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달엔 단 한 권의 책밖에 사질 않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읽지 않은 책들을 꺼내어 읽자고 다짐을 했던터라 당분간, 그러니까 올해가 지나가기 전까지는 새 책을 사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결심은 왜 늘 무너질까. 신간들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작정인듯 하다. 그래서 어어, 9월달엔 죄다 지르자, 하고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책들을 담았다.










『지상의 노래』는 이승우의 작품이다. 만약 내 책장에서 끝까지 살아남게 될 국내작가가 있다면 단연코 이승우가 될 터. 그의 새로운 책이라니 당연히 읽어봐야 되지 않겠는가. 『놓치고 싶지 않은 이별』은 '앤 타일러'의 작품이다. 아직 책장에 꽂힌 『종이시계』도 읽지 않았으면서 앤 타일러의 새 책을 욕심내고 있다. 『물밑 페스티벌』을 일본 작품이길래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줄거리를 읽어보니 연상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나온단다. 갑자기..읽고 싶어지잖아!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스런 삶』은 일전에 경향신문 북코너에서 보고 찜해둔 바 있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책 한 권을 꽉 채우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는 '빅터 프랭클'의 책이다. 오, 빅터 프랭클이다. 나는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무척 좋았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고 늘 생각해오던 터였다. 그런참에 나온 신간이라니, 장바구니에 넣지 않을 수가 없잖은가!


그래, 나는 이 책들을 다 사려고 했었다. 그간 사용하지 않고 모아둔 적립금이 2만원이었다. 그러니 3만원쯤 더 보태서 이 책들을 살 예정이었단 말이다. 그랬단 말이다, 그랬다고. 그런데, 그런 내가, 아, 이 책을 시작해버렸다.



















아!


1권의 절반 이상을 읽었는데, 아, 정말이지, 이 책은 대단하다. 나는 1권의 절반쯤을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읽다가, 내려서는 흥분된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은 정말 짱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1권의 절반쯤에서 이 정도의 이야기들이 나오면 대체  2권부터 5권까지는 어떤 내용들이 어떻게 펼쳐지려는걸까? 흥분과 기대로 온 몸이 짜릿해진다. 포스트잇을 꺼내기가 귀찮아서 일단 책의 윗부분을 접었는데 그렇게 접히는 부분이 많다. 빅토르 위고는, 오, 정녕 천재였던거다.



어릴적에 장발장을 나는 책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집에 있던 전집중의 한 권이었는지, 피아노학원에 있던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책을 분명 읽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건, 장발장이 빵을 훔쳐 교도소에 아주 오래 갇혀있었다는 것, 감옥에서 나와서는 좋은 신부를 만났다는 것, 돈을 많이 벌게 됐다는 것, 그리고 코제트를 맡아 키웠다는 것, 그 코제트에겐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장발장이 부당하게 너무나 오래 갇혀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갇혀있던 장발장의 생각에 대해서야 내가 알 리 없었다. 내가 읽은 책에는 아마 감옥에 있던 장발장의 사색 같은건 다뤄지지 않았었을테니까. 그러다가 나는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을 읽게 됐다. 



그는 일단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그는 먼저 자신을 단죄하였다.

그는 자기가 부당하게 처벌을 받은 무고한 사람이 아님을 시인하였다. 그는 자기가 극단의 그리고 규탄받을 짓을 저질렀음을 스스로에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가 간청했다면 그 빵을 아마 거절하지 않았을 거라고, 여하튼 자비심으로부터건 노동으로부터건 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았다고, '배가 고픈데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주장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정당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우선 배가 고파서만 죽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심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오랜 기간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죽지 않게끔 만들어졌다고, 따라서 참았어야 했다고, 가엾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자기와 같이 가냘프고 불쌍한 사람이 사회 전체의 멱살을 사납게 움켜잡으면서 절도라는 수단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생각한 것이 미친 짓이었다고, 어떠한 경우에도 비열한 짓 속으로 통하는 문이란 가난에서 빠져나오는 데 적합한 문이 아니라고, 결국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신에게 고백하였다.(p.142)



그러나 그는 그 후에 그 잘못이 단지 자신의 잘못이기만 한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물었다. 

자기를 파멸로 이끈 그 사건에서 잘못을 범한 사람은 자기뿐이었을까? 우선, 노동자였던 자기에게 일거리가 없었고, 근면하였던 자기에게 빵이 없었다는 것이 중대한 일 아니었던가? 그다음,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시인하였는데, 처벌이 무자비하고 지나치지 않았는가?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의 잘못보다, 형벌을 가한 법률의 잘못이 더 크지는 않았는가? 두 저울판 중에서 속죄를 올려놓은 쪽의 무게가 심하게 초과하지는 않았는가? 형량의 과중함이 곧 죄의 말소는 아닌가? 또한 그것이 상황을 뒤엎고, 경범죄의 잘못을 탄압의 잘못으로 대체하고, 죄인을 희생자로 탈바꿈시키고,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들어놓고, 권리를 유린한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일련의 탈출 시도 때문에 연속적으로 가중되어 복잡해진 그 형벌이, 결국에는 최강자의 최약자에 대한 일종의 위해, 개인에게 저지르는 사회의 범행, 매일 다시 시작되는 범행, 십구 년 동안 지속되던 그 범행으로 귀착되지 않는가? (p.143)



쟝 발쟝, 그는 누나의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했고 돈을 벌어야했고 빵을 사야했다. 그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저지를 실수를 인정할 수 있었고, 그러나 부당한것을 부당하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책 속에서 주인공이 이토록 생각하는 장면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다. 나는 주인공의 생각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가, 빵을 훔쳐서 감옥에 갔던 그가, 단순히 부인하거나 억울해하기 보다는 깊게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이 부분에서만 좋은게 아니다. 처음 책의 시작부터, 그러니까 쟝 발쟝을 손님으로 맞아들여주는 신부의 등장부터 이 책은 뛰어나다. 현재 읽은 부분까지 벌써 내가 아는 이야기는 다 들어가있는 것 같다. 아직 쟝 발쟝이 꼬제뜨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꼬제뜨는 이미 등장해있다. 그리고 어린 꼬제뜨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 학대를 당하는 부분을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아, 정말 힘들어서, 아이를 학대하는 어른들은 지구상에서 다 휩쓸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은 쟝 발쟝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다. 꼬제뜨의 엄마, 그녀가 꼬제뜨를 낳기전, 그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이야기도 보여준다. 물론, 나중에야, 그녀가 한 사랑이 어리석었음을 알게됐지만, 그러나, 그 사랑으로 꼬제뜨가 생겼는걸.



