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슴은 내거야! 그림책 도서관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박선하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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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슴은 내 거야!>

 

난데없이 “이 사슴은 내 거야!” 라니?

좀 버릇없는 거 아닌가?

자기 것을 잘 챙기는 것은 좋으나 무조건 내 것이라고 우기며 친구에게서 빼앗으려 드는 우리 아이를 보면 나는 화가 난다.

무슨 성장 발달 과정상 꼭 거쳐야 하는 시기라면 모를까, 웬만큼 어울려 놀 시기가 되었는데도 자기 것임을 주장하며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것은 좀 문제이지 않을까.

그래서 평소에 무지무지 많이 교육을 시킨다.

주변의 아이들이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런 아이들이 사리분별 할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 자기 것을 너무도 뻔뻔하게 챙기려만 들 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어느새 눈꼬리가 휙~치켜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차마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꾹꾹 눌러 참는다.

속은 찻물 끓듯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네가 내 아이였으면...넌...벌써...’

그 아이의 부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아니 심지어는 속으로 잘한다, 잘한다. 하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다.

삐~ㅅ, 삐~ㅅ

내 머릿속으로는 온갖 욕설이 난무한다.

^^

 

아이고, 이야기가 한참 샜다.

이 사슴은 내 거야~~

동심의 세계를 내가 너무 모르고 혼자 제목만 보고 흥분해버렸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을 넘겨보니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올리버 제퍼스.

음..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

그렇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아이 영어그림책의 작가였던 것이다.

동글동글한 얼굴의 아이에 펭귄이 주인공이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incredible book eating boy와 how to catch a star 같은 제목이 생각난다.

 

이번 책에서는 주인공보다 자연의 배경에 더 눈이 간다.

그래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지레 혼자서 흥분해버렸던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초록이 주된 색이어서인지 더 그렇다.

 

 

주인공 지오에게 얼마 전 사슴 한 마리가 왔단다. 그래서 지오는 사슴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멋진 뿔'이라고 불러주었다.

자연에서 온 사슴에게 애완동물의 규칙 따위를 가르쳐주던 지오.

 

 

 

규칙 4번 지오가 음악을 듣는 동안 시끄럽게 하지 않기

규칙7번 지오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함께 가기

규칙 11번 비를 피하는 지붕이 되어 주기

 

사슴은 그 규칙을 따랐을까?

 

어느 날, 지오가 아닌 다른 사람을 따르는 멋진 뿔에게 화가 나서 뛰어가다가, 외출할 때마다 풀어서 표시를 하곤 했던 끈에 친친 감긴 지오. 그 때 멋진 뿔이 나타나 지오를 구해준다.

멋진 뿔이 지오의 애완동물이 되기로 작정하고 돌아와 구해 준 것일까?

 

 

 

허거덕~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멋진 뿔은 이름이 아주 많았는데,

브라우니라 불리기도 하고 다롱이라 불리기도 했던 것이다.

자연에서 온 사슴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것이었다. 자연만이 주인!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사슴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지오는 깨닫게 되었을까?

 

거대한 푸른 숲 아래에서 한가하게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과 그 옆에서 함께 즐겁게 웃음을 머금고 있는 지오의 모습 그 자체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림 하나로 많은 것을 풀어나가는 작가 올리버 제퍼스는 진정 천재라 아니할 수 없다.

군데 군데 다양한 기법으로 재미있게 표현한 것들도 보인다.

콜라주 기법이라나? 미술에 약한 나...

사진만으로는 바탕과 풍선 모양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질감의 차이가 표시나지 않네...속상해라..

 

 

 

이 책을 같이 읽으며 ‘내 거야!’라는 말을 할 때 아이의 표정을 잘 살펴보시라.

욕심으로 똘똘 뭉친 심술궂은 표정인지, 자연의 그림 앞에서 한결 풀어진 여유있는 표정인지.

