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기다리는 시간 강석기의 과학카페 9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9 [과학을 기다리는 시간]

 

[과학 한잔 하실래요?]부터 시작된 강석기의 과학카페가 벌써 9번째 시리즈를 맞이했다. 계속해서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것의 흐름을 눈으로는 좇으면서 정작 진중하게 찾아 읽어볼 생각은 못했었다.

왜냐고? 나는 문과니까. ^^

과학에 관한 담론은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작년 12월경부터 슬금슬금 피어오른 코로나19에 관한 이슈들은 내 생활 일부분이 되어 날씨 다음으로 챙겨보는 뉴스 중 하나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학생 개학 연기, 백신 개발.

코로나19는 우리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모임을 잡기 힘들어졌으며 가족 외식조차도 마음놓고 다니지 못하고 항상 어딘가에서 감염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밀페된 공간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하므로 마스크 쓰기는 필수.

집 나가는 일이 고역이 되어 가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마스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온갖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2003년 사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동남아로의 여행만 피하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방콕으로 신혼여행 다녀옴!!-그리고 무사했다!!) 지금은 지구촌 전체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과학에 아무리 무지한 자였어도 이제는 사스, 메르스를 잇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주자, 코로나 19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감염병 관련 강연자가 나서는 과학 프로그램을 즐겨 보게 되었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언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흘려보지 않게 되었다.

백신은 언제 어느 나라에서 먼저 만들게 될까?

코로나19가 촉발한 미중패권 구도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예전의 스페인 독감과 같은 팬데믹이 우리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기술되었고 우리나라에도 감염병의 계보가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덕분에 [과학을 기다리는 시간]을 읽어내는 데 있어서 흥미가 배가되면 배가됐지, 그 어떤 꼭지도 지루하다든가 하는 생각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과학 상식을 재미있다 여기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

 

지금까지 <과학카페>는 전년에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수십 편을 골라 내용을 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는 코로나19를 전면에 내세웠다.  1파트 '바이러스의 급습'은 코로나19 관련 글 다섯 편과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다룬 글로 구성되었다. 2파트 '핫 이슈'부터 8파트 '생명과학'까지는  예년의 구성으로 돌아와 각 네 편씩의 글을 실었다. 부록에서는 2019년 타계한 과학자 14명의 삶과 업적을 간략하게 되돌아보았다.

 

각 글들은 가장 최근의 과학에 관한 글을 싣고 있어 신선한 정보를 얻는 기쁨을 준다.

글의 형식도 다양한데, 특히 코로나19관련해서 유력한 백신으로 떠오르고 있는 "램데시비르"에 관한 정보를 "램데시비르의 자소서" 형식을 빌어 쓴 부분이 재미있었다.

유쾌하면서도 유익한 램데시비르의 이야기를 보며 저절로 램데시비르의 활약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아직은 많이 낯선 '양자역학'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양자컴퓨터가 바꾸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생활과 친숙한 예를 들어 주었기에 반 정도는 눈에 씌워져 있던 막이 벗겨지는 것 같았다.

양자(quantum)란 전자나 양성자 같은 어떤 입자의 이름이 아니라 에너지 같은 물리량의 최소 단위를 뜻하는 용어였다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ㅠㅠ

각자 짜장면을 먹는데도 짜장 소스가 걸쭉한 채로 있거나 녹아 국물이 되는 것은 "아밀라아제가 전분을 분해해 점도를 떨어뜨리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은 짜장면 먹을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에디슨이 실제 하루 4-5시간만 잤던 것도  그의 유전형 덕분이지 다른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란 것도 커다란 위안이 된다.

 

저자는 과학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어제" 생소한 논문을 읽고 "오늘"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그만큼 생생한 정보를 부지런히 물어날라 주기에 편하게 앉아 (과장 조금 보태서) 만화책 읽듯이 과학을 마주하게 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풍부한 지식, 지루할 틈 없게 만드는 입담.

이것 말고 과학 에세이 작가에게 더 무엇을 바랄까.

