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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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신문에 100년 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짤막한 기사들이 실린 것을 재미로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저자도 그런 호기심에서 시작했을까? 약 100년전인 1913년 유럽에 어떤 이들이 살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1월부터 12월까지 마치 일기를 쓰듯 서술한다. 인물 개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내용까지 포함된지라 역사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당시 유럽의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충실하게 복원한 작품은 1913년대로 향하는 타임머신에 탑승한 것처럼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에는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의 역량보다는 독자의 역량에 따라 읽는 재미가 확연히 구분되는 책이라 하겠다. 즉 아는만큼 보이는 책이라 하겠다. 1913년이라는 한 해동안 등장하는 인물들만 300명이 넘는데다가 거기에 당시 유럽의 주요 사건들까지 포함하면 웬만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쉽게 읽히지 않는다. 카프카, 릴케, 히틀러, 프로이트, 뒤샹, 쇤베르크, 에곤쉴레 등 비교적 내가 잘 알고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법 흥미진진하여 내용에 푹 빠지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디앨련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연상시키는 구성과 이야기들은 1913년으로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1914년에 들이닥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더 이상은 국제적인 전쟁이 일어날리가 없다고 말하는 불안한 확신을 믿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고, 카프카에게 펠리체에게 보내는 청혼편지를 왜 그따위로 썼는지 물어보고도 싶고 도망가는 히틀러를 붙잡아 탈영범으로 넘겨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1913년이 좋은 시절의 마지막 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그들의 세계를 훔쳐보고, 유명인들의 찌질한 비밀에 실소도 날려보고, 희비가 엇갈리는 운명을 살짝 바꿔놓고 싶은 유혹도 느끼면서 관음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서로 무관한 듯 하지만 어디선가는 연결되어있는 사건들을 배열하고 이어붙이는 작가의 탁월한 문학적 재능이 책의 난이도로 인한 난독을 해소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너무 겁내하지 말고 도전해봐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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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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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을 읽을 때마다 읽게 되는 요 멘트. 그리고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요 멘트.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소설 <메롱>은 시치베에 할아버지의 권유로 우미베다이쿠초라는 동네의 망한 요릿집을 인수해 '후네야'라는 요릿집을 시작하게 된 오린네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린과 후네야에 사는 다섯 귀신의 이야기이다. 미미여사의 다른 에도 시대물은 에도 시대라는 특정 시대에 관한 배경 지식이나 당시의 계급 구조 등의 선행 지식이 없으면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게 보통인데, 이번 소설은 그런 배경 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귀신들이라니, 어쩐지 우리집에도 두고 싶다는 그런 생각? 특히 안마 할아버지 와라이보..^^;

 

그런데 책의 제목은 왜 메롱일까? 후네야에 사는 귀신 중 오린만 보면 여지없이 '메롱'을 하는 꼬마 귀신 오우메가 있다. 오린은 오우메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아이인 히네가쓰에게는 메롱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만 보면 메롱을 해대는 오우메가 짜증난다. 그런 오우메에게 잘 생긴 귀신 겐노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복잡하거든. 좋아하는 상대, 마음을 끌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는 오히려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있어. 오우메가 네 앞에 나타나서 메롱을 하는 이유도 똑같은 게 아닐까." (p341)


