 더욱이 최근 국내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의 인기가 녹록지 않다. <킹덤>, <오징어 게임>, <마이네임>, <지옥> 등 한국 드라마는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던 나도 넷플릭스에 수록된 다양한 해외 드라마의 목록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드라마가 남미 마약의 역사를 다룬 <나르코스> 시리즈다. 세계 최대의 마약 제국을 건설한 콜롬비아의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실화다. 엄청 재미있다.
미국에서 제작된 수많은 범죄 영화와 드라마가 마약을 소재로 한다.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는 한국적 관점에서 마약은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을 위시한 소위 선진국 클럽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는 마약에 제법 크게 노출되어 있다.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 등 세계 최대 규모의 범죄조직과 연관되어 있고 지하세계에서 유통하는 물동량도 어마어마하여 이를 모르면 미국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이해하는데 수월치가 않다. 이에 현대사 공부도 할 겸 교양 수준 정도의 마약 관련 책을 찾았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2019 세종도서 교양 부문 우수작'이라는 홍보문구를 책 표지 전면에 배치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는 마약의 역사와 종류를 알려주는 책이다. 학술도서나 전문서적이 아닌 대중교양서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마약에 관한 개괄적 내용을 잘 정리했다. 저자 오후는 마약 전문가가 아니다. 기자나 작가로 세계 많은 곳을 여행하며 이것저것을 보고 공부하는 걸 취미로 삼는 사람이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개인적으로 학습하고 메모한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바로 이러한 저자의 비전문성이 이 책의 강점이다. 학술적이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인과 소주 한 잔 먹으며 나누는 얘기처럼 쉽고 친근한 문체로 마약에 관해 들려준다. 그래서 더 흡입력 있게 읽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된다. 마약거래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타 선진국에 비해 유통되는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술·담배에는 관대한 데 비해 유독 마약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한국적 정서가 작용된 탓도 있다. 가령 국내에서 불법인 대마초는 네덜란드에서는 합법이다. 대마초 정도는 미국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즐거움을 위한 기호로 논란 없이 사용된다. 저자는 마약과 관련해 나라(문화)마다 정서와 수용의 온도가 다름을 밝힌다. 물론 저자가 마약 찬양론자는 아니다. 해외 사례를 두루 살피면서 국내 사례에 국한되어 있는 한국 대중의 마약 관련 정보를 국제적으로 탐색해 보는 것이다.
저자가 정리한 마약 정보는 흥미롭고 체계적이다. 마약은 제조 방식에 따라 대마, 아편, 코카인 같은 천연마약과 필로폰, LSD, 엑스터지 등 합성마약으로 나뉜다. 이 중 합성마약은 대부분 일반 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명돼 흥미로움을 더한다. 또 천연마약 중 코카인은 약효의 지속시간이 짧고 각성 효과가 크다는 점을 이용해 일부 화이트칼라들이 업무 중 농도를 약하게 해 복용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필로폰은 과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감기약을 만들다 발명된 약품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대량으로 투여됐지만 종전 이후 일본에서 마약으로 분류되며 투약과 생산 모두 금지됐다. 이에 우리나라가 중간 생산기지로 부상해 일본에서 소비되지 않은 물량이 범죄 조직의 루트를 타고 국내 곳곳에 퍼지게 됐다.
마약은 인류와 친밀한 관계였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그림, 토기를 보면 양귀비, 대마, 코카, 환각 버섯 등을 사용한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도 아편을 고통의 구원자라 부르며 '명약과 독약의 차이는 복용 비율에 의존한다'고 했듯이 가치중립적으로 마약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신성한 존재로까지 보아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신이 등장할 때 양귀비가 함께 있기도 한다. 이런 마약이 인류와 거리를 두게 된 이유는 기독교 때문이다. 덕인지 탓인지 모르겠으되 기독교는 술과 마약을 강력히 금지시켰다. 그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외 마약과 관련한 여러 정보를 저자는 특유의 해학적 문체로 흥미롭게 기술한다.
저자의 논지에 한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기독교를 바라보는 저자의 부정적 시선이 그것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은밀한 방식으로 기독교를 조롱하고 비하한다. 종교가 마약보다 나을 것 없다는 주장을 농담 식으로 내비친다. 종교도 마약의 한 분야이며ㅡ물론 농담이라고 선을 그었지만ㅡ차라리 마약을 하는 게 낫다는 투로 비아냥댄다. 마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희화화하는 것 같다. 특히 기독교를 가부장제에 함몰된, 여성 혐오가 가득한 종교로 규정한 부분은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비뚤어진 시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독교 역사의 일부를 떼어내 마치 인권을 유린하고 여성을 핍박하는 종교인 양 주장하는 저자의 논지는 책 전체 맥락에서 어색하고 어설프다. 아쉽다.
간간이 보이는 저자의 편견스러운 종교관을 제외하고는 크게 무리 없는 교양서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마약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라는 닉네임을 붙이기 힘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마약 정보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긴요하다. 마약의 세계적인 규모와 생산량, 여파와 영향력을 감안하면 교양 수준에서 한 번쯤 정리해놓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볍게 일독 정도 하면 넷플릭스에 수록된 다양한 범죄물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딱 그 수준에서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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