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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수집가 ㅣ I LOVE 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평점 :
문득 한 작가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여러 명의 작가가 쓴 글을 모은 책이거나 글‧그림 공저로 된 책을 보다가 그 중 특정 작품에 더욱 호기심이 생길 때가 있다. 크빈츠 부흐홀츠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책 그림책>이었다.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수잔 손탁, 존 버거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로 가득했던 이 책은 글도 글이었지만 삽화로 쓰인 그림이 무척이나 눈길을 끌었다.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나는 그림, 움직임이 있지만 움직임이 순간 정지되어있는 듯한 그림, 정지된 순간에 깃털 하나라도 떨어지면 깃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듯한 그림... 그래서인지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지 모를 생각에 한참 빠져들게 하는 그림이었다. 그 책의 그림작가가 바로 크빈트 부흐홀츠였는데 그 이후로 ‘어떤 작가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이번 책을 만났다.

<순간수집가>는 크빈트 부흐홀츠의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주인공인 ‘나’는 학교에서 곧잘 놀림을 받곤 하는 소년이지만, 자신을 ‘예술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막스 아저씨의 화실에서 바이올린도 켜고 그림 낙서도 하면서 아저씨와 친하게 지낸다. 단 한 번도 아저씨의 그림을 본 적이 없던 소년은 어느 날 여행을 떠난 아저씨의 편지를 받고 화실에 들어갔을 때, 이제까지와는 달리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림들과 마주한다.
화실은 뭔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물론 이쪽 저쪽 할 것 없이 그림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그림들이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는 그 그림들을 봐도 되니까요.
아저씨가 자신만을 위해 마련해 놓은 전시장 한가운데서 소년은 그동안 아저씨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소년은 아저씨가 여행 중에 만났다던 캐나다의 눈 코끼리, 하늘에 떠 있는 서커스 자동차, 바닷가의 거인과 난쟁이 소년, 아저씨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 거울을 그려 넣은 그림들을 보면서 왜 아저씨가 직접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는지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다.

아저씨는 화실에서 직접 설명을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림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언젠가 막스 아저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난 아저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응시하고 있는 뒷모습’은 이번 책에서도 여전히 눈길을 끈다. 독자의 시선은 그림 속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저 멀리 어딘가로 향하게 마련이다. 한 점 한 점 그림 속으로 빠져들면서 자신이 궁금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하나 둘 답을 찾았던 소년은 아저씨의 말처럼 ‘예술가 선생님’이 된다. 순간을 수집한 막스 아저씨의 그림을 통해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는 혹은 스스로의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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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