그녀가 똘로미예스를 사랑하였다.

그에게는 심심풀이 사랑이었으되, 그녀에게는 뜨거운 정염이었다. 학생들과 헤픈 의상실 아가씨들이 우글거리는 까르띠에 라땡의 거리들이, 그녀의 그 꿈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pp.191-192)


그녀는 그로부터 버림받았다.


팡띤느도 다른 아가씨들처럼 웃었다.

한 시간 후, 자기의 방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울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똘로미예스에게, 자신의 몸을 남편에게 하듯 내맡겼다. 그리하여 가엾은 아가씨에게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p.224)



그리하여 가엾은 아가씨에게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를 읽는데 가슴이 턱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아주 세게 내 가슴을 내리치고 싶었다. 아 젠장, 왜 그녀들은 늘 가엾어야 하는가. 왜 그녀에게는 사는 일 자체가 고행인데 이런일까지 생겨야 하는가. 이제 이 어린 여자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고. 


아까 잠깐 꼬제뜨가 학대 당했다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자신도 아이를 낳은 부모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함께 키우는 아이를 학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어린 아이들이, 다른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걸 다 보고 있을텐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이 책에는 쟝 발쟝의 이야기가, 꼬제뜨의 이야기가, 신부의 이야기가, 그리고 다른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툭툭, 그들의 이야기와 뒤섞이지 않은, 아니 그 모두와 뒤섞였다고 보아야 할 문장들이 튀어나온다. 이 책이 쓰여진 1862년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아주 유용한 문장들이. 



그 짐수레의 앞부분이 왜 그자리에 있었을까? 우선 길을 혼잡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그다음으로는 녹스는 과정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낡은 사회질서 속에도, 그렇게 한데에 방치되어 통행을 방해하며, 존재 이유라고는 오직 그것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무수한 제도들이 있다. (p.226)



만약 내가 밑줄 그은 부분들을 죄다 옮겨온다면 이 페이퍼는 아주 길어질 것이다. 인용문들 만으로 가슴을 뻑뻑하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슴이 뻑뻑해지는 건 이 책을 읽어야 가능할 터.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추천한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남을 의심하는 사람과 도우려는 사람에게 추천하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과 빠졌던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서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다른 책들을 사는 대신, 이 책의 3,4,5 권을 살테다. 이 가슴 뻑뻑함은 어느책이나 줄 수 있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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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다른 나
    from 마지막 키스 2012-09-12 09:44 
    (레 미제라블 페이퍼를 기다린다는 단발머리님 덕에 안쓰고 패쓰하려고 했던 페이퍼를 씁니다.)"당신이 나의 목숨을 구해 주셨소. 당신은 누구시오?"떠돌이가 서둘러 나지막하게 대답하였다."나 또한 당신처럼 프랑스 군의 일원이었소. 당신과 헤어져야겠소. 나는 잡히면 총살당할 것이오. 내가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소. 이제 당신이 알아서 처신하시오.""당신의 계급은 무엇이오?""하사요.""당신의 이름은?""떼나르디에.""그 이름을 잊지 않겠소." 그러면서 장교
 
 
비로그인 2012-09-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읽겠습니다, 다락방님!! 점심 맛있게 드세요!!!

다락방 2012-09-05 13:02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 이 책은 필독서입니다. 잊지 마세요!

Forgettable. 2012-09-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권 읽는 내내 마음이 빡빡하게 들어차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겁니다. 부럽네요. 아직 읽지 않았다니.

다락방 2012-09-05 13:02   좋아요 0 | URL
오, 뽀는 벌써 읽었단 말예요? 놀라워요! 아니 대체 언제 읽었습니까! 아, 정말 좋은 책이에요, 뽀님.

Forgettable. 2012-09-05 13:15   좋아요 0 | URL
리뷰도 써놓은듯 ㅋㅋ

다락방 2012-09-05 13:31   좋아요 0 | URL
이 버전에는 없는것 같은데 어디다 써놨어요?

댈러웨이 2012-09-0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고른 인용문이 책 구입을 하는데 있어서도 비중이 커요. 저도 당분간은 책을 안 사려고 했는데, 결심이야 뭐 무너지라고 있는 거니까. ( ..) 아, 근데 여자는 가슴 뻑뻑하면 치명타일텐데... =333333

다락방 2012-09-05 13:03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누군가가 인용해놓은 글귀들을 보고 책을 고른적이 여러번 있답니다, 댈러웨이님. ㅎㅎ 인용문의 힘은 강하죠.

으응? 저는 그런데 가슴이 좀 뻑뻑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루 2012-09-0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작도 못하겠어요. 겨울즈음에나 후훗.

다락방 2012-09-05 13:03   좋아요 0 | URL
하루님, 이 책을 읽게 되실 그 겨울즈음은 대단한 계절이 될거에요. 후훗.

루쉰P 2012-09-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이 책은 저도 이미 소장하고 있네요 흠..읽고 싶다 ㅋ 간만에 왔습니다. ㅋ

다락방 2012-09-05 13:46   좋아요 0 | URL
루쉰님 이 책 리뷰 찾아보니 루쉰님 리뷰 있더라구요. 그런데 정말 간만에 오셨네요. 이제 자주 들르실겁니까?!

비연 2012-09-0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야겠어요.. 다락방님.. 책 구매한지 이틀 지났는데..ㅜ

다락방 2012-09-05 15:45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 지르렵니다, 나머지 레 미제라블이요.. 후아-

비연님, 이 책 사신거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장담합니다.

