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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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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집필 노트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바깥 날씨는 코끝을 쨍하게 하는 시린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지금, 여기. 이윤기의 책[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있는 방 안은 난데없는 열공 모드로 후끈하다. 어려운 말 하나 없고, 오히려 신선하고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단어들만이 가득한 이 책을 읽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 열이 나는가. 자칭 조르바 같은 자유인이라 일컫는데도, 어투에서 묻어나는 연륜 때문인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앞에 모셔두고 그 분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건만 괜시리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 같고, 헛기침 조차도 조심스럽게 숨죽여 해야 할 것만 같은 무게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도 없이, 단 둘만의 독대. 따뜻한 차 한 잔만을 두 손에 모아 쥐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느라 귓불이 붉어지고 열기가 차 오른다. 각기 다른 시각에 쓴 글들이 모여 있어도 그의 말은 하나다. “글쓰기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는 것.

 

소설가, 번역가, 신화 전문가.

책에서는 이윤기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번역가로 이윤기를 처음 접했었다. 너무나도 유명하여 안 읽은 이가 없을 것 같던 그 책<그리스인 조르바>를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끝내 외면하고 있었는데, ‘읽어야 해, 조르바를 모르고 이생을 살아나가기는 틀린 것 같지 않아?’ 라는 마음 속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조르바를 집어 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왜 이 책을 안 읽고 있었던 거냐? 라고 물었을 때, 그 이유는 아마도 <희랍인 조르바>로 번역되었던 책의 제목 때문에 내 마음 속에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고지식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희랍인”이라는 말 하나가 손톱 옆에 자리한 거스러미처럼 신경에 거슬려서 백 마디의 찬사로도 모자랄 고전을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읽게 되었다는 것이 나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그랬다.

제목의 번역 때문에 책을 집어 들기 조차도 싫었던 것이다.

<희랍인 조르바>는 안되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되고.

죽을 때까지 조르바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이윤기가 내 마음의 장벽을 스르륵 벗겨내었던 것이다.

“희랍인”을 “그리스인”으로 바꾼 것은 그야말로 내게는 작은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제목 하나로도 책을 만날 수 있게도 없게도 하는 번역가의 힘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임을 이윤기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

 

둘이서 벌인 사업이 거덜난 날 우리는 해변에 마주 앉았다. 조르바는 숨이 막혔던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그는 중력에 저항이라도 하는 듯이 펄쩍펄쩍 뛰어오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되살려내고 싶었던 자유인의 모습이 이윤기의 번역을 거쳐 내 앞에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 일이다.”-133

 

그 뒤에는, 어머나! 번역가로 알고 있던 이윤기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펴냈더랬다. 궁금한 마음에 혹은 아는 이름에 반가워서 덥석 그의 책을 사보았다. 중학생 때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단숨에 읽어 제끼며 그 길었던 이름들과 헷갈리는 그리스식, 로마식 이름들을 따로따로 구분하며 외느라 힘들었었지만, 신화의 황홀함은 그 번거로움까지도 달콤하게 만들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한 권으로 축약해서 읽었던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좀 더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실제 답사로 담아낸 사진들이 크게 한몫했고,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이윤기의 입말이 신들을 가까이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강조하는 껍진껍진한 입말 그대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영어판을 중역한 것인데, 철학자 강유원 박사로부터 오역을 260여 군데 지적받고 바르게 손보았다 한다. 번역자로서 아픈 지적이었을 텐데도 오독과 오역을 번역가의 숙명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던 이윤기. 그는 글쓰기에 있어서 실패를 축하하고 거기에 더해 바닥을 박박 기어보라고 조언한다. ‘메덴 아간’이라는 그리스어를 ‘만사에 지나침이 없게 하라’라고 번역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과유불급’이라는 잘 익은 우리말로 옮기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인생이 그렇게 풀려서 글을 썼으나, 그는 이렇게 자조한다.

