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성공한 사랑보다 실패한 사랑이 더 많다. 훨씬 많다. 사람들은 몇번의 이별을 겪은뒤에 그들 중 한명과 혹은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니까. 아니, 성공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이루어진' 사랑 쪽이 더 맞는 표현일까.
먼저 포기하는 사랑도 있고,
"입 다물라고 했지. 난 아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하지만 만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땐 시작부터 평등하고 정당하고 확실한 관계가 되도록 할 거야. 네가 제니퍼를 쫓아다닌 것처럼 그가 나를 쫓아다니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다른 남자애들도 그런 식으로 제니퍼를 쫓아다니지만 말이야. 또 내가 너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를 따라다니지도 않겠어. 그건 정말 어리석은 방법이야. 이게 바로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이야. 평등하지 않다면, 그 사랑은 진짜가 아니야. 그리고 진짜가 아닌 사랑은 소유할 가치도 없는 거지. 난 저 버스를 타고 갈게."(pp.117-118)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사랑도 많다.
옷깃만 스치는 인연은, 스치지도 아니하는 인연보다 더 부질없다.(p.92)
혹은 한쪽의 사랑이 지나치게 커서 혹은 일방적이어서 속박당하기도 한다.
밖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 안아주고 사방에 보뽀를 하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무 사랑해." 내가 재채기하면 엄마는 말한다. "괜찮니?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내가 일어나서 티슈를 가지러 가면 또 말한다. "널 이렇게 사랑하니까 내가 갖다줄게." 숙제를 하려고 펜을 찾으면 엄마가 말한다. "내걸 써라. 널 위해서라면 뭐든 줄게." 다리가 근질거리면 엄마가 말한다. "여기니?안아줄게." 내 방에 올라갈라치면 엄마가 부른다. "뭘 해줄까?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러면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덜 사랑해 주세요라고.(pp.63~64)
한쪽은 원하고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일. 나는 그게 슬픔일 거라고 생각한다.(p.84)
"난 당신을 사랑해요. 물론 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혹은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이 지점에 그녀가 자신을 붙들어매놓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밤들, 그 한숨들, 그 웃음들이 아직도 가능할까······? (p.161)
이 모든 과정들은 우리가 앞으로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인걸까.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서투르니까.
히토미 씨, 나요......, 서툴러서, 미안해요.
다키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서툴다니, 뭐가?
뭐든지.
그렇지도 않아. 나도 마찬가진 걸, 뭐.
그래요? 음...... 저기.
웬일로 다케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히토미 씨도, 세상사는 거라든가 그런 거, 서툴러요?(p.82)
어쨌든 그럼에도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은 온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허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 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 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pp.50~51)
사랑에 빠지면 정신을 잃고,
남자에게 빠져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실감했다. 마치 숨이 끊어질 정도로 가속도를 더해 하늘을 날거나, 정신이 아뜩해지는 추락과도 같은 것이었다.(상권,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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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활이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고 나면,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내 사랑을 찬미하고 내 사랑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곤 한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라도 몇 곡 목이 터져라 불러 보고 싶다. 하지만 천성이 소심한 데다 목소리도 변변찮은 나로서는 그저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밖으로 나서면 내 개가 따라 나오고, 우리는 시골로 나간다. 내 개가 불한당처럼 이곳저곳 뒤지고 다니는 서슬에, 집토끼, 산토끼, 자고새들이 달아난다. 얼마 안 있으면 금렵이 풀리고 사냥철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렴풋한 불안이 문득 고개를 쳐든다. 전화 한 통 받고도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중엔 그녀 때문에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p.58)
물론 그러다 다시 이별이 오기도 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또다시 이별하고. 삶은 사랑과 이별의 반복인가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와 커플을 이루어 사는 내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숨이 막힐까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사랑할수록 가까이 붙어 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p.28)
혹은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한 배우자감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나는 현실적이에요. 편안한 집, 넉넉한 돈, 좋은 지위 때문에 결혼했답니다. 머리털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그이는 한 올도 없어요. 눈은 무슨 색인지 애시당초 몰랐구요. 하지만 성가시지 않은 남자예요."(1권, p.232)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 이별을 겪고 살아가지 않는 것 보다는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쪽이 더 낫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면 재미있으니까. 감정이 살아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니까. 미소와 눈물을 가장 많이 불러내는 건 역시 사랑이잖아. 무표정으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표정으로 사는 쪽이 한번 사는 인생을 좀 더 근사하게 만드는거 아닐까. 그게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니까.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그런 오래된 격언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하권,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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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낳는 아픔을 안고 간신히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다.(p.81)
가을옷을 꺼내입고 나왔다. (윽, 스커트가 너무 작아져서 터질것 같다.)
가을, 사랑해야 할 계절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일단 작아진 스커트부터 처리하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