이 책을 놓고 마음을 열었으면, 이제 아이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웃고 있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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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불편을 팔다 - 세계 최대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공습
뤼디거 융블루트 지음, 배인섭 옮김 / 미래의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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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불편을 팔다>

세계 최대 라이프스타일 기업의 공습

 

요즘 북유럽 스타일이 대세다.

북유럽 하면 서늘한 기후, 뾰족하게 날을 세운 침엽수림이 빽빽이 들어찬 원시림,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의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한 사람들, 무엇을 해도 합리성을 따질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떠오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 엄마들은 <타이거 마더>에 열광하며 아이들을 쫓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헬리콥터 맘이니, 인공위성 맘이니 하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신조어가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요즘의 추세는 타이거 마더가 한 풀 꺾이고 북유럽 맘이 떠오르고 있단다. 단순함, 실용성, 합리성. 뭐 이런 걸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북유럽이라는 의미의 말이 엄마들의 교육방식, 양육태도에 접목된 거라나. 타이거 맘 세대의 엄마들은 하나 또는 둘 가진 아이를 휘어잡으며 무서운 모습으로 관리하지만, 북유럽 맘 세대는 부모는 부모의 삶,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조만간 사교육 열풍이 물러갈 거라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교육에 있어서 북유럽 스타일이 이렇게 강세를 보이니 사회 전반의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북유럽 스타일이 자연스레 유행을 타고 있는 듯하다.

 

이케아.

몇 년 전, 내 여동생이 아들 녀석의 방을 이케아로 꾸몄다고 자랑하듯 말했을 때, 나는 “이케아가 뭐냐? ”하고 되물을 정도로, 참으로 유행에 둔감한 아줌마였다.

동생의 한심스럽다는 듯한 표정과 길다란 한숨은 그 순간 나를 무척 작아지게 만들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이케아에 대해서 웬만큼은 안다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이 책은 이케아를 만든 사나이, 잉바르 캄프라드로부터 이케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세계 3위의 가구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케아의 성공전략은 무엇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준다.

 

타고난 장사꾼이었던 잉바르는 스무 살, 가구사업에 뛰어들어 승승장구,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면서 고향인 스웨덴 뿐만 아니라 독일 시장,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를 장악한 기업으로 이케아를 거듭거듭 발전시켜 나가는 인물이다. 이케아가 일상생활과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는 진정한 세계 최강자라 할 만하다. 창업주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깊게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기업.

 

이 독특한 기업은 무엇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는가?

첫째, 이케아 가구의 조립식 콘셉트. 플랫팩 가구라 불리는 제품들은 납작하게 포장된 상자를 차량에 싣고 집으로 운반하여 설명서를 보면서 직접 가구를 조립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기 것이라는 애착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케아의 디자인.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고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불리는 이런 경향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 시작된 것으로, 단순함, 미니멀리즘, 기능성이 그 핵심이다.

셋째, 낮은 가격.

불필요한 친절함을 철저히 제거하고 실용적인 가구를 매우 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

 

물론 1인 기업에서 출발하여 이만큼 성장을 이루고 성공하기까지 올바른 정도만을 걸어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수없는 위기에도 봉착했겠지만, 그리고 아직도 비상장 기업이며 기업의 구조가 미로처럼 파악하기 힘들지만, 잉바르 캄프라드가 살아 있는 한은 이케아도 살아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잉바르 사후에도 이케아가 건재할지는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케아의 위대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영웅담을 품고 있으니, 그저 모래성처럼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평범하지 않은 성격의 모순된 인물. 대범하지만 동시에 인색한 사람. 사업과 관련된 일에서 거의 냉혹하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개인적인 일에서는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

“아직 할 일이 많아. 우리 앞에는 놀라운 미래가 있으니까!”라고 외치는 이 인물의 이케아 왕국이 나중에 역사의 심판을 받을 때, 그래도 조금은 나은 평점을 받을 수 있기를 빌어본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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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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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불행하기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그렇게도 찾아 헤맬까?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고, 학생은 학교 갈 걱정, 직장인은 일하러 나갈 걱정, 주부는 식사 준비할 걱정.