 

나에게 이 세상 삶의 현상은 거대한 원어 텍스트, 내가 부리는 언어는 ‘원어를 고스란히 재생새킬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역어’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선조적 언어로써 원에 가까운 원융한 진리의 세계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단지 한 점만을 건드리고 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25

 

나는 기껏해야 이윤기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 로마 신화>,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뿐이라 이윤기를 뭐라 평가할 수가 없다. 그저 내가 읽은 텍스트 안에서 그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언어 천재라 불리는 그의 집필 노트를 읽고 나니, 참으로 대단한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생 자신의 언어를 부리며 살아가야 하는 글쓰는 이, 작가들에게 영혼과 글쓰기의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라 일컬을 만하다.

 

책을 읽고 그저 줄거리를 나열하거나 짤막한 감상만을 곁들이며 글을 완성할 뿐인 나의 서평은 이제 걸음마인데, 넓은 세계를 안으로 들이기 위해 번역에 힘쓰면서 올바른 번역의 방법을 모색하고 거기에 철학까지를 더하려고 했던 이윤기는 글쓰기의 전범, 달인, 고수를 뛰어넘어서 이제는 “신”이 되고 말았다. 뛰어넘을 수 없는 산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상에 발붙이지 않고 있어서 우리는 그가 남긴 집필 노트를 바라보며 배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이윤기는 자유인 조르바를 꿈꾸며 펄떡이는 말에 집착했다. 나도 따지고 보면 무작정 책 속으로 파고들어 달래기만 하려고 했던 내 마음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싶어서 서평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면 불쑥불쑥 터져나오는 그것들을 조금씩 다스리고 단련시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넘어지고 깨지면서, 마침내는 바닥을 기어 봐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이윤기의 충고가 그 길고도 길게 이어질 것 같은 단련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내 마음에 반창고가 되어줄 것 같다.

 

정적에 휩싸인 채 숨죽여 듣던 일대일의 수업이 끝나자 내 마음엔 반창고 하나가 남았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귀에 들린다. 휘잉~ 휘이잉~.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지만 나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귀한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저절로 뿌듯한 탓이다. 따뜻했던 차는 애저녁에 식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긴장하면 솟아나는 땀 때문에 땀을 닦아내기를 여러 번. 방 안은 따뜻했는데도 손끝은 차다. 다시 보글보글 물을 끓여 차 맛을 음미하고 손을 데워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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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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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들어볼까요...[인생 수업]

 

 

기억은 참으로 단순해서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는 계절이 오니, 봄꽃을 보고 언제 감탄했나 싶게, 단풍이 아름답다 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봄꽃, 바이~ 짜이지엔^^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구절을 보고 무심결에 말의 뜻만을 생각하니, 나의 생각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스님의 깊은 뜻은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 그대로의 뜻은 아닐 터. 비참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게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렷다. 그렇다면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문즉설’의 대가답게 스님의 말씀은 한 점 머뭇거림이 없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하고, ‘단풍처럼 물들어 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스님의 인생수업은 쉽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는 대로 맞아, 맞아...하는 말이 절로 터져나온다. 이 좋은 책을 어떻게 혼자만 읽을 수 있겠어...하며 아는 사람과 책을 펼쳤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펼친 책의 한 구절을 내려다보며 제목을 읽는다.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법.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두고도 먼 훗날을 걱정하는 그이와 나는 참, 걱정도 팔자인 사람들이다. 제목만 보고 그 장을 펼쳐도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면 고구마순 당기자 고구마 줄줄이 딸려나오듯이 할 말들이 줄줄줄 쏟아져 나온다. 자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자에서 시작해서 노후준비, 늙어서는 시골의 한적한 주택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시골생활은 어떻게 시작할까,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은 어떻게 적응해서 살고 있나...등등...몇 날 며칠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기세다.

결론은 뭐냐,

아무리 사랑하고 헌신하며 키웠다 해도 내 품을 떠난 뒤에는 기대와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자식을 효자로 만들고, 지난 내 인생도 보람 있게 만들고, 나도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238

 

 

 

 

이별도 사흘이면 족하다.

스님은 편안한 어조로 마음을 끊어내는 법을 설파하고 계신다.

