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정현정.오승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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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란 말은 여고 시절, 하이틴 로맨스를 즐겨보던 때에나 들어본 말이었다.

그러니까, 로맨스라는 말은, 이제 결혼 10년차에 접어드는 나같은 30대 후반의 주부에게는 봄볕에 촉촉한 땅을 밟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거리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타까운 단어인 것이다.

아득한 그 시절. 학업의 스트레스를 피할 목적으로 누군가가 만화방에서 또는 책 대여점에서 하루분량으로, 외국 하이틴 로맨스를 번역한 얄팍하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을 10권 정도 빌려온다. 대기자들은 순서를 정해서 죽 돌려보기 시작한다. 속독의 대가였던 나는 항상 1번 타자였다. 빌려온 주인을 제치고 1번으로 읽어보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쉬는 시간 10분, 점심 시간, 그리고 수업 시간 짬짬이, 마음 먹은 날은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통째로 할애해 가면서까지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선생님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점점 가까워오는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의 압박을 이겨내면서 로맨스 소설을 읽어나가던 그 스릴은 지금까지도 여고시절의 추억으로 떠오른다.

 언제나 180이 넘는 키에 완벽한 근육, 구릿빛 피부의 그리스 조각상 같은 얼굴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여주인공은 전형적인 미인이 아닌, 좀 개성적인 인물이지만 대개는 키가 자그마하고 귀엽고, 남자로부터 보호받아 마땅한 모습의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워게임, 밀고 당기기, 그러나 결국엔 달달한 결말로 언제나 해피엔딩인 꿈같은 소설들. 그 소설들은 진정, 현실에서 일어나기 불가능한 환상 속의 이야기, 그 자체였던 것이다. 10대의 로맨스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현실이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었고, 생활에 찌들어 버린 것이었고, 로맨스란 단어를 기억 저편으로 멀리 내던져 버린 지 오래인 것이었다.

그래서, <로맨스가 필요해>라는 소설을 보았을 때, 나의 시선이 번쩍이는 분홍빛으로 휘갈겨 쓴 책 제목에 확 꽂힌 것은, 매일 매일이 똑같은 무료한 삶에 지친 내 머릿속에 여고시절의 반짝임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지그시 억누르면서 첫 장을 열었다.

열매와 석현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였다.

그런데, 첫 상황은, 이런,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7번의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연인이면서, 아직 한 집에 같이 사는 사이.

“너, 가끔 내 방에서 잘래?”

살짝 가벼운 충격이 왔다. 아~ 얘들은 평범한 연인이 아니구나.

소설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대신 겪어볼 수 있게 해 주는 장치이므로, 나는 소설 속에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열매와 석현 같은 연애는 할 수 없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가졌지만, 있는 그대로 내뱉는 솔직함이 무기인 여자라서 가끔은 곤란함을 겪는 음악감독 열매, 속에 무언가를 꼭꼭 감추고 표현하지 않지만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이 사람을 설레게 하는 시나리오 작가 석현.

대낮에 길거리에서 노상에 깔린 과일이 으깨지도록 던지며 심하게 싸우기도 해 보고, 울며불며 매달려도 보고, 다른 남자를 사귀어도 보지만 왜인지 석현은 “결혼하자”는 열매의 말에 대답을 회피한다. 석현의 성질을 긁을 대로 긁고 나서도 거기서 조금 더해 끝까지 밀어붙이고 마는 열매, “너 가” 한마디만 하고서는 잠시의 틈도 없이 , 뒤돌아보는 법도 없이 멀어져 가는 남자 석현.

나의 연애 스타일은 아니어서 적응이 안되지만, 그런 연애를 흘깃 훔쳐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상에 여자는 두 종류로 분류된다. 헤어지면 뒤돌아보는 여자와 뒤돌아보지 않는 여자.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 여자였다. 오랜 시간 알아가고, 서서히 식어가고, 단칼에 베는 것이 내 연애 스타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겁쟁이였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몰랐고, 세상의 잣대에 물들어 있었고, 가장 결정적으로, 상처받으면 안 되는 상태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남에게 상처 주는 여자였던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돌아서는 것이 나의 연애 패턴이었다.

