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열사를 처음 본 것은 전남대학교 1학년(1980년) 초봄이었다. 3월 초에 입학식을 치르고 나는 법대와 가까운 농과대학 수의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기이면서도 수의학과에 같이 입학한 여섯명의 동기들과 너릿재를 지나 화순과 능주로 자전거 항이킹을 다니곤   했었다.  친구들중에는 국민학교때부터 줄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도 있었다.

 

 

   ‘서울의 봄’이 찾아온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에 당선된 박관현 열사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의 총학생회장 출마 연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문회를 하면 열변했던 모습과 일면 흡사했다. 그가 출마 연설을 하기 위해 법과대학과 인문대 그리고 상과대학을 지나 농과대학 1호관 현관에서 했던 연설은 마치 대통령 선거 유세장처럼 대학생들과 심지여는 일반인들도 많이 모여 들었다. 그의 얼굴은 표효하는 호랑이상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쭉뻗어가는 섬광처럼 귀를 쭛빛 세울 정도로 날까로웠다. 그가 연설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길 정도였다. 수업이있어 강의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야, 박관현이 연설하더라!”, “안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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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월의 향내
    from 고립된 낙원 2019-03-20 19:47 
    실은 5월 18일 개엄령이 확대되었던 전날에 비가 내렸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과 교수들은 햇불을 들고 도청 분수대 위에 모여 외쳤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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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frame)’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토론 패널들이 자주 사용한다. 프레임에 대한 어감은 바둑판, 거미줄, 고정관념, 고정형과 같다. 프레임과 변화는 연관성 있다. 

 

   프레임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계획, 행동 방식과 결과의 좋고 바쁨을 결정한다, 프레임은 직접 수도 없고 들을 없다. 프레임을 인지과학자들이인지적 무의식이라 부른다. 인지적 무의식이란 우리 안에 있는 구조물로서 의식적으로 접근할 없지만 결과물을 통해 존재를 안다. 상식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추론들로 이루어져 있다. 추론은 무의식적 프레임에서 나온다.”

 

   즉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 중심에 정치가 있다. “모든 정치는 도덕적이지만, 모두가 똑같은 도덕적 관점에 근거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신념의 상당 부분은 무의식적이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이하고 모순된 도덕 체계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를이중개념주의라고 한다. 각각의 도덕 체계는 속에서 신경 회로의 체계를 이룬다.”  

 

   어떻게 안에서 서로 모순된 체계가 순조롭게 작동 있을까? “첫째는 상호 억제 작용이다. 이는 체계가 켜지고 다른 체계가 꺼질 나타난다. 둘째는 서로 다른 쟁점에 뉴런이 결합하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체계가 서로 다른 관심사와 결부되어 작동 나타난다.”

 

   이 책은 국어판이 2006년에 출간되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국회의원들과 여타 정치인들, 언론계 종사자들, 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일반 독자들의 관삼을 받았다. 역시 토론 방송을 듣다 어떤 패널이 잠깐 인용한 책을 이름을 듣고 읽게 되었다. 특히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저자조지 레이코프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언어학자로 손꼽힌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뇌의 신경 회로가 사고와 언어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저자노엄 촘스키 제자이기도 , 저자는 은유가 본질적으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과정의 문제이며 인간의 인지 과정의 많은 부분이 본질상 은유적이라고 주장하는 개념적 은유 이론으로 유명하다. 지난번에 읽었던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메타포(은유) 역시 시인의 사고 과정에서 변형 화된 메시지이다. 은유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기억 끝을 움직이게 하는 묘수가 숨어 있다. 우리는 수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프레임이 활설화한다. 프레임을 자주 활성화하면 강해진다. 내가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 말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활성화되고 강해지는 한편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그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를 써서 나의 신념을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1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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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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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한 가운데, 누구의 생을 말하는 것인가? 서간문 형식을 띠고 있는 소설은 한 남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면서 거부할 수 없는 한 여성에 대한 사랑을 얘기 한다. 


   한 여성을 18년 동안 사랑하는 의사이며 교수인 '슈타인'과  의사와 정반대의 기질을 여자 주인공 '니나 부슈만'이 있다. 니나가 어린 소녀이던 때부터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하기 까지 슈타인은 그녀를 지켜본다. 


   한 남성에 의해 한 여성을 지켜봄의 시각적 도입은 작가의 영민성을 보여 준다. 어떤 완벽성을 내포하고 있다. 남성적 또는 인종적 우월주의에 빠진 시대 상황속에 참된 삶을 추구하는 한 여성의 냉소적 사랑은 한 남성을 사랑의 늪으로 빠뜨린다. 그것은 동성속에 자신의 사랑을 찾아내는 몰입성과 비슷하다.


   과거 19세기까지의 문화예술이 보이는 것을 더 잘 보이게 하는데 기여했다면 20세기 이후 문화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 대로 표현하려 했다는 역자의 말에 공감한다. 즉 현상 너머의 배후를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인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온전한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속에서 변화와 개혁 또는 끊임없는 스스로의 권력을 만들어가는 것일진데. 의사 슈타인은 니나 부슈만이 그런 참된 여성이었음을 고백한다. '1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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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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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배달부는 백지와 같았다. 그 백지 위에 파란 잉크가 한 방울 떨어졌다. 자신의 감성을 은유라는 필터를 통해 바의 베아트리체를 발견한다. 시인(네루다)으로 인해 자각한 우편배달부는 사랑하는 여인을 떠난다.

 

   그의(배달부) 죽음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단지 자신의 메타포를 알리려는 것 뿐이었다. 그것은 은유가 무서운 민중을 낳고 어떻게 쏠리는지를 보여 준다. 민중은 어부의 바다와 같다. 우리가 그 바다에서 죽는다는 사실적 허무주의를 자각한다.

 

   차가운 꽃샘이 강바람 끝에 머물고, 부서진 바위돌처럼 철새들이 강물위에 웅끄리며 떠 있다.  기우는 석양빛은 태초의 기억과 같다.  '1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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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노동 - 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
은수미 지음 / 부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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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커피 물량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브라질 커피농장의 노예노동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관련하여 브라질 정국을 뒤흔든 국영 석유기업 비리 스캔들로 브라질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 집안 출신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브라질 노동당(PT)을 창당했다.


   저자는 최근 국회에서 10시간 18분동안 필리버스터를 기록했다. 이를 기회로 저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성완종 사건이 일어나자 그의 자서전을 읽었다. 


   이 책은 노동운동에 대한 상투적인 오용을 지적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은 글의 대목은 이렇다.  “여기서 당신은 '노동'이라는 말의 탄생을 확인 할 수 있다. 노동이라는 말, 노동이라 불리는 특정 활동은 태어날 때부터 비참했다. 그것은 노예의 노동이거나 농노의 노동이었다. 


   하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과 작업을 구분한다. 노예나 육체노동을 하는 자가 하는 일을 노동이라 하고 고대 그리스의 장인이나 수공업자들의 일을 작업이라 부른다. 그랬던 노동의 지위가 근대에 들어와서 바뀐 것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태생의 흔적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노가다(막일)’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노동자로 불리기를 꺼려하거나 노동자임을 숨기려는 것은 한국에서 오래된 관행이다.“


   노동은 사람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왜 노동의 불평등이 존재하는가? 한 인간의 과도한 자유 의지가 곧 타인의 생존을 억합하는 원흉이 된다면 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노동권의 확립이다.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 '나의 어머니', 베르톨트 브레히트 -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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