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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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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어푸어푸...푸합~" 이 " 자연스럽게 "음~ 파"가 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수영을 배운 지 3주차에 접어든다.

수영에 있어서는 생 초짜인 내가 첫 강습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우등 뜨기'라는 것을 체험했을 때, 내 폐가 온전하게 제 기능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감격했다.

걸어다닐 때는 그렇게 육중했던 내 몸이 물 속에서 뜨다니...

폐의 신비함을 알고 나서는 물이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물에 빠지면 숨을 오래 참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팔과 다리의 움직임, 그리고 정상적인 폐만 있다면 수영이란 걸 해서 물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첫날 수업의 크나큰 수확이었다.

 3주가 지난 지금은 직사각형의 실내수영장에 가득 채워진 물이 더이상 나를 삼킬 무서운 것으로 보이지 않고 내 몸을 받쳐줄 쿠션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일 아침 셔틀버스를 타고 수영장으로 향할 때 내 마음은 요지부동 고요하기 그지없는 잔잔한 수면 상태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꽉 차오르는가 하면 어떤 날은 이래서야...언제...하며 기가 팍 꺾이기도 했다.

아직 숨쉬기가 익숙지 않았을 때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하며 기나긴 라인을 한 번 가는 동안 오로지 살 길은 머리를 물 속에 넣은 잠수 상태에서 오로지 숨을 오래 참고 빨리 도달하는 것뿐이라 여겨 죽자사자 숨을 참았었다.

고래가 등줄기에서 물을 뿜듯 긴 한숨을 세 번 내쉬기 위해서 물 속에서 숨을 참는 시간 동안 폐에서는 산소가 고갈되어 갔고 임계점에 도달할 때 즈음엔 물 속인데도 가슴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요령부득이라 온몸엔 힘이 뻣뻣하게 들어가고 숨을 그저 참으려고 애만 썼으니 가끔 숨을 내쉬려 고개를 들면 연거푸 물을 들이키기 일쑤였다.

이게 짠 바닷물이면 어쩔 뻔 했어...역시, 물은 쉽게, 만만하게 볼 게 아니구나.

이런 날은 다음 날 다시 수영장 오기까지 용기가 많이 필요했다.

 

수영 첫 강습부터 3주차인 지금까지 내 짧은 수영 도전기에 비추어 보면 인생은 얼마나 길고도 긴 것인지...

짧은 기간 동안 익숙지 않은 "수영"이라는 것에 도전하면서 변화무쌍한 기분의 변화를 맛보았었다. 아마도 이 기간의 몇 곱에 몇 곱을 해야만 도달할 것만 같은 내 삶에도 천변만화의 일상들이 존재했겠지만 시간이 나를 무디게 만들어 기억의 저장고에서 많은 것들을 훨훨 날려보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들을 매일 기록해두지 않으니 다시 그 일을 겪을 때마다 새롭기만 하다.

기왕 사는 거, 안 좋은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일들만 기억하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대책없이 긍정적인 나라는 사람.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의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또 스르륵 빠져든다.

숨을 참는 것처럼 매사 그저 꾸~욱 눌러눌러 참아내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던 나에게 유쾌한 심리학자 김혜남이 재미있게 사는 법을 일러준다.

 

파킨슨병, 루게릭병, 알츠하이머 등등.

내게는 아직까지 낯선 외계어로 느껴지는 병명들인데

누구보다 그 병의 정의와 증상, 대처방법 등을 잘 알고 있을 정신과 의사 김혜남이 그 중의 하나,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의 손상으로 인해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신경퇴행성 질환.

나는 아직 그 증상들을 무덤덤하게 나열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병을 선고받은 사람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자문하며 하늘을 원망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며 병에 굴복하여 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늘 일어나고, 내일도 일어나며 15년을 버텼고, 매일을 재미있게 살고자 했다.

설교조나 훈계조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면 일찌감치 이 책을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유쾌한 짐'이 되기로 결정했다는 그녀는 편안한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자신이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지혜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니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을 즐겨라.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122

 

그렇다면 나도 ..."수영 잘 하고 싶다" 라는 말을 덥석 따라 해 본다. ^^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 정말이지 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37

 

나도 매일을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술술 댈 수 있으면 좋겠다.

