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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
에타 린네만 지음, 송 다니엘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10년 7월
평점 :
이미 성서의 억사 비평 이전에 기독교 신학 자체가 철학으로부터 연유한다.
기독교 신학 사상은 헬라 문화권의 플라톤 철학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밀착된 채로 전개되었다.
초기 교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유명한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는
각각 플라톤(+신플라톤주의)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그 젖줄을 대고 있는 신학이다.
사실상 학문 자체가 철학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은 학문이란 없다.
철학 이전에는 고대인들의 신화와 문학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이러한 철학 자체도 실은 관찰에서 비롯된 의문에 따른다.
성서비평은 서로 모순된 진술과 의문들을 발견한 데서 출발하여
정합적 상상력과 합리적 추측을 찾는 것뿐이다. 그래서 학자들이 찾는 것은 <설명력 확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성서비평만 그러할까? 기독교 신학 자체가 <신학적 상상력>에 따른 것임을
하버드 신학과 교수로 있던 Gordon D. Kaufmann은 그 자신의 신학방법론에서 예증시킨 바 있다.
요점은 에타 린네만은 학문을 구축하는 그 방법론 자체에 대한 무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독일 신학의 성격은 학교마다 달리 보수적 성향이 강한 신학대도 꽤 있다.
백번 양보해서 에타 린네만의 말대로 성서의 역사비평을 제외시켜보자.
그렇다면 오늘날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이른바 보수 기됵교인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5대 전제가 있다.
1. 성서의 축자영감설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재림
이는 이들이 읽는 성경의 전제이자 결론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결코 안된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사도신경>이나 혹은 C.C.C 동아리 회원들이 그토록 들고 다니며 전파하는 『사영리』는 바로 위와 같은 기독교 전통 교리들에 대한 축약적 설명문들이다.
오늘날 기존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우리는 니케아 신조였던 <사도신경>을 지금도 매주 주일마다 예배당에서 암송할 것이다. ‘신앙고백’이랍시며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라.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성경에 대해 해석하고 논의하는 언급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사도신경이나 혹은 '사영리'의 의미 범주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보수 근본주의 5대 강령들은 암묵적으로 이미 성경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실정이다. 기독교 전통이란 사실 저러한 교리들을 오로지 지키고 수호하고자 하는 폐쇄적 전통일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경을 읽는다고 해도 실은 성경 그 자체를 투명하게 만났던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나서도 내가 미리 전제하고 있었던 저 전통 교리들에 대한 <재확인 작업>밖에 안된다는 충격적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손오공이 설쳐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었듯이, 한국교인들이 열심히 성경 읽는다고 난리부르스 쳐봐야 결국은 전통 교리들 안에서 맴돌 뿐이다.
솔직히 한국교인들 가운데 이점을 제대로 인지하고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이미 우리 가운데 <무의식적 전제>로서도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아무리 골백번 읽어도 의문을 가지지 못한다(혹시 노파심에서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성경 읽지 말란 얘긴 결코 아님을 말해둠!). 그저 “아멘 주시옵소서”라는 식이 될 뿐이다.
성경이 교리(dogma)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얘기는 바로 이 점에서다. 대부분의 한국 교인들이 제아무리 성경을 지지고 볶고 한 대도 보수 근본주의가 쳐놓은 저러한 교리들의 그물망을 벗어나진 않는다. 그 교리의 범주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저들은 안심인 것이다. 따라서 저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그 전통의 실체란 놀랍게도 <성경>이 아니라 <교리>였던 것이다.
소위 복음주의 진영들 역시 적어도 저러한 전통 교리들에 어쨌든 기반한 채로 역사와 사회 정치 경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겠다는 진영에 가깝다. 언젠가 자세히 말하겠지만, 진정한 우리의 전통은 교리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attitude)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어떤 전통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순 없다.
* 좀더 자세한 이해에 대해선 www.freeview.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