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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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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쓰여진 문학 작품은 사람의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기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주적 세계상(像)을 개인적 세계상(像)으로 바꾸어 다시금 우주적 세계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끝임없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한다. 그중에서 ‘시’라는 것은 가장 깊은 철학적인 사유임과 동시에 가장 풍성한 문학적 감성과 가장 집약적이며 창의적인 문자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문학은 잘 모르고, 시도 잘 모르지만 종종 문학이 주는 감동에 빠질때가 있다. 시라는 것은 특히 자기만의 특별한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의 세계관으로 가지의 언어를 창조할 때 정말 머리로 이해되지 않지만 감성에 긴 여운을 남긴다. 자기만의 눈을 가지고 자기의 문학세계를 창조하는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제치고 그것을 경험케 해주는 한 세계의 창조자와 같다.

 

많은 시인들 중에 ‘김선우’라는 시인이 들어온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쁜얼굴에 깊고 넓은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이였다. 그리고 그의 시는 그녀의 그러한 이미지를 정확히 반영해 주었다. 가장 육체적이고 관능적이며 원초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천박한 느낌이 들지않고 가장 인간의 날것을 표현해주는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여러매체를 통해서 시를 쓰는 작업과 소설 쓰는 작업과 에세이를 쓰는 작업을 비교하면서 시를 쓰를 작업은 하나의 제의적 작업에 가깝다고 했다. 시를 쓰기전에 충분히 자신의 몸으로 시적 대상으로 부터오는 충만한 감성이 몸으로 느껴질때 그제서야 자신의 시가 잉태되고 결국 몸으로 출산한다고 했다. 그녀의 시세계는 독창적이면서 아름답고 원초적이다. 떠돌아 다니는 세계상(像)을 자신의 개인상(像)으로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 시인은 우리 문학계의 큰 자신임이 틀림없다.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와 그녀가 잉태하여 출산한 시는 그녀가 이미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음을 보여준다.

 

-민둥산/김선우-

 

세상에서 얻은 이름이라는 게 헛묘 한채인 줄

진즉에 알아챈 강원도 민둥산에 들어

윗도리를 벗어올렸다 참 바람 맑아서

민둥한 산 정상에 수직은 없고

구릉으로 구릉으로만 번져 있는 억새밭

육탈한 혼처럼 천지사방 나부껴오는 바람속에

오래도록 알몸의 유목을 꿈꾸던 빗장뼈가 열렸다

환해진 젖꽃판 위로 구름족의 아이들 몇이 내려와

어리고 착한 입술을 내밀었고

인적 드문 초겨울 마른 억새밭

한기 속에 아랫도리마저 벗어던진 채

구름족의 아이들을 양팔로 안고

억새밭 공중정원을 걸었다 몇번의 생이

무심히 바람을 몰고 지나갔고 가벼워라 마른 억새꽃

반짝이는 살비늘이 첫눈처럼 몸속으로 떨어졌다

바람의 혀가 아찔한 허리 아래로 지나

깊은 계곡을 핥으며 억새풀 홀씨를 물어 올린다 몸속에서

바람과 관계할 수 있다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세상이 처음 있을 적 신께서 관계하신

알 수 없는 무엇인가도 내 허벅지 위의 햇살처럼

알몸이었음을 알겠다 무성한 억새 줄기를 헤치며

민둥한 등뼈를 따라 알몸의 그대가 나부껴 온다

그대를 맞는 내 몸이 오늘 신전이다

 

이런 관능적인 시 언어들은 그녀의 몸이 얼마나 시적 대상과 밀접하게 어울려 떨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지적 대상을 맞이하는 신전이 될 때 시를 잉태한다는 것은 그녀의 관능적인 시 언어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천상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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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0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선우 시집 ~ 느낌이 참 좋아요 ^^ 이번의 물의 연인들인가? 소설집도 내었던데 ..
관능적 시 언어라는 표현 아주 맘에 들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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