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White & Royal Blue (Paperback) - 아마존 프라임 영화 <빨강, 파랑, 어쨌든 찬란> 원작
Casey Mcquiston / Griffin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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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 유색인종 이민자의 자녀, 양성애자인 아들과 그의 공식적 애인인 동성애자 영국 왕자. 이것은 케이시 맥퀴스턴이 그려낸 율도국 이야기. 의미가 없진 않지만, 아직은 이상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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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단발머리 2026-05-31 22:05   좋아요 0 | URL
완독! 완전 진짜 엄청나게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6-06-0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려요!!👏👏👏
 














(왼쪽이 개정판이고 나는 오른쪽의 구판으로 읽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고 그래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리뷰 쓰기를 포기했는데, 그러자니 또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운거다. 


일단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살'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살에 대해 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철학적인가! 하고 깨달았다.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재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단은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p.364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얼마나 간단하며 명백한 진리란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살에 대한 부분만큼은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살에 대한 부분에서는 당연하게도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생각이 났다. 사지마비가 되고나서 자신의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윌'과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루이자'가 나온다. 자살은 단순히 내가 나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 혼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자살은 복잡해진다. 내가 내 죽음을 결정하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일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이제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극한 슬픔이다. 그렇다면, 내가 슬프기 때문에 너는 죽지마, 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은 죽기를 결심한 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슬픈 주변사람을 위한 것인가. 


앤드류 솔로몬은 이런 자살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충부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순하게 죽음이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없애는 것, 혹은 나약하기에 내리는 결정이라고 하기에, 자살이 담고 있는 것은 더 크고 깊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 고통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 없어, 자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한 이 책에서 '가난'에 대해 짚어준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어제 쓴 최미래 소설집의 리뷰에서 빈곤에 대해 언급했는데, 앤드류 솔로몬의 우울증에 관련된 책에서도 빈곤에 대해 얘기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빈곤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며 또 우리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나라는 인간이 '빈곤' 과 '노동'에 대해 특히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p.493



나는 어제 주식거래를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만의 축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빈곤한 자들은 주식 투자에 끼어들만한 여윳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억을 벌고 또 누군가는 몇십만원을 벌며 아쉽다고 할 때, 빈곤한 자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더 벌어지게 될 그들의 경제적 격차, 그 빈부의 격차에 절망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질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병에 걸리는 건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치료하는 건 계급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돈이 있어 완치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치료받을 돈이 없어 그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것은 우울증에 있어서도 그렇다. 앤드류 솔로몬이 쓴것처럼,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저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는 것으로 이 현상은 끝인가. 아니, 그것은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도 질병도 중독도, 가난한 자들이 그것을 치료하지 못하고 가져가는 이상,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가족, 특히나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정신 질환자)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지만 물질 남용이나 자기 파괴적 행위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정신 지체나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녀들은 복지시설이나 교도소 신세를 지기 쉬우며,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안고 사는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어머니의 딸들은 다른 소녀들에 비 해 일찍 사춘기를 겪으며 거의 대부분 난잡한 성생활, 임신, 정서 불안의 문제를갖게 된다. 따라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에 따른 비용에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496




나는 '레이첼 모랜'을 생각했다.


레이첼 모랜은 열다섯살에 성매매에 유입되었다. 레이첼 모랜의 어머니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두 성인 어른이 만나 사랑이란 걸 하고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병은 치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약물에 중독된 부모들이라 레이첼 모랜을 비롯한 자녀들은 가난과 폭력의 상황에 놓인다.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대신 늘 입었던 지저분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한다. 다른 아이들은 지저분한 아이들이라며 이 아이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어린 형제들은 언제나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다른 형제가 아닌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이 가정에서 버틸 수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나름 영악해져야 하고 수시로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는 필요없는 죄책감까지도 아이들의 몫이다. (소설이지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려낸 '루시'도 떠오른다. 루시는 그 가난한 집에서 가장 잘된 케이스였다.)