   오우메는, 고아이면서도 엄마,아빠를 갖게 된 걸로도 모자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오린이 부러웠다. 세상에는 그런 아이도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친아버지에게 살해되어 우물에 던져졌어야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 수십번의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우물 안의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을 씻고 뼈를 씻는 동안에도, 자신을 죽이고 버린 아버지가 결국에는 자신한테 와 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이승을 떠돌며 오린에게 고작 메롱이나 하는 원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에는 여러명의 귀신이 등장하는데, 굳이 몇번 나오지도 않는 오우메의 '메롱'을 제목으로 정한 것에는 인간의 속마음 즉 본성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이번에도 미미여사는 '절대 악'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심지어 이유없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원령이 되어서까지 살생을 하는 고간지 절의 주지마저 부처의 존재에 대한 왜곡된 믿음과 집념이 낳은 비극으로 그리고 있다. 결국 귀신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투영한 존재인 것이다. 그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내는냐에 따라 주지가 될 수도, 긴지가 될 수도, 아니면 오린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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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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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냉정한 시각으로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본 작가가 있었을까. 사피엔스라는 현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오면서 어떠한 동정심도, 어렴풋한 희망도, 그럴싸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주 탄생의 역사에 비하면 겨우 10만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지난 현 인류에게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사피엔스' 즉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명칭을 붙이고 어떤 식으로 '신'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지 대한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인 잔치를 벌이던 왕을 개과천선시킨 세헤라자드의 천일야화보다 더 흥미진진하다고 할까. 이야기는 크게 네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그리고 과학혁명의 시대까지를 살아오면서 사피엔스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아마도 현재의 사피엔스가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가 될런지, 다음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지켜보게 될런지 말이다. 책은 오래전에 구입해놓고 여러가지 이유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후속작 <호모 데우스>의 출간 소식을 듣고 이제는 읽어야겠다고 책을 집어들었다. 의외의 가독성에 놀라고 의외의 재미에 놀라고 소설가를 뛰어넘는 문장력에 감탄한다.


   7만년전 인지혁명을 겪은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인으로서 멸종의 제1의 물결을 담당한다. 인간이 초래한 멸종의 대홍수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대형동물들은 사라지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존재는 '인간 자신과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수렵채집인이었던 시기까지는 인간이 250만년간 먹고 살기 위해 사냥했던 동물과 채집했던 식물들의 생명에 인간의 개입은 없었다. 하지만 농업혁명으로 인간이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데 바치고 있으며 제2의 멸종의 물결을 가져온 그 행위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노아의 방주의 노잡이로 끌려온 가축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를 두고 사피엔스는 진화적 성공을 자축할지 모르나, 사피엔스에게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기 위해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은 인간의 만족도에 비례한다. 먹을만큼만 사냥하고 채집하던 인류에게 주어진 잉여 식량의 생산이라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노동은 농부들에게는 스트레스였고 역사책에 기록된 소수의 엘리트들에 관한 이야기는 인류의 90퍼센트는 제외된 기록이다. 상상 속의 질서 덕분에  가족 혹은 씨족, 부족 개념을 인류 대통합으로 바꾼 사피엔스는 신을 창조하지만 과학혁명으로 가능해진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그 결말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 결말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쓸 수 있다는 어이없는 희망을 품어도 되는 것일까? 작가의 차기작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라는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데우스로의 변경은 사피엔스의 종말일까, 사피엔스의 진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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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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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여 페이지의 짧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쉽사리 소화되지 않고 되새김질을 요한다. 이야기가 한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다가 한탸의 내면의 소리와 외부 세계에서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어 생각과 사실의 구분이 어려울 뿐더러 문단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빨라서 책을 읽다보면 숨이 가빠지는 경험까지 하게된다. 마치 '마술적 사실주의'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황함 같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작중 화자인 한탸는 삼십오년째 폐지압축공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스스로 이 일을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라고 명명함으로써 자신의 일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낸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의 매 장의 시작을 '삼십 오년 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삼십 오년 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 '삼십 오년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거의 유일무이한 일임을 강조하는데, 그의 유일한 소망은 은퇴하는 날 자신이 쓰던 압축기를 사들여 정원 한켠에 놓고 그동안 모아놓은 책들로 '꾸러미'를 만드는 것이다. 옆에 5리터들이 맥주통을 놓고 마셔가면서 말이다.


