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품절


고모는 그렇게 종교적이고, 그렇게 왜소한 사람과는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이크 신부가 세 번이나 청혼을 했지만 고모는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번번이 거절했다. 그러나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대안이 없다고 느끼자 조 고모는 무릎을 꿇었다. 1949년 고모는 마이크 신부와 결혼하고 곧 그리스로 가 버렸다.
-297-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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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0-2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4년도에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씨익 웃으며 밑줄을 그었었는데 이젠 남일 같지가 않구나. 왜 자꾸 요 며칠간 이 구절이 내내 생각나는지... orz

야클 2008-10-2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자꾸 청혼하고 있나요? =3=3=3

다락방 2008-10-22 12:56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
완전 웃었어요, 야클님. 음...


그럴리가요! 청혼하는 사람 없다능 ㅋㅋ

가넷 2008-10-2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크 신부가 총으로 뒤에서 난리친 인물아닌가요?... 고3때 읽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ㅎㅎ

한번 다시 읽고 싶은데, 어디 박스에 들어 가있는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2008-10-22 14:13   좋아요 0 | URL
저도 20대에 읽어서 기억이 안나요. ㅎㅎ

제가 기억하는건 한남자가 청혼하는데 그여자는 그남자가 싫어서 계속 거절했고 근데 그 남자 말고는 그 여자 좋다는 남자가 없어서 그여자는 그냥 그남자랑 결혼을 하게됐다, 뭐 이정도.
(이게 바로 노처녀의 특성!)

네꼬 2008-10-2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제목이 대박. ㅋ

다락방 2008-10-23 08:19   좋아요 0 | URL
캬! 역시 네꼬님은 제목에 숨겨진 내 마음을 읽어줄거라 생각했어요. ㅎㅎ

그냥 뭐 그런 생각들이죠. 그저 느낌이 안 온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을 다 뻥뻥 걷어차다가 나중엔 남자 비슷한 사람들조차 다가오지 않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좀 현실과 타협을 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뭐 이러저러한 난감한 생각들 .
(아, 그렇다고 뻥뻥 찰 남자들이 있다는건 아니고 ㅋ)

도넛공주 2008-10-2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왜 다락방님이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왜죠? 저 떄리실 건가요?

다락방 2008-10-23 08:17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저 또 아침부터 막 웃었어요. 안때려요,안때려 ㅋㅋ
 

 

 

 

 

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수다스럽고 경솔한 사람을 경멸하는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도, 거짓말하는 사람을 경원시하는 정직한 사람도, 저마다의 내면에는 바로 그들이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바로 그 부정적인 측면이 억압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라면, 아메리칸 뷰티가 그 점을 가장 잘 드러내지 않았는가 싶다.

아메리칸 뷰티에는 아름다운 여고생이 등장한다. 그녀는 화려한 외모로 모든 여성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으며, 인기도 많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얼마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인지를 얘기한다.

그런 그녀가 친구의 아버지와 소파 위에서 정사를 벌이기 직전 "저 처음이예요" 라고 얘기한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인 것을 친구의 아버지에게 말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처녀가 아닌 척, 경험이 많은 척을 해왔다. 그렇게 화려한 외모를 가지고, 그렇게 인기가 많으면서 자신이 사실은 남자관계가 전무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또한 이 영화에는 자신의 아들이 게이임을 의심하며 혐오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옆집 남자와 자신의 아들이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굉장히 분노하며 화를내고 아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옆집 남자의 창고를 찾아가 자신의 연애상대가 되어주기를 갈망한다. 자신이 게이여서 아들이 게이라고 의심하고, 자신이 게이여서 게이일것 같은 아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말했다. 그런 그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것은,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자신이 게이 였다는 것.



 

 

 

 

그러고보니 [앰 아이 블루?]라는 책에서도 그랬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보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이 사실은 동성애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모나리자 스마일]은 어떠한가. 더 배우는 것 대신 결혼을 선택한 제자 조앤(줄리아 스타일즈)에게 교수(줄리아 로버츠)는 찾아가서 심히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러자 조앤은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 이라며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여자들의 선택이라 생각하는 것은 선생님의 편견'이라 말한다. 한편, 모두에게 결혼하면서도 완벽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던 베티(커스틴 던스트)는 완벽해 보이기 위한 연기를 했던것임이 드러났고, 유부남과 연애중이었던 친구에게 경멸을 보내고, 프리섹스를 즐기는 친구에게 조소를 내던진 그녀가 사실은 남편에게 전혀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이 '건드리지조차 않는'다는 이유로 오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진학을 하려는 친구에게 여자의 일생 목표는 결혼이라 끊임없이 조언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강요하지만 자신의 결혼에 종지부를 찍고 진학을 선택한 것 역시 그녀였다.