3주차 수영 강습조차도 숨쉬기와 팔젓기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면서 매일 아침 셔틀 버스에 몸을 실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는 내게 삶의 재미를 "강요" 하지 않고 몸소 보여준 작가의 이야기에 은근히 마음이 동요된다.

어푸거리며 소독된 수영장 물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삼켰다 내뱉고 팔과 다리에 쥐가 나도록 흔들어대는 이 지옥같은 과정이 끝나고 나면 휴양지에서 선탠하는 멋쟁이들이 연출해내는 화보 속 늘씬한 미녀들의 그림같은 수영 장면을 나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을 꾸며....꿈이라도 꾸어보며...

파킨슨병이라는 병명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매일매일에 용감한 한 걸음을 성큼성컴 내딛는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간다.

충고라면 아니꼽게 여기며 "흥!" 해버렸겠지만 많은 이들이 대부분 겪을 정신적 상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해 온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하는 말이기에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책을 다 읽어갈 즈음...저절로 알게 된다.

이심전심, 염화미소...뭐 이런 것?^^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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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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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인생의 조감도 [조지프 앤턴]

 

"종교와 문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더 타임스

 

밋밋한 인생이라면 자서전에 굳이 새겨넣을 필요는 없으리라.

살만 루슈디라는 독특한 이름 만큼이나 인상 깊은 삶을 거쳐 왔던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조감"하는 형식으로 남겼다.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나"로 서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자서전은 한 편의 거대 서사를 읽는 느낌을 선사한다.

루슈디의 인생을 녹여낸 이 자서전은 쓰고도 걸쭉한 진액 한 사발을 마신 듯한 뒷맛을 남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망,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대한 비판 등을 신랄한 말투로 여과 없이 뱉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피렌체의 여마법사]를 읽으며 알게 되었는데, 역사를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환상적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천상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천일야화] 같은 동양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때문인지 루슈디는 이야기에 제대로 생명을 불어넣고 그 대가로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진정한 이슬람학자이면서도 신앙심은 전혀 없었다는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 문자주의에 반기를 든 합리주의적 논증의 선봉에 섰던 이븐루시드를 존경하여 "루슈디"라는 성을 스스로 지어 가졌다.

 

무덤에 계신 아버지가 물려준 깃발, 이븐루시드의 깃발 아래서 그는 기꺼이 싸울 각오를 다졌다. 이 깃발은 지성과 논증과 분석과 진보를, 신학의 굴레를 벗어난 철학과 배움의 자유를, 인간의 이성을, 그리고 맹목적 신앙이나 순종이나 수용이나 정체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41

 

 

조지프 앤턴과 살만 루슈디는 동일 인물인데 어찌하여 그의 인생에는 이 두 개의 이름이 교차하는가.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가 도피생활을 시작하며 지은 가명이다. 존경하는 작가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한 것이다. 루슈디는 작품을 발표하거나 기고할 때는 여전히 ‘루슈디’였지만 은신처에서 신분을 감추고 지낼 때는 ‘앤턴 씨’ 또는 ‘조’로 불리는 이중생활을 했다.

 

2002년 ‘조지프 앤턴’에서 ‘살만 루슈디’로 돌아온 작가는 한동안 [악마의 시]라는 한 편의 소설이 부른 그 엄청난 사건을 극화하려는 상업적 시도에 끊임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 정부의 신변보호를 받은 기간 10년. 10년의 침묵 끝에 회고록 『조지프 앤턴』을 발표했다.

 

루슈디는 1947년 인도의 뭄바이에서 태어났지만 14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니게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과정에서 가족은 파키스탄에 정착하였지만 마음은 인도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심리적 무국적 상태를 겪는다. 깊은 외로움, 슬픔의 학창 시절을 거치는 동안 젊고 고집 센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방송국, 광고회사 등에서 일했다. 28세에 [그리머스]라는 첫 소설을 낸 루슈디는 [한밤의 아이들]로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 오브 부커스'수상작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쭉쭉 뻗어나가던 그는 무신론자를 자처했지만 자꾸 신앙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주제에 천착한 그는 [악마의 시]를 내놓았고, 이 작품으로 인해 이슬람 세계로부터 '종교모독'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란 정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호메이니 사망 후에야 사면을 받았다.