그런 가정에서 열네살이 되자 레이첼은 엄마로부터 내쫓긴다. 이제 다 컸으니 쉼터에 가서 네 살길을 모색하라는 거였다. 쉼터에 간다고 뚜렷한 대안도 없어 열넷에 레이첼은 노숙자 신세가 되고, 열다섯에 스물한살의 남자 애인을 만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매매를 권유받는다. 그렇다. 레이첼 스스로가 성매매가 답이라고 생각해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애인이 제안했고, 그러자 그것은 안될것도 없는 답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진다.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성매매로 유입시켰다. 성매매로 그녀가 돈을 벌게 된 데에는 제일 먼저, 가난한 집안 환경이 있었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만약 부모가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가난하지 않아서 부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레이첼 모랜의 삶은 어릴 때에도, 그리고 당연히 어른이 되어서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앤드류 솔로몬이 우울증에 대해 폭넓게 다루면서 당연한듯 가난을 얘기해주어 고마웠다. 이것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빈곤은 질병에도 사랑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빈곤을 얘기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의 마지막 희망 부분은 특히 더 좋은데, 그가 우울증 삽화를 몇차례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한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p.632




이 조언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것이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유용하다 하겠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고, 그리고 이 책을 읽은 것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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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울해요? 한 번에 두 끼 먹어~🤣
ㅋㅋㅋㅋ 이 책 갑자기 읽은 까닭은?

저는 개정판 갖고 있는데 조만간 읽아야지!

다락방 2026-05-26 15:48   좋아요 0 | URL
요즘 좀 쭈굴쭈굴하긴 하지만, 우울하진 않습니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갖고있던 책인데, 이번에 친구랑 같이 읽자고 해서 읽게 되었어요. 좋았습니다!!

blanca 2026-05-2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명작이라고 생각했어요. 울컥하더라고요. 인용해 주신 부분은 또 울컥하네요. 같은 저자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도 정말 좋았어요. 요즘은 그만한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워요.

다락방 2026-05-26 15:47   좋아요 0 | URL
특히 마지막 희망 부분이 참 좋더라고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도 예전부터 찜해둔 책인데 읽어봐야겠어요!

hnine 2026-05-2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는데 아직도 그 충격이 남아있어요.

다락방 2026-05-27 17:4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써준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완전히 모르고 살았다면 오해하기도 했을테니까요. 읽기를 잘했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특히 인상깊었던 게.... 아파서 고생하는 이 책의 저자가.... 친구들 집을 전전하는 거요.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잖아요. 우리는 아픈 사람 있으면 거의 부모, 형제, 자매, 가정의 책임인데요. 그게 우리와는 좀 다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울에 대한 부분은 저도 관심이 있어서요. 제가 찾아보니 이 책 읽고 글은 많이 썼는데 완독은 못 했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 오른쪽이 구판이네요. 그럼 제가 읽은 건 개정판. 근데, 대체 언제 사 두신 거예요? 미리미리 준비해둔 다락방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8 07:5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는 그래서 친구들도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저라면.. 저는 확답할 수 없습니다. 하.. 저는 진짜 이기적인것 같아요 ㅠㅠ

저 이 책을 제가 산 건 아니고요, 예전에 알라디너 분이 나눔하신 적이 있어요. 그 때 받아둔 겁니다. 그걸 고이 모셔뒀다가 이번에 읽었습니다. 만세!! 저도 밑줄 많이 그었어요.
단발머리 님, 완독 가시죠!!
 
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증을 앓는 원인을 딱 하나로 꼬집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책에는 우울증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자살에 대한 부분은 과연 철학적이고, 무엇보다 빈곤에 대한 부분은 반드시 말해져야 할 것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희망‘ 부분에서는 우울증 환자였던 그가 건네는 아름다운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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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6-05-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두꺼운 책을 읽으셨네요!

다락방 2026-05-26 07:44   좋아요 1 | URL
네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읽었습니다. 만세!

잠자냥 2026-05-2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두꺼운 걸!!!👏👏나도 읽을 것이다! 😤😤😤

다락방 2026-05-26 07:43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은 이것보다 더 두꺼운 책도 읽으셨잖아요!