Kir 2012-09-0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동서문화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펭귄 버전으로도 나왔군요.
12월에 휴 잭맨이 쟝 발쟝으로 분한 <레 미제라블>이 개봉된다는 거, 알고 계세요?
영화는 재독한 다음에 보고 싶은데, 읽어주길 기다리는 책들이 너무 많아요...^^

다락방 2012-09-05 15:46   좋아요 0 | URL
네, 그 영화 보기전에 보려고 읽기 시작한건데, 아,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1권도 채 다 읽지 못했지만 말이죠. 으으으으 다음 이야기들은 대체 어떻게 펼쳐질지, 어떤 문장들이 가득할지 너무 궁금해요. 방에 콕 처박혀서 이 책만 읽고 싶어요!! ㅠㅠ

프레이야 2012-09-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읽은 장발장으로는 절대 안 되는 거죠.ㅎㅎ
저도 담아가요. 영화 나오기 전 5권 다 읽고 가슴 뻑뻑해질래요.ㅋㅋ
부지런해야할텐데, 큰일이네요.ㅠ

다락방 2012-09-06 09:00   좋아요 0 | URL
네, 프레이야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릴 때 읽은 장발장으로는 어림도 없는 거에요!! 레 미제라블은 반드시 성인이 되서 이 다섯 권으로 읽어줘야 하는겁니다!!(매우 강하게 부르짖기)

프레이야님, 이 책이 다섯 권이라 시작하기가 좀 망설여지실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손에 잡기 시작하면 놓고 싶지 않아지실거에요. 이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닌거에요. 흑흑. 좋아요. ㅠㅠ

아무개 2012-09-05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씨형제들 이제 1권 읽고 있는데....
다섯권 짜리 <레 미제라블>이라뇨......
이 페이퍼는 읽지 말았어야 했어요 ㅠ..ㅠ

참 이승우 단편집 <일식에 대하여> 지금 회사에서 읽는 중인데
다락방님이 아끼는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합니다. 좋네요.

다락방 2012-09-06 09: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전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열린책들 판형으로 읽었거든요. 700페이지쯤 두 권이요. 몇 년전에 그거 들고 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ㅎㅎ

이승우 단편집 [일식에 대하여]는 제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에요. 아..이승우 정말 좋지요? 좋아요, 좋습니다. [일식에 대하여]도 읽어야겠어요. 아이 좋아~

단발머리 2012-09-0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좋아, 난 다락방님이 좋~~다 하는 책은 다 읽고 싶어요.
<레 미제라블>도 책을 몇 번이나 들었나놨다 했는데, 권수 때문이 아니라, 아니라!! (전, 권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랍니다.ㅋㅎㅎㅎ) 두께 때문에 아직 안 읽었는데, 어쩜 좋아, 막 읽고 싶어져요. .....
근데, 다락방님의 서재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는 국내작가가 이승우씨라니, 너무 궁금해요. 왜요,,, 왜 그런거예요? 그 이유가 뭡니까요? 막, 궁금.....

다락방 2012-09-06 09:0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레 미제라블]은 정말 좋아요!! >.<

음, 이승우는 말이죠, 단발머리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한국 작가들보다 한 수 위의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승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한국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게 고마울 지경이에요. 전 때때로는 이승우가 국내 작가들에 대해서 강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제가 생각하는 국내의 최고작가입니다!!

레와 2012-09-0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2권 주문했어요!! 완전 기대기대!!

다락방 2012-09-06 09:05   좋아요 0 | URL
ㅎㅎ 오는대로 바로 시작할거에요?

dreamout 2012-09-05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레 미제라블.. @@ 거의 대하소설에 육박하는 양.
읽어보고 싶긴 하지만.. 헐.

다락방 2012-09-06 09:06   좋아요 0 | URL
이게 다섯 권이긴 한데 사실 그렇게 분량이 많지는 않은게 아닌가 싶어요. 책 한 권의 두께가 그렇게 두껍고 하진 않거든요. 지금 2권의 페이지를 살펴보니 400페이지쯤 되네요. 읽어보세요, 드림아웃님!!

브론테 2012-09-0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락방님, 배신이예요.배신(방방 뛰고 있음) 제가 책을 안 읽는 동안 혼자 레미제라블을 시작하시다닛!!!!!!
제가 2주에 한 번씩 출장길을 떠도는 동안 혼자서 명작을 즐기시고 ㅜㅜ 미워욨!!!!

다락방 2012-09-06 09:07   좋아요 0 | URL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대체 요즘 뭐하고 계시는겁니까, 브론테님. 저 레 미제라블 시작하는 동안에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거에요! 전 부지런히 읽을겁니다.

브론테님 방방 뛰시는 거 생각하니 조금 신나요. ㅋㅋ

가끔 2012-09-06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만큼, 책의 내용/줄거리보다는 빅토르 위고의 문장/문체가 단연 압권이죠. 아마 그래서, 다락방님도 책의 윗부분을 그렇게 수없이 접으셨는지도 모르겠고요. 아마 그래서, 흔히 Les Misérables을 시로 쓴 산문, 그것도 엄청 긴 소설로 된 감동의 대서사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락방 2012-09-06 09:07   좋아요 0 | URL
시로 쓴 산문..그렇군요. 문장의 힘이군요. 네, 내용의 놀라움 보다는 그 내용을 표현하는 문장의 놀라움도 압권인 것 같아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 가슴이 벅차올라요!

오.. 2012-09-0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슴이 뻑뻑해지는건 어떤 기분인가요?
마치... 닭가슴살처럼 뻑뻑해지는건가요?

여보, 내가 요즘 운동을 했더니 가슴이 닭가슴살이 되었구려. 뻑뻑하질안소.





죄송

다락방 2012-09-06 16:39   좋아요 0 | URL
아, 그게 그러니까. 마음에 어떠한 감정들이 꽉 차서 여유공간이 남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다, 뭐 그런 의미로다가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좋네요. 닭가슴살 같은 가슴..운동한 가슴 이라니. ㅋㅋ

moonnight 2012-09-06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읽히지 않고 쌓여만 있는 저 책들은 다 어쩌라고 이 페이퍼를 쓰신 거에욧. ㅠ_ㅠ 다락방님 글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막 쿵쾅쿵쾅. ㅠ_ㅠ 저도 꼭 읽어볼래요. 레미제라블. 정말, 어렸을 때 읽은 장발장으로는 안 되는 거였군요. 시무룩. ㅠ_ㅠ;;;;;;;;;

다락방 2012-09-06 16:40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어렸을때 읽은 장발장은 장발장이 하고자 하는 말의 아주아주 일부분만을 말해줄 뿐입니다. 읽으셔야 해요, 읽으셔햐 한다구요!!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우리 9월은 레 미제라블 읽는 달로 합시다. 하하하하핫

가연 2012-09-0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오랜만에 보는 레미제라블이네요ㅎㅎ 저번에 다락방님이 페이퍼에서 소개하신 뒤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러보니 예전에 알라딘에서 이북 뿌리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아마 초여름 일인 것 같은데, 거기에 응모했거든요, 행운의 램프 사용해서.. 그 이벤트에 이 책도 나와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이벤트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더군요.. 뽑혔으면 좋았을텐데.. 그런데 아예 소개글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중간에 무산되버린건가??