다른이에게 '나처럼 살아'라고 강요하는 것은 결국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아, 그러니 니가 행복한 꼴을 볼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퀸카로 살아 남는 법]에서는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사람이 뚱뚱해진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다른사람이 불행해진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퀸카든 아니든 고등학생이 깨달은 사실을-고작 10대일텐데!- 나는 이제서야 깨달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해도,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에 위로받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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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10-0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이 전혀 없는 이성애자인 저로서는, 가끔씩 동성애자로 오해받기도 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마냥 신기할 따름입니다. 가끔씩 제게서 그 자신의 어떤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고 있는 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른바 인정투쟁의 '역전된' 버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락방 2008-10-07 14:45   좋아요 0 | URL
람혼님. 말씀하신 경우에 대해서는 본인의 '다른'부분이라기 보다는 타인들이 잘못 보는 경우인게 아닐까요? 저의 경우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다른이들의 성별을 착각하곤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착각하지 않는데 저 혼자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다른게 아니라 제가 잘못 보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저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타인들이 그야말로 '먼저'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지만 말입니다.

람혼 2008-10-07 15:41   좋아요 0 | URL
아, 제 이야기도 바로 그겁니다. "그 자신의 어떤 '다른' 부분들"에서 "그 자신"이란 뒤에 나오는 "타인들"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쓴 건데, 제가 읽는 분들을 조금 헷갈리게 만들었나 봅니다.^^

다락방 2008-10-07 16:4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뜻이었군요! 제가 완전 다른 버전으로 해석했네요. 하하 ^^:;

2008-10-06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7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10-07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속을 골몰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도 말못할 사악함들이 그득그득 도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요.
사실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 기반한 타인 비난을 일삼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일이 될지도 모를텐데 말이죠

다락방 2008-10-07 14:5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네, 그렇죠.
그런데 타인에 대한 비난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기 자신에 기반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타인을 비난할 때의 기준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잖아요. 나와 달라서 비난하든, 나와 같아서 비난하든, 어쨌든 중심은 자기 자신이죠.

자기 자신에 기반한 타인 비난이라고 한다면야, 저 역시 발뺌할 수 없는 부분이예요.
전 짠돌이같은 사람을 흉보지만 사실은 돈을 아껴쓸 줄 모르구요,
전 돈을 펑펑 쓰는 사람을 흉보지만 사실은 펑펑 쓸 돈이 없어요. orz

네꼬 2008-10-0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보면 가끔 우리, 비슷한 생각해요. 난 요즘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나의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차범근 감독님의 명언(정말 그런 글을 쓰셨다오)을 생각해요. 다락님, 많이많이 행복해줘요. 보는 나도 행복하게. (팽- 이 페이퍼 정말 좋다.)

다락방 2008-10-08 08:48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저만 행복할 수 있나요. 우리 같이 행복해야죠. 벌써 10월이고, 벌써 겨울(가을은 어디갔냐 -_-)인데, 우리 이제 정말 행복할 때가 됐잖아요. 그치요? 우리가 다음에 만날 땐 서로 얼마나 행복한지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쓰는데 쪼금 슬프구나. 흑 ㅜㅡ)

순오기 2008-10-0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만 쓰는 다락방님~~~ 좋아요!
코는 좀 좋아졌어요~ 식염수는 지속적으로 했는지도 궁금하고~~~~ ^^

다락방 2008-10-10 12:55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
식염수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어요. 아, 그거 은근 귀찮더라구요. 처음엔 약통 얻어오고 자기전에 꼭 넣어주고 이러다가 한 3일 지났나...이젠 그 약통이 어딨는지도 모르겠어요. -_-

저는 왜 이모양일까요 ㅜㅡ

순오기 2008-10-15 10:05   좋아요 0 | URL
식염수 꾸준히 하는게 어렵긴 해요. 그래도 살만하니까 소홀한 거죠~ㅎㅎㅎ
어떤 방법이든 치료가 되었다면 됐지요. 괜찮은거죠? ^^

다락방 2008-10-16 08:38   좋아요 0 | URL
네, 괜찮아요. 아침마다 코를 풀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예 쌀쌀해져서 그나마 좀 나아졌답니다.
맞아요, 순오기님. 살만하니까 소홀한것 같아요. 후훗.

곰탱이 2008-10-1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찔리는 이 마음 금할 길이 없군요 ㅡ,ㅡ 스산한 저녁이예요

다락방 2008-10-19 19:15   좋아요 0 | URL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렸으면 하는 밤이예요. 스산한 저녁인건 스산한 마음이기 때문일까요? 저도 스산한 저녁이라 느끼고 있거든요..