단발머리 2026-05-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두꺼운 책을 ㅋㅋㅋㅋㅋㅋ 저는 예전 표지로 읽었습니다. 으쓱으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43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 백자평 쓴 이 표지로 읽었는데, 이것도 구판이더라고요. 아무튼 좋았습니다! 정희진 쌤이 이 책 엄청 칭찬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뭔가 더 뿌듯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우울증이 앗아간 추억들을 찾아내어 미래에 투영해야 한다. 용감해지고, 강해지고, 착실히 약을 먹어야 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더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음식 냄새도 맡기 싫다고 해도 먹어야 한다. 이성을 잃었다면 자신을 설득해야한다. 이런 권고들은 중국 음식점에서 주는 행운의 과자에 들어 있는 점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우울증을 싫어하고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엄습하는 끔찍한 생각들을 차단해야 한다. - P46

나는 이 시대를 사랑한다. 물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성경 속의 이집트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영국, 전성기의 잉카 왕국을 여행할 수 있다면, 시바 여왕이 살았다는 그레이트 짐바브웨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 보고,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어떤 모습으로 생활했는지 볼 수 있다면 그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현대의 안락함이 좋다. 우리의 복잡한 철학이 좋다. 이 새 천년에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대대적인 변화의 느낌, 바야흐로 인류가 과거에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찰나인 듯한 느낌이 좋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지역의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관용이 좋다. 자유로이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과거보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것이 좋고 시간이 천년 전보다 조금은 더 우리 편인 것이 좋다. - P47

심리치료는 정신분석에서 나왔고 정신분석은 교회의 고해성사에서 처음 형식을 갖춘, 위험한 생각들을 털어놓는 의식에서 나왔다. 정신분석은 특수한 기술들을 이용하여 신경증을 유발한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을 밝혀내는 치료법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을 요하며(보통 일주일에 네다섯 시간) 무의식의 내용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프로이트와 그에게서 나온 정신역동적 이론들을 비판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지만, 사실 프로이트의 모델은 결점은 있지만) 훌륭하다.
루어만의 표현을 빌자면, 거기엔 "인간의 복잡성과 깊이에 대한 인식, 자신의 거부들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 인생의 힘겨움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의 세부 사항들에 대해 옥신각신하고 당대의 편견들에 대해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느라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동기들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포로라는 그의 글의 기본 진실을, 그의 숭고한 겸손을 간과한다. - P154

정신분석은 문제를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문제의 해결에는 효과적인 방법이 못 된다. 환자의 목표가 전반적인 기분을 즉시 바꾸는 것이라면 정신분석의 막강한 힘은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울증 완화를 위해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모래톱에 서서 밀려드는 파도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사람이 연상된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나온 정신역동적 치료법들은 중요한 역할을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 없이는 삶을 바로잡기가 힘들며 그런 성찰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나게 한다. - P154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노먼 로전설의 말을 들어 보자.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삶과 수면, 식사, 운동을 조절하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우울증 상태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우울증은 선택이 아니라 질병이며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 심리치료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약은 우울증을 치료하고 나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지요." - P157

"나는 스스로를 증오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고통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했기에 죽고싶었다. 나는 날마다 딸아이의 욕실 문에 기대어 서서 그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딸아이는 그때 열한 살이었는데 샤워할 때면 늘 노래를 불렀다. 딸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 더 자살을 미룰 수 있었다. 문득 내가 자살한다면 그 아이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게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죽음은 딸아이를 침묵하게 할 것이다.
바로 그날 ECT를 신청했다. 그건 나를 쓰러뜨린 상대에게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 P183

"어떤 병에 대한 처방이 여러 가지라면 그 병은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것이다." 안톤 체호프의 말이다. - P203

우리는 날마다 운동을 해서 건강을 가꾸듯 우울증 삽화들 사이의 기간에 저항력을 길러서 우울증 삽화가 다시 찾아와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P216

