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헌책방에 가면 많은 책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에 실린 사진 한 컷처럼...

 

                    

 

 

기나긴 추석 연휴에, 부산의 끝자락에 사는 나는, 간만에 마음을 먹고 보수동 책방 골목 나들이를 가보기로 했다. 같은 부산이긴 해도 우리 집에서 보수동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1시간여 거리이다. 한가위 때면 슬금슬금 찾아오는 가을의 서늘함은 잊은 지 오래인 날씨 탓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갈치 지하철 역에서부터 바지런히 걸었다. 나 혼자 걸음이면 한달음에 내달릴 길을, 남편과 아이 둘 데리고 가는 길이라 난쟁이 걸음으로 걸었다. 사람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더운 날씨에 쉬이 지친 탓도 있었다. 먹자골목에서부터 용두산 공원까지, 광복동에서 남포동 일대까지를 일주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유명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찍힌 영화의 거리, 이승기 호떡을 파는 아지매가 있는 좌판대를 지나, 국제시장 거리로 접어들자 인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상한 나라로 들어서는 기분이랄까. 골목 하나 건넜을 뿐인데 요란한 소리는 저멀리 점점 페이드아웃되고 고즈넉하고 정겨운 잔커피를 파는 할아버지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거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아이들이 접해 보지 못했던 세계인 깡통 시장 거리를 구경시켜 준답시고 골목길을 굽이 굽이 돌아, 예쁜 액세서리와 진기한 수입 과자며 초컬릿, 처음 보는 것을 담은 깡통 가게 구경으로 실컷 눈요기를 하다가 다리가 피로해질 즈음, 보수동의 입구가 보였다.

 

좁은 입을 벌린 잊혀진 보물들의 동굴은, 그러나 몸을 꽁꽁 숨긴채 속살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추석이라 상인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아쉽게 발길을 재촉해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헌책들의 곰팡내에 피곤을 같이 실어 보내며 노곤한 몸을 좀 쉬어갈까 했더니만...옛 정취를 느끼지 못하게 시리 책방골목의 입구엔 세련된 커피 체인점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너, 낯설다!

 

보수동 책방 골목. 학창 시절 영화관이 밀집해 있는 남포동 피프 광장에서 한나절을 보내다 조용한 분위기가 그리워지면 찾곤 했던 내 단골 만화방이 있던 보수동 골목. ^^나는 독서를 만화책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보수동의 헌책 가게들에 들르면 인문 서적이니 시집, 고서 들보다는 만화책에 먼저 눈길을 준다. 그래서 청춘의 도저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고민하고 사색했던, 심각한 7080을 건너오지 않은 한마디로 짝퉁 삼십대이다. 만화의 유쾌함에 몸과 정신을 맡기고, 무겁거나 어두운 것들은 아주 가볍게 툭 쳐내버린 청춘이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7년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꾸리고 있는 윤성근이 헌책 속에서 찾아낸 손글씨들을 토닥토닥 토닥여가며 끌어낸 다음 새 생명을 입혀 내놓은 책이다. 헌책방지기로 일하면서 책에 쓰인 수많은 글씨며 이름들을 접했던 그는, 어느날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의 뒷면에 이름과 함께 주소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일어 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름과 주소. 그것도 40년 전에 쓰인 것에 기대어 찾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기적 같게도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었던, 그 책의 주인공 홍광식씨를 찾았고, 홍광식씨의 사진으로 이 책의 맨 앞머리를 자랑스럽게 장식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가득한 책,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독서광, 메모광의 습성...묘한 인연으로 시작된 사연이 책 앞머리를 장식하니 이 책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헌책방으로 흘러 든 책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풀어내고 있을까...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이 하나씩 하나씩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에 대답할 수 없어서 -43

차마 수줍어 책선물로 대신한 대답인데...정작 중요한 책 제목이 유실되고 말았다. 음...눈부신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내 마음대로 읽어도 될까...^^

 

1985년 8월.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우웩~-81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란 책에 있던 메모다.