그러나 “미망”에 사로잡힌 속세의 인연들은 ‘끊어내기’가 힘들다. 어떤 인연에도 얽매이지 않은 스님의 고고한 말씀은 한편으론 매정하다, 냉정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반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살아보면 스님,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답니다. 말처럼 그렇게 단칼에 끊어지고 정리될 거라면 이렇게 힘들어하지도 않지요...

 

그 외에도 일어난 일은 언제나 잘된 일이다. 지금부터의 삶은 덤이다,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신호, 상대가 아닌 내 마음부터 살펴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것, 간병은 복을 짓는 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다툼이 사라진다, 잔소리와 간섭은 자식과 등지게 한다, 등..귀에 쏙쏙 들어오면서도 일침을 가하는 말들이 이어진다.

감정의 과잉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보면 많이 차분해질 것 같긴 하다.

‘易地思之(역지사지)’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자.는 것이겠지...

 

죽음의 순간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반드시 온다.

이것은 선명한 명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를 읽으면서도 접하게 된 것인데, 스님의 [인생 수업]에서 또 다른 맛으로 만나게 되었다.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러한 대전제를 깔아놓으니, 그야말로 인생이 단순명쾌하게 보인다.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 란 질문을 던져서 답답한 마음에 얹혀진 돌의 무게를 살살 가늠해보는 시간을 갖게 하더니, 슬슬 그 무게를 덜 수 있는 법을 제시해 주신다.

그림과 함께 마음을 쉬어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명강, [인생 수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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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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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이야기하다. [모든 게 노래]

 

올봄에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속 한 구절,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를 유난히도 많이 흥얼거렸다. 계절을 느끼기에 딱 좋은 노래였고 멜로디였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UhUh )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 봄 얘기를 하는 게 좀 멋쩍긴 하지만, [모든 게 노래]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계절을 이야기하게 된다. 지나간 계절이라도...

한동안 가사가 있는 노래란 것은 ‘동요’, 아니면 ‘노부영’(노래로 부르는 영어)뿐이었던 나의 단조롭고도 유치한 세상에 화사한 연분홍의 흩날리는 벚꽃 이미지와 함께 황홀한 봄을 선사해 준 그 노래, <벚꽃 엔딩>

 

[모든 게 노래]의 저자 김중혁은 계절을 노래로 느낀다.

이지형의 <봄의 기적>에 스며 있는 아지랑이 같은 봄도 있고, 가슴 아리고 눈물나는 <봄날은 간다>의 봄도 있고 롤러코스터와 김현철이 함께 한 <봄이 와>의 경쾌하고 나른한 봄도 있다.-53

 

봄뿐인가, 사계절 다양한 우리나라에서 계절을 느낀다면 여름, 가을, 겨울도 있어야겠지.

각각의 계절이 지닌 고유의 분위기에 따라, 김중혁이 알고 있는 노래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어써니, 이렇게 샛노랗고 예쁜 표지의 책이 되었다.

채소에 소금을 치면 샐러드가 되듯 날씨에 노래를 쳐야 비로소 계절이 되는 것 같다.(...)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둘러보면, 모든 게 노래다.-프롤로그 中

 

<응답하라 1997>의 후속작으로 <응답하라 1994>가 방영되고 있다. 앞의 것은 대충 보았고, 뒤의 것은 띄엄띄엄 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1994와 가까운 나이이고, 딱 내 세대의 이야기여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중이다. 그 즈음의 노래라고 딱 집어 말할 순 없어도 적어도 그 시기를 거쳐온 사람이라면 카세트 테이프 한 두 개 정도는 집 어딘가에 놓여져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카세트 테이프와 CD가 반반의 비율로 서랍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데, 가끔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꺼내 스테레오에 넣으면 음이 ‘지~익’늘어져서 가사를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다. wax 2집-화장을 고치고, 머니, west life-my love, 신해철, GOD등등...

