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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사람, 남편은 경상도 사람이다.

(아내가 서울사람이어서, 남편이 경상도 사람이어서  말할 꺼리는  얼마나 많을까?)

결혼 초, 남편이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고모를 '고무'라고 해서 나를 놀래켰다.

평소 좋아하던 백석 시인의 '여우난골 족'에서 처럼 정말 고모를 '고무'라고 하는가 해서...

나는 여러 번 묻고 또 물었었다.^^*

책꽂이에서 백석 시집을 꺼내어  남편에게 '여우난골족'을 읽어주기까지 했다.

남편은 유난을 떠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신리 고무

-     열 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토산 고무

-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그 후로 난 남편의 늙으신 고모들을 여우난골족 고무들로 상상하곤 했다. 

여우난골족 고무들과 꼭 같지는 않아도 우리네 삶이 많은 차이가 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어느새 나도 웃간 방에서 히히덕 거리며 놀이를 하며 밤을 새는  아이가 되고 싶어진다.

 

 

여우난곬족(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짰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


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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