시대에 대한 반항기 어린 독설. 나는 아직 그 때에는 철없는 어린아이^^

 

1. 뉘우치지 않는 대신 기다리지 않겠다. 가을의 초입

2. 영미가 민희에게, 물 말은 밥을 넘기며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메모.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누구나가 했던 1990년대의 그 시기에 대학생으로 살았던 나는, 왜 저 책을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거지? 난, 아마도 ... 존재가 뭔지도 몰랐을 거다. 존재라는 말 자체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철학적 사고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으려 했던 몸만 커다란 어린애였었지...

 

메모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던 때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삐삐가 유행하던 시절에만 해도 삐삐에 찍힌 약자를 보고 전화기로 달려가던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그 바로 전에는 학교앞 담벼락, 도서관 게시판, 주점 앞 전봇대 등이 메모의 전시장이었다. **학과 **학번 **주점으로~, **생일 모임 **에서~,

돈없는 빈털터리 친구들은 생일 선물로 값싼 시집에다 우르르 이름을 병기해서 종합선물세트라며 던져주곤 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시집 하나 지금 갖고 있다. 그리운 기억들...

 

책의 앞과 뒤, 갈피 사이에 적혀 있던 짧은 메모들 혹은 책의 내용을 베껴 적은 글들은 괜시리 나를 미소짓게 만들다가도 까닭모를 자아 비평의 단계로까지 나를 내몰았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치열한 고민과, 사랑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시대에 대한 타오르는 번민들이 작렬했던 흔적이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는데, 나는 책을 뭐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건가. 책장 하나하나 소중하게 넘기며 아끼고 아껴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놓으면 끝이 아닌 것을...책 속에 담긴 글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진짜 책을 사랑하는 것인데, 나의 책에 대한 사랑은 헛짓이었구나...하며 비통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40년이 지난 이름과 주소의 흔적조차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젊은 시절의 행동력에 대한 증거였던 것을...

 

“그 곳에 두고 온 것 혹시 없었나요.”

간절했거나 절실했거나 사랑했거나 아팠던 흔적들이 새삼 부러워지는 지금이다.

두고 오지 않아서 후회할 일이 생길 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지금이라도 소중한 책들을 꺼내 한 줄씩 새겨 볼까.

돌고돌고 돌아 보수동의 헌책방 한구석에 줄서서 세워져 있는 책의 탑들 가운데서 내가 쓴 메모가 들어 있는 책을 누군가 집어들어 나의 흔적을 읽어보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슴 두근두근한 상상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세의 ‘정신’으로의 초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가벼운 아침 운동을 나섰다가 작은 산책로의 한쪽 귀퉁이에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았다. 다른 꽃들과 같이 있어서 자칫 잘못해선 그냥 놓치고 지날 수 있었는데,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속의 한 장인 <여름 편지>에서 읽은 ‘백일홍’의 기억이 선명해서, 우뚝, 그 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네 옛 어른들은 배롱나무의, 훌라멩코를 추는 무희같은 꽃이 금세 지지 않고 오래간다 하여 ‘백일홍’나무라 불렀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식목일 숙제로 꽃씨 심기를 하는 중에 백일홍 씨앗을 뿌려 집에서 키워 본 적이 있는 나는 진짜배기 백일홍 꽃을 먼저 접하였다. 그래서 내 사전에는, 백일홍은 ‘꽃 치고는 키가 크게 자라나고, 길쭉하고 선명한 줄무늬가 있는 초록 잎이 있으며 붉은 꽃이 진짜 백일을 가는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보슬보슬 윤기 나는 갈색의 토양에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물기를 머금은 흙은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흙내음을 풍기며 한껏 무기질의 양분을 보듬는다. 백일홍의 싹이 트고 날로 날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줄기에 잎이 어긋지게 자라고... 드디어 꽃이 그 첫망울을 터뜨린 순간, 그 때의 희열은 불꽃놀이 터지는 황홀한 광경을 목도한 때와도 같았다. 한참 언어의 나열에 있어서 부족한 나의 표현으로는 이러할진대, 언어의 대가인 헤세는 백일홍에 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정원에는 1년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꽃들이 피어 있지. 그러나 늦여름과 초가을의 다채로운 색을 상징하는 꽃은 아무래도 백일홍이지!(...)화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의 춤을 체험하지. (...)친구여, 일주일 또는 열흘 동안 화병에 꽂힌 채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한번 관찰해보게! 싱싱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고 황홀하던 색이 이제 섬세해지고 지쳐 아주 부드럽게 바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걸세.