 

 

 

 

이제는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감내하느라 지치고 늘어져서 들려주고 싶어도 노래를 들려줄 수 없는 슬픈 카세트 테이프들이 그저 추억의 물건들로 남아 서랍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은 6살 아들 녀석이 서랍을 쭉 빼서 열더니, “이게 뭐야?”하고 물어본다. 뭔지 모를 법도 하여 직접 들려주려고 스테레오에 넣었더니, 역시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끝내 씹혀버려서 잡음만 들려주더니, 어쩔 수 없이 잡아빼자 줄줄이 딸려오는 저 연약한 기억 속의 흐늘거리는 테이프들...내 한 때의 추억이 이렇게 잡아먹히나...하며 좀 허탈해 있는 사이, 아들 녀석은 재밌다면 다른 걸 꺼내더니 사정없이, 말릴 틈도 없이, 수타면 빼는 중국 요리사처럼 신나서 테이프를 죽 죽 잡아빼서 뱀처럼 구불거리는 모양을 감상하며 꺄르륵거린다.

나의 Queen이며, 본 조비, 뉴 키즈 온 더 블락, 토미 페이지, 케니 지...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언제고 처분했어야 될 것들이어서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나의 1994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자 휑하니...찬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음원을 다운받아 저장하면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

시절의 강을 건너고 건너면서 노래는 살아남는다.

나의 시절은 지나가고, 또 다시 시작되고...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의 의미를 알 나이가 되어서인가...내 마음의 현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곤 한다. 느닷없이. 불현 듯. 그래서 울컥 또 울컥. 아직 클래식에는 조예가 없어 쇼팽이나 모차르트를 들으며 감동 먹기는 하여도 눈물 흘린 적은 없었는데, 영화 Mission의 주제곡으로 유명했던 ‘넬라 판타지아’는 들을 때마다 , 열에 아홉은 눈물을 떨구고 만다. 아침 운동을 하며 핸드폰에 이어폰을 꽂아 걷던 중에 국카스텐의 노래를 들으며 찌릿한 감정의 전율을 느낀 적도 있다. 국카스텐이 부른 씨스타의 <나혼자>, 패닉의 <달팽이>, 이용의 <잊혀진 계절>, 조용필의 <촛불>...숲으로 난 길을 따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걷던 중에 느닷없이 만난 국카스텐의 목소리는 아침이고, 말짱한 정신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후춧가루, 고춧가루를 뿌려댄 듯 코가 맹맹해지고 눈이 따끔해지는 최루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어떡해야 되지...발걸음을 일정한 보폭으로 떼어가면서 팔을 앞뒤로 박자 맞춰 흔들다가 눈물을 후두둑...아침운동하면서 어젯밤 실연당한 여자의 몰골로 눈물을 흘리는 나란 여자. 졸지에 그의 카랑카랑하면서도 감성적인 목소리에 압도되어, 이어폰을 통해 나의 귀에만 울리는 그 목소리의 널뜀에 때와 장소를 구분 못하고 그만 ...아, 나 왜 이러지...

 

 

 

그 날 이후 한동안 노래를 멀리했었는데 가을, 겨울에 어울릴 만한 노래를 실어 놓은 걸 보니 듣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걸, 들어, 말어?

가을의 센티멘털, 겨울의 시린 마음...어쩔 것이야...감당할 수 있겠어?

혼자말로 묻는다.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지만 울 것 같지는 않은 그런 기분이다. 마음이 건조해진다는 얘기는 아니고, 뭐랄까, 햇볕에 말린 마음같이 된다는 거다. 마음이 뽀송뽀송해진다.

Everything but the girl <Amplied Heart>, 1994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또 1994다.

이러니 들어볼 마음이 안 생길 리 없다.

울 것 같지는 않다잖아...소곤소곤 내 마음에 말을 건네 본다.

노래를 이야기해주는 김중혁의 산문집.

이제는 나도 노래를 듣고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떨구는 눈물을 자음과 모음으로 바꾸고 싶어졌다. 이상도 하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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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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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한층 가까이...<작가의 얼굴>

 

 

이 책은 참으로 어지간히도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어서 부쩍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읽을라치면 꽤 두툼한 두께가 만만치 않게 압박감을 주고 있어서 선뜻 열기가 힘이 든다.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그 또한 ‘비평가’라는 제목에 눌려 ‘에휴~’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무지무지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선입견을 애써 억누르고 목차를 훑어보니 온통 어려운 작가들의 이름이 주루룩 나열되어 있다. ‘망했다!

