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포스텔러> 앱에 들어갔다가 그날의 운세를 보았더랬다. 정확한 구절은 아니지만, 뉘앙스는 이랬다.
'오늘은 '아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될겁니다'
이미 싱가폴에 들어와있었고 아직 호텔에 있을 때였고 흐음, 그래? 내가 아직 여기서 딱히 친구랄 것도 없는데, 어쨌든 외국이니까 그런다는건가? 하면서 창을 닫았더랬다. 사실 이런 매일의 운세가 나에게 뭐 그리 맞는거겠어? 그 날 오랜만에 그 앱에 들어간건 확인할게 있어서였는데, 들어가면 일단 그 날의 운세에 대해 보게되는거다. 그런가보다, 하고 창을 닫았다.
내가 로맨스 소설에 대해 자주 얘기했지만, 외국 영화를 보고 외국 서점에 가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로맨스 소설은 음지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음지에 있는 장르. 어쩐지 아는 사람만 알고 읽는 사람만 읽는 그런것,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로맨스 소설 읽어!'를 말할 수는 없는 그런 것. 그래봤자 나는 음지든 뭐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긴 했지만, 로맨스 소설은 음지에 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로맨스 소설 작가들이 주인공으로 곧잘 나오고 심지어 엄청 인기를 끌어 토크쇼에도 초대받는 장면들을 보면서 '아 외국은 로맨스 소설에 대해 우리랑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서점을 들러보면서 '아,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로맨스 소설은 양지에 있구나!' 하는걸 깨달았더랬다. 로맨스 소설만 써도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지는구나, 외국에서는!!
내가 생각한 또다른 음지에 있는 문화는 '데이팅 앱' 이었다.
나는 고지식한 인간이라 굳이 데이팅 앱을 써가면서까지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데이팅 앱은 좀 안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불량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조심해야 하는 것. 내 친구 중에 데이팅 앱으로 결혼까지 간 커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건 아주 운이 좋아서 그렇지 데이팅 앱은 사용하면 안될 것,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외국 영화를 보면 그렇게나 다들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더라.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든 사람들까지 어떤 영화에서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도 데이팅 앱을 사용하고 있었고, 어떤 영화에서는 심지어 데이팅 앱을 만드는 개발자도 나왔더랬다. 아, 외국에서는 데이팅 앱이 음지의 것이 아니라 양지의 것이구나, 하는걸 그래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안다고 해서 내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확 변한건 아니었다. 아, 음지의 것이 아니었어, 음지의 것이었던게 아니라 내가 음지의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어, 라고 했지만 그 생각이 쉽게 바뀌진 않았는데, 나는 앤드류를 알고나서 이 데이잉 앱의 존재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됐다. 앤드류가 싱가폴에서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 데이트를 했었다는 걸 알게된거다. 앤드류는 그걸 거리낌없이 내게 얘기했다. 내가 여기 와서 데이팅 앱으로 사람 만나서 데이트 했었거든, 하면서. 나는 이때 너무 놀랐다. 뭐라고? 이렇게 착하고 예의바른 남자가 데이팅 앱을 썼다고? 나는 너무 대충격을 받아가지고 그를 만났을 때 물어봤었다. 내가 너네 문화를 잘 몰라서 무례할 수도 있으니 만약 그렇다면 얘기해줘, 라고 일단 먼저 말해두었다. 그는 "너는 전혀 그런적 없어, 뭔데?" 해서, "너는 데이팅 앱을 왜 사용하는거야?" 라고 물었다.
그는 호주에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싱가폴에 사는 친구가 여행겸 자기를 만나러 오라 했고, 그래서 싱가폴에 왔지만 친구는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를 만나는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고, 그럴 경우에 자기는 혼자여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는거다. 아, 그래,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내 경우에 혼자 여행가면 그냥 나는 혼자인 채로 지내는데, 그러니까 미술관을 가고 밥을 먹고 혼자 술집에 가서 멍때리고 그러는데, 그 사이사이 나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잇었다. 특히 저녁을 먹을 때나 먹고나서가 그랬다. 아, 누군가랑 얘기하고 싶다, 하는 생각을 나도 당연히 한 적이 잇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다 좋은데, 그게 나쁘단 말야? 하면서. 그런데 앤드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나처럼 '응 나 혼자 왔지, 누가 있었으면 이럴 때는 좋았을테지만 내가 혼자 왔으니 할 수 없지' 한게 아니라, '혼자 왔는데 누가 있었으면 좋겠으니 데이팅 앱을 쓰자' 라고 한거다. 아..
나는 그에게 그렇다면 호주에 돌아가서도 그걸 사용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마도 그럴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은 회사를 다니고 퇴근하면 집에 가는데, 친구랑 가족말고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 그러니 데이팅 앱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거다. 그것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 아...그래,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어쩐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고 있었다.