모든 것이 걱정으로 시작되는 하루이다.

왜, 행복한 아침은 오지 않는가?

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여기, 그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 더.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꾸뻬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너무도 유명하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라서 도저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첫 문장은 저렇게 시작한다.

그래,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니까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겠지. 제목에서 말한 것처럼.

뭐, 직업이 정신과 의사라는 것이 좀 특이하긴 하네.

매일같이 불평 불만인 사람들을 대할 것이 뻔하니까, 좀 더 쉽게, 일찍,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겠지.

뻔한 소리들이다 싶어, 책등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빠르게 처음부터 끝까지 촤라락~ 종이 끝에 만화를 그린 다음 종이를 빨리 넘겨 움직이는 영상을 얻듯이, 한 번 넘겨보았다. 중간 중간에 간결한 터치의 그림이 들어 있었고, 별다른 것은 없어보이는 듯 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목록이 있었다.

배움 1, 배움 2......배움 14까지.

그 목록의 앞 뒤는 다음과 같다.

 

우두머리는 말없이 꾸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꾸뻬의 웃옷 주머니에서 삐져 나온 작은 수첩을 발견했다. 그는 부하에게 그것을 가져오게 하고는 수첩을 펼쳤다......

우두머리는 끝가지 수첩의 목록을 읽은 다음 꾸뻬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이 자를 풀어줘.”-119-121

 

꾸뻬는 아마도 여행을 다녔고, 여행을 다니는 동안 나쁜 사람을 만나 자신의 수첩을 빼앗겼다가, 그 수첩에 적힌 내용 덕에 풀려난다는 이야기?

조금 궁금증이 생겼다.

그냥, 한가하게 거닐면서 도닦는 소리나 늘어놓는 재미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싶어 안심을 했다.

어쨌든, 사건이 일어나긴 한다는 말이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꾸뻬의 행복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꾸뻬가 알게된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진짜 진짜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목록이 죽 이어지고, 여행이 끝나갈 즈음 꾸뻬 씨의 목록도 끝이 나게 된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읽는 동안 생각할 거리를 안겨 주는 책이었다.

음..그리고 치르치르, 미치르가 나오는 <파랑새>가 생각났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에요.

바로 내 손 안에 있어요.

꾸뻬 씨도 멀고 먼 여행을 다녀와 목록을 남겼고, 자신이 여행에서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살고 있다.

비록 멀리 돌아왔지만, 답은 멀고도 가까운 곳,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게 아닐까.

마음 공부 한 바탕 , 크게 하게 된 시간이었다.

꾸뻬 씨의 여행과 파랑새의 결합으로 마무리 된 독서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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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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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매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드나들었다는 카페 드 플로르의 표지사진과 함께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책이 도착했다.

 

역사를 관통하고 지식의 근원을 통찰하는 궁극의 수수께끼.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바꿔 말하면 하이데거가 <형이상학 입문>에서 제기했다는 의문 ‘세상은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와도 상통하는 질문이다.

지금 이 시각 현재 2013년 6월 25일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런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철학 같은 어려운 용어는 일부러 기피하려 했고, 가끔 날이 흐리거나 사색하기 좋은 날에만 가끔 하늘을 우러러 보며 “아~~”하는 장탄식에 삶의 무게를 실어 날려 보내곤 했을 뿐이었던 평범한 사람이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나같은 보통의 가정주부가 매일같이 맞이하는 북새통의 아침, 점심, 저녁 그 사이에는 이런 묵직한 철학적 주제와 문제의식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버겁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은 철학자들에게 맡겨 버리고 대충대충 살았다.

그런데도 제목에 왠지 눈길이 가고 마음이 이끌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역시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명제가 생활의 번잡함보다 더 상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일까.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볼테르, 흄...벌써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쟁쟁한 철학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으흠...”하고 장광설을 늘어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존재의 수수께끼라는 문제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없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이 문제 앞에서 똑같이 무지할 뿐”인 것이다.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용감무쌍하게 당대의 저명 인사를 만나 이 질문에 대한 인터뷰를 거치며 수수께끼를 밝혀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당당히 책으로 펴냈다.