그런데, 주열매. 이 여자는 뒤돌아보는 여자였다.

나와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른 여자다.

나 같으면, 7번의 이별까지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7번의 이별 끝에 비로소 만나게 된 “나무 같은 남자” 지훈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매는 지훈과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 놓고도, 그의 나무 그늘같은 푸근한 사랑 속에서 ‘순둥이’처럼 평화로움을 맛보고서도 뒤돌아보고 만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처럼. 뒤돌아보면 절대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아니, 그 말을 들어서 더더욱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열매는 석현을 선택했고, 지훈은 아프게 열매를 떠나보낸다.

차마 열매의 사랑을, 열매와 지훈의 사랑을 방해할 수 없었던 석훈은 1년이란 시간, 열매로부터 떠나 있지만, 그토록 ‘희생’에 목말라하던 지훈을 위해 담담히 1년을 희생한 열매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아이고, 참~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 되어 지고지순한 사랑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었지.

그렇지만, 현실로 내려오면 그 사랑이 찬란한 빛을 발하며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될 것인가?

2권이 나왔다니, 기대가 되고, 현실로 내려오는 계단을 타고 하강하는 로맨스가 펼쳐질지, 새로운 로맨스가 꽃피는 환상 속의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읽어 보면 알 일이다.

내 자아와 너무나 다른 열매의 자아에 쑥 몰입되어 울고 웃었던 1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보면 “엄마, 또 운다”고 할까봐, 소리 죽여 가며 눈물 줄줄 흘리고, 휴지 가지러 갈 동안 추한 모습 보일까봐, 몇발짝 옮겨 휴지 가지러 가지도 못하고 옷소매로 눈물 닦아가며 너무도 쿨하지 못하게 그들의 세상을 읽어 내려갔던 1시간이었다.

이젠, 환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내려가실 시간입니다, 손님~

“네, 가라면 가야지요. 2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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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이응준 지음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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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내 나이 30대 후반. 나는 청춘을 되돌아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100세 시대라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번쯤 과거와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프고 시리지만, 꾹꾹 담아둔 내 아픈 청춘을 다시 헤집고 싶지 않지만, 불편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부딪쳐 보련다. 짧은 내 언어 탓에 형상화 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했던 마음을, 이응준이라는 천재적인 작가가 풀어놓은 청춘 이야기에 얹어 읽고서 흘려보내고 싶다. 마흔이 되기 전에 꼭 해야만 할 일.

 

 

읽은 후-

이렇게 스산한 청춘 소설을 스물여섯의 나이에 썼다니.

나도 묻어버리고 싶고 흘려버리고 싶은 청춘이 있었지만, 지금 되돌아 보니, 그러했구나. 하고 깨달을 뿐. 그 때는 청춘인지도 몰랐던 그 시절.

내 스물여섯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하루살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용서하지 않겠어, 영원히!”

이 말이 주문이 되어 내 과거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단테<신곡>에서

라는 글이 소설 시작하기에 앞서 나타난다.

 

나는 이제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행복했던 날은 아예 있지도 않았던 듯. 그저 지금과 앞으로의 날들만 생각하며 산다. 그렇지만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있었던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 행복했던 날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저, 기억의 강에 흘려보내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것일 뿐.

 

 

형은 나를 사랑했다. 나도 형을 사랑했다.-31

 

충격적인 울림을 주는 문장이다.

배다른 형제로 만난 주인공 서문하와 네 살 터울의 형 서인하. 둘의 관계가 어떻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  갸웃.

살짝 천박한 매력의 엄마 손을 붙잡고 장미정원의 성에 입성한 주인공 서문하. 지적인 외양의 형 서인하와 도무지 무서워 말도 못붙이겠는 근엄한 아버지를 만나 가족이 되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것이 아니라, 싹둑 잘린 종이를 풀로 이어 붙이듯이 만들어진 가족.

