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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행복 - 사는 힘을 기르는 수수한 실천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5년 5월
평점 :
꾸준한 행복
김신회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었다. 기분 전환할 겸, 독서를 하기 전에 웜업용의 책들이 있는데, 바로 일상의 이야기를 써놓는 비작가의 글들이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반신도 하고, 반의도 하면서 어느새 동조하기도 하면서 예열을 한다. 그런 의도로 읽었던 책에서 작은 글씨로 열심히 썼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보노보노가 이렇게 큰 일이야?라고 할 정도로 마음이 고와 끝까지 읽었더랬다.
마음이 고왔던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길래 주문을 했다. 글로 돈을 벌고 혼자서 사는 그녀의 삶을 보는데 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전혀 담지 못했을까? 내게 꾸준함이라는 건 누추한 가게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끌어안고 사는 엄마이고, 결국에 쫒겨날 때까지 버티기만 했던 노동자 친구였으며, 회사에서 갑질을 당하고, 감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다니고 있는 ‘나’다. 꾸준함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나는 내 것인데, 나 하나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나의 꾸준함은 결국 이것이었나 싶은. 상반된 꾸준함에 꾸준히 살아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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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반복의 작업이다. 글을 쓰고 지우고, 완성한 글을 또 지우고, 새로 쓴 걸 다시 고치고 반복되는 작업에 나가떨어질 즈음이면 책이 나온다. 너무 지겨워, 다신 안해.라고 다짐해도 다음 날이면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힘들지만 계속하고 싶은 일은 이거 하나뿐이다. 일단 집에 가서 책상 앞에 앉아봐야지. 누구나 자신만의 실력과 인성으로 일하며 산다. 그걸 세상은 깜냥이라고 부른다. 내 그릇에 담길 만큼만 애쓰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자는 각오는 이상하게 용기를 준다.
처음에는 ‘내가 우울증?’하고 놀랐지만 치료를 거듭하면서 절로 수긍이 갔다. 나는 진작 병원에 왔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처방약은 잘 맞았고, 상담 치료는 나도 몰랐던 내 상태를 마주하는 계기가 됐다.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다음 진료까지 버틸 힘을 얻었다.
어느새 우리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몸이 고장 나는 세월을 건너는 중이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것들의 결과가 병원행일 때 인간은 비로소 늙음과 마주한다.
병원에서는 자주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잊어버리고,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궁금한게 생겨도 물어볼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문제는 아무리 대답을 듣고 안내를 받아도 잘 모르겠다는 것. 병원에 올 때마다 머릿속이 하얗게 리셋되는 것 같다. 점점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훗날 나는 더 낡은 몸으로 병원 진료를 무리 없이 받을 수 있을까. 1인 가구라 동행할 사람도 없어 모든 게 무섭고 귀찮다며 병원 오는 일 자체를 멀리하게 되진 않을지.
얼마 전부터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병원에서 모든 걸 신속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급할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큰 병원에 올 일이 있는 날은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다. 하루를 통으로 비워두어 오래 대기하거나 허둥대더라도 마음이 조이지 않도록 여유 있게 움직인다. 그리고 병원 주변에 가고 싶은 카페나 식당을 미리 찾아놓아 진료 후의 작은 즐거움을 마련해둔다. 큰 병원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희석하기 위함이다.
짐짐하다: 음식이 아무 맛도 없이 찝찔하기만 한 상태를 표현하는 형용사]
* 책을 읽으며 마음이 가는 글들을 한 데 모아 문단으로 만드는 일을 오래 해 왔다. 따라서 당신이 책을 읽는다고 이 문단을 보는 일은 극히 드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