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발신인 - 프루스트 미발표 단편선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최미경 옮김 / 미행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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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을 좋아한다. 프루스트 100주년 특별판인 <쾌락과 나날>과 <익명의 발신인> 중에 한 권을 만나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작가이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미발표 단편선을 펼쳐본다. 소설가의 추천글도 좋았다. 그리고 여러 편의 단편 작품들.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하나씩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들로 채워질 시작점이 된 작품이다. 두껍지 않고 짧은 글이 함축하는 힘을 천천히 음미하듯이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사유의 범위와 고독과 슬픔이 안겨준 것들을 함께 조우하면서 때로는 같은 보폭으로, 때로는 갸우뚱하면서 그렇게 다른 사유의 세상도 마주한 시간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때로는 긴 문장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읽으며 문장을 음미하게 한다. 다양한 글들이 담겨 있다. 주제도 다르고 대상들도 다르다. 할머니에 대한 글부터 떠올리게 한다.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졌던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리고 정원과 자연을 아낌없이 사랑한 할머니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죽음에 어머니가 보여준 무한한 존경심과 깊은 고통, 추억들을 작품에서도 회상한다. 대조적인 성품을 가졌던 구두쇠 증조할머니도 상기하면서 할머니의 인품을 그윽하게 그려내게 한 작품이 인상적이다. 순교자의 인자함과 성녀의 선의를 가지고 있었던 할머니에 대한 작품도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원은 자연에 가까워야 하는데 16

할머니의 고매한 정신은... 인공적인 쾌락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18

죽음에 대한 글들도 만나게 된다. 죽음에 대한 명상에 대해, 죽음을 쉽게 잊고 다시 경박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글도 만나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슬픔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작품도 있었다. 사랑이 가지는 멈추지 않는 열정과 체념을 모르는 사랑에 건강이 악화되는 죽음까지도 짐작해 보게 한다. 그 사랑의 슬픔을 작품으로도 만나는 시간이 된다.

침울한 쾌감... (반려동물) 이 항상 동반해 준 뒤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채색하던 무관심과 권태가 사라졌다... 내 삶을 동반해 주고 신비롭게, 우수에 차게 윤색해 주었구나. 75

반려동물에 대한 작품도 실려있다. 사랑의 슬픔으로 힘겨워하는 이에게 반려동물이 안겨주는 신비로운 경험들이 작품으로도 전해지는 글이었다. 온전히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삶을 치유해 주는 놀라운 힘이다. 동물이 주는 위로와 치유에 대한 놀라운 능력을 이 책에서도 만나게 된다.

건강과 질병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름다움과 감사하게 될 은총에 대해서도 작품은 언급한다. 무한한 삶이 아닌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배우고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도 떠나보는 이와 떠나는 이가 보여주는 놀라운 깨달음을 작품으로도 만나게 된다. 체념과 애정, 추앙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애정과 추앙에 대한 문장을 마주할 때는 <나의 해방일지>의 두 인물이 나누었던 장면들과 대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의 가혹함, 어리석음, 무관심에 대해서도 진중하고도 놀라운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성에 대해 지옥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각자 주장하는 논쟁들을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문지방을 넘는 일은 매혹, 그 자체이다. (9쪽) 이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던 작품이다.

애정... 그 마음은 ... 귀한 것... 그러니 그것을 잘 추앙하도록 해라... 사람들은 네게 다정하지 않아도,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 고통받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에, ... 자비심을 가진 긍지로, 사람들은 모르는 감미로운 향기를 뿌리게 될 것이다.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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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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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5층. 지상 25층 오페라 극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말의 근거는 사실일까? 오페라의 유령은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실존 인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게 된다. 왜 그는 오페라 극장에 등장하였던 것일까? 작품을 떠올리면서 읽은 원작 소설이다. 두께감만큼이나 작품이 전하는 내용들은 진중하기까지 하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지 떠올려보게 된다.