(...)탁해진 흰빛,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며 호소하듯 슬픈 빛을 띤 붉은 잿빛, 그것은 증조할머니의 빛바랜 비단으로 만든 물건들이나 희미해진 낡은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색일 거야.-96

 

 

 

 

내 기억 속의 백일홍과 헤세의 언어로 되살아난 백일홍은 같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리 그 떠오르는 모양새가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사물을 접하는 진지한 관찰과 관조의 자세가 터무니없이 자격미달임을 느끼며 헤세의 정원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일생 동안 그리고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꼭 정원을 만들고 가꾸었던 헤세. 직접 그린 그림들이 곁들여진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고요한 헤세의 ‘정원’이 아닌, ‘정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도 통할 것 같은 소박함의 진리를 설파한 <작은 기쁨>을 들여다보면 내가 서 있는 발밑을 두리번거리게 되며, 나의 자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튼튼한 말, 멋진 개 한 마리, 삼삼오오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72

 

날마다 ‘작은 기쁨’들을 찾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새벽 이슬을 밟으며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새 바지끝자락이 축축해져 있는 것을 느끼듯이, 헤세의 ‘정신’을 거닐다 보면 그야말로 맑은 영혼의 유희에 시나브로 빠져들게 된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아주 오래 전에 읽었는데, 유리알 유희에 나오는 음악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이름이 아직도 기억 난다. 명상을 하며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정신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인 음악의 명인. ‘유리알 유희’라는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지만, 헤세를 아프락사스의 신화를 써낸 사람으로 기억했던 나는, 젊음의 방황과 세상에 대한 절망, 무서운 세계의 끝 세계대전 후의 치열한 자기 반성으로 씌여진 <데미안>이나 <골드문트와 나르치스>같은 작품으로만 헤세의 작품세계를 한정지으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었다.

 

포도덩굴 사이에서 한낮의 푸른 향기를 듣고, 서서히 발효하고 부패한 흙의 냄새를 맡으며, 붉고 노란 나무딸기로 식사를 하는, 동양의 현자와도 같은 유리알 유희의 명인은 다름 아닌 헤세 자신이 아니겠는가.

세계가 거칠고 격렬한 충동으로 지배되는 동안, 그들의 짐승과도 같은 만행에 무던히도 부끄러워하며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고자 했던 헤세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책 속에서 나는 명상의 명인이자 유희의 명인인 헤세를 발견했다.

 

충동으로 가득한 시대에 가치 있는 선함으로 현자의 발걸음을 내딛었던 헤세.

쓰레기, 녹색 식물, 뿌리들을 모아서 흙과 섞는다. 때로는 검은 색, 때로는 밝은색. 다양한 흙을 불태우고 체에 꼼꼼히 걸러 ‘현자의 돌’을 만들어서 작은 단지에 담아 들고 조금씩 정원에 나누어 뿌린다. 아끼는 꽃들과 꽃밭에 이 명상의 불과 희생의식의 숭고한 수확을 나누어 준다.

정원에서 식물을 일구는 기쁨과 함께 삶에 순간에 솟아나는 놀라운 성찰들을 완성해 갔던 헤세가 부럽다.

깊이가 없는 배경과 같이 모든 것이 어둡고 불투명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헤세의 정신은 인어의 꼬리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무늬를 만들어간다. 서서히 드러나는 연하디 연한 무늬를 손으로 따라 그리다 보면 나의 어리고 어두운 영혼은 새벽의 여명과도 같은 밝음을 맞이하게 된다. 헤세의 정신은 정원에서 시작했고, 정원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꽃들과 그늘을 드리우고 무성한 잎을 다시 떨구는 나무들처럼 정원의 일상 속에서 사소한 기쁨을 피워올리고 있다.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가 성큼 내 눈 앞에 다가와서 농부의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안녕, 헤세 아저씨~”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헤세 아저씨가 되어 있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