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이영란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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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독서동아리에서 추천받은 책으로 한 손에 잡히는 판형과 간결한 표지, 외국인 저자와 의미심장한 제목 때문에 시집인 줄 알았다. 원래 시를 잘 읽는 편이 아니기에 한 곳에 밀쳐뒀던 책인데, 이번 주로 다가온 토론회를 계기로 부랴부랴 집어 들었다. 시가 난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페이지를 스르륵 넘기니... "이건 산문집이잖아!". 제목에 적힌 '두 번째 지구'는 작가의 '갬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구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의 지구였던 것.

   이렇게 헛다리를 긁으며 책을 펼치자 프롤로그에 적힌 첫 두 문장이 내 눈에 꽂혔다. "나는 버몬트의 숲, 자연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계절의 냄새도 알고, 계절에 따라 비 내릴 때 여향이 다른 것도 알고, 좋은 흙과 안 좋은 흑의 차이를 냄새로 안다."(p6)

   불일암의 법정스님과 월든 호수가의 소로우의 냄새가 가득 느껴져 '타일러 라쉬'라는 생소한 저자 이름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타일러 라쉬, 타일러 라쉬? 오쇼 라즈니쉬 같은 명상가인가?" 그러고는 표지 안쪽 면에 적힌 저자 소개를 보니 시카고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이라는 긴~ 가방끈과 함께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에서 훤칠한 외모와 유창한 한국말로 프로그램을 주도하던 그 사람이 책 저자라고? 어제 합석했던 사람이 연예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놀라움과 반가움, 감탄으로 그가 들려주는 지구 이야기를 듣는다. 아니 지구와 환경에 대한 시를 읽는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 ‘모두가 파산을 앞두고 있습니다’에서는 지구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소비로 점점 ‘채무불이행’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를 걱정한다. “지구가 줄 수 있는 양이 1이라면 매년 1.75를 사용”(p27)하는 우리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근시안적인 생활 습관을 이야기하고, 이 과정에서 우리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고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실천적 방법도 제시한다.

   일회용품 사용과 육식을 줄이고, 물건을 아껴 쓰고 분리수거를 잘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는 기업의 문화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이용함으로써 친환경적이지 못한 기업을 도태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런 이야기들이 과학자의 논리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높이로 설명함으로써, 텔레비전의 교양프로그램을 보듯이 쉽게 다가온다.

   하지만 내가 더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2부 ‘모든 시작과 끝인 이곳에서'로, 타일러의 성장 환경과 유년 시절의 경험을 조화롭게 써 내려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심한 알레르기와 어머니의 수용적인 태도를 통해 자연환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달아가고, 버몬트의 자연환경과 환경 중심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연의 힘과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생전 처음으로 오로라를 경험했던 순간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늘 새벽에는 송정 바닷가에서 수영한 후 출근했다. 그런데 여느 때와는 달리 물이 상당히 맑고 투명했다. 제법 깊은 수심에서도 모랫바닥의 웨이브 무늬가 훤히 들여다보여, 물살을 가르면 마치 사막 위를 비행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순간 나는 바다와 함께 자연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유일하다. 여유가 있는 것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첫 번째 지구에서 나와 우리 가족, 우리의 아이들이 커나가야 한다. 지구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대출한도 안에서 생활해야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가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아늑한 바다를, 자연을, 지구를 좀 더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 쓰레기가 뒤덮인 오염된 장소가 아닌, 우리 모두가 편하게 즐기고 쉴 수 있는 상생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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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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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노보(학명 : Pan paniscus) : 영장목 성성이과에 속하는 유인원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DNA(98.7% 일치)를 가졌으며, 학계 일부에선 현존하는 세 영장류(침팬지, 인간, 보노보)의 '원형'과 가장 닮은 꼴로 본다.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지만 공감 능력은 훨씬 뛰어나며, 온순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p6)

 

  콩고에서 밀렵당한 보노보를 못 본체하고 지나쳤던 경험 때문에 진이는 영장류센터 사육사를 그만둘 참이었다. 하지만 한 별장에서 발견된 보노보를 영장류센터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지니'라고 이름 붙인 보노보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녀의 영혼이 바뀌는 영화나 유체이탈을 그린 드라마처럼 다소 엉뚱한 소재라 처음에는 잘 적응되지 않았다. 책 초반에 느꼈던 정유정 특유의 흥미진진한 빠른 전개에 몰입한 감정이 한순간에 몸 밖으로 튕겨버린 것 같아 난감했다. "뭐야, 잘나가던 서스펜스 소설이 왜 갑자기 판타지 소설로 바뀐거지?"