내게 은두프 의식은 현재 미국해서 행해지는 많은 집단 치료들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은두프는 우울증의 원인이 자신과 분리된 외부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전기 없는 ECT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온몸에 충격을 주어 뇌의 화학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또 공동체 의식을 깊이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신체적 접촉을 하게 한다. 뿐만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이 살아서 고동 치고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해 준다. 또 환자가 몸을 많이 움직이도록 만든다.
반복되는 절차를 따르는 편안함도 가르쳐 준다. 또 환자가 저절로 힘이 솟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한마디로 동작과 소리의 걸작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며 어떤 의식이든(숫양과 수평아리의 피를 온몸에 바르는 것이든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일을 전문가에게 말하는 것이든) 그 효과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와 전문성의 결합은 언제나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다. - P255

우울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모든 우울증이 유일하다. 마치 눈송이처럼,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각자 복제 불가능한 복잡한 형태를 뽐낸다. - P259

화학 작용과 외부 조건에 의한 여러 이유들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우울증에 걸린다. 이런 차이는 어릴 때는 나타나지 않고 사춘기가 되면서 시작된다. 여성은 남성이 겪는 모든 우울증들에 덧붙여 산후우울증, 월경전증후군, 폐경기우울증과 같은 그들만의 우울증까지 겪는다. - P259

여성이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것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생물학적인 차이뿐 아니라 사회적인 차이도 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 P261

나는 동성애자로서의 자긍심("gay pride")이라는 말이 강조되는 것이 사실은 많은 동성애자들이 그 반대의 것을 체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프리드먼과 다우니는 이렇게 썼다. "동성애자인 것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이 자기혐오와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 자기혐오는 부분적으로는 공격자와 자신을 방어적으로 동일시한 결과다." 처음 성적 자각이 일어날 때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한동안 성전환에 대한 환상에 젖는다. 동성애자임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동성애자 자긍심 운동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만일 당신이 동성애자임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자긍심을 외치는 이들의 조롱을 살 것이며 같은 동성애자들에게조차 배척을 당한다면 진짜로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을 내면화한다. 우리는 처음 겪은 타인으로부터의 동성애 공포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 P305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존재는, 체험의 부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부재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면 그건 존재하는 것이니까. 건강한 상태에서의 내 견해는 죽음 저편에는 영광이 있을 수도 평화가 있을 수도 공포가 있을 수도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알기 전에는 모험을 걸지 말고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단은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실제로 20세기 중반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탐구에 생을 바쳤으며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에는 종교가 충분한 대답을 제공했던 질문들에 매달렸다. - P364

총과 바르비투르산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자살률이 뚜렷이 떨어지며 이것은 자살률이 외부 요인들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는 증거다. 현대적 기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살을 쉽고 덜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극히 위험한 현상이다. - P378

자살자의 3분의 1 정도와 자살 기도자의 4분의 1 정도가 알코올 중독자다. 술이나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의 자살 기도는 맑은 정신인 경우에서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의 15퍼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칼 메닝거는 알코올 중독을 "더 심각한 자기 파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기 파괴의 한 형태"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자기 파괴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기 파괴이다. - P379

러시의 환자들 중에는 망상형 우울증이 많았다. 예를 들어 선장이었던 한 환자는 자신의 뱃속에 늑대가 들어 있다고 확신했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는 환자는 자신에게 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장난기 많은 친구 하나가 그의 머리에 소변을 보았고 화가 난 그 환자는 병이 나았다고 한다. - P471

우울증 환자의 정신은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느끼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기 때문에 우울증은 광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며 자살로 마감하기도 쉽다."
" - P475

우울증은 계층을 초월하지만 우울증 치료는 그렇지 못하다. 무슨뜻인가 하면, 대부분의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가난한 우울증 환자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우울증과 가난은 오래 방치될수록 그만큼 더 심각해진다. 가난은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우울증은 장애와 고립으로 가난을 심화시킨다. 가난은 사람을 운명에 수동적이게 만든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극히 무력한 존재로 인식하여 도움을 청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으로부터도 분리된다. 그들은 가장 인간적인 자질인 자유 의지를 상실한다. - P493