무스탕 2008-10-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삼겹살을 바짝 구워 먹든 대충 익으면 먹어 치우든 그런거 신경 안쓰고 사는 저는 뭘까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저 처럼 누가 뭘 하든 신경 안쓰고 살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눈이나 말을 의식하는건 그 사람이 뭔가가 고프거나 뭔가가 넘치는 사람일거라 생각해요.

엉뚱한 이야기 하나 하자면 전 동성도 좋고 이성도 좋아요.
동성은 동성이라서 좋고 이성은 이성이라서 좋아요.
또 하나 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거 하나는요, 전요, 이성한테만 팔짱을 껴요. 친구들한테도 팔짱을 안껴요. 하하하-

신랑이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마냥 편안한 무스탕이에요~
아름다운 밤이에요~

:D

다락방 2008-10-19 19:14   좋아요 0 | URL
네, 그래요 무스탕님. 누군가의 눈이나 말을 의식하는 건 그 사람이 뭔가가 고프거나 넘치기 때문이겠죠. 그리도 저도 대체적으로 이성한테만 팔짱을 껴요. 친구들한테도 언제 팔짱을 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간혹 아주 가끔 친구들한테 팔짱을 꼈던 적도 있긴해요. 어떨때는 말이죠 무스탕님, 팔짱 한번 껴보는 걸로 위로가 되는 그런 날이 있거든요.

마냥 편안하고 아름다운 밤을 충분히 즐기셔요!
:)

야클 2008-10-1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그럴듯한 이론이네요. ^^

다락방 2008-10-20 08:36   좋아요 0 | URL
호오...그런가요! 야클님의 오랜만의 페이퍼도, 그 음식들의 사진도 잘 보고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뵈니 또 반갑네요! 후훗.
:)

2008-10-2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랑보다 실패한 사랑이 더 많다. 훨씬 많다. 사람들은 몇번의 이별을 겪은뒤에 그들 중 한명과 혹은 전혀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니까. 아니, 성공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이루어진' 사랑 쪽이 더 맞는 표현일까.

먼저 포기하는 사랑도 있고,

"입 다물라고 했지. 난 아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거든. 하지만 만일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땐 시작부터 평등하고 정당하고 확실한 관계가 되도록 할 거야. 네가 제니퍼를 쫓아다닌 것처럼 그가 나를 쫓아다니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다른 남자애들도 그런 식으로 제니퍼를 쫓아다니지만 말이야. 또 내가 너를 따라다녔던 것처럼 그를 따라다니지도 않겠어. 그건 정말 어리석은 방법이야. 이게 바로 사랑에 대한 내 생각이야. 평등하지 않다면, 그 사랑은 진짜가 아니야. 그리고 진짜가 아닌 사랑은 소유할 가치도 없는 거지. 난 저 버스를 타고 갈게."(pp.117-118)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사랑도 많다.

옷깃만 스치는 인연은, 스치지도 아니하는 인연보다 더 부질없다.(p.92)



 

 

  

혹은 한쪽의 사랑이 지나치게 커서 혹은 일방적이어서 속박당하기도 한다.

밖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안방으로 불러 안아주고 사방에 보뽀를 하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무 사랑해." 내가 재채기하면 엄마는 말한다. "괜찮니?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내가 일어나서 티슈를 가지러 가면 또 말한다. "널 이렇게 사랑하니까 내가 갖다줄게." 숙제를 하려고 펜을 찾으면 엄마가 말한다. "내걸 써라. 널 위해서라면 뭐든 줄게." 다리가 근질거리면 엄마가 말한다. "여기니?안아줄게." 내 방에 올라갈라치면 엄마가 부른다. "뭘 해줄까?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러면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덜 사랑해 주세요라고.(pp.63~64)



 

 

 

 

 

한쪽은 원하고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일. 나는 그게 슬픔일 거라고 생각한다.(p.84)

 

 

 

 

 

"난 당신을 사랑해요. 물론 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혹은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이 지점에 그녀가 자신을 붙들어매놓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밤들, 그 한숨들, 그 웃음들이 아직도 가능할까······? (p.161)



 

 

 

  

이 모든 과정들은 우리가 앞으로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한 예행연습인걸까.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서투르니까.