그것도 반듯하게 붙여진 종이가 아니라 살짝 어긋나게 이어 붙여진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완벽하게 예의바르고 착한 아들이었던 형 인하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땐, 엄마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건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튼이 내려지기 전까진 무대에 충실한 표정 없는 배우들.

형 인하는 어쩐 일인지 문하를 동생으로 받아들인 듯했고, 함께 별자리도 보고 정원도 누비며 멋지고 완벽한 형을 연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동생의 얼굴을 할퀴고 만 고양이를 정원의 사과나무에 목매달아 죽인 후 그 나무 밑에 파묻는다. “널 위해서”라고 말하며.

문하는 형의 두 얼굴을 목격한 그날부터 방문을 잠그고 잔다.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 때 말해줄게.”라며 한사코 동물원의 파충류 우리에서 본 것을 말하지 않았던 형의 그 비밀스런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될 무렵. 그 때가 바로 인하가 어른이 된 시기이며, 고뇌하고 거부하며 한사코 즐기기를 거부하던 청춘의 시작점인 듯싶다.

“나는 사실은 파충류의 먹이로 키워진 흰쥐였다. 넓은 우리에 놓여 졌지만, 곧 시작될 파충류들의 식사 시간에 투입된 사냥감으로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불안과 두려움에 눈만 굴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흰쥐. 눈은 더 이상 튀어나올 수 없을 만큼 튀어나와 있으며,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세차게 뛰어대고, 숨은... 가쁜...죽음을 눈앞에 둔 흰 쥐.”라는 고백을 인하는 문하에게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사업의 확장에 정치판 가세까지. 아버지는 승승장구 내달렸고, 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국립대 법학부 입학 까지 한 형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었고 인하는 백에 가려진 흑의 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마왕으로도 살아가고 있었다. 문하에게 잠깐 비춘 적이 있는 인하의 친엄마와 앓는 모습이 닮았던 여자친구-하얀 하여-가 죽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집안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때.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었던 형은, 문하 어머니와의 충격적인 정사씬을 선물로 남기고, 두 팔을 활짝 편채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시작된 방황의 나날들. 과거와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던 문하는 가합동의 카페<하늘밥도둑>에서 산타 페를 만나고 산타 페의 미친 이모를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수인을 만나고, 물귀신, 미저리 등등 평범함의 언저리를 맴돌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에는 이미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문하는 과거의 강을 건너 왔다.

 

하~아.

찌는 듯한 여름내내 태양에서 가장 가깝던 옥탑방에서 스물여섯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하게 된, <설국과 장미정원>으로부터 시작하는 청춘의 기억.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가족이라는 굴레는 문하의,그리고 우리의 생애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시금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려면 그 시커멓고 어두운 과거라는 터널에 억지로라도 걸어 들어갔다 빠져나와야 한다.

청춘, 혹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데 이 책은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 과거와 만났고, 인사했고, 잘 돌려보내주었다.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언어로, 하얗게 뱉어내는 숨이 눈앞에서 입김이 되어 사라질 듯 그 차갑고 청명한 겨울 공기까지 환상적으로 묘사된 설국.

그 설국을 거닐다 빠져나온 곳에서 만나게 된 느릅나무. 그 아래 천국이 숨어 있었다. 한동안 아무 나무라도 나무 그늘 아래 서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하얀 목련이 툭툭 잎을 떨구고, 이제 화안한 벚꽃이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계절이다.

봄바람이 날리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어느날 후두둑 떨어지고 말 일이다.

청춘도 계절처럼 , 봄날의 벚꽃처럼 왔다 가는 것.

혹독한 청춘을 보냈다고 우울해 할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도 내 느릅나무를 찾아 그 아래 천국을 숨겨놓아야지.

 

내 아이들의 유년 시절엔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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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는 법 - 인간의 모든 가능성에 답하는 과학의 핵심 개념 35가지 사이언스 씽킹 3
알록 자 지음, 이충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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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도 재밌고, 저자의 이름-알록 자-마저도 재미있다.

