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꼭 알아야 할 아이들 속마음 21가지
우르줄라 노이만 지음, 김태영 옮김 / 삼진기획 / 2003년 10월
품절


* 부모님이 내 실수에 너무 민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작 나 자신은 무슨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는걸요.

아이가 실수를 했다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은 아이가 실수를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수정이 아니라, 부모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알려주면서 자신의 행동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손과 발로 주위 사물을 시험하고, 시행착오에서 배운다. 아이가 이렇게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을 옳고 그른 잣대로 판단하면 아이의 즉흥성과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 보일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자아 계발의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데 위험의 소지가 있는 사물을 없애는 것은 아이가 아닌 부모의 책임이라는 당연한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159쪽

아이들에게 단어를 많이 가르쳐 주는 것과 실제로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항상 별개의 문제다. 과식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이성적인 사고 방식의 능력을 키워주려는 심각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이성적 사고방식 교육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잠재력이 차단되어 버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주관적인 해석 능력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의 경우
어른들의 이성적인 설명으로 인해 감성적인 성장이 늦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어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기 원한다. 자신과 주위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의 환상으로 가득한 세계관은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이 모든 사물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89쪽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해요.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넌 대체 왜 그러니...?’
‘왜 이해를 못하니?’
‘다 컸는데 그 정도는 알아들어야지.’
사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나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한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앞에 놓고 허공에 대고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여섯 살짜리 꼬마가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다른 언어로 말해요."
추상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길 좋아하는 어느 아버지의 어린 아들은 그림을 그려보라는 나의 요청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추상적으로 그릴까요?"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추상적으로 그리는 거니?"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림을 그려요."
눈에 보이는 물적인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지적인 세계를 접하게 되면 건강한 정신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사물에 대해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또한 어른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아주 분명하게 ‘예’ ‘아니오’를 들어야 한다. 아이에게 무리하게 너무 일찍 언어를 배워주려고 하면 그만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린다.
부모의 시각에서 세 살짜리 아이가 멍청하게 보이는 이유는 어른들이 어려운 말로 설명을 해서 아이가 감정적으로 모든 신경을 꺼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실제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로 어른들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주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부모님이 하는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런 속뜻을 담고 있다.
"나의 흥미를 끌려면 제발 다르게 말씀하세요."
아이들로선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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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구판절판


글은 하루아침에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읽기만 하면 안되고 나중에 글감으로 사용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읽는다. 출력을 의식하면서 읽으면 수준 높은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61쪽

글을 쓰는 것은 에너지를 배출한다기 보다는 모으는 쪽에 가깝다. 즉 생각을 모아서 자신 안의 내공을 높이는 행위이다. 혼자 조용히 앉아 오랫동안 일기를 쓰고 있으면 자신의 내공이 매우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다. 내부에 있는 욕망의 압력이 충만해진다고 표현할 수 있다. 힘들지만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에 파고들어 내공을 높이자. 그런 다음 그것을 글쓰는 것으로 연결시켜 나가자.
원래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다.-149쪽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쓰는 일기는 남들이 읽고 이해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돈벌이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확인시켜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때, 결국은 자기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그럴 때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힘차게 응원하자.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이하고 더욱 인정하는 힘이 끌어 오를 것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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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구판절판


하늘은 목적 없는 푸르름 속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태양은 그 햇살로 질문을 던지듯 나를 응시한다.
산들은 흐릿한 그림자 속에서 나를 굽어본다.
나무들은 어리둥절한 산들바람 속에서 흔들린다.
사슴들은 당황한 리듬으로 춤을 춘다.
개미들은 믿을 수 없는 원을 그리며 내 주위를 맴돈다.
새들은 의심에 찬 곡선을 그리며 내 위를 날아간다.
그들 모두 자신들의 방식으로 내게 묻는다.
넌 누구지? 넌 도대체 누구지?
난 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난 인디언이라고.

프란시스 바질/ 뉴멕시코 산타페 출신/ 16세 이하 시부문 문학상 수상-589쪽

우리는 그저 흉내내고 암기하기 위해 학교로 갔다. 언어와 생각을 서로 나누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이 대륙에서 수십만 년 동안 살아오면서 쌓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훌륭한 경험들을 되살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 대륙에서 일어난 모든 중요한 일들을 기록한 우리의 연대기는 바로 우리의 춤과 노래 속에 녹아들어가 있었다.
우리의 역사는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얼굴 흰 사람들의 역사와는 달랐다. 따라서 얼굴 흰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칠 게 많았다면, 우리 역시 그들에게 가르칠 게 많았다. 이런 생각에 기초해 학교가 세워질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588쪽

모두를 평준화 시키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모두가 똑같아 지고 있다. 우리는 지상에 핀 꽃들과 같다. 바깥으로 나갔는데 데이지 꽃밖에 없다면 정말 지루할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믿음들이 삶을 훨씬 더 흥미진진한 것으로 만든다.
세실리아 미첼 / 모호크 족-678쪽

한 뼘의 땅일지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라.
홀로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대가 믿는 것을 지키라.
먼 길을 가야 하는 것이라도 그대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
포기하는 것이 쉬울지라도 삶을 지키라.
내가 멀리 떠나갈지라도 내 손을 잡으라.
푸에블로 족의 축복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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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
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
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
게 갈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이상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국어시간이었다.

'오감도'였는데 등이 오싹한 전율을 느낌이었다.

시를 잊을 수 없어 외우고 또 다른 이상의 시를 찾아서 읽고.

그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었다.

오늘 우연히 이상의 시를 또 읽게 되었다.

벌판 한 복판에 홀로 서 있는 꽃나무...

끊임없이 미래의 어떤 모습을 꿈꾸는 나 자신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어쩔땐 달아나버리고 싶은 또 다른 나 같기도 하고...

이상의 시를 읽을 때마다 명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항상 날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홀로 있는 외로움만큼이나 다른 이와 비교되는 아픔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

어쩌면 난 자신과의 싸움보다는 항상 다른이와 비교하게 됨에 더 약해지는 것 같다.

그럴 땐 한없이 달아나고 싶고...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다 다르지만  모두가 아름다운 꽃나무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모두가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고, 열심이 있고

최선을 다해 자기의 꽃을 피우려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겠다. 

그러면 '제가 생각하는 모습'에 도달 할 수 없어 달아나는 외로운 꽃나무가 아니라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꽃 피우는 나무들 사이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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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빠와 함께 TV를 보았다.  케이블에서 하는 외국 전쟁 미니시리즈였다.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서로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참혹한 전쟁의 도가니였다.

주인공을 포함한 세 명의 군사가 작전 중에 따로 떨어져 나와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대장격인 한 사람이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손으로 싸인을 보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옆에서 보시던 아빠가 "수류탄!" 하는 거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TV 속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수류탄을 던졌다.

꼭 아빠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헉! 난 너무나 놀라 아빠를 보았다.

"아빠, 어떻게 알았어요?"

"군대에서 배웠지..."

"우와~~~"

아빠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외국거랑 똑같아요? 요즘도 군대에서 그런 것 배워요?"

"글쎄, 배우지 않을까?"

 

부모님과 함께 할때 가끔씩 아! 정말 이분들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몇 십년을 함께 살아오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정말 많구나 하는 것도...

사실 가족들과 얘기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아까울 때가 있었다.

혼자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인터넷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유익하다고

언젠가부터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희생이라고 생각되었나 보다.

오늘은 새삼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존경하고 공경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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