히토미 씨, 나요......, 서툴러서, 미안해요.
다키오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서툴다니, 뭐가?
뭐든지.
그렇지도 않아. 나도 마찬가진 걸, 뭐.
그래요? 음...... 저기.
웬일로 다케오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히토미 씨도, 세상사는 거라든가 그런 거, 서툴러요?(p.82)

 

 

 

  



어쨌든 그럼에도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은 온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허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 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 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pp.50~51)

 

 

 

 



사랑에 빠지면 정신을 잃고,

남자에게 빠져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실감했다. 마치 숨이 끊어질 정도로 가속도를 더해 하늘을 날거나, 정신이 아뜩해지는 추락과도 같은 것이었다.(상권, p.220)

 

 

 스타킹 훔쳐보기-위험한 게임  상,하

 



모든 생활이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고 나면,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내 사랑을 찬미하고 내 사랑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곤 한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라도 몇 곡 목이 터져라 불러 보고 싶다. 하지만 천성이 소심한 데다 목소리도 변변찮은 나로서는 그저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밖으로 나서면 내 개가 따라 나오고, 우리는 시골로 나간다. 내 개가 불한당처럼 이곳저곳 뒤지고 다니는 서슬에, 집토끼, 산토끼, 자고새들이 달아난다. 얼마 안 있으면 금렵이 풀리고 사냥철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렴풋한 불안이 문득 고개를 쳐든다. 전화 한 통 받고도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중엔 그녀 때문에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p.58)

 

 

 

 


물론 그러다 다시 이별이 오기도 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또다시 이별하고. 삶은 사랑과 이별의 반복인가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와 커플을 이루어 사는 내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할까봐 두렵기도 하고, 숨이 막힐까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사랑할수록 가까이 붙어 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진리다.(p.28)

 

 

 

 

 

혹은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한 배우자감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나는 현실적이에요. 편안한 집, 넉넉한 돈, 좋은 지위 때문에 결혼했답니다. 머리털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그이는 한 올도 없어요. 눈은 무슨 색인지 애시당초 몰랐구요. 하지만 성가시지 않은 남자예요."(1권, p.232)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 이별을 겪고 살아가지 않는 것 보다는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쪽이 더 낫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면 재미있으니까. 감정이 살아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니까. 미소와 눈물을 가장 많이 불러내는 건 역시 사랑이잖아. 무표정으로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다양한 표정으로 사는 쪽이 한번 사는 인생을 좀 더 근사하게 만드는거 아닐까. 그게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니까.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는 쪽이 훨씬 낫다.
그런 오래된 격언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하권, p.191)

 

 

 스타킹 훔쳐보기 상,중,하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는 욕망이 낳는 아픔을 안고 간신히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다.(p.81)

 

 

 

 

 

가을옷을 꺼내입고 나왔다. (윽, 스커트가 너무 작아져서  터질것 같다.)
가을, 사랑해야 할 계절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일단 작아진 스커트부터 처리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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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8-09-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읽어 본 책이 없네요. <한 달 후, 일 년 후> 는 새로 번역되어 나온 건가요? 조제를 보고 나서 찾았을 때는 없었는데... 일단 찜!!

다락방 2008-09-25 10:35   좋아요 0 | URL
저는 조제도 그렇고 사강도 그렇고..저랑 딱히 맞는 것 같지는 않아요. 왜 다들 조제를 좋아하는지 통 영문을 모르겠어요. OTL

그보다 TurnLeft님께서 [혀]를 읽으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모름지기 남자들은 [혀]를 읽고 바람을 피지 않는게 좋다는것을 깨달아야 할지니. 나는 바람펴도 너는 바람 피지마~♬

perky 2008-10-02 06:50   좋아요 0 | URL
우앙 다락방님! 저, 조제-영화보다가 중간에 잠들어버렸고, 사강 책은 두권 읽어봤는데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너무 밋밋해서 별 감동 못 받았는데..다락방님도 딱히 안맞았다니까 너무 반가운거 있죠, 흐흐.

다락방 2008-10-02 13:11   좋아요 0 | URL
앗, 그래요 차우차우님??
반갑습니다, 정말 반가워요. 와락.
조제-는 책으로 읽었는데 영화로 볼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별로였어요. 사강의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과 [한달후 일년후] 이렇게 두권을 읽었는데 [슬픔이여~]는 괜찮은데 [한달후 일년후]는 뭐 대체 뭔말인지 모르겠어요. -_-

우린 어쩌면 맞는게 더 있을지도 몰라요. 그쵸? ㅎㅎ

레와 2008-09-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있는 이 책들을 다 읽어버린다면, 허-한 가슴이 훈훈해 질 거 같은데..