나도 사랑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452

오직 사랑만이 그런 기적과 전격적인 변신을 성취하게 할 수 있다. 43

사랑은 크고도 위대하다. 태어나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큰 의미가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고난이 난재하여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한 인물에게는 그러한 사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의 외면, 가족은 더 이상 의미를 잃어버린다. 홀로 떠돌아다니며 살아왔을 날들과 그에게 주어진 부재와 또 다른 능력들은 그의 삶을 험준한 나날들로 밀어 넣기에 충분할 뿐이었다. 복화술, 비범한 능력, 영특함은 끔찍한 삶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러한 나날들이었다.

흉측한 얼굴을 가리고 세상 속에서 보통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것일까? 죽음을 생각하며 매일 관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명의 존귀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올가미가 그의 인생에서 의미하는 것은 더욱 얼굴보다도 더 흉측하게 큰 획을 가지게 된다. 술탄의 어린 왕비에 대한 이야기, 페르시아인이 들려주는 올가미에 대한 이야기들은 섬뜩하고도 기괴한 사건으로 기억될 뿐이다. 페르시아 왕비와 하녀의 박수의 의미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제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그의 장난감이었어요. 255

무지한 하층민처럼 그런 허상의 희생자가 될 수 없지 않으냐 483

(노부부) 혁명의 불길도 이들을 비껴갔다. 극장 밖에서 프랑스의 역사는 도도하게 훌러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236

수수께끼 같은 실마리들을 부여잡으면서 사건의 흥미로운 진전들을 따라가면서 쉼 없이 넘겨간 작품이다. 책장은 바쁘게 넘어간다. 그리고 인물들이 뚝 던져주는 대화와 문장들에 깊은숨을 쉬면서 되뇌어 읽게 되는 문장들도 마주하기도 한 작품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장난감은 아닌지, 진정한 자신의 주인인지도 떠올려보게 한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더욱 중심을 잡고자 노력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허상의 희생자가 되고 있지는 않는지 작가의 문장들과 인물들을 통해서 만나는 소중한 시간도 가져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프랑스 혁명에서 비껴간 노부부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크리스틴 다에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기억 속에 쏘옥 넣어두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 세 사람이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떠올리는 장면과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자기 인형은 한 번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하게 간직 113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의식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천사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113

영혼 없이... 초라한 악기... 영혼이 깨어났다 193

영혼의 존귀함을 자주 언급하는 작품이다. 악함이 가득하면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 단단하고 시체 같은 영혼은 어디에서부터 잘못이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그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영혼에게도 따스한 사랑의 체온이 흐를 수 있을까? 자신을 피하지 않는 사랑의 온기를 처음으로 느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처음으로 사람을 안고, 이마에 키스를 하며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너무나도 큰 의미가 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 된다.

일부러 속마음을 감출 필요도 없으리라. 진짜 가면을 쓰고 있으니 짐짓 표정을 꾸밀 필요도 없으리라. 196

파리에 사는 사람 중 자신의 고통을 즐거운 표정으로 감추지 못하거나, 자신의 은밀한 희열을 슬픔, 권태, 무관심 등으로 위장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파리지앵이라 할 수 없다. 62

프랑스의 문화와 작품들, 작가들을 떠올리면서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들의 슬픔과 권태, 무관심과 감정을 숨기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떠올리게 한다. 가면무도회가 가지는 위안과 기쁨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위선적인지 감정을 감추면서 살아가는 것인지 우리들의 삶들도 돌아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굵직한 사건과 수수께끼, 하나둘씩 벗겨지는 사실들과 인과관계들을 추리해 보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푸른 수염>작품의 호기심, <파우스트>도 언급되는 작품이다. 질투, 사랑, 악마, 영혼, 천사, 유령 등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돌덩이, 용수철, 이중 방수벽, 거울, 감옥, 올가미 등 영특한 머리로 창조해낸 문명이 얼마나 추악한 살인의 기술이 되는지도 목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인지만 원작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다.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작품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렇다. 오페라의 유령은 살과 뼈를 지닌 살아 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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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 개정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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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추리소설가의 작품이며 작가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작품이었다는 글귀에 이끌렸다. 양장본인 책표지와 책 제목까지도 눈길을 충분히 끌었다. 작품은 기대이상이었다. 심리서스펜스 걸작이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안정된 수익,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영국의 중년 여인의 삶을 펼쳐보게 된다. 남편의 벽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내는 남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상대적인 의미를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자녀들과 남편이 언제나 곁에 있다고 믿는 이 중년 여성의 진실은 참된 진실인지, 거짓된 진실인지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분주한 생활과 바쁜 계획들이 가지는 의미 속에서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온전한 시간을 가져본 적 없는 조앤이라는 중년여성은 우연한 사막의 날씨 사정으로 머무르게 되면서 원하지 않은 시간들을 가지게 된다.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이끌리듯이 거부한 진실된 자신의 삶을 하나씩 마주하는 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까?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들이라는 행복한 삶의 시간들이 진실이었는지 거부하지 않고 그 시간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그녀의 이야기들도 꽤 흥미진진하다.

