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급속 성장도를 일컫는 말을
우후죽순이라 한다고들 한다.

다수가 그런다니
그런가보다 하던 중
실제로 그들의 향연을
친히 겪고 보니
참 와 닿는 말이다.

혹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말.

하지만 이와는 무관히
간헐적인 로긴과 글쓰기지만,
한 번 필력이 생기면
우후죽순격으로
마구 마구 쓰이는 글의 실재 또한
감추기 쉽잖다.

글은!

쓰는 것 이라기보다
쓰이는데 따르는 순응화인지도 모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웨슬리 2016-01-28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의 좋아요를 지금 봅니다. 북플의 기능이 나날이 진보중임도......
 


다시 와 곁에 선 

2015년 가을이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물론 햇살은 따갑다)


그래서 이 계절을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랬나 보다.


그 秋가


곁에 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315 21C 목회는 19C 목회일 수 없다! (고후5:17-21) 305/304

 

 

바울의 첫 서신을 받은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배척하도록 선동한 거짓 교사들에 의하여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변덕스럽고 거만하며, 외모나 언사가 출중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고린도교회에 디도를 보내 이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으며, 그가 돌아와 고린도교회의 자세가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한 다수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아직 거역하는 소수에 대하여는 자신의 권위를 권고하기 위해 이 서신을 썼습니다.

 

크게 나누어 고린도후서는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한 해명(1-7)’성도들을 위한 모금 활동(8-9)’ 그리고 바울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자기 변호(10-13)’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바울 자신의 사역에 대해 쓰고 있는 전반부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와 편지(고후 3:2)’로 표현된 성도관이 매우 귀하게 돋보입니다.

 

우리는 聖徒 거룩한 무리로서, ‘하나님의 자녀왕 같은 제사장일 뿐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풍겨나는 향기처럼 분출할 사명을 부여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전도란, 바로 그와 같은 실천 방법 중 하나의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직접 전도가 되었든 간접전도가 되었든 아니면 국내선교, 해외선교를 무론하고 우리 성도들을 통해 풍겨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되는 일에 우리 스스로는 항상 성결성을 잘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의 서신입니다. 편지를 보내는 이가 그 자신의 마음과 뜻을 글로적어 보내면, 그 서신은 곧 그 발신자의 마음이자 뜻이 되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말하고 행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예수님의 행적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언행심사 하나 하나는 얼마나 조심스러운지요!

 

이러한 우리 성도됨에의 자기 정체성을 전제하며 다시 4장을 보시면,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담긴 보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의 도는 우리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는 고후5:9에서의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 현재화 되기에 비로소 이 고린도후서도, 신약도 구약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귀하고 귀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화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잠시 오늘의 제목 삼은 世紀論을 잠시 피력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늘의 제목인 21C 목회는 19C 목회일 수 없다!”는 내용을 보셨을 때의 생각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긍정? 부정?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여러분들의 그 생각은 다 옳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긍정은 분명 우리는 19C가 아닌 21C를 살고 있는 새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며, 여러분의 부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19C의 복음주의의 도도한 흐름 안에 있는 우리의 복음주의적 신앙패턴을 긍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잠시 오늘 우리가 찬양곡으로 택한 305장에 주목 해 주시기 바랍니다.

 

Amazing Grace로 유명한 이 곡은, 많은 분들이 익히 아시고 애송하는 찬송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작사와 작곡의 시기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분명 작사는, 존 뉴튼(1725-1807)1779년에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곡은, 전통 어메리칸 멜로디로써 1900년으로 명기 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18C의 가사를 19C의 말에 붙인 곡으로 20C의 큰 반응 하에 이 21C에도 우리는 여전히 귀하고 은혜로운 곡으로 애송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다시 19C를 돌아보십시다. 전언한 바, 19C에는 복음주의 시대였다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 시기는 교회사적 구분과 평에 따른 표현입니다. 그 복음주의 전통을 따른 우리 교단과 교회는 오늘에 이르러도 그 명맥을 잘 전승, 유지, 보존 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작금에 와서는 20CWCC라는 거대한 물결과 파도의 뒤 끝에 우리의 선택과 교회의 재정립이라는 중차대한 선택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만, 이미 이 파고는 한차례 지나가기도 하였지요. 물론 그 파고는 현재에 이르러 더 큰 높이로 우리에게 이미 몰려 와 있습니다.