추쳔을 한번밖에 할 수 없다니, 너무해요. ;;

다락방 2008-09-25 10:37   좋아요 0 | URL
윽, 죄다 훈훈해지는 그런 책들은 아니예요, 레와님. 서운하고 서늘하기도 할거랍니다.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번밖에 할 수 없어서 다행이지 뭐예요. 안그러면 제 페이퍼는 추천으로 터졌을 거예요. ㅎㅎ

니나 2008-09-25 14: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터질듯한 빵빵함을 유지하니까 더 멋져요 다락방님 서재는 아우웅~

다락방 2008-09-26 08:25   좋아요 0 | URL
니나님~ 부끄러워요. ㅎㅎ

야클 2008-09-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크리스마스엔 깨가 쏟아지는 사랑페이퍼 쓰시길! 응원추천도 한방! ^^

다락방 2008-09-25 10:37   좋아요 0 | URL
제가 올 크리스마스에 깨가 쏟아지는 사랑 페이퍼를 쓰게 된다면 야클님께 꼭 보답하겠어요. 반드시! 기필코!!

니나 2008-09-2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러운 다락방니임, 근데 홈페이지에 끝말잇기 했는데 자꾸?가 나와서... 결국 해결못하고 여기로 ^^;;
...이 책 다 읽으면 사랑전문가가 될런지요? 가을바람에 마음이 홀랑 날아가버릴 것 만 같애요-

다락방 2008-09-25 10:39   좋아요 0 | URL
일단 끝말잇기는 문장을 다 입력하시고 스페이스바를 누르시면 안되요. 스페이스바를 누르시면 물음표가 뜬답니다. 끝맺자마자 바로 등록을 하시면 물음표를 보지 않으실 수 있을거예요. 후후. 니나님의 끝말잇기 활약이 마구마구 기대되요. 우리 ㅅ ㄹ 멤버들이라면,,,후훗.

이 책 다 읽는다고 사랑전문가가 되겠어요, 설마? 열권의 사랑책을 읽느니 한번 사랑해 보는게 낫다, 는 말도 있지 않아요? 응, 없나요? ( '')

니나 2008-09-25 14:47   좋아요 0 | URL
ㅅㄹ 멤버에서 느껴지는 이 소속감 ㅋㅋㅋ
혹자들은 사랑멤버려니 하겠으나... ㅎㅎㅎ

다락방 2008-09-26 08:26   좋아요 0 | URL
우리는 서러운 멤버들이죠 ㅎㅎ

2008-09-24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5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5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6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4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5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5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6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9-24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다락님이 올가을에 사랑하는가 보다~~~ 아님, 사랑할 준비가 다 되어 있거나!
너무 멋진 페이퍼예요~ 추천 추천 추천~ 이렇게는 안 되나요?^^

다락방 2008-09-25 10:42   좋아요 0 | URL
아, 멋진 페이퍼라고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오기님. 추천도 고맙습니다. 꾸벅. (--)(__)

저야 언제나 사랑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죠. 상대만 제대로 걸려들면 게임오버예요. 후후.
:)

웽스북스 2008-09-25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카페의 노래...
오늘 어떤 분이 준다고 하셨는데, 잘 모르는 책이라 제가 다른 걸 골랐는데,
이 글을 내가 꼼꼼하게 읽고 갔어야 했는데....

다락방 2008-09-25 10:43   좋아요 0 | URL
슬픈 카페의 노래는 웬디양님도 분명 좋아하실텐데...
읽고 나면 후회하지 않으실텐데....

우리 가을엔 사랑해요, 웬디양님.

일단 저는 치마좀 어떻게 해보고 OTL

비로그인 2008-09-25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경란, 상뻬, 카슨 매컬러스, 사강, 아, 이런 페이퍼는 추천을 백 번이라도 하고 싶어요.

다락방 2008-09-25 10:44   좋아요 0 | URL
후훗, Jude님.
저는 백 번이라도 추천을 받을 의향이 있는데 말입니다.
:)

람혼 2008-09-25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해 여름의 책들"에 이어서, 이 형식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좋은 추천, 감사한 마음으로 갈무리해 갑니다.^^
(그런데 미처 몰랐는데 같은 New21 유저이신 것 같아 반가움이 배가 됐습니다.^^)

다락방 2008-09-25 14:15   좋아요 0 | URL
아, 람혼님도 New21 사용하시나요? 네이버 블로그를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람혼님의 마음에 든다고 하시니 저도 흡족합니다. 앞으로 또 올려서 람혼님께 사랑받아야겠어요.
:)

람혼 2008-09-25 15:08   좋아요 0 | URL
어이쿠, 황송합니다. 저야말로 앞으로도 열심히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블로그나 서재를 한 지가 1년 남짓밖엔 되지 않아서요, 그 전에는 New21에 만들어놓은 홈페이지를 오래 사용했죠.)