남편이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과 현실에 안주한 삶은 분명 달랐고 분기점과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보기도 하면서 읽은 작품이다. 그가 세 자녀들의 방황과 성장을 어떠한 시선으로 대응하였는지도 하나둘씩 회상하게 한다. 그의 아들의 선택과 결혼까지도 그의 결혼과 연관 지으면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화려하고 성공한 삶과 소박한 삶과 자연을 벗 삼는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열망과 희망은 반쪽짜리 되어간 날들이 된다. 참된 진실들이 하나둘씩 들추어지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작가의 작품 의도에 감탄을 멈추지 않게 된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218쪽

조앤은 바버라에게 애정이 없었다.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딸의 취향이나 요구는 ... 이기적으로 결정해버렸다. 219

완벽한 가정이며 가족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러한 가족이며 가정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물러나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이 가정과 가족들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다. 막내딸의 결혼과 결혼생활, 아들의 직업과 결혼, 애이버릴이라는 딸의 냉소적인 태도와 말을 떠올려야 한다.

쉬운 삶, 나태한 사고방식, 자기만족, 고통도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두려워했지.... 237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고, 돕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느 한 사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202

두렵고 위협적이고 그녀를 쫓아다니는 겁나는 무엇.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것... 회피, 왜곡, 외면... 214

사막에서 그녀가 깨닫는 것들과 집으로 돌아가서 남편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과 새로운 인생과 출발을 향하는 다짐들에 기대를 가득히 품어보게 된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과 안락함이 주는 상황에서 어리석음을 멈추지 않는 반복된 삶을 살기도 한다. 사막에서 진실로 보았고 깨달았던 것들과 사람들의 가치는 어디로 휘발되었을까? 친절하다고 말하였던 그 친구의 가치와 남편을 향하는 마음은 어디로 증발하였을까? 그렇게 제자리를 맴도는 중년여성의 이야기에는 홀로 외롭게 서 있는 한 여성만 바라보게 될 뿐이다. 우뚝 홀로 서있는 이 여성의 외로움을 냉정하게 보게 된다. 회귀되는 이 여성의 삶과 자기만족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회상) 가끔은 죽도록 지루했지. 모두들 점잔 빼고 어찌나 건전하신지. 난 세상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세상을 봤지. 분명히 세상을 봤어! 22

함부로 동정하지 마. 난 지금까지 꽤 재미있게 살아왔으니까. 21

​친절하고 느긋하고 너그러운...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사람. 블란치 223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생 블란치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세상을 보고 싶었던 그녀. 세상은 본 그녀.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그 단호한 말도 뇌리에 남는 말이 된다. 사막에서 이 친구를 떠올린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지 않고 편협한 사고로 삶을 살아간 이 중년여성은 미숙한 아기라고 남편이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와 의미를 깨우치지만 다시 달아나버린 이 여성을 또렷하게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교장선생님이 졸업하는 제자에게 건네는 대화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전해준다. 타인도 생각하면서 책임까지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진정한 충고도 해준다. 하지만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하인들에게도 자기중심적인 모습과 자기만족으로 살아갈 뿐이었다. 고통과 괴로움도 선별하면서 기억에서 지우며 생각조차 거부하면서 살아간 여성이 아닌가. 직시해야 하고 용기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작품은 말한다.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괴롭고 절망하지만 살아내며 씩씩하게 인생을 온몸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여성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코페르니쿠스와 양자학을 향하는 마음과 땅을 일구고 살아간 이 여성의 가치들도 함께 떠올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작품에 이러한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책장은 무겁지 않았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이 작품의 의도와 인물들의 목소리들을 몇 번씩 떠올리는 날들을 가졌던 소설이다. 귀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던 <봄에 나는 없었다> 장편소설이다.