 

자유로운 창작의 전제 조건은 자유롭다는 믿음이다.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은 자신의 작품을 진정성의 산물로 인정해주리라는 믿음이다.-161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루슈디'라는 성에 기대어 용기를 한껏 끌어올린 그는 칩거 기간 동안에도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했다.

스스로는 "하찮은 싸움"이라 명명했지만 문학의 세계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워야 하는 작가에게 닥친 "억압"이라는 시련은 절대 "하찮은 "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루슈디의 가족, 학창시절, 작가로서의 삶,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랑, 등 인간 살만 루슈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자서전을 읽으며 모든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났다.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본다는 것이 가능한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살만 루슈디가 스스로 감옥 같은 삶을 이어가면서까지 지켜낸 "항거" 하나로 작은 초석이 놓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미 정치의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늘 원칙에 따른 주장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정작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은 닫힌 문 너머였고 그곳에서 원칙이 정책에 반영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개인으로서도 작가로서도 더 자유로운 삶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으니 더욱더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전선에서 동시에 치러야 하는 싸움이었다. -451

 

홀로 힘겨운 싸움을 치러낸 그는 드디어 입을 열었고, 우리는 지금 그가 얘기하는 "싸움"의 진상을 읽어내는 중이다.

살만 루슈디가 조감해낸 그의 문학, 그의 인생을 읽는 동안 우리의 자세는 바뀌게 될 것이다.

남의 것인 양, 저만치 높은 위에서 내려다 보다가 한 층, 또 한 층 내려오게 되고 결국에는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끈적끈적한 진창같은 우리의 현실을 느끼고 어서 빨리 이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기를 고대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 그 하나를 향한 갈망은 루슈디와 같이 호흡하는 동안 곧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은 우리를 성나게 한 자들의 노예가 되는 일, 그들에게 너무 큰 권력을 쥐여주는 일이다. 분노는 이성을 무너뜨린다. 광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을 굳건히 지켜야 하는 시기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인간의 권리와 윤리와 자유의 보편성을 믿기로 했다. -80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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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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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괜찮은 날 위로가 되는 베니 [그래도 괜찮은 하루]

 

 

 

소리를 잃고 빛을 잃어도 나에겐 아직 따뜻한 손이 남아 있어!

"앞으로 더 잘 부탁해"

 

안 그래도 잔인한 달 4월에

작년 세월호의 기억까지 더해져

노란 색만 보아도 왠지 울컥 해지는데..

노란 표지의 어여쁜 책이 "잘 부탁해" 하고 말하고 있다.

 

싸이월드 스킨 작가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구작가.

노란 색에 둘러 싸여 있으니 더욱 흰 빛이 두드러지는 토끼 "베니".

구작과와 베니는 동격이라고 보아도 상관없겠지.

 

 

 

그림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애써 용감한 척 하는 모습이 더욱 보듬어 주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녀는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잃었지만 겨우 용기를 내어 자기 대신 잘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베니"라는 귀가 큰 토끼 캐릭터를 창조했다.

적은 보수를 받으며 싸이월드 스킨 작가로 일하는 동안 지쳐갔던 그녀는 <다 귀찮아>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마음 가득 따뜻한 빨간 하트로 채운 그녀는 그림으로 나눔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곧 그녀에게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병이 찾아왔고 그녀는 이제 실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세상이 잿빛으로 변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그저 놓아버리고 싶을 것도 같은데.

구작가는 필리핀 선교 프로그램을 떠나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은 한 남자아이를 만나 그림 한 장을 그려줬다고 한다.

밥도 먹지 않고 한참을 보더니 소중하게 자신의 품에 그림을 감싸안던 소년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마음에 가득했던 빨간 덩어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나.