다락방 2012-09-10 11:03   좋아요 0 | URL
ㅎㅎ 글쎄요. 어떤 이벤트인지...전 잘 모르는 이벤트인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설사 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북을 받았다한들, 제 단말기는 드물게도 전자책 지원이 안되는 단말기. 일명 병신단말기 -_-

이제 겨우 2권 다 읽었습니다. 아, 가연님. 레 미제라블 정말 좋으네요. 책 읽는 모든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을만한 좋은 책이에요. 정말 좋습니다, 좋아요. 흑흑.

테레사 2012-09-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책들은 제 뒤에 있어요.누구나 안다고 생각하고 누구나 읽었다고 생각하는 장발장, 그 소설!!
저는대학교때 쟝가방의 장발장이 수입되어 상영되었던 걸 보았어요. 아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기억나요. 마리우스인가,.. ,,코쩨트랑...마드모아젤 하고 되뇌이자..배경계절이 바뀌던 아름답던 화면과.....장가뱡의 그 묵직한 얼굴과 침묵의 표정하며....그때 이 작품에 단순히 어린시절 소년소녀권장도서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있을 거란 사실을 예감했던 듯해요..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죠..근데 이 펭퀸클래식은 프랑스 원문을 바로 번역한 거로군요. 해서 읽어보려고요....저도 가슴이 벅찰 듯해요!!!

다락방 2012-09-10 11:05   좋아요 0 | URL
테레사님, 읽게 되신다면 정말이지 결코 후회하시지 않을거에요. 아주 많이 좋은 책입니다. 좋은 책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을만큼요. 분량이 많아서 아마도 널리 두루 많이 읽히지 못한 것 같은데, 아, 그런걸 뿌리치고라도 읽어야 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인 것 같아요.

올 해 개봉한다는 장발장을 보기 위해서 저는 그 전에 책을 읽어둘 생각이었는데, 아, 책이 너무 좋아서 행복하고 뿌듯해요. 좋은 책을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기쁨 아닙니까! 테레사님도 읽어보세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질거에요.

기억의집 2012-09-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벅차도 갈 길이 머네요^^ 저는 나중에 전자책으로 읽을까 하고 있어요. 저 요즘 오만과 편견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재밌네요.

다락방 2012-09-12 11:36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고전이 정말 재미있어요. 오만과 편견은 저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보다는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를 훨씬 더 좋아하긴 합니다. (뜬금 ㅎㅎ)
 

오늘 점심으로는 얼큰오뎅탕을 배달시켰다. 사무실 테이블에 꺼내놓고 먹으려는데 종이그릇 밑으로 자꾸 국물이 새나오는 것 같아서, 어어, 이거 새는건가 설마, 하고 그릇을 들었더니 밑이 뻥- 뚫려버렸........



뚫린 구멍으로 국물이 폭발해버리고 오뎅도 우두두두 다 떨어져버렸.........................






삶은....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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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9-0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 오뎅탕에서 꺼내든 삶의 물음표라니. 오뎅탕 댕기네요. 오뎅탕뎅탕뎅탕~ 발음이 참 귀여워요.
어떻게 오뎅탕 해결은 잘 하셨나 모르겠네요. 저는 좀 이따 맛난 점심을 하러~ :)

다락방 2012-09-04 13:29   좋아요 0 | URL
수다쟁이님에게 아직 점심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치게 부럽습니다. 흑흑 ㅠㅠ

하루 2012-09-0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이 갓

다락방 2012-09-04 13:31   좋아요 0 | URL
제게 점심시간을 한 번 더 주세요! 흑흑 ㅠㅠ

아무개 2012-09-0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이게 뭔 삶은 계란 같은일이랍니까!!!!!!!!!!

다락방 2012-09-04 13:54   좋아요 0 | URL
즐점했냐고 묻는 마중물님께 어떻게 답해야하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Kir 2012-09-04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뜨거웠을텐데 다치신 건 아니지요? 큰일 날 뻔 했네요.
점심도 못 드시고 일하셔야 되는 건가요?ㅜㅠ

다락방 2012-09-04 14:01   좋아요 0 | URL
치마에 좀 묻어서 냄새가 약간 나지만 견딜 수 있고, 밥은 밥집에서 준 기본 반찬으로 대충 먹었어요. 슬퍼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개인주의 2012-09-0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오뎅이 삶에 반전을..
유부주머니도 참 맛있더구만요..^^
하나 포장해서 둘이 싸우면서 먹었어요

다락방 2012-09-04 15:09   좋아요 0 | URL
앗 유부주머니 맛있어요? 저 한번도 안먹어봤는데 나중에 죠스떡볶이가면 먹어봐야겠어요. ㅎㅎ

비연 2012-09-0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다락방 2012-09-05 12:40   좋아요 0 | URL
흑흑 ㅜㅜ

세실 2012-09-0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어쩜!!
넘 속상하셨겠다.
근데 갑자기 오뎅탕이 느무느무 먹고 싶다는......

다락방 2012-09-05 12:40   좋아요 0 | URL
네. 그 날의 점심은 그 날 한 번 뿐이잖아요! 너무 속상해서 저녁에 와인을 좀 퍼마셨습니다, 집에서. 그리고 기절했어요. ㅎㅎ

moonnight 2012-09-0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 무슨 황당한 일이에요!!! 오뎅탕 오뎅탕 소주안주로 맛있겠다 침 꼴깍 삼키며 읽었는데, 바, 반전이 ㅠ_ㅠ 울적하셨겠어요. 토닥토닥;;

다락방 2012-09-05 12:41   좋아요 0 | URL
ㅎㅎ 조만간 오뎅탕에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음, 이번엔 종이그릇 말고 다른 그릇에 배달해 주는데에서 시켜볼까 어쩔까. 반드시 먹고말겠습니다, 불끈!!

dreamout 2012-09-04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다락방 2012-09-05 12:41   좋아요 0 | URL
엉엉.