   한탸가 날마다 만들어내는 '꾸러미'들은 특별하다. 핏물 밴 정육점 종이, 신문지 뭉치, 유효기간이 지난 연극 팸플릿, 아이스바 껍데기,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재고 서적 등 천장에 난 통로로 무더기로 쏟아지는 폐지더미 속에서 보물과도 같은 희귀한 책을 찾아내고 탐독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폐지 꾸러미들을 특별하게 장식을 하는데, 때로는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식식사'로, 때로는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로 꾸러미에 그만의 아름다운 개성을 부여한다. 한탸는 폐지를 압축하는 것이 '일종의 암살이며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는 행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p74)이라서 그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본인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지하 작업장에서 자신의 시끄러운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폐지더미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책들과 맥주와 그리고 은퇴 후의 소망 덕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 소박한 즐거움들을 방해하고 그가 35년간 간직해 온 소망을 가차없이 흔들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한탸가 가진 압축기의 10배 이상의 성능을 가진 새로운 압축기계의 등장이다. 이로 인해 한탸의 지하 작업장의 존재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요, 신성해야 할 폐지 압축의 장소가 도살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한탸는 무너진다.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는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바츨라프 광장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처럼,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고 스미노프 양조장의 가마솥만큼이나 거대한 가마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중략) 책 더미들이 여기서 몽땅 파괴되었다...(중략) 그 책들은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중략) 떨어지는 책들이 내장을 드러내며 여기저기 펼쳐졌지만 책장을 들춰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중략) 실수로 그 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중략)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p89-91)


   한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삼십오년의 노력이,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 그의 하나뿐인 소망이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경이롭다. 한때 진짜 러브스토리였던 집시 여자의 이름이 바로 그 순간 떠올랐다는 사실은 그가 결국 비극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피엔딩으로 바꿔놓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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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시간, 그 너머 -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
크리스토프 갈파르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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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우주'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 공상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우주란 인간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래서 때가 타지않은 순수한 공간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우주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 많아 더 이상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여전히 그래도 우주는 나에게 '공상'이었다. 천체물리학자인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이 어려운 공식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대중들이 천체물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스티븐 호킹을 지도교수로 모시기도 했던 저자가 최대한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물리학에 대한 상식이라고는 1도 없는 나같은 독자를 위해 이런 아름다운 책을 썼다는 것 자체로도 황송할 지경인데, 심지어 이 책은 정말 재미있기까지 하다. 우주와 은하와 별과 행성들에 관한 어설픈 지식이 부끄러웠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해보도록 하자.


   저자는 우리가 비교적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가 지레 겁먹지 않도록 다독인다. 책에서 언급되는 유일한 수학공식은 E=mc² 뿐이라며 우리를 안심시키고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 등 친숙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뉴턴의 중력의 법칙으로 안내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이 한계가 있다는 말을 과학 수업시간에 들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물론 나의 잘못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태양 주위를 도는 8개의 행성 중 수성은 왜 뉴턴의 법칙에 어긋나는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도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유독 수성의 유별성에 신경을 쓰던 한 사람이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의 휘어짐이라는 정신나간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이슈타인이며 정신나간 생각은 일반상대성이론이라 불리는 유명한 이론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천체물리학의 거의 모든 이론들을 등장인물로 하나씩 내세우는데 마치 앞으로 친해져야 할 친구를 소개하는 듯한 느낌이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도 존재하지만, 시공의 의미가 없어지는 빅뱅 이전의 우주라는 반환점을 돌아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상상력과 부지런함을 요한다. 어느 순간 빛의 속도의 99.9 퍼센트의 속도로 날아가는 로켓에 올라타있나 했더니, 갑자기 미니버전이 되어 우리 집 냉장고와 자석 사이에 존재하는 양자의 세계를 거닐기도 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 영원히 사라지나 했더니, 극적으로 양자점프를 통해 블랙홀을 탈출하기도 한다. 우주는 하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세상에, 다중우주는 물론이고 평행우주, 거품우주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괴상한 끈 이론은 무엇이며 브레인 이론은 또 뭔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죽었으되 살아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게 무슨 괴상한 소리인가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양자물리학 강의를 한 뒤 학생들에게 했다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지 않을까.


" 여러분이 내 말을 이해했다면, 내가 똑바로 말하지 못한 것이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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