 

가슴 가득한 울분과 세상에 대한 원망. 부글부글 끓어서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을 것만 같은 분노를 기적같이 승화시켰다.

자신의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마음 하나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잡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그녀는 웃으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작업실 갖기

엄마에게 미역국 끓여드리기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

봉숭아 물들이기

나의 목소리 녹음하기

볼로냐 동화상에 도전하기

등등...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므로.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다지도 슬픈 일인지.

 

 

 

소리를 잃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요.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어요. -258

 

꽃에 파묻힌 베니는 아직 향기가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지닌 것에 감사할 줄 알았던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며 버킷 리스트 따위 쓸 날은 눈송이처럼 많이도 남았다고 뒤로 미루기만 한 건 아닌가.

무지개가 끝나는 곳 그 너머에 묻혀 있을 행복의 단지를 꿈꾸며 "행복"해지고 싶다고 중얼거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기분이 안 괜찮은 날.

이 말 한 마디를 곱씹어 보련다.

"앞으로 더 잘 부탁해."

기적같은 하루 하루를 거미줄 잣듯이 정성껏 자아내고 있는 구작가를 보며 힘을 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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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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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서재가 궁금하다면...[책이 좀 많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은 말 그대로 책방 주인이다.

"책방" 이라고 하면 "서점"과는 또 다른 어감을 품는다.

좀 더 정서적으로 다가 가기 쉽고 편안한 느낌.

부산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입 속에서 되뇌어지기 때문에 "책방"이라고 하면 헌책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버스만 타면 금세 도착하는 보수동이었어도 바로 옆 남포동과 중앙동, 국제시장 거리가 일명 '번화가'였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 꽤 책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보수동 책방 나들이를 자주 하지 못했다.

순진하고 허름한 행색의 나를 누가 잡아 채갈 일은 없었겠지만 어린 마음에 괜히 어른들이 겁주는 말에 속아 보수동을 코앞에 두고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는 못하고... 그저 "꿈의 공간"으로 치부하곤 했던 그 시절.

<슬램덩크>, <아르미안의 네 딸들> 같은 만화책 시리즈나 참고서 등을 살 때 재빨리 들러 필요한 것만 사고 얼른 자리를 뜨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 때는 억센 사투리를 뱉어 내거나 먼지털이로 총총 책을 털어내는 무뚝뚝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무서웠던 것이다.

새학기에 참고서를 사러 가면 또 인파가 얼마나 모여드는지.

사람 우글거리는 곳 자체를 싫어했던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책이 좋아도, 조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그 골목에 발을 들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 때 좀만 더 용감했더라면,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손바닥 한 뼘만큼만 더 컸더라면, 어느 구석의 책방 하나에 들어가 주인 아저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진정 원하는 책을 찾아달라고 말이나 붙여보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억센 말투 뒤에 숨어 있는 다사롭고 살가운 마음을 읽고 "책방" 속으로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 같은 분을 만나 더 깊고, 넓은 책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중에 크면 꼭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누비며 맘껏 책 냄새를 맡으리라 했었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보수동 갈 일이 있어도 어린 시절 그렇게 몸 사리며 멀리하려 했던 남포동, 국제시장의 화려함에 빠져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먹거리를 즐기는 것으로 끝내게 되었다.

 

그럼, 문학 소녀 비스름한 흉내를 내던 나는 어디서 책을 고르고 사곤 했던가?

역시 나같은 사람은, 작고 조용한 책방, 순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학생들을 챙겨주곤 하는 주인이 있는 책방과 궁합이 맞았던 게다. 내 수줍음을 품어주는 주인 아저씨가 좋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단골 책방을 만들어 놓고 그 곳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다.

용돈이 들어오면 한 권, 한 권.

초등학생일 때는 지경사의 책들을 많이 골랐고, 중고등학생일 때는 역시나 추억의 이름, "삼중당" 문고를 하나씩 사서 읽는 것이 낙이었다.

이광수의 <유정>, <무정>,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등 한국 문학을 섭렵한 뒤에는 책 뒤의 목록을 보고 외국 문학까지도 사들였고 좀 뒤에는 두툼한 "범우사"에도 도전했다.