그들(정신 질환자)중에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지만 물질 남용이나 자기 파괴적 행위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녀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정신 지체나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 가난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녀들은 복지시설이나 교도소 신세를 지기 쉬우며,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안고 사는 어머니의 아들들은 다른 소년들에 비해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어머니의 딸들은 다른 소녀들에 비 해 일찍 사춘기를 겪으며 거의 대부분 난잡한 성생활, 임신, 정서 불안의 문제를갖게 된다. 따라서 빈곤층의 우울증 치료에 드는 비용은 우울증을 방치한 결과에 따른 비용에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496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본인이 도움을 원하지 않더라도 치료를 받게 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들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도움을 거부하는 것도 병의 한 증세이며 일단 치료를 받고 나서는 대부분 치료를 받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P497

그(러셀 가드너)는 인간의 경우 성공이 남을 누르는 것보다는 스스로 이루는 것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경쟁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사회 조직에서의 경쟁은 대부분 파괴적인 요소보다는 건설적인 요소가 강하다. 동물 사회에서의 성공은 곧 "나는 너보다 강하다."이지만 인간 사회에서의 성공은 "나는 뛰어나다." 이다. - P597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의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P632

"자연은 어떤 방법으로도 개선될 수 없으며그런 방법 또한 자연이 만든 것이지요.
그대가 자연에 덧붙이는 것이라고 말한 그 기술도자연이 만든 기술이지요.
보시오, 사랑스러운 아가씨…………
그것은 자연을 고치는, 아니 변화시키는 기술이지만
그 기술 자체도 자연이지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 재인용) - P633

사실 실존주의는 우울처럼 진실하다. 인생은 헛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육체적인 개체성으로 인한 고립은 피할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든 우리는 결국 죽게 된다. 이런 현실들에 굴하지 않고 인생의 다른 면들을 보면서 계속 추구하고 모색하고 꿋꿋이 견디는 것이 진화에서의 선택적인 이점이다. 나는 르완다에서 학살당하는 투치 족과 방글라데시의 굶주린 무리들을 본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었고 돈도, 먹을 것도 없으며 고통스러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의 가망이라곤 없는 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보지 못하는 미래상 때문일 수도 있고 존재를 위한 싸움을 지속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생명력 때문일 수도 있다. - P638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갈망할 수는 없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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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목에 사랑
최미래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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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SK하이닉스 주식을 샀다. 너나 할것 없이 주식 얘기를 하고 뉴스에서는 매일 코스피 지수가 나오고, 하이닉스 성과금이 얼마래, 주식이 3백까지 갈거래, 하는 말들 속에, 나만 하이닉스 주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던 터였다. 그래도 단가가 너무 높은데, 그래도 사도 될까, 망설이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1,688,000원에 두 주를 샀다. 내가 사자마자 주가는 떨어졌고, 내가 바보같이 이걸 왜 샀을까, 나만 SK주식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가졌지만 마이너스 치는 사람이 됐네, 나는 역시 주식으로 돈 벌기는 그른 사람인가봐, 차라리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너 제일 높을 때 들어갔네, 라고 해서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190만원 대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40만원 정도의 평가수익을 갖게 되었다. 내가 매도를 해야 40만원이 내 통장에 꽂힐 터였다. 어쨌든 그래도, 나는 노동 없이 40만원이라는 돈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돈이 돈을 버는구나, 했다.


주변에는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그중 압권은 당연하게도 이미 가진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는 7억의 돈을 투자했고 6억의 평가이익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7억을 투자해야 6억을 버는 것이었다. 나처럼 330만원을 투자하면 40만원의 이익일 보지만, 그러나 6억을 투자하면 7억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텔레비젼에서도 주식투자를 하는 연예인들 이야기가 곧잘 나온다. 몇해전에 사두고 잊고 있었는데 그게 대박을 쳤대, 1억을 사두고 잊었대. 어떻게하면 1억을 사두고 잊을 수 있을까? 1억을 잊어도 되는 돈이기에 그랬겠지. 나라면, 1억을 사두고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1억이 없어서 살 수도 없지만, 1억은 너무 큰 돈이어서 그걸 있는지도 까먹을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닌 것이다.