그것도 아주 재기발랄하게.

제목이 내뿜는 위용에서 한 번 놀랐다면, 몇 장 안 넘기는 동안 나오는 이름들에 한 번 더 놀랄 것이고 더 나아가 이름만 들어도 골치 아파지는 사람의 대명사인 철학자들과 여러 학자들이 열거됨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는 사실에 마지막으로 놀라게 될 것이다.

철학과 신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 본질의 문제를 깊고 깊게 탐구해가는 방식이 너무나 재미있다.

어려운 제목의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는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저자는 그것을 이루어냈다 .

 

핑퐁, 핑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여기서 저기로, 튀고 튀면서 주고받는 문답이 마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순간을 앞둔 탁구 경기와도 같다.

포레스트 검프의 그 유명한 탁구 장면을 기억하실는지.

짐짓 유쾌하면서도 집중을 잃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 명장면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문답이 펼쳐지니, 책을 덮으려 하다가도 다시 넘기고 넘기고 하는 동안 푹 빠져들게 되는 신기한 책이다. 종교와 과학 철학자, 인문학자, 생물학자, 끈이론가들과의 논쟁, 그리고 하이데거와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등 과거 학자들의 연구, 존 업다이크와의 인터뷰 등등.

일부러 찾아 읽으려 해도 이런 조합들은 쉽지 않을 텐데, 저자의 땀방울에 힘입어 책 한 권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복잡한 이론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가 이 문제 하나를 놓고 파고드는 분야는 실로 다양하고 방대한데 그가 다룬 영역 중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라는 질문이 유독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린데 교수의 ‘혼돈 인플레이션’이론을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 중에서 [취급 주의:부서지기 쉬움]이라는 단편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혼돈 인플레이션 이론을 고안했을 때, 나는 우리 우주와 똑같은 우주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고작해야 수십만 분의 1그램 정도에 불과한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 수천억 개의 은하들로 폭발할 수 있는 작은 진공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충분하니까요....그렇다면 과연 어떤 존재가 우리가 실험실에서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34

 

꼬마 조물주를 선택하신 행복한 구매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세계를 창조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지게 될 이 작은 세계를 우주라 부르기로 합시다....빛의 씨앗을 심는 것, 다시 말해서최초의 섬광을 일으키는 것을 빅뱅이라고 합니다. -189 <나무>[취급 주의:부서지기 쉬움]베르나르 베르베르, 2003, 열린책들.

 

여기서 저자가 잠깐 소개한 이론으로부터 베르베르의 <나무>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나는 황홀함을 느꼈다.

과학에 대한 많지 않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저기로 이어지는 매개점을 찾았을 때, 나도 세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커다란 비밀을 발견한 것만 같은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단지 책을 읽고 이 책과 저 책의 내용을 연관지어 본 것 뿐인데...이것이 바로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책 옆에 연관되는 책 몇 권이 쌓이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

“잘했어..쓱쓱.”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사고의 방식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는 구절처럼,

이 책의 구석구석에 이런 식으로 공감 100배 할 수 있는 종류의 글들이 숨어 있다.

그걸 찾아서 밑줄 좌악 긋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미 십 대 때에 존재의 수수께끼에 흥미를 가진 짐 홀트.

그가 엮어내는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있는 철학적 대화는 위대한 인터뷰이에 대한 세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어우러져 최고의 책으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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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의 아이들 - 천재들의 식탁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양경미 옮김 / 씨네21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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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의 아이들>

천재들의 식탁

 

어째서, 교육학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라블레의 이름이 음식 에세이에 출현하는가?

그리고 천재들의 식탁이라면서 아이들은 또 뭔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제목과 화려한 음식의 향연에 이끌리어 몇 번 집었다 놨다, 집었다 놨다 한 끝에 펼쳐 든 책이다.