책을 사는 게 녹록치 않을 때는 집 앞 "대여점"을 활용했는데, 박경리의 <토지> , 일본 대하소설 <대망>, 최명희의 <혼불>등 웬만한 시리즈는 거기서 다 빌려 읽었다.

이사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정이 들었던 대여점 아저씨와 헤어지고 다시 새로운 대여점을 개척하러 간 길에, 다시 그 아저씨를 만나게 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끼리 친척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만난 것이 어찌나 반갑던지...^^

휴우~ 반납하지 않고 책을 떼어먹었더라면 어쨌을까...하는 마음에 잠시 철렁하기도 했다는 것은 비밀!!

 

그렇게 모아둔 책은 결혼과 동시에 이별!

지금의 서가에는 내 새로운 취향을 반영한 책들이 주루룩 꽂혀 있다.

 

일본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를 읽으며 품었던 의문.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개인의 책을 매입하는 고서점, 혹은 "책방"이 있을까?

보통은 개인이 책 몇 권을 싸가지고 헌책방에 가서 파는 형태가 아닌가?

 

이 책의 저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 윤성근 씨는 2011년 500권 정도의 책을 처분하고 싶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책을 너무 사랑하여 아파트 전체를 서재로 쓰고 빌라 반지하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책을 계속 사들이기 위해서 있던 책을 처분하고 다른 책을 들이려 했던 '괴짜'였던 것이다.

아~ 우리 나라 헌책방서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긴 책을 좋아하는 애서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책에서 개인의 사연이 적힌 메모나 글들이 발견되는 것은 부지기수일 것이고...장서를 위해 책을 처분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겠지.

논어 이불과 한서 병풍을 둘러 치며 한겨울을 보낸 간서치도 있었는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통임을 알려주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스스로 책을 사랑하면서 더 많은 애서인들을 만나본 윤성근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이 정도까지...라고 하며 읽을지라도 결국에는 책을 사랑한다는 점 하나로 많은 것이 용서되는 이 책 덕후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젖은 책 다림질하는 노자 덕후, 한옥 책 거실을 만들어 놓은 오지 방랑자,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천천히 책 읽는 바리스타, 애묘와 애서를 동시에 즐기는 수의사,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수학 교사...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책 수다를 제대로 떠는 것을 한바탕 읽고 나니 지금의 내 서재에도 이야기를 집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직은 책이 좀 많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날, 내게도 처분할 책이 500권 쯤 쌓이게 되면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그 누군가는, 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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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19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 제대하고 나서 부산 보수동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대학 졸업 전까지 부산에 갈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보수동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후회 되요. 그 ‘누군가’에 절 포함시켜주세요. 책 이야기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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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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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 [금요일엔 돌아오렴]

 

유난히도 거센 꽃샘 추위가 며칠간 밀어닥쳐 봄기운이 오시는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봄님이 오시려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언젠가는 오게 마련인 자연의 섭리다. 봄이 꼭 오고야 말리라는 기대 때문에 옷장 속에 넣어둔 두툼한 겨울 옷을 다시 꺼내 입어도 몇 번 구시렁거리다 마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렇게 봄기운처럼 두둥실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 비록 꽃샘추위같은 시련이 닥쳐도 금세 지나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오슬거리는 어깨를 양손으로 꼭 껴안고도, 높게 올려 세운 깃이나 목도리 사이로 목을 구겨넣고도 눈동자에 어리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여기에 "희망"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싸움을 해 나아가는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앞에서는...그래, 차라리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내가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작년 4월 초, 지금처럼 꽃샘추위는 사라지고 한껏 봄기운을 머금은 날씨에 우리 가족은 제주로 떠났다. 시작과 끝이 모두 행복하리라는 순진한 생각을 품고서.

제주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내주었고 풍성한 바람과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했다.

제주의 푸른 바닷가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여름을 미리 머금은 듯 짠맛의 소금기를 어서맛보러 들어오라며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선사하기도 했다.

