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를 기록한 최초의 책이 일연의 <삼국유사>다. 이 책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뿐만 아니라 고조선에서부터 고려까지,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 작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하고 디양한 자료를 모은 곳이 대구 달성군 소재 비슬산의 보당암이다. 이 절은 조선 세종 때 대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무신 정권과 몽골의 침입 등 국내 정세가 안팎으로 어수선하고 불안해지자, 일연은 오래 연구 가운데 모아 온 자료들을 정리하여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승과에 장원급제한 뒤, 1264년 비슬산 인흥사의 주지로 부임하는 등 모두 37년간 비슬산의 사찰에서 주지를 지냈다. 일연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기 때문인지 임금의 총애를 받아 임금을 도왔고 어머니께는 효자였다. 대견사에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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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은 한글의 날이다.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의 가장 성공한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이었다. 세종은 준비된 왕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항상 공사를 구분했다. 특히 그의 정치는 백성이 근본이었다. 백성에 대한 모든 정치 및 경제 등에 대한 행위에 결과를 자신의 탓으로 돌였다. <외천본민> 이라는 책을 읽을 만하다. 세종의 현명함과 노력 등이 나타난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 사건'를 다시 본다. 서울 조선어학회 활동하던 이극로가 대종교(홍암 나철) 3대 교주 윤세복엑 보낸 편지에 동봉된 '널리펴는 말'이란 제목 등을 일제가 날조하여 대종교를 탄안한 사건이다. 임오교번은 일제가 대대적으로 대종교를 탄안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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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통영 사량도의 세계100대골프장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사량도는 박완서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에 나온 섬이름이다.  몇해전 가을에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가끔은 읽었던 책을 처음 보듯 잊을 때가 있지만 줄거리를 다시 읽어 보면 기억난다.

 

  이 소설은 같은 집에서 태어난 여덟살 아래인 사촌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족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나의 집안일을 해주며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사촌동생을 그리워 한다. 사촌동생은 젊어서는 자식 챙기고 늙어서는 남편 병수발 드느라 어렵게 살아왔지만 임종 전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사촌동생은 친구를 도와주러 갔던 사량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어부와 사랑에 빠진다. 나는 사촌동생이 없는 집에서 사촌동생를 그리워 한다. 막상 자신의 곁을 떠난 사촌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 나는 것은 화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추석 전이라 그런지 옛사람들이 생각난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우리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이웃 마을의 누나와 삼촌 등 나와 같이 살았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60-70년대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남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 받고 가사일을 돕던가, 새경을 받고 농사일을 도와 주던 머슴살이가 있었다.

 

  정미소 일로 바쁜 어머니 곁에 늘 '구럴떡' 이 있었다. 아침이면 마을에서 일찍 올라 왔다. 그냥 어머니의 부엌 살림을 도와주는 할머니었다. 여름날 10 여리 떨어진 국민학교에 다녀온 나에게 점심을 내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왕겨와 풍구로 불을 때던 작은 키의 구부정한 구럴떡(댁호) 얼굴이 생생하다.

 

  그리워 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다. 그 의미는 좋은 기억에 대한 자기만의 회상이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아우슈비츠를 그리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분노이며 고통이며 절망의 기억이다. 올해 추석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먼 훗날 그리움으로 되살아 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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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기 위해 그곳에 가는 경우도 있다. 문상길이 멀면 읽던 책을 들고 가던지 벼르던 책을 들고 간다. 도서관 말고는 읽을 만한 곳이 없다. 자가용을 가지고 갈만한 곳도 구지 버스를 타고 간다. 어쩌면 법정의 출가 이유를 알 것고만 같은데!


  별교에 위치한 홍암 나철 기념관에 가면서도 읽던 <대위의 딸>를 버스에서 마져 읽었다. 자주 만나는 선배 때문에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했던 얘기를 또 하는 버릇이 있다. 이 책에 대해서 자주 언급했던 기억 때문에 벼르다 읽게 되었다.


  같은 책이라도 독자마다 다른 느낌으로 기억되거나 인용된다. 선배에게는 '선의(인정)'이라는 것으로 남았다. 소설은 '표트르 안드레이치 그리뇨프'(남자 주인공)가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안내해 준, 당시에는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푸가초프'(혁명 우두머리)에게 보답으로 건네준 토끼가죽 외투가 이후 그리뇨프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푸시킨의 마지막 유작 소설 <대위의 딸>은 1833년부터 1836년까지 4년여에 씌여졌다. 작가는 집필 전 십여 년의 기간 동안 직접 자신의 발로 뛰며 푸가쵸프 반란사를 연구해서 얻은 해박한 지식과 독특한 작가적 허구가 결합된 소설이다.