코로나19는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지만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나를 '과학'의 세계로 인도하고 <과학카페>도 만나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과학카페> 시리즈는 쭈욱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와 자극을 추구하는 다빈치를 만나다 [인간의 척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마디로 천재다. 르네상스 시기를 살았으며 지금의 우리에게 르네상스적 인간이란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본이기도 하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궁정 기술자.

이 인물을 현대에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다빈치가 남긴 메모라든지 그 시대에 관한 연구서적 등과 같은 참고사항들과 더불어 작가의 용기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소설이기에 역사서가 가져야 하는, 사실에 기반한 기술이 필수적이지는 않았다.

 

레오나르도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기념하는 말 동상을 마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레오나르도가 동물의 비율에서 규모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사실이지만 두 가지 일이 연관되었다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상상이라며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다.

 

다빈치 같은 천재를 주인공으로 책을 쓸 때 상상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저 실수 정도가 아니라 다빈치에 대한 결례라고 믿는다.-354

 

[인간의 척도]에는 스포르차 가의 밀라노 역사와 도시 개발, 15세기 페라라의 관용구, 당시 패션과 갑옷의 역사, 금융 역사에 관한 전문 지식들이 많이 들어 있다.

탁월한 르네상스형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재구성해내는 데 있어 작가는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다 빈치가 밀라노에서 지내던 시기에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돈이 근본적이고 관념적 가치가 된 최초의 사회 중 한 곳인 피렌체에서의 돈의 중요성도 살펴볼 수 있었다.

르네상스가 예술적, 과학적, 사회적 모든 측면에서 가장 완전하게 발전한 도시인 밀라노와 발전의 중심지인 루도비코 일 모로의 궁정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사십 대 정도에 긴 분홍색 로브를 입고 혼자만의 생각에 푹 빠져 특유의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묘한 남자. 그는 자기 작업실 위층에서 어머니와 그가 대단히 예뻐하는 장난기 많은 소년과 함께 산다. 고기를 먹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며, 고용주들에게 돈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가 심장 근처에 숨겨둔 공책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 소문만 무성하다.

거기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도시 경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가능한 자동 기계의 비밀 무기 도안?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비밀?

빛과 거울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편지?

남자는 그저, 자신에게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치 않은 것들이 쓰여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남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고 있는 밀라노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피아찰레 델레 아르미에서 남자가 죽었고, 밀라노의 군주이자 마키아벨리적 면모로 가득한 루도비코 일 모로는 다빈치를 불러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라고 명한다. 죽은 자는 다빈치의 전 제자였던 람발도 치티였으나 다빈치는 루도비코 앞에서 그를 모르는 척 한다.

 

다빈치는 사건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지 잘 안다. 그를 따라붙는 여러 개의 감시를 피하면서 자신의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함도 안다. 나폴리, 밀라노, 페라라, 베네치아, 피렌체 거기다 프랑스 왕과 아라곤가까지. 호시탐탐 서로를 넘보는 나라의 군주들 틈에서 다빈치는 누군가가 짜놓은 거대한 전쟁의 시나리오를 마주했고 그 계획을 꿰뚫어 보았으며 가장 중요한 돈의 흐름을 알아차렸다.

 

은행이 파산하고,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고, 돈이 부족해진다. 은행가들은 파산하며 도시를 끝없은 구렁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세금에 지치고 위기로 분노한 사람들이 군주 자리의 경쟁자를 불러들인다.

 

다빈치는 화폐 위조라는 '실수' 에 빠져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제자가 불러일으킬 커다란 나비효과로부터 밀라노를 구해낸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를 짜고 착착 계획을 실현시키려던 누군가는 다빈치를 자신의 곁에 두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다.

 

시대가 낳은 천재 다빈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생생하게 묘사한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처음의 현란한 르네상스적 수사법에 좀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이야기의 구조는 쉽게 따라갈 수 있으리라. 좀 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다빈치를 따라가다 보면 창의융합적 인재인 다빈치를 만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한 가족의 행복이란...[요리코를 위해]

 

[요리코를 위해]는 2012년에 발간된 적이 있다.