 

복음주의가 무엇입니까? 복음주의福音主義, evangelicalism , 성서에 밝혀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시하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입니다. 복음주의(福音主義, 독일어: evangelikalismus, 영어: evangelicalism)는 기독교에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의 성향을 지칭하던 용어이며, 우리 교단적으로는 교단 헌법 제2장 제13교리와 신조(信條)’에서 본 교회에서 믿는 교리와 신조는 기독교 개신교파가 공통으로 믿는 복음주의니 이는 신앙의 생명이며 골자이다.” 하는 신앙철학도 정체화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설교자가 언급 드린 16C 부터의 개신교 전통을 복음주의라 하는데 어찌 19C를 복음주의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시는 분이 있을 줄 압니다. 여기에는 잠시 해설이 필요합니다.

 

16C가 종교개혁의 시기였다면, 17C는 미국을 만든 청교도운동이 있었던 세기입니다. 그 흐름 안에서 18C에는 경건주의가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흘렀는데, 이 시기에는 제1차 대각성 운동과 제2차 대각성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C는 미국 내 남북전쟁과 1863년 노예해방이 선포되는 기념비적 사건이 미국 전역을 흔들면서 미국 교단은 분열로 치달았고, 미국 내 이단도 이 시기에 엄청남 기승을 부렸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Dwight L. Moody, Billy Sunday 등의 부흥운동이 혼란 속 미국교회와 사회를 정화했고, 그 핵심에 절제생활과 지화론 반대 등을 사회 잇슈화 하는 미국 복음주의 운동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상 우리의 교단적 정체성도 이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 하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기 까닭에 오늘의 제목이 논하는 바 19C란 바로 그 맥락으로의 19C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6C의 복음주의도 19C의 복음주의도 사실은 1C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순수 복음주의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십자가 대속 그리고 부활하심 등을 골자로 하는 핵심 가치 선상에 있기 때문에 19C 복음주의는 1C의 맥락 하에 있고 그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핵심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9C 복음주의 시대가 있었던 그 이후 20Cdml 세계사를 한 번 생각 해 보십시오. 20C의 세계사에서 교회사 외 일반 세계사로 가장 큰 잇슈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1,2차 세계대전입니다.

 

1차 세계 대전(World War I, WWI 또는 WW1)1914728일부터 191811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입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있는 [동맹국]의 마찰이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에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이 참전하여 전투원 900만명 이상이 사망한 전쟁입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 또는 World War II)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193991()새벽 445분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나치 독일군에 의해 생긴 것이지요.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한 독일 외에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한 1939917일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193777일 일본의 중국 침략, 19393월 나치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로 보기도 하는데, 전사자 약 2,500만 명이고, 민간인 희생자 약 3천만 명이 발생했다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이 1945310일 일본의 수도 도쿄와 그 주변 수도권 일대를 대규모로 폭격한 이른바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15만 명을 살상했고, 같은 해 86일과 9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 공격을 감행하여 34만 명을 살상하였고, 영국 공군과 미국 육군항공대는 드레스덴과 뮌헨 공습을 감행하여 각각 20여만 명을 살상(1945년 한 해만 世界戰에서 89만 살상. 우리 한반도와 중국, 아시아 등은 수에 계상 않음)

 

이 엄청난 전쟁은 바로 19C 미국 복음주의의 벅찬 활동들을 타고 발전하기 시작한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왕성했던 20C의 역사입니다.

 

가만히 보면, 19C미국 복음주의가 순수복음주의로 발전하는 동안, 20C에 진입하며 이미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이 있었던 유럽에서는 한 편으로 교회연합을 도모하는 일이, 한 편으로는 전쟁을 옹호하는 일이 있었으니, 오늘날 그 피를 부른 유럽 교회들이 피폐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지지하게 묻겠습니다.