최근에 지인을 만나 또 주식 얘기를 하면서 지인 역시 삼성전자로 50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껌값이지 뭐, 라고 지인은 말했지만, 그런데 그 주식을 사지 않았다면 그 50만원도 없잖아, 했다. 그러자 지인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는 빈곤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320만원을 투자하면 40만원의 이익을 보고, 7억을 투자하면 6억의 이익을 보는데, 그런데 너무 빈곤해서 아예 주식 투자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얼마의 이익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없다. 이익을 볼 가능성조차 그에게는 없다. 그러니까 이거다. 부유한 사람은 주식으로 6억을 벌고, 그 밑에 중산층은 주식으로 50만원을 버는데, 그런데 빈곤층은, 취약계층이거나 최저시급을 받아 온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는 빈곤층은, 주식을 살 수조차 없어서, 그래서 수익은 제로다. 수익이 제로이기만 한게 아니라, 먹고 사는 돈도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빈부격차가 심한데 더 심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모두가 주식한다고 덤벼든다면, 빈부격차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주식 투자에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아무리 불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코스피가 오른다고 해도, 아무리 공부 없이 뭘 사도 주식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아무리 주식투자로 이익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주식을 할 엄두조차 못내는 빈곤층이 있다. 주식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주식은 여윳돈으로 하는 거라는데, 주식은 사는거지 파는게 아니라는데, 그런 말들이 아무리 들려와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여윳돈이 어디있어, 사두고 잊을 수 있는 돈이 어디있어. 그러니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억대의 돈을 벌고, 없는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또 커진다. 있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조금 있는 사람은 약간 더 많아지는데, 없는 사람은 계속 없다. 차이는 100이었다가 갑자기 5,000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30,000이 되고 그보다 더 크게, 또 크게 벌어지겠지. 그렇다면, 모두가 주식을 한다고 할 수 있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척 하는거 아닌가. 내 눈앞의 40만원에 일희일비 하느라, 그동안 나는 4천원의 이익조차 시도해볼 수 없는 사람들을 잊고 지내고 있다. 눈앞에 안보인다고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소설은 세상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또 있을법하지 않은 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은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란은 것. 대기중에 습기가 너무 많아 금붕어가 지나다닌다는 마술적 리얼리즘 속에서도, 하나의 육체이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는 이야기 속에서도, 마법 지팡이가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도, 거기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하고 배신을 하고 높은 계급을 갖고 낮은 계급으로 살면서 행복해하다가 고통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있는 이야기,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바로 거기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보기 싫다고 쉽게 눈감아 버릴 것들을, 안보인다고 무시하게 될 것들을, 그러나 소설을 읽음으로써, 아 그들이 거기 있었지, 그들이 내 옆에 있었지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최미래가 그리는 소설 속에서 그랬다.

최미래의 이 단편집 [돼지 목에 사랑] 에서는 계속해서 빈곤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처럼 주식으로 40만원의 이익을 본 사람이라면 겪지 않았을 이야기가, 억을 투자해서 억을 벌어들이는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가, 최미래의 이야기들 속에 있다. 몸에 남들은 갖지 않은 꼬리를 갖고 있어 숨기고 사랑받지 못하고 위축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면, 돌봐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는 미성년자라서, 자신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집이 필요한 미성년자에게 빌려주는 이야기도 나온다. 돈도 없고 언제나 데이면서도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이 나오고, 사실은 살(buy) 수도, 살(live)수도 없는 집을 마치 살 것처럼 둘러보는 사람도 나온다. 어떻게든 좀 더 낫게 살아보고자 애를 쓰지만, 그래봤자 거기에서 거기인 이야기들. 왜냐하면, 그들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내 노동과 내 육체를 사지만, 그런데 돈 때문에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빈곤속에 놓여있다. 안되는 줄 아는데, 이건 옳은게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은데,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빈곤 속에 있다. 빈곤하지 않다면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도 있고 그들의 선택을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나 빈곤한 사람들이 몰라서 그 안에 있는게 아니다.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빠져나가도 갈 데가 없어서 그곳에 있다. 나도 선을 넘기는 싫은데, 그러나 그 선은 도대체 어디일까 좌절하는 사람이 빈곤 속에 있다. 그래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 

빈곤이 말하여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계속 주식 으로 축제를 벌이겠지. 그 축제들 속에 감히 주식을 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을 잊고 살겠지. 