첫머리에서 제목에 대한 미스터리는 풀렸다.

 

라블레의 작품 속에는 먹을 것들이 풍성하다. 16세기의 프랑스에서 살며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기괴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거인에 관한 이야기를 쓴 이 문학자는 작품 속에 음식 이야기를 즐겨 등장시킨다.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대식가로, 그들은 종종 향연을 벌이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소시지며 내장 요리들을 앞에 두고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5

 

아하~~

그래서 저자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음식을 탐하는 먹보에 비유하고, 라블레의 아이들이라 칭한 것이었다.

예술가들이 남긴 레시피집 혹은 후세의 전기를 통해 예술가들의 식탁을 복원하여 눈앞에 펼쳐보여주는 대단한 작업.

과거에 쓰여진 책과 미지의 요리에 대한 관심을 기쁜 마음으로 해낼 사람이 아니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기획이 아닌가.

대부분 과거 속의 인물이 되어 버린 먹보 예술가들을 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으로 다시 되살리는 작업

믿을 수 없지만 그 작업은 이루어졌고, 저자의 훌륭한 글솜씨와 어우러져 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예술가와 그에 따른 음식을 정하는 작업을 위해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야 했고, 실제 조리를 해야 했고(정작 저자가 직접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감잎 초밥과 사이토 모키치의 우유 장어덮밥 뿐이었다고 한다.), 촬영을 해야 했던 과정 끝에 탄생한 이 책.

 

목차를 주욱 훑어 보니, 천재들의 식탁답게 평범해 보이는 요리 하나가 없다.

 

 

 

 

게중 눈에 익은 것이라면 다치하라 마사아키의 한국풍 산채 요리랄까.

일본인 저자가 일본의 한국인 작가(김윤규)에 대해 쓴 글이라 낯설게도 한국‘풍’ 이라고 이름 붙이니...그마저도 어색하다.

롤랑 바르트의 덴푸라,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귄터 그라스의 장어 요리, <금병매>의 게 요리, 마리 앙투아네트의 과자, 이사도라 던컨의 캐비아 포식, 사이토 모키치의 우유 장어덮밥 등. 대충 눈에 띄는 몇 가지만 나열해봐도 그 면면들이 독특하다.

유명 예술가들이라도 그들의 작품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음식에 초점을 맞추니 이런 희한한 조합이 탄생하는구나 싶었다.

카메라의 앵글을 조금만 달리 해도 보이는 풍경이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한 사람 한 사람의 예술가가 위대한 예술가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살다간 시대의 역사와 정치와 문화와 예술을 그 한 몸에 오롯이 새긴 인물들이라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음식의 사진과 명문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배불러온다.

 

 

롤랑 바르트에게

덴푸라는 거의 순수한 표면으로 되어 있는 이상적인 음식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튀겨진 실물 덴푸라가 아닌 그것을 튀기는 기름의 처녀성이라고 그는 썼다. -16

 

 

 

 

<귄터 그라스 40년>이라는 에세이집을 펼쳐보니 장어 요리 레시피뿐만 아니라 화가이기도

한 그라스가 그린 장어 데생이 게재되어 있다. 거기엔느 장어가 인간의 엄지발가락에 희롱당하고 있는 모습이, 페니스인지 대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대지와 물이라고 하는 에너지의 권화로 묘사되어 있다. <양철북>에서 어머니가 장어를 보고 구토를 하는 것은 그 나름의 무의식에서 유래한 동기부여가 있었던 것이다.-88

 

 

 

 

<금병매> 속에는 배불리 먹을 요리들이 잔뜩 들어 있다. '방해선'은 게의 등딱지 속에 게살을 꽉 채워 향신료 를 뿌려 튀긴 요리이다. 게는 먹고 싶지만 게살을 빼먹는 것을 귀찮아하는 부자들이 생각해 낸 요리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게살은 여성 성기의 별칭이기도 하다.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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