셰익스피어가 웬말이며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 아르투어 슈니츨러, 리온 포이히트방거, 페테르 바이스,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 이름들은 또 웬말이냐...겨우 알아볼 수 있는 이름들은 이름만으로도 후덜덜한 괴테니 체호프, 토마스 만, 귄터 그라스 등 고전 중의 고전으로 명작의 반열에 들어선 작가들 뿐이니 이거, 된통 어려운 책이 얻어 걸렸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책을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작가의 얼굴>이니 적어도 사진이나 그림은 들어 있겠지...하는 마음에 겨우겨우 무거운 책의 표지를 들어올리고 속 책장을 휘리릭 넘겨보니 오호라, 그림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읽을 만 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라는 저자의 이름조차 생소하기 그지 없는데,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책날개에 쓰여진 작가의 소개조차 앞날개와 뒷날개를 오로지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폴란드계 유대인 비평가. 단일민족이고 오로지 남한과 북한만의 경계를 지니고 있을 뿐, 민족의 갈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배경에 견주어 볼 때, ~계 ~인이라는 소개는 낯설어도 한참 낯설다. 복잡한 계보에 어울리게 1920년에 태어난 저자는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폴란드에서의 부자유를 견디다 못해 서독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1988년부터 독일 공영방송에서 <문학 4중주>라는 서평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름을 얻게 된 그는 권위를 타파하는 거침없고 명쾌한 평론으로 독일 문학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이 책은 저자가 1967년부터 수집해 온 작가들의 초상화에 대해, 그 그림들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그림을 그린 화가들과 그림속 주인공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문학 에세이다. 그림에 얽힌 사연, 작가들과의 일화 등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이 풍부하게 녹아들어 있어, 짤막짤막한 글 속에서도 저자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해박한 지식,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책의 두께와 저자의 유명세에 지레 겁먹었던 것에 비해 책의 내용은 읽어나갈수록 수월하다 여겨졌고, 심지어 재미있기 조차 했다.

직접 만나보거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그림 그리는 이의 ‘체’를 통해 걸러진 작가들의 “생얼”은 정겹게 다가왔다.

사진 그대로의 모습이 나와 있었으면 그냥 쓰윽 보고 지나쳤을 법한 작가의 얼굴들은 화가의 눈을 통해 판화나 펜화 등으로 남겨져 있어서 그림 그린 이의 평가가 반영된 모습들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모르는 작가들은 일단 제쳐두고 카프카의 모습을 볼까.

 

 

저자의 신랄한 첫 마디가 카프카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옛날에 호메로스를 두고 여러 도시가 그랬듯, 그를 두고 여러 민족이 각축을 벌인다.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과 유대인들이 벌써 수십 년째, 프라하에서 태어난 유대계 상인의 아들 프란츠 카프카를 둘러싸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17

 

올해 초에 홀로코스트 최고령 생존자 알리스 할머니의 회고록이자 에세이인 <백 년의 지혜>를 읽었는데, 그녀는 카프카와의 친분을 떠올리며 이렇게 썼다.

 

 

“카프카는 자기가 어디 속하는지 몰랐어요. 정체성을 고민했고 어느 길을 택할지 확신이 없었지요. 선택하면 다른 쪽 부모를 실망시킬 테니까. 난 그게 그의 고민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알리스는 요즘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카프카 식으로 논하는 것을 보면 카프카가 즐거워할 거라고 말한다. 그의 글이 유대주의나 유대인의 뿌리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학자들은 그의 작품이 완전히 유대인다운 글이라고 주장한다. 알리스는 양쪽 주장 모두 일정 부분 옳다고 인정한다.-38

 

카프카에 관해서는 <변신>을 읽은 게 다이지만, 그나마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동안 기억에서 희미하게 잊혀져 버린 작품이라 뭐라 논할 자격이 없는 나이지만, ‘불안’이라는 단어가 카프카의 작품을 여는 중심 키워드요, 개념이라 평하는 저자의 명쾌한 주장을 접하니, 카프카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불안”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저자가 모은 작가의 얼굴 중에서 한 인물에 관해 두 장 이상의 그림이 있는 작가로는 <토마스 만>과 <베르톨르 브레히트>를 들 수 있겠다.

