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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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입한 지 오래되어 심지어 책배가 변색까지 되도록 난 이 책을 왜 안읽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기던 중 책의 맨 뒤 빈 페이지에 내가 책에 관해 낙서를 해 놓은 걸 발견했다. 그러니까 읽고서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을 읽는데 읽은 적이 있는 듯 한 감도 없어 충격이었다. 도대체 나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자괴감이 들면서. 그래도 여전히 읽을테지만.


   낙서로 보아하니 내가 이 책을 읽은 때가 약 12년 전이다. 짐작컨대 12년전에 내가 소화할 법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12년이 지난 지금 온전히 소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의 소설집 <강산무진>은 그만큼 버거운 소설들의 모음이다. 소재에 대한 준비성이 너무 철저해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법하지 않은 글들이고 (저자가 '폐경'을 경험했을리는 없지만 - 소설 중 '언니의 폐경'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발 그만'이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지리하고 집요하게 디테일을 파고든다. 인간이 그어놓은 기준으로 상류사회에서 하류사회의 인물까지 모두 등장하지만 결국 인생의 종결점으로 가면 비슷해진다. 모두 어떤 식으로든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암세포 덩어리이기도 하고 소통의 부재로 인한 병이기도 하고 대책없는 자포자기이기도 하다.


   8편의 단편 모두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들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7:3의 재산분할, 8기통의 자동차, 부의금 5600만원, 12초 1섬광 등의 숫자가 없다한들 문제가 될까 싶으면서도 그 숫자들이 머릿속에 맴도는 걸 보면 작가의 의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소설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에 대한 기록이다. 다만 그 흔적들 중에 찰나적인 부분인 '인간의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 채 써내려간 기록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기쁨이나 슬픔, 혹은 절망조차 느끼지 못하였다. 그저 비어있음과 공허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강요받은 느낌이다. 표제작인 <강산무진>에서 주인공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면서 8미터가 넘는 화폭에 끝없이 펼쳐진 강산의 모습에서 '내가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을 본다. 그 대책없는 끝없음이 꺾어버린 인간의 의지는 진정 회복될 수 없는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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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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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 수집가도 아니고 책 사냥꾼도 아니다. 사실 그런 능력이 안되기 때문인데 (고서나 희귀본을 찾아다니는 것은 경제적 능력 뿐만 아니라 정성과 시간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목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능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일부 경제적 이득만을 노리고 책을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 절판된 책이나 희귀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에 대한 평판이 약간은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보면 '책 사냥꾼'의 역사는 엄청 오래되었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박물관 등에서 수많은 희귀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책 사냥꾼들에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오래된 책들과 희귀본들을 찾아다니는 책 수집가이다. 이 책은 저자가 수집한 책들에 관한 이야기와 거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로 구성된 일종의 에세이라고 보여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단순히 책을 수집하는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에 대한 애정뿜뿜은 물론이고 그토록 소상하게 책에 관해 알고 있는데다가 그 가치를 열변하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출판 환경 상 좋은 책들이 너무나 빨리 절판되어 버리고 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는데 '좋은 책을 절판시키는 것도 절판된 책을 다시 살려내는 것도 모두 독자의 몫'이라는 저자의 외침이 마음을 울린다. 제목으로 사용된 '오래된 새책'이란 절판되었다가 재출간된 책을 의미한다. 한가지 아이러니는 한번 절판되었다가 그 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간곡한 요구로 재출간된 책이 막상 재출간되고 나자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의 희소성에 대한 요구가 책의 다른 장점들을 넘어서는 경우라고 보여진다. 절판된 책을 다시 살렸더니 팔리지 않아 다시 절판되는 이 사태는 누구의 책임일까.


   저자의 글쓰는 방식이 편안해서 술술 잘 읽힌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고 모르던 책 사냥의 세계도 흥미롭다. 요즘은 어떤 책들이 책 사냥의 목표감이 되는지에 대한 부분을 읽다보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없는지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들을 마구마구 장바구니에 담게 되는 부작용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오래된 새책'의 두번째 이야기가 나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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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살아간다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김현수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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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늘 뭔가를 배우는 중이다. 그 배움이 쓸모가 있든 없든, 배움으로부터 남는 것이 있든 없든 평생을 배우며 사는 존재이다. 사실 인간이 가장 배움을 받아야 할 스승은 자연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탄생과 어깨를 나란히 해온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에서 인간이 손해 볼 것은 없다. 그 중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야말로 인간이 의지해야 할 존재가 아닐까.


   '나무처럼 살아간다'는 표현이 곱씹을수록 멋지다. 나무처럼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최근에 나무와 관련된 책들을 몇권 읽어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 중 한번도 실제로 보지 못한 나무들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특히 이 책은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져있어 모르는 나무의 생김새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색색의 일러스트는 읽는 이의 기분을 좋게하는 효과까지 발휘한다. 책의 제본 역시 친환경적이다. 별도의 책등을 만들지 않고 실로 제본한 책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 최대한 자연을 배려한 모양새다.