다락방 2008-09-26 08:3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1년밖에 안되셨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됐다는 연륜의 포스가 느껴지는걸까요? 아마도 페이퍼의 무게때문일까요? 람혼님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제 것처럼 설렁설렁 읽어서는 안되는 묵직함이 있잖아요.
네, 앞으로도 종종 들러주세요!
:)

비로그인 2008-09-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까페의 노래' 도서관에서 대출하려고 찜해 뒀어요!
이 계절에 읽기에 좋은 책 같아요.
다락방님, 얼마 전에 보내주신 책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주말을 앞두고 이제서야 뒤늦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게 되어 송구스러워요. 다락방님이 쓰신 것처럼
책을 계기로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정말로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왔네요:)

다락방 2008-09-26 23:40   좋아요 0 | URL
아, 안그래도 잘 갔을까 소식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어요. 보내드린 책은 읽고나니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어질인님에게는 어떤 책이 될까요? 책장을 덮고나서 어떤 감정을 느끼시든 책 읽는 동안만큼은 한껐 즐거우시길 바라요.

아, 그리고 아마도 '슬픈 까페의 노래'가 더 좋을거예요, 어질인님께도.
:)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에요, 정말!

곰탱이 2008-10-1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스크롤 기능이 있는 잡지를 읽는 기분이예요. 음음.저도 사랑이든 뭐든 일단 저질르자 주의인데 그 사랑이 도통 오지를 않네요 ㅡ,,ㅡ

다락방 2008-10-19 19:11   좋아요 0 | URL
아, 제게도 그게 좀처럼 오지를 않네요. 이제는 좀 할 때가 되어줬는데 말입니다. 가을이예요. 흑 ㅜㅡ
 

     
  "네 이모님한테 말 좀 전해 주려무나. 네가 어느 시인을 만났는데, 그 아저씨가 사실은 무정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찾고 있다가 너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며, 이젠 새로운 곳의 숲과 초원을 찾아 떠나는 중이라고 말이다."  (하권, P.536)  
     

이 부분에서 제대로 감동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었던가보다.

 어쩌면 '운명적인 사랑' 혹은 '운명적인 만남'이란게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것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면. 모른채로 죽어서는 안되는거라면.

랜돌프 헨리 애쉬가 소녀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 만으로도 이 모든게 설명되잖아?

2004년의 여름, 애쉬가 소녀를 만나던 이 장면을 읽었던 때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다. 비록 이제는 이 책의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긴하지만.

 

 

2008년의 여름에는 이 책이 있었다. 아홉살짜리 평화주의자 오스카가 등장하는 책.

     
  온 세상이 거기 있었다. 마침내, 떨어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찾아냈다.
이건 아빠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누가 됐든 간에, 그건 사람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페이지들을 뜯어냈다.
마지막 장이 제일 앞에 오고, 제일 앞의 장이 맨 뒤로 가도록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
책장을 휙휙 넘기자, 그 사람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pp.454-455)
 
     

 

고맙게도 이 책에는 오스카가 말하는 이 사진이 실려있다. 그 사진들을 한장씩 넘겨보았다가 책장을 덮고, 그리고는 휙휙 넘겨본다. 마치 오스카처럼. 그리고 다시 책을 덮고 가슴에 안았다가 다시 꺼내서 이번에는 그 사진들을 휘리릭 넘긴다.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떠오르는 사람들의 사진들.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p.456)

 

 

 

 

2006년 여름에는 이렇게 말하는 정미경이 있었다.

     
  그래, 소용없는 게 있다. 젖어버린 신발처럼, 범람하는 제방처럼, 누군가에게로 흘러가는 마음의 강물은 도저한 양츠강의 범람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p.48)  
     

서늘한 인생을 얘기하면서 시인처럼 말하는 정미경이 궁금해서 나는 그녀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몇 시에요?」
「여덟시」
「이제 돌아가요」
「지금은 상인의 시간, 장사치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죠」

민의 얼굴은 이제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상인의 시간을 견디며 말없이 물풀이 스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윈드 브레이크 하나로 견디기에는 분명히 싸늘한 날씨였는데 민은 춥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재킷을 벗어주자 민은 고개를 저었다.
「옷을 줄 때가 아니라 돌아갈 시간이에요. 벌써 여덟시 삼십분이네요」

어둠에 눈이 익은 민이 몸을 기울여 내 손목시계를 읽는다.
「여덟시 삼십분이라. 그건 수학자의 시간이죠」 민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언제 가려구요?」
「시인의 시간에요」
「그건 언젠가요?」

 「알 수 없는 일이죠. 난 지금 이 순간 시인이 됐으니까」
(pp.50-51)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서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당신이 날 사랑하게 되는데 풀배팅하겠어요." (p..247)

이런 대사를 읊어봤자 그가 낭만적인 남자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슬퍼진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내 아들의 연인』에서 정미경은 여름인 6월을 찬양한다. 그러나 그 찬양 역시 서늘하기만 하다.