 

모두 35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는 법’으로 제목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에 3장<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장이 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또는 상실의 시대)을 읽다가, 거기 나왔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찾아 읽는다. 읽다보니, 소세키에 관심이 생겨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을 연속해서 읽는 식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완 조금 다른 방식이지만, 이 책의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장을 보니,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이 기억났다. 화려한 그림에 아이들과 푹 빠져 들었었다.

 

***피터는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과 영원히 사는 아이의 존재를 찾다가 드디어 다락방의 컴컴한 책장 위에서 마침내 책을 찾아내지만, '어리면서 늙고, 열 살쯤이며 동시에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영원한 아이'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며 그 책을 읽지 말라고 충고한다. 피터는 오래 생각한 끝에 그 말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영원한 아이는 너는 네 나이 적 나보다 현명하다면서 피터를 다시 '세상'으로 안내한다. ***

 

 

역시, 과학과 문학은 영역이 다른가 보다.

환타지의 세계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와 보니, 과학의 영역에서는 오래 사는 비결을 척척 가르쳐 준다.

 

1. 음식 섭취량을 줄인다.

2. 효모 실험-두 유전자의 작용을 차단함으로써 효모 세포를 정상적인 효모 세포보다 6배나 오래 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효모보다 훨씬 복잡한 생물이라는 거--

3. 손상을 복구하는 유전자 치료

4. 사람의 몸에 특별한 세균을 집어넣어 노폐물과 자유 라디칼을 제거하는 방법

5.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유지하라.(채소섭취, 금연, 젊을 때 운동)

 

 

5번이 제일 쉬울 거라는 거, 설명 안 해도 다 알 것이다.

 

 

진짜 과학이 어떤 건지, 재미를 느끼면서 빠져 든 적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과학에 대한 시각을 바꿔서 좀 더 흥미있는 과목임을 일찍 깨닫고 과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생각만(?) 해 본다. 문과 체질임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요즘은 과학자가 꿈이라는 어린이들이 많이 없다. 부모들의 일방적인 꿈 강요에 의사니, 판사 검사니, 교사 등등. 틀에 박힌 직업군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고, 창의적인 아이들은 괴짜 취급을 받는 세상인 것이다.

좀 더 과거이긴 하지만,  하다못해 이 시대의 소설 작가, 김영하도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하다가 “너는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는 거야. 인마”하는 핀잔 듣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학교 과학 시간에 간단한 실험 몇 번 하고, 이쯤 했으니 원리는 알아서 터득해라. 하는 한심한 교사들 때문에 과학에 흥미를 잃은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투명인간이 되는 법, 외계인을 찾는 법, 사이보그가 되는 법, 쌍둥이 형제보다 천천히 늙는 법 등 기상천외하고 재기발랄한 제목들을 보면 일단 흥미가 솟구칠 것이다. 어른인 나도 재미있었으니까.

그리고 찬찬히 글을 읽어 나가면, 우주, 공룡, 기후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의 분야에 풍덩 빠져들게 될 것이다.

 

 

어느 학생이 폴로 민트를 깨면 파란색 빛이 희미하게 난다고 말하면, 선생님은 우리를 사진반의 암실로 데려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그날 우리는 폴로 민트의 비밀을 입증하진 못했지만, 그 사건은 기묘한 질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선생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6P.

 

위 글에서처럼 과학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하는 과학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면, 이 책을 만나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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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비운의 조선 프린스
이준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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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세자비, 요양생활 10년

도쿄 | 서의동 특파원 <경향신문, 2013년 1월 9일>

*****왕실생활 스트레스에 따른 ‘적응장애’로 시작된 마사코(雅子·49) 일본 왕세자비의 요양생활이 10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중략>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서 자유분방하게 성장한 마사코에게 전통 준수와 후계 생산을 강요해온 왕실은 ‘창살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궁내청은 마사코 왕세자비가 왕자를 낳지 못하자 해외여행을 규제하려 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나루히토 왕세자가 2004년 5월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탄발언’을 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중략>

아사히신문은 8일 마사코 왕세자비의 병세에 대해 “치료가 해를 넘어 계속된다면 적응장애이 아니라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적응장애보다 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위 기사를 보았었다. ‘일본 왕실이 이랬었어?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왕족들인데 무슨 스트레스?’