이번에 신장판으로 나온 것인데,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이름값이 부쩍 뛰어 내게도 낯설지 않은 편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조금은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내용의 추리로 정평이 나 다가가기 어려운 작가였는데 이 작품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요리코를 위해]는 탐정이자 추리소설 작가인 노리즈키 린타로와 그의 아버지 노리즈키 사다오 경시가 등장하는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가족의 비극을 다룬 3부작 중에서는 첫 번째 작품이라 하니, 그 뒤의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어진다.

 

사건은 이렇다. 17세인 딸을 죽인 살인범을 찾아 살해에 이르는 아버지의 복수극임을 알리는 수기가 발견된다. 평화로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된 여학생 요리코의 아버지 유지는 지나가던 성범죄자의 범행이라는 말을 듣지만 고독한 추적 끝에 진범을 찾아내 살해한 것이다. 그 후 유지는 요리코의 뒤를 따라 자살을 시도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는 이 사건의 재조사 요청을 받고 유지의 수기를 읽는데 어딘가 석연찮음을 느낀다.

이 소설은 유지의 수기로부터 시작되는데, 죽은 딸의 복수극을 계획하는 아버지의 심정에 동화되어 읽다 보면 작가가 쳐 놓은 함정에 쑥 빠져들고 만다.

분명히 사랑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인범을 찾아 나섰던 것인데 노리즈키 린타로의 눈에는 수기에서도 어긋난 점들이 하나 둘 보이고 주변 사람들도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다.

 

요리코의 부모는 일견 추리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이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다. 아버지는 대학 영문학부 교수이고 어머니는 14년 전 끔찍한 사고로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아동문학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수기에서는 딸과 아내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밝혔던 유지의 말 어딘가에 거짓말이 숨어 있다. 애절한 아버지의 수기에 얽매어 있던 독자는 아버지의 심중진의를 쉽사리 파악해내지 못하고 탐정 노리즈키의 뒤만 따라다니게 된다.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요리코. 아이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인가?

 

가족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최초의 남과 여가 있어야 하리라. 그들은 열렬하면서도 성실하고도 신의있는 사랑을 했다. 마침내 사랑하는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사랑의 결실도 맺었다. 아이는 그들의 사랑 사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걸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았다면 이런 파국은 없었을 것이다. 과유불급. 너무 과한 사랑은 균형을 일그러뜨린다. 맹목적인 사랑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책장을 덮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는 진정을 다하지 않은 겉모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자신에게 온전히 돌아오지 않는 사랑 때문에 뒤척이고 의심하고 급기야 잘못된 선택을 한다.

 

참담한 가족사를 하나 하나 까발리는 데 있어 노리즈키 린타로는 속도조절 따위 하지 않는다. 작품의 말미에 거침없이 쏟아내는 진실의 언어들. 그럼에도 각자의 속내를 짐작하여 입을 다물어야 할 때는 꾹 입을 다물고 만다. 아니면 너무나도 무표정인 그 냉혈한 앞에 무릎을 꿇고 만 것인지도.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어딘가를 맴돌았던 한 가족의 아픈 이야기에 따뜻한 봄날임에도 소소한 소름이 돋는다.

 

 

오랫동안 방학이 지속되다 보니 아이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아서 잔소리가 폭풍처럼 쏟아지는 봄날이다.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n번방 운영자에게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길 원하고, 코로나 19가 빨리 종식되어 아이들이 학교로 나가게 되기를 원한다. ^^

평온하지만 찻잔 속의 폭풍도 공존하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 보면 행복한 가정의 모습에 가까워져 가게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균형 잡힌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잔혹한 세상에 보내는 가슴먹먹한 기록[Q&A]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큐브 하나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최대한 단서를 모은 다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순서대로 풀어나간다.

쉽게 풀리기도 하고 중간에 턱 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과정을 즐기며 다 풀고 나면 성취감과 함께 고른 숨을 커다랗게 내쉬게 된다.

울 아들이 큐브를 푸는 걸 보면 무슨 공식에 따라 척척 해내던데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탓인지 추리소설의 공식에 대입해서 문제를 풀어내지는 못한다.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추리소설은 우리에게 현실과 다른 놀거리를 제공한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상쾌'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거라고 한다.