"5월이 아름다운 거 같아요? 눈으로밖엔 풍경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5월을 아름답다 하죠. 전 6월을 좋아해요. 6월은, 거의 폭력적인 생기를 뿜어내잖아요. 무심히 흘러가던 강물에도 관능이 금가루처럼 녹아 흐르고, 그 물을 탐욕스럽게 빨아마신 식물까지 숨결이 가빠지는 게 6월이에요. 사랑 없는 섹스를 한다면 6월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꼭 죽여야 한다면 6월의 저녁에 그 일을 해치워버리세요. 6월은, 어떤 죄악도 용서받을 수 있는 계절이에요." (pp.180-181)

내가 사랑없는 섹스를 하지 않는 까닭은 지금이 6월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여름에는 필립 말로가 있었다. 윽. 너무 좋아, 필립 말로! >.<

 

 

 

 

 

 

 

 

 

 

 

 

 

 

필립 말로의 비정한 유머에 마음을 빼앗겼더랬다.

"여자들도 인간 아닌가. 땀도 흘리고 더러워지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간다고. 뭘 기대하는 건가? 장밋빛 안개 속을 날아다니는 황금 나비?" (기나긴 이별, p.41)

"나는 매끈하고 화려한 여자가 좋아요. 비정하고 죄를 잔뜩 짊어진 여자들 말이에요."
"그런 여자들은 당신을 홀딱 벗겨먹을 거요."
랜들은 무심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내가 옷을 벗겠습니까?"
(안녕 내사랑, p.287)

     
  -레이먼드 챈들러가 밝힌 필립 말로에 대한 몇가지
흡연과 음주 습관 독자들은 말로가 카멜만 피울 거라 여기지만, 그는 아무 담배나 피우며 종이 성냥은 쓰지 않는다. 부엌 성냥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나무 성냥을 쓴다. 또 그는 라이 위스키를 버번 보다 더 좋아할 것 같지만, 달지만 않으면 그에게는 어떤 술이든 상관 없다. 다만 핑크레이디, 크림드멘트 등의 달착지근한 칵테일은 모욕으로 받아들이다.

기호와 취미 커피를 잘 끓이는데, 설탕과 크림을 넣고 밀크는 넣지 않으며 가끔은 블랙으로 마신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이프치히에서 출간된 체스 토너먼트 책을 좋아한다. 대륙식 방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손 웰스의 찬미자일 것이다. 특히 오손 웰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감독한 작품에 출연할 경우에, 독서 습관이나 음악 취향은 나 자신에게도 미스터리다. (챈들러는 슬쩍 지나간 것들을 독자들이 너무 고정시켜서 본다고 지적했으며, 여자에 대한 말로의 취향을 '육욕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독자이지 자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심미안 말로는 다소 자극적인 모든 향수를 좋아하지만 역겨울 정도로 지나치게 향미를 가한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탱고와 룸바의 차이점과, 콩가와 삼바의 차이점을 알며, 삼바와 맘바(코브라 과의 남아프리카 산 독사)의 차이도 안다. 맘보라는 새로운 춤은 아주 최근에야 주목받고 발전했으므로 말로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는 말로가 고가구와 향수와 상류층 억양에 대한 심미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챈들러는 그것을 부정하였다.)

 
     

 

2005년 여름에는 이 책이 있었다.

얼마전 추석합병호 시사인을 읽었는데 통일 독일에 관련된 기사들이 실려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마침 이 책이 생각나 책장에서 다시 꺼냈고,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이제는 나이들어 버린 그들의 재회, 다시 사랑을 나누던 짧은 시간, 그리고...

 

 

 

 

 

     
 

"전화번호 가르쳐줄래?"
"아뇨."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다시 새 전화번호부를 만들게 될 때 내 번호가 필요하다면 그때 가르쳐줄게요."
그들은 소리내어 웃고는 마지막 키스를 했다. 프란치스카는 그것이 정말로 마지막임을 알았다. 그리고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기차역으로 가주세요!"
프란치스카는 하인리히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양손에 쇼핑백을 든 채로 문 앞에 서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등을 곧게 세우고 자신감에 찬,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한 남자의 모습으로.
역에 도착한 프란치스카는 신문을 샀고, 일등석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하인리히와 단둘이서 그토록 행복하게 서로에게 열중하며 침대에 묻혀 있던 그 시간, 1989년 11월 6일에서 11일 사이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나누던 그때에.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 p.51)

 
     

 

여름이 갔다. 그런데 가을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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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이런 페이퍼 너무 멋지잖아요.^^
가을이여~ 어서 오세요!! ^.~

다락방 2008-09-22 13:01   좋아요 0 | URL
멋지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가을이 얼른 와야할텐데요. 이제 여름옷은 지겨워요. 후훗.