무스탕 2012-09-0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찰불러-!

다락방 2012-09-05 12: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뎅 좀 쓸어담아 달라고 부를까요?

댈러웨이 2012-09-04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가끔 오뎅탕스러울 수도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333

다락방 2012-09-05 12:41   좋아요 0 | URL
점심만 기다리면서 오전을 가까스로 버텨냈는데 정말 잔인하지 않습니까! orz

프레이야 2012-09-0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ㅠㅠ 삶은 밑빠진 오뎅탕그릇! 아 진짜ㅠ

댈러웨이 2012-09-05 12:18   좋아요 0 | URL
ㅠㅠ 프레이야님, 실은 이게 제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표현이었는데... 저 내공좀 나눠 주시면 안되요 네?

다락방 2012-09-05 12:42   좋아요 0 | URL
점심을 정말 맛없게 먹었어요. 밑반찬들과 먹었는데 흑흑 어떻게 먹었는지.. 하아-
그래도 오늘 점심은 만족했습니다. 휴..

blanca 2012-09-0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네요. 그런데 이글 읽으니 저 오뎅탕 먹고 싶어져요. 수습은 어떻게 하셨어요?

다락방 2012-09-05 12:42   좋아요 0 | URL
냅킨 가져다 닦고 오뎅 주워담고 걸레 빨아서 박박 닥았죠. 하아- 저 완전 패닉이었어요, 블랑카님. 제 날아간 점심....orz
 

언젠가 여동생은 자신이 자신의 계획대로 살고있음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이 나이 즈음에 결혼하고, 이 나이 즈음에 아이를 낳고, 하는 등의 일들을. 또 한 후배 녀석은 이러이러한 직장에 취직하고, 자리잡히는 대로 결혼하고, 하는 등의 계획을 세웠었는데, 그대로 살고 있음을 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은 하나가 아니라 둘 씩이나 된다. 나는 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들 이렇게 언제까지 뭘 하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사는걸까? 일단 계획을 세우면 실천하게 되니 계획을 세우는 건 중요할까? 그렇다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나는 뭐지? 이런것들이 내게 한동안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뒤로도 어느 때에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다. 다만, 죽기전에, 그러니까 살면서 이것만은 해보고 싶다,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것들 중에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보기 라든가 프란세시냐 꼭 먹어보기 등은 내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허락한다면 가능한 것이었단 말이다. 그러나 '숀 마이클스의 레슬링 경기 관람하기' 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숀 마이클스가 몇 년전에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미국에 가서 숱한 관중들 틈에 섞인채로, 숀 마이클스를 응원하는 디엑스 티를 입고 꺅꺅 소리지르며 숀 마이클스랑 하이파이브를 해보고 싶었다. 목이 쉬어라 응원해보고 싶었다. 미친듯이 팔짝팔짝 뛰어서 땀으로 흠뻑 젖고 싶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가능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숀 마이클스의 은퇴는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거였다. 충격이었고, 어쩔수없이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멍해졌었다. 아, 레슬링 선수니까, WWE 선수니까, 은퇴를 해야한다는 걸, 경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있다는 걸, 내가 망각하고 있었다. 가수라면 좀 더 오래 노래부를 수 있을테지만, WWE 선수는 다르다. 나는 이제 설사 경제적 여유와 시간과 체력이 허락해도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관람할 수는 없다. 아, 이건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한 절망.


갑자기 이 일이 떠오른 건, 지난 주말 남동생과 동네 뒷산에 산책 갔다가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숀 마이클스와 팀을 이루어 경기를 하던 '트리플 에이치' 조차 은퇴 얘기가 돈다는 거였다. 아! 그래서 떠올랐다. 내가 나의 목표(?)중에 하나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했었던 사실을. 아, 이제 WWE 에 대해서는 끝이구나.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남동생도 아주 속상해했다. 그러게, 나는 왜 숀 마이클스 경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 아 진짜 보고 싶었는데, 하면서. 지난번 한국에서 경기가 열린다고 했을 때 참가자 명단에 숀 마이클스가 없다고 해서 볼까말까 망설이다 말았는데, 그때라도 가봤어야 했을까. 속상하다. 우린 함께 속상해했다.



요즘 직장생활이 재미없다. 물론 재미있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요즘은 지겹고 지긋지긋하다. 나는 요즘 일을 관두면 내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만을 생각하고 있다. 일단은 한동안 포르투갈에 장기체류를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직장생활의 지겨움이 폭발할듯 해서, 포르투갈 말고 또 어디가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여행 서적 몇 개를 뒤적였다.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부르짖었으면서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건 결국 여행 뿐인걸까. 지난 한 달간 읽은 여행서적이 여태 살아오면서 읽은 여행서적과 비슷한 권 수를 기록할 것 같다.



















『도시를 보다』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여행서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 다른 도시에 대한, 일반적인 도시에 대한 열망으로 들춰보았다.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도시의 높은 빌딩과, 그 빌딩이 이루는 빌딩숲을 사랑한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만, 또 가끔은 고개를 들어 이 빌딩은 어느 높이까지 솟아있나를 보곤 한다. 상점들이 즐비한 도시가 좋고, 도시 한 복판과 귀퉁이까지 사람들이 차있는 모습들도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스타벅스 라는 누구나 다 아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그러나 가장 자유롭게 혼자일 수 있음을 사랑한다. 그래, 나는 언젠가 또 여행을 가고 혹은 정말 어딘가에 장기체류를 하게 된다면, 그곳 역시 도시로 정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책은 노점상을 사랑하게 만들어 버린다.



『런던 디자인 산책』은 런던의 일상과 런던에서의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책이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나는 디자인의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신선함 보다는 일상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우체부와 우체통이 그들의 산책이 좋았다. 