   자 그럼 나무들은 어떻게 살아가길래 자신들처럼 살라고 인간에게 권하는지 본문으로 들어가보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나무들의 변화는 사실 나무에게 있어서는 많은 품이 들어가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나무의 잎은 수분으로 가득하다. 보통 수분은 뿌리에서 잎으로 공급된다. 그런데 수분 공급이 원할하지 않은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잎으로부터 수분을 다시 빨아들이고 잎을 떨어뜨리고 잎이 있던 자리를 단단히 봉한 후 내년 봄을 준비한다. 이 잎을 떨어뜨리는 행위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나무들은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매번 해낸다. 이러한 기본적인 생존본능 이외에도 어떤 나무들은 땅 속 안에 있는 뿌리를 서로 연결하여 물과 영양 공급이 원할하지 않은 장소에 있는 동료들을 돕기도 하고 높이 자랄 능력이 됨에도 불구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수분이 닿을 정도의 높이까지만 자라기도 한다. 동화의 제목처럼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있고 매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줄 아는 나무들도 있다. 이 외에도 나무가 살아가는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서 읽다보면 인간이란 왜 이리 못난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대자연이 바라본 인간의 모습은 모범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아직까지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주지 않을까. 욕심부리지 않고 선을 지키는 세쿼이아처럼 자연이 그어놓은 선을 볼 수 있는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금 밟으면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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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미술 365
김영숙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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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저자를 신뢰한다면 무조건 찜하게 되는 신간! 미술관련 책들을 좋아하는데다가 김영숙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는 나로서는 무한 신뢰를 보내게 되는 분이다. 이번 책은 <1페이지 미술365>, 그러니까 욕심 부리지 말고 하루에 하나의 작품과 하나의 이야기만 읽어라라는 것인데, 이렇게나 재미있는 책을 하루에 한장씩만 읽으라는건 고문이다. 우선 한번 읽고 그 다음에 다시 한번 한장씩 음미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이 책은 요일별로 주제를 정해 일주일 단위로 반복 365일동안 이 사이클을 유지하도록 기획되었다. 월요일은 저자가 선별한 일생에 꼭 봐야할 작품을, 화요일엔 미술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장면이나 시기를, 수요일엔 화가를, 목요일엔 미술사에서 중요한 장르나 기법을, 금요일엔 미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계사를, 토요일엔 화가나 그림과 관련된 스캔들을, 그리고 일요일엔 그림으로 본 신화나 종교 이야기를 담았다. 이렇게 52번의 사이클이 돌고 마지막 365일째는 보너스 월요일, 작품 하나가 더 들어갔다.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갤러리, 마드리드의 프라도, 피렌체의 우피치, 바티칸의 바티칸 미술관, 암스테르담 고흐 미술관, 빈 미술사 박물관 등 직접 가서 본 그림들이 많아서 그 때의 기억과 감흥을 되살리며 읽으니 더더더 좋았다. 당시 찍은 사진들과 참고 책들도 소환해서 내용을 보충해가며 완독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성화가들을 많이 다루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정식으로 미술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에 실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작가는 이렇게 숨겨진 미술사 속 여성화가들과 작품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고 그 뿐만 아니라 그저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림을 주문하는 자들과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나 작품들에 대해서는 따끔한 비판까지 담고 있어 그림을 감상할 때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시대상이나 화가와 구매자의 배경 등에 관한 지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의 미술사 속 예술 작품이 어디 365개 뿐이랴. 앞으로 <1페이지 미술365>가 시리즈로 계속 나오지 않을까라고 독자로서 마땅한 기대를 가져본다.


이 그림 앞에 앉아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10년은 행복할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본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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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오공훈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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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전쟁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4년 8월부터 1945년 5월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독일의 작은 마을들이다. 브뤼넬에 사는 요한 포르트너는 열일곱살 생일이 지나면 위대한 조국의 부름에 응해 입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시 훈련을 받은 지 곧바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전선에 나간 지 둘째 날에 유탄파편이 요한의 왼손을 날려버린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요한은 고향에서 우편배달부로 날마다 일곱마을을 돌며 우편물을 전하고 또 우편물을 수거하는 일을 한다. 배달할 우편물 중 '검은 색 편지'가 없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검은 색 편지'란 전사자를 통보하는 편지를 말하며 일곱 마을의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요한으로서는 '검은 색 편지'를 전달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소설은 우편 배달부로서 일곱 마을을 날마다 돌아다니는 요한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전쟁이 가져온 마을의 변화된 풍경, 가족 중 누군가는 전장에 나가있어 요한이 가져오는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들, 검은 색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의 반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의 희망과 절망 등이 그 모든 것을 날마다 겪어야 하는 요한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날마다 검은 색 편지를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해도, 손자가 이미 죽었다고 수십 번 말했는데도 요한이 지나갈 때마다 손자에게서 온 편지를 찾는 치매에 걸린 키제베터 노인을 날마다 마주쳐야 해도, 눈폭풍이 몰아쳐도, 요한은 자신의 일상을 그만두지 않는다. 우편배달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이 멸망하는 날에도 우편배달을 하러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될거야!"

'그럼요'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할 거에요' (p98)


   히틀러가 자살하고 패전국이 된 독일로 연합군이 들어온다. 러시아군들이 일곱 마을을 다니며 모든 것을 쓸어가고 더 이상 배달할 우편물은 도착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던 우편물이 종전이 되니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요한이 근무하던 우체국은 문을 닫고 요한은 처음으로 제복을 벗고 우편가방을 내려놓는다. 할일이 없어진 요한은 전쟁 중 요한의 마을을 방문했다가 요한과 연인이 된 이르멜라를 데리고 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처음으로 제복과 우편가방 없이 마을을 나서는 요한의 발걸음에서 찰나의 희망을 본다. 하지만 전쟁의 뒤끝은 씁쓸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종전을 했다고 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이 씁쓸한 뒤끝을 책임질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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