 

그러면 제3차대전은 언제입니까? 그 전쟁은 이러 났으며, 그 결과는요?

 

여러분도 아시겠습니다만, 위키백과사저은 웹을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만들어 나가는 자유 백과사전으로,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전자사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용 해 보신 분도 계실 줄 압니다만 그 사전은 제3차 세계 대전(第三次世界大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3차 세계 대전(第三次世界大戰)은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 이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가상의 세계 대전이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의 뒤를 이어, 2차 세계 대전(1939-1945), 냉전시대(19451991)에 개발, 실험, 사용된 핵무기는 일찍이 다음 세계 대전을 널리 추측하게 해준다.”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한반도가 終戰이 아닌 休戰이란 범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부한의 핵무기를 통한 한반도 주변 불안정이 작지 않은 우리 자신의 문제라면, 이와 같은 세계적 분쟁과 종말론적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존하다는 점을 여러분은 어느 정도 느끼며 사십니까? 핵무기 하나로 발생되는 인마살상과 각종 피해으 정도는,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생각하면 할수록 섬찟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우리는 평시 이를 무념 속에 태평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석 불가능한 일인 셈입니다.

 

이제 다시 본문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앞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인 성도들에게, 그 질그릇과 같은 몸에 지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크게 한 가지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和睦입니다.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라는 의미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자기(하나님), 누구와요? . 하나님과 우리(성도)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성도)에게 和睦하게 하는 職分(직무상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하는 본분)을 주셨다 하였습니다.

 

나아가 우리에게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무엇을 주셨다구요?

 

, 그것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 하였습니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말씀 나누자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17절에서부터 보았습니다. 17절 말씀은 참으로 유명한 말씀이고 또 많이 암송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한 번 외워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샀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잘 외우고 계시며 또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줄 믿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 주님의 부탁, 우리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가진자들로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한 세상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 해 온 앞선 시대의 복음주의도 중요하고 그 주의의 전통에 입각한 우리의 복음주의적 신앙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계대전을 일으켜 온 것과 같이, 세계를 두루 살피는 안목 없이 엉뚱한 곳으로부터의 전쟁 등으로 인류가 스스로의 不和로 인하여 공멸하는 일 없도록 하는, 그런 스마트한 복음주의 목회,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함과 거룩함을 좇는 진정 성결한 목회, 나아가 우리 차세대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전승될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보고 살피는 순수 목양 중심의 목회.

 

이것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1C 예수 그리스도의 전통에 입각한 거대한 복음주의의 흐름과 19C 복음주의가 미처 지켜내지 못한 21C 우리 자신의 목회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순한 양 같이 선한 목자같이 성도로서의 이중성을 부정하지 말고 보다 긍정적이고도 능동적인 복음주의 목회를 동역한다는 자세로 이 새 성전 건축의 始點에서 우리 자신을 정체화 하여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한 번 해 주시기 바랍니다.

 

和睦하게 하기 위한 火木 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바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시대의 복음주을 잘 계승 할 분 아니라, 그 시대를 뛰어 넘어 새 시대를 향해 주신 이 보고와 같은 예배의 현장에서, 새롭게 전개 될 새 소망과 새 희망을 꿈꾸며 화목하게 하는 메신저로, Peacemaker로 온전히 精進하고 나아가 正進하게 하옵소서.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를 안위하시사 으로 함께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웨슬리님의 "북스토어 오프닝 유감!"

이 포스팅 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되실지 모르나, 이를 弄으로 보시는 분은, 그 감각과 의지가 불순한 분이라 스스로 여기셔도 될 것 입니다. 블로거의 진지함을 무책임히 論하지 말아야 할 것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뒤죽박죽이다.

중구난방.

복잡다난.

 

남과 북의 모양새가 참 볼성사납다.

