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기담집] 최고의 단편은...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라는
제목도 긴...단편이다.
흔히 SF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이, 휙 사라졌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을까?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가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현실이 아닌 수학적인 공간에서 이동을 시킨다면 ...
애니메이션 <호튼>에서처럼 닥터 수스가 그려내는 초미시의 세계로 뿅~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면...
절대로 인간이 확인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의 이동이라면...
평범함을 거부하는 물리학자 이기진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물리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곳이 "벼룩시장"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물건 속에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의 축이 있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 벼룩시장이라고. 어떤 사람에게는 버려진 물건이나 쓰레기 정도로 치부되겠지만 그곳엔 분명 서로 다른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골동품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 물리학적인 지식과 어우러져 묘한 문학적 감수성을 드러낸 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하루키가 전하는 이 단편에서의 기묘한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한 여자가 의뢰를 해왔다. 부부는 한 맨션의 24층에 살고 있었는데 비가 꽤 많이 쏟아지는 날 26층에 사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남편이 돌봐드리려고 찾아갔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비가 오는 날이면 신경증에 시달리는 시어머니는 자꾸 전화를 한다고 했다. 남편은 26층까지 계단을 이용하곤 했는데, 25분쯤 후 집에 갈 테니 아침을 준비해놓으라는 전화를 한 뒤로 그 길로 사라졌다.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여자의 남편은 기이하게도 20일 뒤 집을 나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센다이 역 벤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20일 간의 기억은 깨끗이 사라진 채.
"구루미자와 씨.(...) 현실 세계에 잘 돌아오셨습니다. 불안신경증의 어머님과 아이스피크 같은 하이힐의 부인과 메릴린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에."-120
단편 속 "나"는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 코끼리인지, 아무튼 척 보면 알게 될 "그것"을 찾고 있다. 누군가 갑자기 현실 세계에서 사라졌을 때 그 누군가의 흔적을 찾는 것은 "문 같은 것"을 찾기 위해서다.
벼룩시장에서와 같은 기묘한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것을 단편 속 "나"도 찾고 있는 것일지도...
아니, 어쩌면 사실은 기이한 것을 찾아다니는 "나"는 그저 관찰자에 불과할 뿐.
현실세계에서 다른 공간 혹은 시간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소설 속 '구루미자와 ' 본인의 의지가 아닐까.
감당하기 힘든 삼각형의 세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구루미자와 씨를 "순간이동"과 함께 "20일간의 기억상실"로 내몬 것은 아닐까.
기이한 이야기는 그저 기이한 대로 놔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애써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하면 그것 때문에 못내 씁쓸함만이 밀려올 뿐.
기담집의 형식을 빌어 그저 기담으로 기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