그래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고자 할 때, 그렇게 살고 있을때, 그럴때 소설은, 그리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거봐, 너 또 잊고 있었지? 네 옆에 그들이 있어, 라고. 


빈곤을 전시하는 이야기라면 읽으면서 피로할 수 있다. 아 그만 좀.. 

그러나 빈곤을 말하여주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나는 최미래의 단편들을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소설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소설가 뿐만이 아니다. 소설가도, 인문학자도, 사회학자도, 철학자도, 경제학자도, 정치인도, 연예인도. 이 세상에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빈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만의 축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우리만 있는 것처럼 살지 않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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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5-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니 샐리 루니가 생각나네요. 할 말 많은데 지금 밖이라서 일단 좋아요~ 누르고 이따 댓글 달게요. 좋은 글이라, 이 글은 꼭 <이달의 당선작> 되었음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이요.

다락방 2026-05-25 15:50   좋아요 0 | URL
크- 그렇네요. 샐리 루니가 있네요! 아, 정말 노멀 피플은 특히 더 좋은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물론 친구들과의 대화도 그랬죠!). 돈 없는 남자와 돈은 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가진 여자와의 만남이라뇨. 그 만남은 돌고돌 수밖에 없었겠지요. 어느 순간 도저히 가까워질 수도 없었을테고요. 크- 샐리 루니가 있었어요.

잠자냥 2026-05-2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인간 ㅋㅋㅋㅋㅋ 나 그 트윗 보고 나 없어! ㅋㅋㅋㅋ 달려다 말았는데 달 걸 그랬네 ㅋㅋㅋㅋㅋ 주식은 그래도 저가에 사야하는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 지금 사면 어떡해! ㅋㅋㅋㅋㅋ 경알못 (경제 알지 못하는 자)도 아는 상식ㅋㅋㅋㅋ) 암튼 나 없어 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45   좋아요 0 | URL
저가에 나는 주식을 몰랐네... 저는 경제도 모르지만 주식도 몰라서 남들 다 사는 저가에서는 주식에 관심조차 없었지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남들 벌 때 벌지 못했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여간 저는 두 주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멀 피플>도 좋아하지만, 그 책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더 좋아하잖아요ㅋㅋㅋ 거기서도 노멀 피플에서처럼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 그러고 보니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도 그렇네요. 돈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과 위축되는 마음이 보이잖아요. 서로 좋아하고 있어도 말할 수 없는 부분, 마리앤 같은 경우는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죠. 돈이 항상 많았기 때문에 돈 없는 사람이 느끼는 마음을 알 리가 없구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죠. 왜~~ 그냥 말하면 되지. 말하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할 거 같아요.

저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북유럽식 사민주의에 대한 환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스웨덴은 저성장 때문에 소득세 세율을 낮췄다고 하더라구요.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제재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사람은 더 많이 가지되, 덜 가진 사람도 나름의 삶을 행복하게 구성해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등장하는 기본소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식은 더 올라갈 거 같기는 해요. 경제는 1도 모르지만.... 그럴거 같아요. 불확실성의 확실함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50   좋아요 0 | URL
‘자본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격차를 줄이는 방향‘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지만,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질까요? 말씀하신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어쨌든 시도라도 해보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면 분명 또 반발하는 부자들이 있겠지만... 덜 가진 사람도 나름의 삶을 행복하게 구성해가는 사회를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빈곤해서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할 수 없고, 지하에 살고.. 이렇게까지 빈곤에 살게 두지 말고 그보다는 생활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부동산 안정화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1가구 1주택이 보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