‘맨 처음은 브레히트였지.’

초상화 수집의 시발점이 된 그림은 조각가 구스타프 자이츠가 석판화로 그린 브레히트 초상화였다. 브레히트는 58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자이츠의 그림 속 브레히트는 족히 일흔은 되어 보이는 늙은이 같았다고 말했다.

 

 

 

 

--이는 한 냉소적인 남자의 얼굴, 지쳤으되 체념하지 않는, 번민하는 시인의 얼굴이다--257

 

 

한 작가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에서가 아니면 어디서 가능하겠는가. 그것도 화가의 눈을 통과한 각기 다른 모습들을...

 

 

저자는 “토마스 만”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졌는지, 그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하인리히 만,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 토마스 만 등, 목차에서만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어디 보자.

토마스 만은 무슨 작품을 읽었더라...

<마의 산>은 너무너무 유명짜한 책이라 그냥 패스했고, 단편으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와 크뢰거>등은 읽은 것 같기는 한데,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저자가 그 내용을 되새겨 주었고, 그에 힘입어 되살아나는 듯도 했으나, 깊이 있게 평론이 들어가자 다시 나의 이해력은 주춤주춤 하여 다시, ‘도무지 모르겠다.’ 모드로 돌아서 버렸다. 주제가 뚜렷했다고 하는 <토니오 크뢰거>에 나오는 인물. 갈색 피부와 검은 눈동자의 토니오와, “밝은 금발”과 “사파이어같은 파란 눈”의 소유자 한스.

아, 이 책에서 나는 짐작을 했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세상이 나를 알게 되리라. 부디 나를 용서하길.”-188

플라톤의 한 구절을 인용한 토마스 만.

 

총 열 권 이상의 일기에서 밝혀진 바, 그가 최대의 열정을 바친 대상은 자기애였고, 이 자기애는 여러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모든 망성림을 무릅쓰고 자신의 진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진실이라 여겼던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성애가 그의 존재의 기본 요건을 이루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작품들을 주의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188

 

 

너무 어린 시절 대충 읽었던 토마스 만의 작품 속에서 “동성애적 경향”을 읽어내기란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그의 비밀을 알게 되어 사뭇 충격이 크다. 뭐 그 사실 때문에 작품을 폄하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요런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를 불러 일으키며, 문학과 작품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만든다.

평론은 작가나 평론가가 아닌 독서 대중을 향해야 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비평 작업을 해 온 저자에게 고맙다고나 해야 할까.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나 <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등을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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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 출처 : 조선일보

 

미야자키 하야오- 씨익 웃는 모습이 토토로를 닮았다. 아니, 토토로에 나오는 신기한 고양이 버스의 웃는 모습을 닮았다.

 

 

행복한 기억의 열쇠 [책으로 가는 문]

 

 

 

어두컴컴한 계단 밑으로 이어져 있는 문.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곰팡내가 훅 끼치고 잠시 후엔 예민했던 후각이 무뎌지면서 책장 가득 들어찬, 담뱃내에 찌든 만화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은 벌써 “무슨 책을 골라볼까?”하고 두근거리며 어제 읽다 만 책의 뒷부분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곧장 그 책이 꽂혀 있는 책장으로 다가서며 눈으로 훑어본다. ‘나의 사랑스러운 책들아, 안녕?’

나는 만화방에서 책을 만났다. 소년소녀 아동문학전집, 위인전기 전집 등등의 책들이 집에 있었지만 그 책들을 볼 때보다, 옆 집 언니가 읽던 김동화의 <천 년 사랑 아카시아>을 옆에서 흘깃거리며 같이 읽은 이후 눈을 뜨기 시작한 순정만화를 읽을 때가 훨씬 가슴 두근거리고 흥미진진했다. 그래서 <책으로 가는 문>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시장 한 가운데서 꺾어져 들어간 골목길에서 계단으로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는 내 단골 만화방의 문이 먼저 떠올랐다.