나태한 사고는 금물.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거란다. 그리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안 돼! 124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라. 책임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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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여행 웅진 당신의 그림책 4
안느-마르고 램스타인 외 지음,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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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듀오 작가의 작품이다. 깊은 바닷속 조개 안에 있던 진주가 세상을 여행하고 처음 진주를 발견했던 소년에게 돌아오는 '우연'을 이야기한 아름다운 그림책이라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예술 세계를 여행하는 <당신의 그램책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책 사이즈는 큰 편이며, 양장본이다. 책표지의 그림만 보고도 기대감이 높았던 그림책이다. 그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은 멋진 예술 그림책이다. 활자가 없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림이 전해주는 색감과 풍경과 이미지들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관찰하며 바라보게 한 그림책이다. 활자가 없어도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리고 무언의 예술작품들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화려한 색을 감추고 있는 바닷속의 풍경들과 색감에 먼저 감탄하게 한다. 그리고 흑인 소년의 소중한 물건 하나는 소중한 친구에게 전해진다. 그 소중한 선물은 소녀의 보물 상자에 간직되면서 사건은 점점 전개되기 시작한다. 진주가 여행한 여정들은 쉼 없이 전개가 된다. 그 여행 중에는 인간이 잘못하고 있는 많은 쓰레기 더미들을 묘사한 장면도 기억에 자리 잡는 그림 중의 하나가 된다. 이외에도 작품 중의 인물들의 눈이 묘사되지 않고 가려져있는 것도 특징이다. 진주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과시, 절대적 가치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소녀의 손에 있었던 진주는 세월의 기나긴 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노년의 손에 다시 찾아오게 된다. 그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짐작해 보면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이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마지막 글귀에 차분히 생각하게 해주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작품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우연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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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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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솔깃했는데 책띠지의 홍보문구에 더욱 눈길이 간 작품이다. 동일한 승객들을 태운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했다는 사실은 더욱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작품의 중반부를 들어서면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게 한 작품이다. 책표지 디자인의 심중한 의미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햇살이 가득한 화창한 하늘과 검은 하늘이 가지는 의미를 작품에서 만나게 된다. 작품은 철학적인 내용과 SF 소설, 놀라운 전개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많은 목소리들을 전하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다양한 소재들과 목소리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사건 흐름들을 통해서 촘촘하게 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아노말리>

(작은 사체 앞에서) 슬픔은 이런 것이려니 하는 상상속 모습을 흉내내지만 실은 아무 느낌도 없다. 13

살인, 그건 능력이기도 하다. 사냥 13

내 몸은 내가 그리지도 않은 선들이 이끄는 대로 사는데 만족했다. 우리는 가장 힘이 들지 않는 저항 곡선을 따라 살 뿐... 마치 공간을 지배하는 양 건방을 떤다. 한계 중의 한계. 어떤 비상도 우리의 하늘을 펼치지는 못하리. 38

블레이크라는 인물의 등장부터가 흥미로웠다. 그의 두 정체성과 내밀한 그의 두 삶과 살인이 능력이라고 말하는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은 이후 사건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함께 연결하게 하는 작품이다. 흑인 변호사와 백인 부자의 인물 이야기도 기억나는 내용 중의 하나가 된다. 백인 부자에게서 무심하게 흐르는 오만함과 유독한 미소, 최상위층의 부에 대해서도 작품은 목소리를 낸다. 철학적인 내용들도 대립하는 두 인물을 통해서 위트 있게 전하기도 한다. 플라톤과 스피노자에 대한 작가만의 문장도 기억에 자리 잡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듄. 인터스텔라. 스타트렉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번역가의 글을 마지막으로 읽고 나서 작품의 마지막 마무리도 이해되는 시간이 된다.