마침 수학여행 기간이었는지, 가는 곳마다 한무리의 학생들이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가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용눈이 오름이며 용머리해안까지... 제주 아주머니들의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과 아이들의 시끌벅적함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기분 좋은 추억을 잔뜩 안은 채 김해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대기실의 거대한 TV화면에는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장면.

그 때만 해도 아직 세월호 승선한 사람들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이 주르륵 나오고 있을 때여서 사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려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삐딱하게 기울어져 자꾸자꾸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배의 모습이 너무도 기이해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 제주여행의 기분좋은 흥분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는 것과 함께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는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주검이 단지 "숫자"로 새겨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랑 같은 용머리 해안의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고 행복하게 웃으며 돌아올 수 있었을 학생들이었는데...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점심, 저녁을 준비하고 입에 넣으면서도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어느샌지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만든 밥이 왜 그렇게 짜게만 느껴졌는지.

눈물이 담긴 주머니를 여러 군데 바늘로 쿡쿡 찌른 것처럼, 눈물은 삐죽삐죽 새어 나왔다.

오열하며 쓰러지는 유가족들은 오죽하겠는가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도 그 절망의 기운이 옮겨붙어 하루에도 몇 번씩 시무룩한 얼굴을 내보이곤 했다.  

 

배를 버리고 도주한 선장 이하 인면수심의 어른들이 행한 의롭지 못한 행동과는 달리, 아직 어리고 정직한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양보하기도 하고 기울어진 배의 경사면 때문에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서로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에 부모님께 남긴 메시지들은 하나같이 전국의 부모 가슴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들 테지만 아직 어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학생들과의 이별은 그 부모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상처가 될 터이다.

누구는 더하고 누구는 덜하지 않은 것이다.

남겨진 다른 아이를 위해 마음을 다잡은 부모가 있는가 하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가족을 추스리는 것도 힘겨워 하는 집도 있고,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이를 위해 간담회에 다니며 스스로에 대한 치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부모도 있었다.

작가들이 열 세 명을 인터뷰하는 동안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곡이 몇 차례나 이어졌을까.

가슴 아프게 불러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이름들이 점점이 눈물 찍은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는 증오와 분노, 그리움과 결연함을 넘나들며 감정을 완전히 터뜨렸다가도 다시금 가다듬기를 반복했다. 그가 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그 대단하고 고통스러운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112

 

준우 아빠가 나와서 하는 말이 가슴부터 팬티까지만 보여주는데 자기 아들이 아닌 것 같대. 믿고 싶지 않은 거지. (...)

준우 엄지랑 검지는 없어졌지만 나머지 손가락은 내가 잘라준 손톱 모양이었어...하늘이 통곡하는 듯했어..-249

 

이 대목을 읽고 또 가슴이 뻐개질 듯 아파오면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내 자식 아닌데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말이라 이건, 무조건적으로 울게 되는 거였다.

'아, 이 생생한 고통의 증언들을 이제는 안 읽고 싶다. 내가 도리어 힘들다.' 하며 그만 이쯤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싶었다. 시각으로 즉각 전달되는 정보인 TV를 보다가 하도 울어서 사고 일 주일 이후에는 아예 TV를 안 틀고 싶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 착하고 말 잘듣던 아이들의 부모도 그들을 그리워하며 애통해했지만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다가, 서로 대치하다가 떠나보낸 아들 딸에 관한 아픔도 크고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렇게 추억을 봉합하고 상처를 싸매가면서 저마다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던 아이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을 때.

각각의 가정마다 펼쳐졌을 생지옥은 생각만 해도 암담한데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들이 어찌 감히 한마디 "위로"라도 건넬 수 있었을까.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다며 세월호 사건을 스윽 밀어버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유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유가족의 마음에 100% 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기댈 수 있는 울타리는 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회, 정부가 제 할 일을 다하지 않는 나라.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채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 수장된 아이들은 '유가족'을 남겼다.

우리도 또다른 형태의 "유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남의 일 보듯 좌시하고 있어서만은 안되겠다.

이 나라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 만큼 " 믿을 구석 하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라는 자각을 하게 만든 이 사건은 잊혀지지 말아야 한다.

꼭 기억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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