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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에 없던 일이 계획 된 일을 제친다. 급히 처리 할 업무 때문에 점심을 늦게 먹어서 인지 속이 더부룩했다. 새삼스럽지만 시간은 하루 단위, 한 주 단위, 계절 단위로 공전하며 내일을 향해가는 벡터량과 비슷하다. 단지 어떤 관점을 갖느냐가 관건이다. 귀가 했을 때, 거실의 탁자 위에 못 보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휴가 나온 아이의 책이었다. '왜 샀니?', ‘요즈음 잘 나가는 책이여요.’. 


  책 뒷면에 이런 문구가 씌여져 있다.‘중요한 것은 전문 지식이 아니다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고 넓고 얇은 지식이다.’. 다양한 뉴스와 이론이 혼재한 시대의 소통에 필요한 교양적 지식을 갖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 요약 노트처럼 그 동안 궁금했던 개념들을 쉽게 정리해둔 책이다. 현재 저자는 ‘지대넓얕’의 팟캐스트 진행자이기도 하다. '1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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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미사때 듣고 알게 된 프랑스 시인의 책을 올린다. 신부의 강론에서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정의한 사랑의 실현이 소개 되었다. ‘사랑은 타인을 향한 필요성이다.’ , 얼핏 듣기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강론이 끝나갈 쯤에 새롭게 느껴졌다. 


  1857년 출간된 그의 시집 ‘악의 꽃’ 은 노골적인 성적 묘사, 도시의 아름다움과 부패 등을 시안으로 끌어 와 명성을 얻었다. 시인은 '에드거 앨런 포우'를 영혼의 쌍둥이라 여기며 앨런 포우의 전작을 번역했었다. 마치 가지고 있는 애런 포우의 '우울과 몽상' 도 함께 소개한다.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이 되는 해로 다채로운 행사가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1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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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비붐 세대(1955-1963) 유연 시절의 놀이 문화를 생각한다. 6.25이후 이들은 출산율이 높은 시기에 태어났다. 나의 경우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같은 세대의 도시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게 없다. 하지만 국민학교 5학년 때 도회지로 전학을 왔기 때문에 몇 가지는 기억난다. 시골에서 겨울방학 동안에는 썰매타기, 연날리기, 산토끼 몰이, 꿩잡기를 주로 즐겼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가끔 모여 마을 주변을 쓸고 나서 동구밖 황토 마당에서 삼팔선이라는 놀이를 즐겼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있어 상대를 속이면서 통과하는 것이다. 70년대초부터인가 도시 아이들에게는 오징어가 유행했다. 


  동네 저수지에서 멱감기, 골목에서 떨죽(자치기)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과 교감했다. 귀가 중에 옆동내 아이들과 주변 산속에서 동전 삼치기도 즐겼다. 하지만 도박성있어 불편했다. 봄이 되면 소나무에 물이 오르면 어린 생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그 살을 이빨 사이로 긁어 송즙(송키)을 빨아 먹었다. 반공일인 토요일 오후 귀가 때는 신작로를 걷다 지치면 아카시아 그늘 아래 앉아 향기롭고 하얀 아카시아꽃잎을 주룩 훌터 한 입 넣고 씹던 그 기억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집에 도착하면 간식을 먹었다. 아무도 없는 집안 찬장에 어머니께서 보릿가루로 쩌둔 개떡을 먹었다.

 

  디지털시대의 아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놀까! 우리 때는 안전이라는 말은 별로 없었다. 1991년 3월 대구 달서구에서 개구리소년들이 실종되었던 때부터 구체화 되었지만 그 이후로 놀이터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대에 개의 분변으로 놀이터가 비위생적으로 된 것을 점검하고 있다. 일정한 주기별로 기생충난 및 중금속검사 등을 한다.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놀이문화가 있다. 놀이는 조직생활속에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풀어 주는 것으로, 손과 발로 직접 실행하는 자유로운 인간 행위이다. 특히 창조적인 놀이 문화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온몸으로 자연과 호흡하는 놀이 문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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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는 말은 매우 포용적으로 보이는 공감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모호한 공감과 공동 책임의 뉘앙스를 풍긴다. 어떤 비극을 우리 모두의 비극으로 변경함으로써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한계와 생명의 덧없음과 운명처럼 엄습하는 생사의 문제라는 매우 고전적인 통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누구의 구체적인 비극에 노출되어 있는 관련자에게 비명을 지를 권리조차 빼앗아 간다.


  왜 기억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상가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고문당하는 자가 비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은 표현의 권리를 지닌다'고 말했다. 2014년4월16일 이후 표현의 권리를 지니는 끊임없는 괴로움은 기억되어야 한다. 괴로움의 표현은 주관적일지라도 불행의 원인은 대부분 잠재적 객관성이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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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제266대 교황 취임( '13.3.13.) 이후 '14.3.17.부터  '14.7.1.까지 교황님의 트위터 글에 대한 이해인 수녀의 단상들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 가운데 '신심은 강 하지만 신앙은 약하다'는 말이 있다. 교황님이 세번이나 한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큰 함의를 갖고 있다.

 

  이번 시복 124위는 기 103위 성인들의 신앙 선조들로, 앞으로 최양업 신부 등 132위의 시복•시성 작업도 추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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