오만한 확신. 유독한 미소. / 남부 백인. 부자 96

최상위층의 부가 서민층이나 빈민층에게까지 혜택을 끼친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아직도 이렇게 잘도 먹힌다니. 127

미스 플라톤 대 닥터 스피노자. 스피노자가 졌다. 참패했다. 173

각 종교의 일방적 결정에 복종하는 고분고분한 프로그램들 284

환경을 파괴하고, 숲을 없애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 인구를 늘리고, 화석 에너지를 다 써 버린다는 것 283

자유의지와 시뮬레이션, 그리고 쏟아내는 여러 가지의 의문들도 꽤 흥미롭게 경청하게 되는 내용들도 만나게 된다. 쏟아내는 다양한 의문들. 학자들의 다양한 학설들과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며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비행기의 탑승객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코드명 3월과 6월이 가지는 의미와 이들이 서로 조우하고 대응하는 반응들도 상이하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과 아이라는 구분이 모호하기까지 하다. 어른들이 보이는 반응과 아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이가 똑같은 3월의 엄마와 6월의 엄마와 생활할 방법을 제안하는 모습도 꽤 밀착해서 만나게 하는 내용이다. 확률적으로 설명하는 작가의 문장과 대조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3월의 엄마와 6월의 엄마도 기억나게 한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내면의 방황을 아로새길 마음도 전혀 없다... 펄떡대는 불안을 관찰하지만, 어디에 집중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인생들의 매혹에 굴복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그 인생을 정확한 말로 풀어내고, 너무 가까워져서 절대로 곡해할 수 없다고 믿기에 이르면 좋겠다. 245

에이비를 향한 끌림을 소진해야 했다. 449

얼음 폭풍에 갇혀 버린 에이프릴. 460

이 시뮬레이션은 .... 궁극의 구원자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해야 해요. 440

작품은 다양한 탑승객들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들에게 갑자기 일어난 사건은 큰 혼돈의 시간이 된다. 과학자들의 명확한 설명도, 신학자들의 다양한 설명도 부족한 사건이 발생한다. 더불어 중국의 반응과 매만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의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섬광의 의미와 이들의 선택이 가지는 의미도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두 하늘이 다르다. 이들이 마주하는 시간도 다르게 전개된다. 그 시점의 다른 두 하늘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포용하고 밀착하면서 서로를 위하는 3월과 6월의 인물들도 있지만 대립하고 갈등하며 불안하고 다른 이름과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는 3월과 6월의 인물들도 만나게 된다. 다양한 탑승객들의 저마다 사연들도 꽤 진중한 이야기들이 된다. 사랑과 이별, 죽음, 암, 일중독자, 작가의 작품과 자살, 가족 성범죄, 동성애, 종교의 폭력성 등이 떠오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철학적인 대화들이다. 3월의 작가가 선택한 것과 6월의 작가가 답하는 대화들, 3월의 작가가 남긴 문장들을 다시금 읽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더불어 1부, 2부, 3부가 시작되는 내용에 기록된 문장들도 다시금 읽게 된 작품이다.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이 작품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불행의 이름은 ... 희망입니다. 온갖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죠.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 진정한 의문은 이거죠. 439

나이듦이 가지는 위축된 마음 상태와 사랑하는 온도는 상이할 뿐이다. 그 상황들이 3월의 건축가와 6월의 건축가에게 어떠한 일들이 전개될까? 영화 편집자이면서 일중독자인 아이 엄마와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그려내는 엄마의 모습과 아이가 바라는 이상적인 바램들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된다. 아이가 더 성숙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군인 아버지를 둔 두 아이가 그리는 그림들을 기억해야 한다. 엄마에게는 비밀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것은 아이의 그림에 투영되고 전문가들은 감지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들에 대응하는 3월과 6월의 두 가족들도 기억해야 하는 인물들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나치는 순간으로 남겨졌을 일들이다.

자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상대는 사랑하지 않는 게 답이다.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325

불행은 그저 얄궂게도 운이 모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365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3월에 도착한 비행기와 6월에 도착한 비행기는 동일하다. 탑승객들도 동일하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와 같은 동일인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며 반응하게 될까? 나라는 어떠한 선택을 할까? 다양한 선택의 버튼이 앞에 놓인다. 이들의 선택을 만나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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