  하지만 보노보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시각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면서 허구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마치 콩고에서 밀렵되 먼 이국땅으로 밀반출되는 철창 속 유인원이 되기도 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조련사가 되기도 한다. 어린 동생의 탄생을 지켜보는 지니가 되었다가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는 진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진이의 귀환(?)을 돕는 민주라는 인물이 소설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다.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집에서까지 쫓겨나 노숙생활을 하던 그는 진이를 도우며 삶의 목적을 찾아 나간다.

 

  <진이, 지니>는 인간과 동물, 판타지와 코미디, 치열함과 느슨함이 교차하면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완급을 조절한다. 힘껏 전력 질주한 다음에 느린 걸음으로 숨을 고르듯, 리드미컬한 강약조절로 독자를 이끈다. 그래서 기어이 다음 회차까지 보게 만드는 주간드라마나 시리즈 영화처럼 맛깔스럽다. 아마 책을 영화로 만들어져도 충분한 재미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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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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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이 시작할 즈음,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와 함께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에어컨을 켜도 그때뿐이고,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둔 창에서도 열대지방 같은 뜨거움이 밀려온다. 무덥게 늘어지는 일상에 나는 물론이고 아내와 아이들까지 처져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짜증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다 못한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여름방학 때 읽어야 할 책을 빌리자며 인근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는 최근 들여온 책과 함께 올 초에 아내가 신청한 책들이 들어와 있었다. 거기다 아이들 학교에서 지정한 권장도서와 논술학원에서 숙제로 나온 책, 그리고 내가 고른 책까지 합하니 족히 삼 십여 권은 넘는 것 같았다. 이번 여름방학을 함께할 책을 낑낑거리며 빌려와서는 한 권씩 페이지를 넘기려고 한다.


  내가 처음 고른 책은 천명관 님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로, 제목의 느낌만으로도 거침이 없고 시원하게 다가왔다. 특히, '천명관'이라는 이름 속에는 언제나 기발함과 재미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망설임 없이 펼쳤다.

  책은 연안파 두목인 양사장을 중심으로 그 부하들과 주변의 조직들 간의 이권 다툼을 좌충우돌 그리고 있다. 돈만 된다면 사기나 절도는 물론이고 감금과 협박, 폭력과 살인 등 가리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액수의 다이아몬드가 증발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자의 속셈으로 다이아의 행방을 찾아나서고, 결국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깡패의 이야기다보니 다소 거칠고 직설적이면서, 무식하고 예의가 없다. 하지만 소설의 리얼리즘이나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 등 심각한 고민은 접어두고, 한편의 코미디나 액션활극을 본다고 생각하면 심심하지 않게 읽힌다.

  하지만 대하역사극 뺨치는 수의 등장인물들, 아니 조폭들 간에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사건으로 인해 조금 산만한 감도 있었다. 여러 사건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데다 인물들이 작대기, 장다리, 뜨근이, 울트라와 같이 별명으로 불리다 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책 중반 이후에는 깡패 족보까지 그려가며 읽었다.  


  보통 삼사일을 지나야 소설책 한 권을 읽는데,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만 하루 만에 뚝딱 읽어버렸다.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빠른 사건 전개와 간간이 섞여 있는 코미디가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읽도록 재촉했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무더위를 시켜줄 피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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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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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을 한 시간이나 뒤졌다. 이렇게 아내가 말한 책을 찾다가 '성석제'라는 작가 이름과 인간적인, 너무 서민적인 책 이름(<이 인간이 정말>)이 끌렸다.

 

<론도>

'론도'는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순환되는 형식을 일컫는다. 그는 사소한 자동차 접촉사고를 낸 후에 알게 된 자동차보험의 틈새를 통해 소소한 이득을 챙기게 되는데... <론도>에서는 보험을 둘러싼 순환고리 속에서 결국 자동차 수리업자만 배를 채운다.