  극심한 농노혁명을 겪었던 혼란한 18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애썼던 한 평범한 귀족 청년의 사랑 이야기를 골자로 한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은 푸가쵸프 반란과 정부군의 진압 과정에 관한 역사적 서술이 의도적으로 억제된 대신 주인공의 로맨스와 가족사가 소설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그 당시 전 유럽을 휩쓸었던 낭만주의 역사관에 대한 영향으로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우리의 동학농민혁명이 떠올랐다. 결국 두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한 젊은 장교와 농노혁명군의 두목인 푸가쵸프의 만남은 낭만주의 역사관에 기인한 예술적 허구이다. 그리고 한 시대의 격변속에서 있을 법한 상상일 수 있다. 특히 소설속 인물의 구도 설정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 남긴다. 예를들면 전봉준과 흥선대원군의 만남(?)이랄까!

 

  평에 따르면 러시아 문학사와 문화사에서 <대위의 딸>의 탄생은 매우 중요하다. 이 소설은 러시아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이자 톨스토이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를 예고하는 소설이며, 이후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으로 이어지는 유장한 역사소설의 지류를 형성한 근원지로 평가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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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둑에 홀로 나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소월이 흐르는 강물을 한 없이 보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가 나 일까 싶어 진다. 소월이야 말로 나의 청춘기를 가장 잘 대변하기에 좋은 시인다.

 

    오늘은 우리가 살아갈 날의 첫날이기도 하다. 재즈 가수  '말로' 가 부르는 '개여울' 을 들어 본다. 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 은 1972년 수원대 교수 였던 '정미조' 씨의 학생시절 리메이크 버전이 제일 듣기 좋다. 그녀의 '비음' 이 주는 느낌은 소월을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소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싶었다. 개여울은 1925년 '개벽'지에 발표되었다.

    소월의 비루했던 삶과 위대했던 정신의 초점화에 한정되어 있다. 소월은 평안북도 정주 사람이다.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났던 곳이며 소월(1902~1934) 이외에도 이광수(1912-?), 김억(1896-?), 백석(1912-1995) 등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소설가와 시인들의 고장이다.

   평북 정주의 지리적•공간적 특성은 혼종성이란 말로 설명된다. 봉건 지배 권력의 중심인 한양으로부터 밀려나 소외와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곳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근대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일찍 받아들여 근대 지식인과 민족지사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소월은 전통과 근대가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혼종의 시공간(정주)에서 살았던 경계인이었다.

   소월은 1909년에 공주 김씨 문중에서 세운 남산소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에 오산학교 중학부에서 스승 김억을 만났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본 유학을 중단, 귀국 후 4개월간 서울에 머문다. 다시 고향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폐업한 후 조부에게 얻은 돈을 밑천 삼아 고리대금업을 시작한다. 곧 실패한다.

 

   지병인 '저다병'(팔과 다리가 붓는 각기병)을 앓았다. 그는 '내면적 인간의 비극적 운명' 을 떠안았던 시인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촉망 받은 장손으로 가족의 관심과 기대 속에 근대 교육을 받았다. 소월은 고향 밖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끊임없이 열망했다.

 

   오늘날 소월 시의 수용이 시집 '진달래꽃'(1925, 초판이 3억원)에 편중된 것은 독서 대중의 오해가 생겨낸 또 다른 이유이다. 소월 시의 화자들은 대체로 상실감과 비애에 몰입되어 있다. 근원의 세계, 본질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과 감각의 세계, 그 허깨비 같은 것 현실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실존적 상황의 부조리함 앞에서 소월의 화자들은 눈물에 젖은 채 비통해 한다. 

   지구 상에 '한'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는가? '한'은 인간의 실존의식, 즉 존재의 모순과 비극적 상황 인식에서 생겨난 역설적 감정 이다. '한'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고유한 경험에서만 생겨나지 않는다. 1950년대의 '고석규'는 소월의 '한'은 근대가 애써 망각하고 부정했던 '자연 속의 서정'을 발견한 '눈'이었다고 했다. 즉 소월의 '님'은 자연이다. 그 자연은 웅장하고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네 일상속에 늘 함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바다로 우리 조상이 대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고 후손이 살아 갈 삶의 공간이다.


 

   소월이 마주쳤던 식민지 근대의 현실과 인간 실존의 비극성은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다. 어쩌면 소월이 당면했던 마음의 짐들이 여전히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삶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대결과 저항이 필요하다고 인깨워 준다. 소월은 세계의 시인으로 다시 소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월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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