이 책<비운의 조선 프린스>를 들추니, 책머리는 일본천왕의 사촌동생 토모히토가 “일본 왕실은 거대한 스트레스 덩어리”라고 폭로한 얘기로 시작하고 있었다. ‘왕비나 왕자나, 배가 불러서는...’

나처럼 <비운의 조선 프린스>라는 제목이 의아한 사람들은, 이 책의 첫 장을 읽거나 미리 이 기사를 읽었다면 왜 <비운>인지 좀 더 수긍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조선왕실 적장자 수난기.

이 책에는 왕이 되지 못한 적장자들이 실려 있다.

➊정종의 아들 불노와 지운(좀 생소하다.)

➋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➌추존 덕종의 아들 월산대군과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

➍선조와 계비 사이에 난 아들 영창대군

➎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그들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동안 왕조를 이어왔다. 신라 시대엔 골품제가 있었고, 고려 시대엔 장자 계승 원칙이 있었지만 적서 차별은 없었다. 그런데 유독 조선 시대에만 적장자 왕위 계승원칙을 내세운 건 무엇 때문인가? 저자는 조선왕조 성립 때 태종 이방원이 정치적 계산의 방편으로 신진 사대부와의 흥정에 내민 카드가 “적장자 계승, 적서 차별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 적장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임금은 7명뿐이라고 한다.

아니, 왜? 그건 조선의 정치와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흥미롭게도 적장자 계승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조선왕조 500년이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기존의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 불노와 지운은 잘 알려지지 않은 왕자라 그렇다 쳐도, 양녕 대군, 소현 세자는 내가 알던 -왕위에 오르지 못한 불쌍한- 왕자가 아니었다. 실록과 역사서를 근거로 새롭게 구축한 저자의 ‘새로운 인물상’ 탄생이다. 영창 대군은 워낙 어린 나이에 불쌍하게 죽었다 하니, 그런가보다 했고.

어쨌든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은 각각의 인생을 살다 갔고 저자의 글솜씨는 각 장마다 새로 만들어진 한 편의 사극을 보는 것 같이 왕자들의 성격과 인생을 생생히 그려주고 있다.

 

나는 사극을 잘 보지 않는다. 무슨 인물이 그렇게 많은지, 또 전하와 신하들은 얼마나 딱딱한 말들을 많이 하는지. 요즘은 퓨전 사극도 많고 여성이 주인공인 사극도 많이 나온다. 그래서 조금 흥미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국사는 너무나 간략했고, 인물들의 성격도 나와 있지 않으며 게다가 시험 때만 벼락치기로 외운 지식들은 이미 저세상으로 간 지 오래다.

 그러나 사극은 역사 속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하며 그 인물마다의 철학이 있다. 드라마 작가의 역사 해석에 따라 다른 철학 말이다. ‘내가 배운 인물이 저기 TV에 나와 움직이는 인물이 맞나?’ 할 정도로 파격적인 해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 많았다.

 ‘내가 잘못 배운 건가, 모르는 게 많은 건가.’ 사극을 보면서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었다. 애들 앞에서 내 무식이 탄로 나기 전에.

그래서 몇 년 전에 교양을 위해 신명호의 <조선왕비 실록>을 사서 읽었는데, 그 책을 사 두길 잘했지. 사극에 잘 나오는 임금의 옆에 항상 붙어 나오는 왕비들의 이야기여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편했고, 책 뒤의 연표는 사극 할 때마다 꺼내 찾아보는 참고자료가 되었다. ‘아하, 이번 사극은 이 시대의 이야기구나.’ <대장금>은 중종, <동이>는 숙종이었던가?

<비운의 조선 프린스>도 왕자 이야기이니 만큼 왕비가 꼭 나온다.