『one fine day in 프라하』는 저 네 권들중 가장 실망스런 책이었는데, 그건 책의 저자와 내가 원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인듯 하다. 여행을 가는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휴양을 위해 누군가는 관광을 위해 갈것이고, 누군가는 그 지역의 역사를 알고 싶고 누군가는 그 지역의 일상을 보고 싶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휴양과 관광을 위해 가기 보다는 내 삶을 잠시나마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싶기 때문에 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일상을 겪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프라하라는 곳에 반해서 프라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에 열중한 것 같았다. 그곳의 성당 사진을 찍은 사진이 많고 그래서 그곳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많다. 과거가 있으니 현재가 있는건 분명하지만, 내가 여행기에서 바랐던 것은 그런것이 아니라서 아쉬웠다. 저자의 사진은 쓸쓸하거나 고독했고 조용했다. 내가 원하는 건 .. 맛있는 음식 사진이었는데.. ( ")



『런던의 어떤 하루』는 위에 언급한 『런던 디자인 산책』을 이미 읽고 시작했기 때문인지 익숙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반가웠다. 마치 내가 이미 런던을 조금은 알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런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줄 뿐 내가 원하는 바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난 좀 더 많은 음식 사진을 원했는데(응?), 이 책의 음식 사진들은 그다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말 그대로 런던을 여행하기 위해서라면 이 책은 유용할 것 같다. 런던에서 이용할 수 있는 마켓과 극장 쇼핑센터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그렇지만,


피터팬을 패터팬 이라고 쓰다뇨, 움베르트 푸코의 [장미의 이름] 이라뇨, 이런건 좀 너무하잖아욧!!!!!!!!! 잠깐 헷갈렸잖아, 아, 움베르토 푸코였나;; 하고!! 이러지마욧!!




역시, 아직까지는 포르투갈이 짱이구나. 장기체류는 포르투갈로. 그런데 직장은 언제 그만두나. 그만두면 뭐해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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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2-09-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직장... 직장...

다락방 2012-09-04 13:01   좋아요 0 | URL
하아- 뭐 다른거 할 줄 아는게 있으면 당장이라도 때려칠텐데요..orz

하루 2012-09-04 13:31   좋아요 0 | URL
그것이 우리의 문제이자 번뇌!

다락방 2012-09-04 13:37   좋아요 0 | URL
그러다보니 여기까지(이 직장 십년차!) 왔네요. 하아-

아무개 2012-09-0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일상이 지리멸렬해지면 결국 떠오르는건 여행뿐인듯.

전 아마 9월 중순쯤에 5일정도 휴가를 신청할듯 해요.
딱히 어디로 가거나 뭘 하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쓰라고 하는 휴가니까 뭐....


다락방 2012-09-04 15:09   좋아요 0 | URL
오, 어디로 가셨을지는 정하셨어요?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오세요.
휴가가 아직 남아있다니..삶에 위안이 되겠네요. 흑흑 ㅠㅠ (부럽..)

2012-09-04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5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9-0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전에 한 후배가 누나는 삶의 목표가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_-; 그 후배의 목표란 앞으로 몇 년 후에는 결혼을 하고 (심지어 결혼할 여자에게서 혼수로 뭘 받고 등등;) 몇 년 후에는 돈을 얼마를 벌고 몇 년 후에는 차를 뭘로 바꾸고 하는 거였는데 나는 당장 내일 내가 뭘 할지도 모르는데 목표는 무슨. 이라 그랬지요. 사실, 저는 하루하루 행복하게 맥주 한 잔 하면서, 그리고 조카 크는 거 보면서 살고픈 거 외엔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라 -_-;;;;;;;;;;;;;;;;


다락방 2012-09-05 12:48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면 저 역시도 목표라는게 구체적으로 정해져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막연히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 몇 가지를 가지고 있을 뿐.
저 역시도 하루하루를 그저 책읽고 술 마시고 조카를 사랑하면서 지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인데, 요즘엔 지겹고 지긋지긋하네요, 이 직장생활이. 뭔가 다른 할수있는게 있다면 사표 던지고 뛰쳐나가서 푹 쉬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한게 아닌가 싶어요.

Jeanne_Hebuterne 2012-09-0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을.
그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많은 것을.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 빛과 그림자.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겪어보고 싶다고 어릴적부터 생각했어요.
이루고 있어요.

다락방 2012-09-05 12:49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쟌님. 겪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이루고 있다니요.

dreamout 2012-09-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 우리의 문제이자 번뇌 2. 저는 철학책에 자꾸 손이 가요.

다락방 2012-09-05 12:50   좋아요 0 | URL
드림아웃님, 철학책 읽으면 어때요? 좀 나아져요? 여행책보다 더 나은 탈출구가 되나요?

dreamout 2012-09-05 20:43   좋아요 0 | URL
여행책은 이미지를, 철학책은 개념을 남기고..
그 개념이 세상살기를 더 잘하게 하진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라도 별로 주눅들지 않고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하는 힘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확실치는 않아요. ㅎㅎㅎ

댈러웨이 2012-09-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응? 숀 누구?... 했어요. 그러니까 다락방님은 레슬링도 좋아하는 여자사람이군요!
아, 저 도발적인 제목을 어쩔까요.
주 5일 근무제가 정착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일년 중 4주 유급 휴가 권리를... 아... 한국경제 마비되겠지요... --;

움베르트 푸코, 대박이에요! ㅎㅎ

다락방 2012-09-05 12:50   좋아요 0 | URL
숀 마이클스가 은퇴한 뒤로 제가 레슬링에 관심을 끊었지만 -0-
저는 사실 레슬링을 방송해주는 매주 월요일이면 약속도 안잡고 칼퇴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여자사람이었던 겁니다. ㅎㅎㅎㅎㅎ


소리내서 읽다가 글쎄 저도 그만, 으응, 푸코, 이럴뻔 했다니까요. 버럭!

프레이야 2012-09-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때려치우고 세계여행 장기로 가는 사람들 대단하다 싶어요. 매여있는 것들이 어디 한두가지인가요. 아ᆢ 떠나고싶어라. 움베르트 푸코, 어쩔ㅎㅎ

다락방 2012-09-05 12:51   좋아요 0 | URL
선택이겠죠, 프레이야님. 매어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머무르느냐, 끊어내고 떠나느냐. 어느쪽에 더 애착이 있는지 자신이 선택하는 거겠죠. 저는 사실 여행을 선택하게 되지는 않아요. 제가 지금 가장 선택하고 싶은건 직장 때려치우기 입니다. 후아-

가연 2012-09-0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숀 마이클스팬이시군요. 저는 처음 레슬링 보게 된 까닭이 더 락, 이랑 골드버그 때문이었는데.. 더 락은 정말 이빨을 잘 까서[..] 재미있었고.. 골드버그는 맨날 이기는 기믹이 좋아서 계속 찾아봤는데, 계속 이기니까 또 별로더군요, 풋.

