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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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이나 책에서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대놓고 똑같거나 묘하게 비슷한 그림들을 종종 보게 된다. 후대 화가의 선대 화가에 대한 오마주인 경우도 있고 선대의 유명세를 빌어 나도 그만큼 한다라는 자랑질인 경우도 있고 과거 그림에 대한 혹은 당시 그림을 바라보던 대중들의 시각에 대한 풍자와 비판인 경우도 있으며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인 경우도 있다.


   이 책은 그런 그림들을 다루고 있는데 의외로 직,간접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의 구성이 재미있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그 작품에 영향을 미친 선대의 작품과 그 작품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여 세 점의 작품을 두고 비교를 하는 방식이다. 대놓고 나는 이 그림을 베꼈소 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저자의 설명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미술작품을 보는 새로운 방식과 안목을 배운 셈이다. 더불어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예술가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회화하면 떠올릴만한 모든 것을 선대 화가들이 다 이루버려서 더 이상 새로운 걸 찾아내기 어려운 후배 화가들은 뭘 해야하는 것일까? 새로운 사조들은 화가들의 그러한 고민에서 출발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회화의 형식과 내용의 파괴, 심지어 전통적으로 회화라 불리우는 소재까지 파괴된 마당에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상호간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영역에서 더 이상 새로운 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예술이란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지속적인 재해석'을 통한 미술의 발전은 '창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며 이러한 재해석이야말로 인류의 예술적 자산을 풍요롭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이 명언이라 인용해본다. (알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의 작품을 여럿 모사했다. 아래 인용은 밀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각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내가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려고 애쓰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거야. 이것은 단순히 베껴 그리는 작업이 아니야. 그보다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가까워. 흑백의 명암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색채의 언어로 풀어내는 거지 - 본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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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최경원 지음 / 더블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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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박물관 유물들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워낙 미술관,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전시된 미술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화가도 있을테고 그림에 얽힌 스토리나 그림 자체가 주는 감상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유물들은, 특히 그 중에서도 온전하지 못한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들이 전시되어 있거나 같은 종류의 물건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 명패에 쓰인 이름만 슬쩍 보고 지나가버린 경우가 많다. 저자는 나처럼 유물을 대하던 사람들에게 그 방식을 바꿔보도록 권한다.


   즉 현대의 시각으로 유물을 바라보라는 것인데, 나름대로 요약해 보자면 '디자인'과 '문화 보편성' 그리고 '실용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려하고 장식적이고 심미적인 제품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아무 무늬가 없는 토기라고 할지라도 용도에 따라 그것을 실제 사용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불편없이 사용할만 것인지, 혹은 이 유물이 당시 사회적 양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을만큼의 보편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고려한 디자인적 요소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물들을 그런 시각을 가지고 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제 그 유물들을 만들어낸 사회가 눈 앞에 드러나게 된다. 물론 발굴된 유물의 수가 너무 적어서 일반화하기 어려운 시대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저자를 따라 이렇게 한겹씩 껍질을 벗겨내 듯 유물들을 바라보니 그 어떤 역사책보다 더 선명한 시대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특히 유물들의 사진이 아니라 유물들을 사방에서 자세히 볼 수 있고 구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세밀화로 그려낸 부분은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선사 시대의 주먹도끼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감은사지 동탑 사리구까지, 한류 미학 첫번째 책에는 총 30점의 유물들을 다루고 있다. 앞으로 고려, 조선을 이어 현대까지 모두 다룰 예정이라니 기대되는 시리즈로 점찍어 놓아야겠다. 단, 한가지 불편했던 점은, 타국의 유물들을 지나치게 반복해서 깎아내리는 부분이었는데, 우리의 것을 칭찬하기 위해 굳이 남의 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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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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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모든 걸 떠나서 재미로만 승부해도 순위권 안에 들 수 있는 책이다. 소재도 신박하고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이외에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보통 사람들이 종교로 믿는 신 말고, 아직 지구에 오지도 못한 외계인들 말고) 근거없는 믿음을 속 시원하게 그려내준 작품이다.


   우연제작자들은 말 그대로 우연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지만 사람은 아닌 그들. 그렇지만 사람들을 위해 작게는 인연 맺어주기부터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거창한 일까지 인간들을 위해 우연을 만드는 이들이다. 우연 제작자들은 6급까지 급수가 있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2급 우연 제작자들이자 교육 동기인 가이, 에밀리 그리고 에릭이 이끌어간다. 이쯤 되니 <트루먼 쇼>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전혀 다르다! 우연 제작자들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들이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경계선에 정확히 서는 것이다. 운명과 자유의 의지 사이의 회색 지대에 서서, 그 곳에서 탁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생각과 결론으로 이어질 상황으로 이어질 상황으로 이어질 상황을 만든다. 우리의 목표는 경계선 너머의 운명 쪽에서 작은 불꽃을 튀게 하여, 자유 의지 쪽에 서 있는 사람이 그 불꽃을 보고 뭔가 하기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큰 불을 내지 않고 경계선을 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능성의 창조자, 은밀한 암시를 주는 자, 매력적인 눈짓을 하는 자, 선택지를 발견하는 자다. (p92)