 

DMZ의 불놀이(이 표현을 무지한 말로 곡해 말라)는,

 

自然 火魔가 되었든

人爲失行이 되었든

분명 좋잖은 봄소식임에는 사실에 다름 없다.

 

금년 봄 들어 메세 먼지는 어느 샌가 블로거에게도 그 풋풋한 내음에 인상 쓰이게 하던데, 그걸 막으려면 저 대륙의 땅에서부터 植木해야 한다는 主唱無色케 되었다. 한 백심 좋은 여우 女優 모양으로 너나 잘하세요하고 조롱받아 마땅한 폼새가 되지 않았는가!

 

하도 속상하여 성직자라고도 부르고 Church Father라고도 하는 목사님께 저놈들 한 판 시작하면 아주 개박살 내야해요했던 머쓱함에 하루 종일 마음 괴롭다. 개라니......

 

하긴 미친개는 몽둥이로 잡아야 한다던 소리가 싫어 어찌 그런 말을하였더니, 그게 이해 하지 않으면 안 될 모양새 아닌가! 어차피 外人들보기에 이 땅은 개판공화국 상태라면, 기분 좋게 公席에 앉아 콧노래나 부르고 있을 이들 가운데는 뜨악하고 심장에 저릿해 짐이 두려워 누구야? 뭐야?” 호들갑 떨 법도 하겠지만, 그래본들 ? 어쩌라고?”

 

개판공화국!’

 

저쪽도 이쪽도 도낀 개낀, 공화국인 신세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共和國!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

 

共和制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正體이며, 공화제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정치적인 태도나 이념을 공화주의라고 하며, 공화제를 채택하는 국가를 공화국이라 한다는 사전적 어의는 분명, 이쪽도 저쪽도 공화국이 맞다.

http://ko.wikipedia.org/wiki/%EA%B3%B5%ED%99%94%EC%A0%9C

 

그래서? 작금 공화국으로써의 우리 대한민국라 부르는 한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리우는 북한은 그 공화국으로써의 본질적 共和를 위해 온전히 하나 되어 있는 것인가?

 

국민의 이혼률 급증에, 효도하면 국가가 돈 주는 법안이나 만들어 내는 나라, 그리고 계속해서 일반 국민은 죽든지 말든지 국회에서 인원수 더 늘여 어떻게 해서라도 국회의원이라는 권세가들의 입지를 조금이라도 더 세워 보자는 식의 궤변(SSJ 의원께는 매우 미안한 마음이다. 그녀의 견해는 존중하지만, 시기가 결코 좋잖지 않은가?)은 더는 들어 주기가 꼴사나울 뿐이다.

 

블로거는 이 글이 몇 사람에게나 읽힐지, 동의하는 이나 공감하는 이가 몇인이나 될지, 졸지에 블로거 자신이 부정론자로 지적되지나 않을지, 사실 뉘엿 해 넘어 가는 봄 날 저녁 5:28을 지나는 시각의 현 심정은 그리 편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스파이르 오프‘, 虛虛로운 마음 감추지 아니하고 이리 하릴 없이 또 짓는다. 글도 아닌 글이랍시고.

 

세월이 하수상하다는 선조대의 시인의 노래가 비로소 읽히는 시기다.

 

개판이 開辦되는 開辦國 大韓美國, The Korea’이길 오매불망 간구할 뿐이다.

 

人類共榮을 위해 개판 된 나라,

博愛主義로 뭉친 개판 된 나라,

愛神愛人을 힘 삼는 개판 나라!

 

아 내 나라 내 조국의 봄날은 이렇게도 오누나!


'가을을 가슴에 담은 봄 철 농부의 마음'을 공석에 앉아 셈하려는 이들은 과연 셀 줄 알까 모를까? 아니, 진실되게 고민을 하는 이 몇이나 될까?



올 한 해 농작물 수확량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과연 그런다고 될 것인가!


룻의 지아비 되었다는 보아스와 그의 가족사를 한 번 다시 읽어 볼 일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웨슬리 2019-11-1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한민국이여~

https://www.youtube.com/watch?v=jSV7MQsbM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