사람이 죽는데 상쾌함이라니, 하는 이상한 번감이 일지도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죽음은 현실에선 일어날 리 없는 가공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습니다, 라는 초대다.

소설이 끝나면 다시 아무 일 없는 무사평온한 세계로 돌아올 수 있으니 안심하고 발을 들이라는 말이다.

 

추리에서 변하지 않는 공식이라 함은 일단,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리라.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연립주택을 지나가던 노숙자가 피냄새를 맡고 경찰에 신고한다. 피해자는 심장에 칼을 찔려 죽었는데 기묘한 것은 잔혹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표정에서 행복감마저 느껴진다는 것이다.형사 K와 감식관 C는 시체 옆에서 피에 젖은 노트 한 권을 발견하고 기묘함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한발짝 걸어들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노트에는 범인과 피해자의 문답으로 읽히는 Q&A가 영어로 적혀 있다.

 

Q.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Q. 당신은 누구?

Q.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는가?

 

질문은 간결하다. 철학적이기 까지 한 질문이지만 답을 읽어가다 보면 훌륭한 추리소설의 구성과 반전이 드러난다.

불행한 어린 시절, 이라기보다 자신의 의지가 발현되기도 전인 처음, 그렇다, 시작부터 꼬일대로 꼬여 버린 인생은 Q에게 세상이 잔혹하다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했다.

Q는 아무 죄도 없는데 사랑해주어야 할 사람에게서 버림받았다.

사랑이 넘쳐야 할 성당에서 버림받았다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Q의 마음에는 공허함만이 남아서 그 마음 속에 깊고 어두운 공동을 품게 되었다.

성당은 어리고 약한 이들의 목숨은 구해주었지만 마음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라는 아이러니.

따스한 것을 보면 입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Q는 한 사건을 계기로 더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게 됐다.

 

우리는 이날 밤 부조리한 현실에 품은 분노를 떨쳐버리고 잔혹한 세상을 받아들였다.-38

 

괜시리 무겁고 슬프고 불쌍하다.

 

노트 속 담담한 문답에는 일기도 포함되어 있다.

마음 속 찌꺼기를 가감없이 토해내는 일기라는 형식이 애절함을 더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두 사람이 만났다. 그 만남의 결과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살인이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부주의로 짓밟힌 어린 마음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었다.

마음 하나를 잘 돌보는 일에는 많은 것이 필요함을 알겠다.

따뜻한 사랑과 관심, 그로 인해서 자라나는 떳떳한 자존감. 나를 알아주는 친구.

 

고바야시 히로키의 데뷔작인 [Q&A]는 온다 리쿠의 [Q&A]처럼 문답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인터뷰는 아니다. 게다가 살짜쿵 비밀을 하나 말해주자면, 위의 사진에서  [Q&A]의 글자 크기에 주목하라. [Q&A]는 문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잔혹한 세상에 보내는 가슴먹먹한 기록[Q&A]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잔혹한 세상과 그들이 마주한 처절한 현실에서 택한 결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문학 #[Q&A] #추리소설 #가장슬픈살인 #고바야시히로키 #데뷔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캉하지만 단단한 여섯 개의 단편 모음[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작가정신  #구라치 준 #두부 모서리 #단편 #추리소설

 

작가정신에서 나온 이 단편집은 우선 제목에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나?

실소를 머금으며 제목을 보고 난 뒤에는 호기심과 함께 해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 오른다.

범인은 누구인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

열심히 읽기는 하지만 제대로 범인을 찾은 적은 거의 없는 나이기에 추리소설은 언제나 신선한 법. ^^

어쨌든 누구나 호승심을 가지고 덤벼들 법한 이 단편집은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여섯 편의 단편 중 무엇을 먼저 읽을까? 목차를 훑었는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다섯 번째에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표제작이 어디에 있든 호기심을 꾹꾹 눌러가며 순서대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목을 보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가장 먼저 펼쳐 보게 되었다.

단편 하나만으로도 꽉 차 오르는 만족감!

구라치 준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기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읽을 수 있었는데

유머러스와 준엄함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다.

발자국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하얀 설원 위에 자리한 연구실. 밀실이라 할 수 있는 그 곳에서 한밤중에 이등병 하나가 죽었다.