   실수로 깨뜨린 것 같은 커피잔, 막힌 하수구, 고장난 신호등, 통계학 교수가 식중독에 걸리는 바람에 휴강된 강의 같은 것들의 뒤에 우연 제작자들이 있었던거다. 이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면서 인간 세상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생겨나고 우리가 진짜 우연이라고 부르는 일들이 발생한다. 인간의 세상 너머에는 우연 제작자들 말고도 '상상 속의 친구'나 '꿈 방직공', '행운 유통사', '점화사' 등의 직업이 존재한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이야기의 진짜는 우연 제작자들이 인간을 위해 하는 일에 있지 않았다!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우연제작자가 있을까? 뫼뷔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우연의 홍수가 넘나 매력적이다. 그냥 신박한 SF인 줄 알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동화같은 작품이다.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 내가 이 아침에 글을 쓰는 이 행위도 알고보면 우연 제작자의 노트에 적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글을 마치는 순간, 누군가가 내 등 뒤에서 '임무 완수'라고 나직히 읊조리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나도 우연 제작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 누군가를 위해. 오늘 '우연'이라고 생각될만한 일이 여러분에게 생긴다면 '우연 제작자'가 임무 완수를 위해 정교하게 해놓은 장치임에 틀림 없으니 보이지 않는 우연제작자를 향해 미소 한번 날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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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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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이솝우화 한편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화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로부터 교훈을 줄 목적으로 만든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솝우화는 보통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던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던지, 남을 속이려고 하면 안된다던지 하는 교훈이 꼭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이솝이 살던 시대가 기원전 6세기 후반이었으니 각 민족의 전설이나 설화처럼 이런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전해져 오다가 여러가지 버전으로 각색되어 입맞에 맞게 기록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현대지성에서 나온 이번 판본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번역한 것이 아니고 구전으로 수집된 우화 중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이야기를 선정하여 그리스어 원전과 프랑스로 번역한 것을 완역한 것이라 좀 더 각색을 덜 거친 번역본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총358편의 우화에 중간중간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짧은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별도로 교훈이 달려있는데, 우화가 전승되면서 후세 사람들이 나름대로 붙인 해석이라니 재미있다. 당시에도 수많은 나쁜 짓과 속임수와 복잡한 인간관계는 지금과 똑같았다는 생각을 하니 인간은 참 변치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읽어보고 지금 보는지라 이솝우화에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 줄 처음 알았다. 아마도 과거 그리스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신이 제우스와 헤르메스였나보다. 도시쥐와 시골쥐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등이 이솝우화였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토끼와 거북이는 진짜 우리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음)


   다시 읽어보니 억지스러운 교훈이나 지금의 도덕관념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천여년전에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것이니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우화들이 구전되어 오면서 각 나라의 신화나 설화 등에도 영향을 주었을 테니 우리나라의 설화나 전설 속 이솝우화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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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 발칸유럽 - 발칸에서 동서방교회를 만나다
이선미 지음 / 오엘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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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우리가 유럽이라 부르는 곳은 흔히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으로 분류되는 나라들을 지칭한다. '발칸 유럽'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대신 '발칸 반도'라고 부르던 기억이 있다. 지리학적으로 분명하게 유럽에 속하지만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우며 일반적 유럽의 이미지와 많이 어긋난 그 곳들을 말한다. 최근 몇년 사이에 각종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유명해진 크로아티아를 비롯,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르비아, 코소보,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이 무색한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이 발칸 유럽에 속한다.


   현재의 발칸 유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로마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면서 현재의 발칸은 비잔틴 제국이라 불리었던 동로마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다. 동로마의 멸망 후에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으면서 문화와 관습, 언어와 종교까지 서방보다는 동방의 색채를 띠게 되고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던 믿음 역시 동방 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으로 갈라서게 된다. 갈라설 뿐만 아니라 남보다 못한 형제 관계가 되어버린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때로는 여행자로 때로는 순례자로 때로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처럼 담담하게 발칸의 영광과 상처에서 비롯된 진실 혹은 오해들을 이야기한다. 여행이나 역사보다는 종교적 색채가 좀 더 짙기는 하지만 무신의 입장에서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는 것인지, 종교가 정치를 이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견해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해둔다.


   발칸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인종청소를 자행했던 과거가 그렇게 쉬이 잊힐리가 없다. 가톨릭의 교황과 동방 정교회의 주교가 몇번 만나 악수했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 통합을 원한다고 볼 수도 없다. 아마도 지구를 목표로 외계인들이라도 들이닥쳐야 협력을 할까 인류는 그 이기심을 버리기에는 너무 복잡한 종이 되어버렸다. 과거 한때는 명성을 누렸으나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발칸의 '오래된 시간'들을 저자의 시선과 걸음으로 되짚어 보았다. 특히 생소한 동방 정교회에 관한 이야기와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발칸의 근현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지닌 모순을 관심거리 안으로 두게 되었다. 발칸이 유럽의 그림자가 아닌 모습으로 인식되는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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