나는 앤드류에게 나는 그 앱을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사용할 것 같지 않은데, 혹시 내게 그 앱을 보여줄 수(show)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알겠다고 이리 오라고, 내가 너에게 그 앱을 보여주겠(tour) 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데이팅 앱을 열고 들어가 설명하는 걸 들었다.
"여기는 내 프로필이야.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써. 그러면 여기 보이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트를 누르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나에게 메세지를 보내, 만나고 싶다고. 나는 이걸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답장을 보내고 아니면 이렇게 그냥 넘겨 버릴 수 있어.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찾고 싶으면 여길 들어가서 리스트를 보면 돼. 그들도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써뒀어. 이 사람은 짧은 만남을 원한다고 했지, 어떤 사람은 오래가는 관계를 원한다고 해. 여기 보면 이 사람은 하트가 많지. 하트가 많으면 사람들은 내가 인기가 많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하트를 누르기도 해서 자기가 누구한테 눌렀는지도 모르고 그러니 이 하트 많은게 그렇게 의미가 있는건 아니야."
그렇게 데이팅 앱의 투어를 마치고나니 처음 받았던 충격은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래 그렇게 사는 방법도 있겠구나, 그런 사람도 있겠어,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아, 포스텔러가 이거 말해준 거였구나 싶었다.
며칠 후, 학교를 다녀와서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하는데, 아, 저녁에 술 마실 사람 만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술 마실 친구가 아직 없다,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아 이럴 때 데이팅 앱을 쓰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내가 했던 생각을 할 수 있겠지, 그러면 데이팅 앱을 사용해서 사람을 만나는 거였어!!
그렇다고 내가 그 날 데이팅 앱을 깔고 사람을 만났다는 건 아니다.
자, 내가 이렇게 갑자기 데이팅 앱 얘기를 한 건, 샐리 루니의 이 책에서 데이팅 앱이 나오기 때문이다.
첫 장면이 앨리스가 bar 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잠시 후 남자가 들어오고 그 남자가 앨리스에게 와서 네가 앨리스니? 묻고 앨리스가 응 네가 펠릭스니, 해가지고 만나는 장면인데, 그들은 데이팅 앱 틴더를 통해 만난거다. 너무나 유명해서 나도 들어본 틴더 되시겠다.
앨리스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낯선 지역에 와있었고, 사실 이곳은 외진 곳이라서 사람들이 떠나면 떠났지 들어오진 않는 곳인데, 그런데 앨리스는 이곳에 집을 얻어 혼자 지내게 된거다. 그런 앨리스가 이 지역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같이 사는 사람도 없으니 데이팅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를 시도한거고 그게 펠릭스였던 거다. 그들의 첫 데이트는 성공적이라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같이 로마에도 간다. 앨리스는 매우 유명하고 잘나가는 작가였고 로마에 출판 행사가 있어서 출장가는데 펠릭스에게 '내가 비용 다 대줄테니까 나랑 가팅 로마 가자' 한 것. 그들은 글쎄, 그 당시에 연인이 아니었고 친구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방 두 개짜리 집을 예약해서 각자 방을 쓰면서 로마에서 함께 지낸다.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펠릭스에게 이 휴가는 드문 것이었는데, 펠릭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펠릭스는 틴더에서 누굴 만났는데 그녀와 같이 로마에 와있다고 말을 한다. 그 얘기에 친구중 하나가 이렇게 얘기한다.
<깨어나면 콩팥이 사라지고 없을걸? -p.107
그러니까 틴더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곳에서도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데이팅 앱은 다른 사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거다. 그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펠릭스에게도 그랬고 세게적으로 이름난 작가에게도 그랬다. 데이팅 앱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두 사람이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났고, 누가 뭐라고 떠들든 그들은 연인이 되어버린거다.
어떤 지점에서 내게 그런 추천영상이 뜬건지 모르겠지만(아마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 때문이었을까) 뉴욕에서 온 남자가 한국어가 익숙해질때까지 한국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걸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그는 길을 지나다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바로 틴더를 통해서 한국 여자들을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한강에 같이 가서 뭘 먹기도 하고, 까페에서 만나 각자 일(work)을 하는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틴더로 여자를 만나 데이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스타에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했고, 그가 틴더를 통해 여자를 만났다면, 상대 여자도 틴더를 사용해 그를 만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데이팅 앱이란 것도 데이트 라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 어쩌면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고지식하구나, 내가 되게 옛날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나는 샐리 루니의 책 때문에,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본 계정 때문에 또 하게 됐다.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데이팅 앱과 데이트는,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고, 그냥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다 더 깊은 관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사람 일은 함부로 장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날까지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 특히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절대' 나 '결코'를 사용해선 안된다는 거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그럴 줄은 몰랐는데' 하게 된다. 그러니 혹시 모른다. 내가 여기서 데이팅 앱을 사용하게 될지도. 나도 내 미래를 모른다. 거기에 뭐가 있을지, 나도 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