다락방 2012-09-10 11:06   좋아요 0 | URL
저는 숀 마이클스랑 존 시나 좋아했는데요, 존 시나는 후까시가 너무 강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 바티스타도 잠깐 좋아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그는 덩치만 컸지 기술적으로는 전무한 선수인 것 같더라고요. 레이 미스테리오는 기술이 대박인데 신체적으로 매력적이질 않고. 이 모든걸 다 만족시키는 사람은 숀 마이클스 뿐이네요. 히히. 짱이에요, 숀 마이클스!! 그렇지만 은퇴....하아- 가슴이 아프네요. 왜 사람은 늙는걸까요..

WWE 는 그 레슬링의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들이 수십명이라더군요!
 
[100자평] 레가토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혹은 헤어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로 보자면, 어떤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이 필요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눈물과 비참함과 내팽개쳐진 자존심과 슬픔과 절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이만큼은 꼭 필요했던 사항, 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면서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내야만 이 사람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는거구나, 했던거다. 만나거나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단지 여분의 시간중 얼마를 내어주면 충분했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초조함과 설레임과 오랜 기다림과 교통비와 속옷을 사는 비용등이 필요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의 '운명의 상대' 라는 것에는 글쎄, 확신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람에겐 각자 저마다의 '운명의 흐름'같은것은 있지 않나 싶다. 너는 나의 운명이야, 라는것 보다는 내 운명의 선이 쭈욱 길게 뻗어 있다고 봤을 때,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을 만나고 또 이 시점에서 이 사람과 헤어지는 것들이 그 선 상에 놓여져 있지 않는가 하는거다. 내가 스물다섯 살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일이, 서른한 살에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일이, 다 그 흐름안에 있던게 아닐까. 내게 그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그러니까 내가 반드시 겪어내야만 할 일이 아닌가.

















이 책속의 인하와 정연과 하연을 보면서 운명의 흐름을 생각했다. 하연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폭력과 강간이, 그리고 내내 정연을 가슴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던 인하의 죄책감과 비열함이, 학업을 포기하고 권력과 폭력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어야 했던 정연의 젊은 날들이, 그들을 서로 연결하기 위한 운명의 선에 놓인게 아니었을까. 정연의 운명의 흐름, 그 스무살에 인하가 있고 스물한 살에 하연이 있고, 하연의 서른 살에 인하가 있고, 인하의 이십대에 정연이 있고 오십대에 하연이 있고, 그 사이의 공백들에 다른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과 감정들이 있고. 겪지 않았어야 할 일들을 겪어야 비로소 그들의 운명의 흐름이 어느 시점에서 하나로 모여 만나게 되고. 



권여선의 책을 처음 읽는것도 아닌데, 권여선의 글이 원래 이렇게 맛깔스러웠던가 싶었다. 술에 취한 새벽에 일어나보니 하늘같은 선배 인하가 체해서 끙끙 앓고 있다. 정연은 급한 마음에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나도 잘 체하는디 혼자도 잘 따요. 한나도 안 아파요. 체해서 아픈 데 비할까이. 급체를 냅두면 나중엔 숨도 못 쉬고 똑 죽는 수가 있답뎌. 아무튼 나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만 알아두시요. 어젯밤엔 나가 쪼까 취해서 선배들한테 한바탕 패악을 떤 거 같은디. 살다보면 내남적없이 한분씩은 실수도 함서 한분씩은 도와도 감서 살게 마련인께 너무 탄허진 마시요. 나가요, 지금 본께 어저께 뭣이 그리 무서버서 그 고약을 떨었는가 모르겄소. 짭새가 나 잡겠다고 달겨든 것도 아니고 우쩌다 눈만 한분 딱 마주친 거뿐인디 워째 그리 등짝이 써늘하고 사지으 심이 실실 풀려부렸으까요 잉? 고건 고렇고, 우리 사람 몸땡이는 우선적으로다가 피가 사방으로 잘 통허게끔 혀줘야 무탈헌 거인디, 고것을 밤새도록 콱 막아놨은께 오죽 답답코 아펐을 것이요잉 ‥‥‥" (p.71)



체하고 아프고 무서웠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숨이 막힐듯 답답하고 아픈 와중에 저런 사투리로 내 손을 잡고 바늘을 찔러주는 그 상황에서, 그라고 애틋한 마음이 왜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의 자존심과 젊은 혈기는 그 밤을 평생 치욕스러운 밤으로 만들고 만걸까.




양고기를 건져먹은 재현의 이마에 땀이 뱄다. 진태가 혀를 찼다.

"너 매운 거 잘 못 먹냐? 그럴 줄 알았다. 욕망이 죽어버리면 그런 거야. 매운 것도 못 처먹어." (p.186)



내가 어릴적에 우리 아빠는 아주 자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드셨다. 나물이나 다른 넣을것이 없어도 그냥 고추장 하나만 넣어 비벼드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도 따라서 비벼 먹었는데,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아빠와 나만 매운것을 잘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가 언제부터인가, 고추장에 밥 비벼 드시는 일이 드물어지더니 언젠가는 신라면이 너무 맵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젠 매운 음식 먹기를 꺼려하신다. 나 역시도 예전처럼 매운걸 잘 먹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내심 '나이 들면 매운걸 잘 못먹게 되는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욕망이 죽어버리면 매운 것도 못 먹는다니, 아, 정말 그런건가 싶었다. 욕망이 죽어버린다는 건, 내가 늙어버린다는 걸까.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나는 곧잘 매운걸 먹고 싶어져서 친구와 며칠전에도 매운갈비찜을 먹으러 갔다. 물론 먹다가 감자전을 찢어 먹고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지만. 욕망이 죽어버리면 매운 것도 못 처먹는다는게, 삶의 진리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 그런것 같다. 욕망과 매운것은 맞닿아 있는것 같다. 나는 여전히 생마늘을 먹는다. 그 알싸한 매운맛의 매력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가끔 너무 매운게 걸려서 고통스러워도 다음에 어김없이 또 먹곤 한다. 내 욕망은 조금 사그라들었을지언정, 죽지를 않는가보다.