그는 전날 밤 연구실의 박사로부터 게으르다는 말을 들었고 박사가 한 말 중에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어버려라.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 같으니."라는 대사도 있었다.

시체는 앞으로 쓰러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두부가 흩어져 있었다.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최소한의 단서가 던져진 다음,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태평양 전쟁 시기의 배경이 다소 생뚱맞고 어색하지만 그렇기에 수상한 연구-공간을 뒤집는다-가 묘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미치광이 같은 박사의 열띤 논리에 훅 빠져들어서 과연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곧  냉정한 판단력의 이등병이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다.  

웬일인지 이 작품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어서 다음 단편을 읽을 때까지 시간을 좀 두었다.

한 번에 훅 읽어버리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두 번째 단편을 신중하게 고르려고 했는데, 묘한 안배로 음식명을 제목에 넣은 두 번째 작품이 바로 눈에 띄었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이번에는 파티셰가 되기 위해 전문 학교를 다니고 있던 젊은 여성의 시신이다. 다만 기괴한 것은 시신의 입에 파가 길다랗게 꽂혀 있었다는 점이다. 머리 위에는 세 개의 케이크가 나란히 놓여 있다. 신원을 파악하자 곧 용의자가 특정되었다. 그녀를 한참을 따라다녔다는 스토커.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가 관건이 되는데 그 왜?를 추리해 나가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연출해 버린 스토커의 마음 속을 읽는 것이 어디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쉬운 일일까.  

짧은 분량이었지만 임팩트 있는 단편이다.

 

다음으로는 남아 있는 네 편의 단편을 순서대로 주욱 읽어버렸다.

<ABC살인>, <사내 편애>, <밤을 보는 고양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ABC살인>에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온다. 하지만 정말 이유 없는 살인이 있을까? 도박빚에 유산을 탕진한 그는 동생을 죽여 돈을 얻고자 한다. 때마침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조금의 우연만 덧붙인다면 <ABC살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후에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원래 목표인 동생을 아무런 흔적 없이, 의심받지 않고 없앨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이고 싶다, 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남자를 통해 우리의 등에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어두운 그림자를 형상화해낸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모방범, 편승범 덕분에 정작 원하는 살인을 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남자를 향한 조롱을 보낸다. 거 봐, 그러다 너만 힘들잖아...힘 잔뜩 주고 읽는 와중에 가벼운 펀치 한 방 날리면서 스르륵 힘을 풀게 만든다.

 

<사내 편애>는 좀 결을 달리 하는 으스스한 이야기다.

미래에 올 지도 모르는 사회?

마더컴이 회사를 지배하며 사원들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는 설정이다. 승진, 연봉 인상, 전근, 자리 재배치, 영전, 배속, 인사이동, 입사 시험 등을 체계적으로 행하는 종합식 기업인사 관리운용 총괄시스템.

여기에 아주 약간 인간적인 모호함을 넣었더니 예외가 생겨버렸다. 마더컴이 한 사원을 노골적으로 편애하게 된 것이다. 그는 마더컴이 자신을 편애한다는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받는다. 결국 회사를 사직하고 이직을 결심한 그는 다른 회사 면접을 가게 되었는데, 그 회사의 마더컴은 그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완전히 빵 터지는 결말을 던져 주며 블랙 코미디의 여운을 진하게 남긴다.

 

그 외 <밤을 보는 고양이>,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에는 고양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펼쳐볼지도 모르겠다.

구라치 준의 데뷔작이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라고 하니 전작을 읽은 사람은 네코마루 선배가 익숙할 것 같다.

 

두부라는 소재 덕분에 말랑말랑하면서 유머러스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추리소설의 단단함도 보았다. 본격 미스터리와 일상 미스터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작가라는 평이 이해가 된다.

작가정신 출판사가 픽한 추리소설 작가로 "가와이 간지"를 관심 있게 보았는데, 앞으로는 구라치 준에게도 눈길을 돌려 볼까 한다.

유즈키 유코의 <고독한 늑대의 피>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러고 보니 작가정신의 픽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데가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