돌고 도는 세상의 단면을 보게 된다. 서로의 꼬리를 쫓는 두 마리의 뱀처럼, 눈 앞의 상황만 몰두하며 자신이 '갑'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을'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

<남방>

라오스에서 만난 꽃무늬 남방을 입은 '박'은 어떤 면에서는 조르바를 연상케 한다. 거침이 없고 떠들썩하지만, 세상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향수가 묻어난다.

습습하지만 따뜻한 라오스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단편으로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 같다. '박'의 여정을 따라 라오스를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찬미>

어릴 적 흠모했던 여인을 기다린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몇 번의 스침만으로 우리를 중독되게 만들었던 소녀. 무성한 화제만큼이나 화려한 추문과 소문을 달고 다녔던 그녀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두근두근두근 설레임으로 찾아간 미술관에서 만난 그녀 옆에는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르누아르의 <시골무도회> 속 미녀를 눈앞에서 보는 듯...

아련한 기억 속의 풋사랑과 설레임이 르누아르의 그림과 함께 잔잔하게 다가온다. 가시덤불 속에 핀 고혹적인 장미라 눈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그 존재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던가.

<이 인간이 정말>

"처음 데이트하는 자리에서 기후 변화나 온실가스, 화석연료 고갈에 대해 열나게 이야기하는 남자"에 대해 여자는 "됐다 새끼야, 제발 그만 좀 해라."며 응수한다.

한 남자의 오지랖은 사회 전체의 육갑으로, 우리 인간의 만용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인간들이 증말~"

<유희>

임진왜란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유희를 통해 왜란 당시의 무능했던 조정과 관리를 비판한다.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전시를 더욱 해괴하게 만들어버렸던 일부 관리의 만행은 유희를 넘어선 비극적인 코미디에 가깝다.

<외투>

아버지의 유품인 외투 덕분에 교통사고를 모면하게 된다. 온몸을 감싸며 전해지는 부모님의 온기가 빠듯하다. 낡고 허름하다는 외형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

<홀린 영혼>

주선은 화려한 말빨과 과장된 행동으로 주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뭔가에 홀린 듯...

누구에게나 이런 친구가 한 명쯤은 떠오르지 않을까. 거창하고 요란하지만, 왠지 가벼워 보이는, 가벼운 충돌에도 '텅~' 하면서 빈속을 들켜버릴 것 같은 친구. 하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해설자>

"아주 간단한 사실을 과장과 허세, 근거 없는 찬양으로 오리무중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해설자에게는 진실해야 하는 역사마저도 개인적 도구일 뿐이다.

이번 여덟 편의 단편은 심각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쾌하다. 나와 이웃의 일상이나 기억을 통해 가족이나 사회,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읽기 편하고 쉽게 와닿는다.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남을 때면 언제나 폰을 들고 있다. 멍하게 들여다보는 액정화면은 짧은 웃음은 줄지 몰라도 긴 여운을 주지는 못한다. "그만 봐야지", "이제 꺼야지" 하는 스마트한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럴 때 딱 좋은 선택이 바로 '성석제' 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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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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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퇴마사 같은 안 선생의 이야기를, 침대에 뒹굴면서 읽는 나...

M고 보건교사로 일하는 안은영은 4차원 소녀 같은 캐릭터로 귀신을 보거나 이들의 흔적을 쫓거나 지울 수 있다. 그녀는 영화 <슈퍼맨>의 클라크 같은 어리버리한 한문 선생과 함께 다양한 '퇴마술'로 학생과 주변 인물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마침내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짧은 에피소드들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으며, 만화와 하이틴 소설, 판타지 소설을 합쳐놓은 분위기로 중고등학생이 심심풀이용으로 읽기 적당할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제작, 방영한 <보건교사 안은영> 홍보영상이 여기저기에서 보이면서 그 원작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이런 경우로,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학교를 마구 날아다니던 영상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빈약한 스토리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판타지물을 좋아하거나 책이 좋았다면 넷플릭스 드라마도 찾아봤겠지만, 이 책은 딱, 요기까지인 것 같다.

문 슨생은 우중충한 토요일, 의미가 무색해져버린 스승의 날 오전에, 스마트폰을 쥔 채 침대에 뒹굴면서 요술공주 안 선생의 무협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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