나가 와 이런댜. 뭣 땀시 이런댜. 기왕지사 엎지르진 물에 깨박난 물동인디 나가 이럭해서 뭔 영화를 보겄다고 이런당가. 나부텀도 시집가기 전에 아부텀 배놓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제. 처니가 아를 밴 그 심정을 나가 어찌 못 세아리고 이러는가 말이시. 유보살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가슴을 쓸고 염불을 외우고 딸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 눈물로 뺨을 흥건히 적시곤 했지만 아침녘에 곁채에서, 때로는 보고파지겠지 둥근 달을 쳐다보면은, 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듣거나, 누렇게 뜨고 부석하게 부은 딸의 얼굴과 봉긋한 배를 힐긋 보는 것만으로도 십년 수도가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시상에 저런 고집퉁머리 신 년이 다 있어야? 그 잘난 공부는 해서 남 줬는가? 남 부끄런 건 하낙도 모르고 항차 그 꼴을 하고 왔으면 에미한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이약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베, 이약이? 그 비루먹을 냉정한 사램이 당최 워떤 놈이냔 말여?" (pp.244-245)



지하철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공부하겠다고 한 딸, 서울로 보내놨더니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애를 배가지고 돌아왔다. 게다가 아비 없는 아이를. 그런 딸을 보며 사정을 차마 묻지도 못하고 야속해하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져서..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었을 때, '앤드루 윌슨'의 『거짓말하는 혀』를 읽었을 때, 뒤에 몇 장 남지 않은 책장을 보고 초조해했었다. 아, 대체 어떻게 끝나려고 이렇게 조금 밖에 안남은거야. 고작 몇 장 되지도 않는 이 안에 어떻게 이야기를 정리하려는거야, 하고. 결말이 어떻게 나려고 고작 이만큼만 남은거야. 그 초조함을 어제 늦은 밤, 권여선의 『레가토』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느꼈다. 새벽 세시가 그랬고 거짓말하는 혀가 그랬듯이, 그 결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소 영화같은 결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나 분명히 만족했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기도 하니까. 식상한 표현이지만, 행복해지기를 바랄게. 흑흑.





어제는 비도 오고 날도 좀 쌀쌀해서(여름아, 어디갔었니?) 퇴근후에 동료와 함께 순대국에 소주를 마시기 위해 순대국집엘 갔다. 그런데 비가 오면 다들 순대국에 소주가 생각나는걸까. 사람이 바글바글한거다. 우리까지 앉고 나니 빈 테이블이 없는거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순대국에 소주는 정말 맛있었다. 




아, 권여선의 『레가토』는 소주와 맥주와 치킨과 순대국과 막걸리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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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2-09-01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맵고 개운한 거 먹고 싶어요.

다락방 2012-09-03 12:31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엄청 매운걸 먹고 싶어요, 드림아웃님. 점심 메뉴는 낙지덮밥으로 할겁니다. 흣.

람혼 2012-09-0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 그 자체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기이하게도, 정말 운명의 '흐름' 같은 건 있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2-09-03 12:33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요, 람혼님. 왜이렇게 오랜만에 오신거에요! 3~4주 전이었나, 경향신문에서 람혼님이 등장한 한 페이지를 보고 여동생에게 들이밀며, 나랑 아는 사이야, 하고 한껏 으쓱거린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ㅎㅎ

네, 운명의 흐름 같은게 정말 있는 것 같아요, 람혼님. 람혼님이 9월 1일에 여기 오셔서 댓글을 달아주시고, 또 제가 반가워하는 그 모든것들이 그 흐름선상에 놓여 있는 거겠죠.
:)

단발머리 2012-09-02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소주와 맥주와 치킨과 순대국과 막걸리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전 너무 구수한 사투리가 나오는 소설은 이해가 잘 안 되서, 아예 소리내서 읽거든요. <레가토>도 웬지 그렇게 읽어야할 것 같아요.ㅋㅎㅎ

다락방 2012-09-03 12:3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사투리는 소리내어 읽기도 해요. 이 소설 속에서의 사투리는 계속 나오는게 아니라 어쩌다가 툭툭 튀어나와서, 사투리 안에 가장 진실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사투리 부분마다 웃게됐다가 눈물이 찔끔났다가 했던 것 같아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단발머리님!!

moonnight 2012-09-0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저도 꼭 읽어볼래요. 다락방님의 권유대로 소주맥주순대국막걸리 펼쳐놓고서요. ^^

다락방 2012-09-07 11:09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손수건 들고 눈물을 닦게 될지도 몰라요. 흑흑.

얼음장수 2012-09-14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매운 음식을 못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심리적인 거라 생각했는데, 몸에서 통 받아주질 못하네요.
사랑을 잃은 것보다 매운 맛의 쾌감을 잃은 게, 더 슬프요. 지금은.

ㅎㅎ <레가토>, 역시 좋은가 보네요.

다락방 2012-09-14 11:02   좋아요 0 | URL
하아- 얼음장수님, 이 댓글 너무 슬퍼요.
첫사랑과 헤어진 후 매운 음식을 못 먹게 되었다는 것도, 이제는 매운 맛의 쾌감을 잃은 게 더 슬프다는 것도,
너무 슬프네요.....뭔가 매운 걸 사드리고 싶은 욕망이....( ")


레가토는 좋습니다, 얼음장수님.
 
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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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자리에서 울다가 돌고돌아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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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헤어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from 마지막 키스 2012-08-31 11:39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혹은 헤어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로 보자면, 어떤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이 필요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을 잊기 위해서는 눈물과 비참함과 내팽개쳐진 자존심과 슬픔과 절망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이만큼은 꼭 필요했던 사항, 이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면서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내야만 이 사람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는거구나, 했던거다. 만나거나
 
 
... 2012-08-3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왜 이리.책을 많이.읽으시는 건가요? 저랑 완전 비교되요 ㅜㅜ

다락방 2012-08-31 11:5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최근 한 열흘동안 탄력붙었어요. ㅎㅎ
그리고 읽다보니까 속도가 저절로 빨라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