자연스레 내 기억은 초등학교 5,6학년 그 때 그시절로 되돌아갔고, 책으로 가는 문이라는 제목이 말 그대로 만화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 그 때 읽었던 만화책의 제목들로 줄줄이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신일숙, 황미나, 이미라 등등...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불새의 늪>, <인어공주를 위하여>...아,나는 그 때 얼마나 만화의 세계에 푹 빠져 현실을 잊고 지냈었던가...만화책 속에 들어가 있던 순간은 완전 몰입. 나는 현실의 나가 아니었고, 만화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여러 시대, 여러 상황 속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이었다. 그 때 만화책만 읽어대는 나를 제지하지 않고 눈감아준 부모님에게 감사한다. 만화책에 몰입해본 경험은 다른 책을 골라 읽을 때에도 이어져서 책 읽는 순간은 기쁘고, 행복한 순간, 나만의 완벽한 시간이라는 공식이 입력되어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3년 여름, <바람이 분다>의 개봉과 거의 동시에 <책으로 가는 문>을 펴낸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까지 애니메이션 하나로 평정한 분 아니던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는 나의 세대를 풍미했던 작품들이고, 지금 우리 아이들은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의 아리에티>,<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으로 하야오를 기억한다.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나와 있는 작품도 몇 있다.)

 

2010년 <마루 밑 아리에티>개봉과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랫동안 즐겨 읽어 온 소년문고 400여 권 가운데 50권을 추천했다. 손수 고르고 읽으면서 직접 쓴 추천사가 이 책의 1부에 실려 있는 것이다. 간결한 코멘트에 불과하지만 오랜 세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살아온 그의 철학이랄까...자세 같은 것이 녹아 들어 있어서 메모를 대할 때 숙연한 느낌이 든다.

 

애니메이터로서 그림의 삽화를 보는 눈,

 

 

아이의 동화책 번역의 중요성, -

[어스시의 마법사]의 어스시 세계도 확실히 그렇습니다. 시미즈 마사코의 번역이 없었다면 진작 사라져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빈다.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고른 말이 일본에서 강렬한 힘을 발휘한 것이지요. '바람의 신'이라든가 '사물의 진짜 이름'이라든가, 아무튼 두근두근했습니다. '새매'도 그렇습니다. 가슴 설레는 이름입니다. -102

 

 

책을 바라보는 독특한 눈 등등...

-솔직히 말하면 많은 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50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이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굉장한 하드커버로 묵직하면서 세상 모든 일이 쓰여 있는 책을 만들 수는 없을까'하는 꿈을 꿉니다.-137

 

 

결정적으로 무턱대고 “칼데콧 상”,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 “뉴베리 상” 등등의 수상작만이 최고인 줄 알고 아이의 취향을 무시한 채 들이밀기만 했던 한 때의 나를 깨우쳐 주는 한 줄의 힘이 있었다.

 

 

 

이와나미 소년 문고를 보고 어린 시절을 지내왔던 하야오는 책의 작가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어서 책을 썼지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책을 쓰는 작가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지금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면에서 그러한데,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혹독한 자기반성을 한 듯하다. 과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의미가 무엇인지 혹은 얼빠진 짓은 아닐지, 역사적인 참사를 겪으면서 거듭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 날을 회고한다. 무섭고 요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최근 20년 세계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의 막이 올랐고 대량 소비 문명이 확실한 종말의 제 1단계에 들어섰다고 하야오는 진단하면서 훌륭한 전쟁보다 어리석은 평화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들머리에서는, 행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나니까요. 정말 21세기의 막이 올랐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고작입니다.-151

 

지금 판타지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며 시대상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지만, 또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하야오.

다음의 새로운 판타지를 만드는 일을, 다음 세대의 아이들 몫으로 남겨두면서 끝을 내고 있다.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다음 세대에 전수할 수 밖에 없는 무거운 과업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꽉꽉 채워넣은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책 한 권을 만나기 바란다"

무엇보다 가슴에 남는 한 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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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11-0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리뷰로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남희돌이 2013-11-0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꼼쥐님~ 부족한 리뷰를 잘 봐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