<조선왕비 실록>, <비운의 조선 프린스>두 권을 나란히 두고 같이 읽으니 각 장에 나오는 태조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왕비 원경왕후 민씨,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 한씨, 광해군과 영창대군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 김씨 등이 죽 나와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이 책을 볼 때 기본적인 왕조 순서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산-중-인-명-선-광해-인-효>

사극의 해설을 해 주듯이 조그조근 풀어 친근하게 설명해 주는 저자의 문장 실력이 가슴에 와닿았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나름 재미있었고, 과감했었다.

나같이 역사 전공이 아닌 사람도 왕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게 각 장의 말미에 가계도와 연표가 나와 있어서 이해하기 편했다. 다른 연표엔 잘 안 나와 있는 왕자들의 이름도 나와 있다. 조선왕조 전체 속에서의 왕자들의 위치를 보고 싶으면 <조선왕비 실록>의 연표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나의 처지를 잊고 왕자들의 삶에 푹 젖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나는 평민이고 호화로운 궁전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짐을 져야했던 “왕자”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혹시나 “공주”로 태어나면 모를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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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오의 하늘 1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 다큐멘터리 만화 요시오의 하늘 1
air dive 지음, 이지현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요시오의 하늘> 1-6권

 

9살 채원이는 다 읽더니 한 마디 한다. “재밌네, 엄마?”

38살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대꾸한다. “그게 다야? 엄마는 너무 슬퍼서 말도 못하겠는데.” 눈물이 방울져 턱까지 흐르다가 말라붙었다. 눈물이 내 얼굴의 온기마저 빼앗아 갔나 보다. 두 뺨이 선득하다.

 

 

요시오는 절망의 ‘하늘’을 희망의 ‘하늘’로 바꾸는 소아뇌신경와과의사다.

 

이 책 <요시오의 하늘>은 실존하는 다카하시 요시오라는 의사와 작은 생명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쓴 이야기다. 1권 표지에 채집망을 어깨에 멘 채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서 있는 장난스러운 소년의 모습이 있다고 해서 소년명랑만화 쯤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나 역시 1권 표지모델에 속아 잠깐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볼까 하며 집어 들었지만, 곧 깨달았다. 가벼운 책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2권 읽을 때엔 안 울어야지. 빨리 책을 다 읽으려면 말이야.’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 결심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내가 마음이 약해선가 싶어서 이미 책을 다 읽은 사람에게 물어봐도 역시 “너무 슬프지?”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1권을 보고 안 운 건 우리 남편 뿐이다. “왜 우는데? 뭐가 슬프다고?” 그렇지만 우리 남편 강한 척 하는 걸 거다. EBS명의 할 때는 아픈 애들 링거 맞거나 혹이 부푼 모습 보면 마음 아프다면서 다른 채널로 옮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각 권마다 1화부터 7화까지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1화부터 4화까지는 <어느 한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5화부터 7화까지는 의사 요시오의 <탄생편><소년편><청년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야말로 눈과 코에 고춧가루를 뿌린 듯 얼얼하고 쓰라린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요시오의 이야기로 넘어가서는 빙그레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 과정의 반복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것이다. “책을 보더니 완전 맛이 갔구만. 눈물 콧물 비오듯 쏟아내더니 이젠 또 실실 웃네?” 그러나 마음을 다해 읽다 보면 왜 그런 ‘정신 나간 ’ 사람이 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공감하게 될 것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특히나 아이가 있는 엄마나 아빠라면 누구나.

 

 

이 책을 본 후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누구에게? 내 아이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들. ‘건강하게 자라 주어서 고맙다.’ 아이들의 뇌에 다가오는 그 무시무시한 병은 예고되는 것이 아니기에 나라고 마음 푹 놓고 지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9살, 6살 이만큼이나 자라도록 큰 이상 없이 자신들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내 주고 있는 아이들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6권까지 읽는 동안 여러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내 가족의 일인 양 몰입해서 읽었다.

 

내 아이가 뇌수종이라면? 작고 가녀린 팔뚝에, 혹은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하루종일 병상에 누워 있다면? 너무 어려서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작은 아이가 눈으로 말하며 ‘힘들어요’ 신호를 보낸다면? 아님.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컸는데도 온몸의 힘이 빠져, 아니면 병 때문에 말을 못하고 힘없이 쳐져 있다면? 부모인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남편은 일하러 나가 있겠지. 아이가 둘이니, 다른 건강한 아이에게는 신경 쓸 여력도 없겠지. 무수히 많은 가정과 상상 속에서 나는 그저 힘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앉아 있는 엄마였다.

 

 

그러나 요시오의 환자들은 씩씩했다. 요시오는 아픈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할 수 있다고 북돋워주고 아이의 아픔 앞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 부모를 다독이고 격려한다. 그리고 함께 헤쳐 나가자고 얘기해 준다. 그렇다. 아이들은 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처음엔 마음이 아프고 ‘왜 내게 이런일이?’ 하며 분노하고 울부짖지만 곧 이겨내게 되다. 요시오의 치료를 받으면서 한 줄기 희망을 붙드는 아이가 있는 한 부모는 강해져야만 한다.

 

 

나는 무기력하게 회피하고 외면하는 부모여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은 강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이를 믿고 함께 헤쳐 나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설사 아이가 잘못되어 이제는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저쪽 세상으로 건너갔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부모와 나머지 가족은 살아 내야 한다고 요시오는 말했다.

 

특히, 몇 권에서였던가.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이가, 조금만 더 견뎌내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생활 할 수 있었을 아이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말이다. 젊은 어머니는 오열하며 쓰러진다. 요시오는 “괜찮아. (가족이 올 때까지)내가 같이 있어줄게.”하고 무뚝뚝한 위로를 하며 제단에 향을 피운다. 요시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을까. 잠시후 바다가 보이는 작은 방에 혼자 남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 나온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와 계속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야 아이를 마음 놓고 안아 본다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었다.

피에타.

얼마나 성스럽고 거룩한 장면일 것인가.

순식간에 가슴은 먹먹해져 오고, 꺽꺽 내 숨을 막으면서까지 치받쳐 올라오는 오열 때문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물에 범벅이 되어 차마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휩쓸리지 않으려는 듯 꼭꼭 구석에 숨어 있던 내 마음의 불순물, 찌꺼기가 다 떠내려 갈 때까지.

마침내 눈물이 그치고 다시 그 장면을 바라보았을 때, 요시오라는 의사는 정녕 한 줄기 빛이었다.

충분히 애도의 마음을 다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후에는 남은 가족들끼리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시로라는 의사는 실존 인물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그걸 실어 나르는 의사가 되었을까?

이쯤에서 요시오라는 의사의 일생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각 권에서 요시오의 탄생기, 소년기, 청년기가 펼쳐지지만 정작 중요한 장면은 1권에 나와 있다. 요시오가 다카시 가족의 차남 코스케에게 수술을 하러 들어가면서 떠올리는 인물-마음 약해지지 않게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인물-들은 바로 그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작은 누나. 그렇다. 요시오는 바로 가족의 힘으로 매 순간을 사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이렇게도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는 둥지다. 나는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어떤 둥지를 만들어 주고 있나?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해 주고 있나?

 

 문득 내 결혼 생활을 돌이켜 본다. 내 육아 방식도 뒤돌아 본다.

 

 

1권 표지 모델로 활약한 개구쟁이 꼬마 소년. 그 소년은 무지무지 뛰어 놀기 좋아하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소년이었지만 심성만은 곧고 따뜻했다. 그리고 곤충 관찰을 좋아해서 한동안은 땅속에서 기어나온 매미 새끼들을 잡아 집 커튼에 붙여 놓고 ‘나와라, 나와라’하면서 탈피하는 모습을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한밤중에 매미가 부들부들 떨면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다가 매미를 쑥 잡아당겼더니 그만 매미가 거기서 탈피를 중단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거기서 요시오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고운 심성을 기르고 곤충에게서 교훈을 얻고 그렇게 소년기를 보낸 요시오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기본기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반장이었던 소년은 의사가 장래희망이라고 하면서 공부하고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반해서 요시오는 의적-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나 을지매 정도?-이 꿈이라는 천진난만한 소년이었다. 이름처럼 義男이 되고자 했던 것인지도.

그래서 반장보다 더 정이 가는 情이 넘치는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요즘은 아이도 많이 낳지 않아서 한 집에 하나 아니면 둘이다. 부모는 그 아이들에게 모든 정성을 다 기울인다. 그래서 내 아이는 무엇보다 귀중한 존재고 남보다 뒤쳐져서는 안된다. 너무 똑똑한 부모도 많아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알아서' 똑똑해져야 한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들도 많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려서부터 선물세례를 퍼붓고, 일하느라 늦는 엄마의 아이들은 하루종일 대여섯 군데의 학원을 순례해야 한다. 물론 <언니의 독설>의 저자 김미경처럼 일에서 성공하고 육아에도 성공해서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워킹맘도 있다.

그이처럼 몇몇의 성공 사례도 있긴 하지만, 그저 나머지 대부분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나는 전업주부이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만큼 바쁘지는 않다. 그리고 느긋하게 키우려고 마음도 먹었다. 그렇지만 내 주변은 모두들 너무 앞서가고 빨리 나아간다. 예전같으면 초등학교 1학년에 연필잡고 한글 읽고 쓰고 했다. 1학년에 산수 계산도 손가락 꼽아 가며 천천히 세어서 했다. 그런데 요즘은 만 3세부터인가 <연필잡고> 라는 책이 나온다. 애들은 그 때부터 연필을 잡아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한글을 일찍 떼고 수를 줄줄 세고 학습지 한 두 개는 기본. 대여섯 살 아이들이 학습지에 코를 박고 손가락 셈을 하며 답을 써내려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요시오의 어린 시절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았을 것이다.

지금은 아침이면 도시의 빌딩숲, 아파트 숲 사이로 스모그가 낀다. 하늘, 푸른 하늘, 높고 푸른 하늘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내 아이들이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놀다 놀다 지쳐서, 정신의 명랑함이 무르익고 무르익어서 “이제 뭘하지?” 할 때, 공부라는 걸 시작했으면 좋겠다. 요시오처럼.

문제는 '나는 주변의 부모들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내 자신을 바로 세우고 지탱해 나갈 수 있는가'다. 아이들은 강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모는 옆에서 거들 뿐. 농구에서 슛을 할 때 왼손은 그저 거들 뿐이라는 명언을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남겼다. 큭큭.

어려서 크게 앓은 경험이 있거나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아이들은 철이 빨리 든다. 애어른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를 위로하고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은 밝게 웃으며 숨겨도 티가 난다. 애처롭고 가엾다.

 나는 내 아이들이 부모를 앞에 두고 애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 부모 노릇 못한다고 꾸중 듣는 격 아닌가. 아이답게 소리치고 뛰어 놀고 다른 어른들한테 혼도 나보고 했으면 좋겠다. 버릇 없게 키운 거 아니고 나약하게 키운 거 아니면 된다. 그리고 대천천(우리 마을 앞 개천)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늘어지도록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으면 당연히 누리고 살아야 할 아이들의 인생 아닌가. 다른 부모 따라잡으려다 애들 망치기 싫다. 어려서 똑똑하면 뭐하나. 다 키워서 세상 저버리는 마음 병든 아이들이 수두룩한데. 다 커서 부모 원망하고 얼굴도 안 보고 사는 아이들이 또 얼마나 많은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거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는 거다.

 

요시오의 하늘을 읽고 오랜만에 부모 노릇하는 게 어떤 건지 새로이  되새겨 보게 되었다.

7권에서는 요시오와 같은 길을 가는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이젠 좀 덜 울게 될까.

청년기를 지나 창창하게 전개될 그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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