람혼 2008-09-22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려하고 멋진 페이퍼, 무엇보다 일독에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페이퍼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8-09-22 13:02   좋아요 0 | URL
오옷 저는 그것이 무엇이됐든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면 정말 대단한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게 참 큰 칭찬을 해주셨네요. 하하. 람혼님의 댓글이야말로 페이퍼를 또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고맙습니다. :)

2008-09-22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2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08-09-2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다락방 2008-09-22 17:3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부끄럽게 무슨 추천씩이나!
:)

비로그인 2008-09-2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미경 정말 좋아요.
유일하게 책을 다 갖고 있는 작가에요.
(이번 황순원 문학상에서 그녀의 수상을 빌었건만 크흑!)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는 어떤 책일까...궁금증을
안고 보관함에 넣어요~

다락방 2008-09-27 20:28   좋아요 0 | URL
아, 정미경을 좋아하세요? 반가워요, 반가워! >.<
저는 그녀의 작품중 『장밋빛 인생』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었구요. 저도 정미경의 작품이 너무 좋아요. 저도 다 가지고 있답니다. 윽. 아닌가? 갸웃. ( '')


단발머리 2014-03-2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이죠.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내가 옷을 벗겠습니까?" (안녕 내사랑, p.287)

키햐~~~ 나 어떡해버려요? 넘 내 스타일인데요.
다락방님이 좋아해서 나도 좋아하는 거 아니구요.
나두 이런 스탈 좋아해요. 진짜요 @@

근데, 저게 다 시리즈라면, 저 여섯권에 '필립 말로'가 다 나오는 거계죠? 우하하. 진짜 대박이네요~

다락방 2014-03-25 17:27   좋아요 0 | URL
필립 말로에 흠뻑 빠지는 2014년을 보내세요, 단발머리님! ㅎㅎ
 

한달쯤 된 것 같아요, 제가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을 다녀온 건. 저는 이 그림이 맘에 들었어요.






[브래지어 차는 여자]L'art et la pomme : Didier - Fernando Botero

그 때 사온 도록을 살펴보니 이 그림은 실려있지 않네요. 대신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인]이 도록에 실려있더군요. [시인(The Poet)]의 이미지는 찾을 수가 없네요. 대신에 이런 그림들도 있어요, 그의 작품은.



저는 그림을 볼 줄 몰라서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저 위에 그림이 참 좋더라구요. :)

 

아래는 페르난도 보테로에 관한 네이버 지식인 펌 자료예요.


Fernando Botero (1932~ ) 콜롬비아의 화가, 조각가
그는 세계 여러 곳곳 갤러리와 박물관에 전시를 열었으며 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56년 Fine Arts of the University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1969년 뉴욕의 모던아트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20세기의 마스터의 한 사람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회화에 나타나는 보테로 특유의 풍만하고 둥근 이미지는 매우 풍자적인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군인들과 부르주아층의 비도덕과 파렴치한 매너, 권력등을 비난한다. 그러나 테마의 과격함과는 달리 표현은 정치적인 뉘앙스조차 유머스러하고 유쾌하게 사회적인 논평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성장기에 투우학교에 입학한 경력이 있어 그의 그림에서 투우의 영향을 종종 찾아 볼 수 있기도 한다.
Fernando Botero는 전문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작품으로 그는 일러스트분야에서 예술적 가치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치를 탈피하는 과감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여줬다. 기존의 날씬함만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던 풍토에서 그의 그림은 풍만함과 유우머로서 표현되었다. 훗날 그의 이런 화풍은 페니미즘 그룹을 낳을 정도로 페니미즘의 사상의 가치로서도 인정 받게되었다.
그가 기존의 날씬함만이 선망되던 패션 일러스트 화보에 등장한 것은 1981년 Vogue였다.
기존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는 호평을 받았고 날씬한 여성이 아닌 뚱뚱하고 풍만한 여성으로서도 충분히 옷의 매력을 발산하였다. Fernando Botero는 '비만은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라는 기존의 개념을 무너뜨린 쾌거를 이룬 것 이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를Nina Ricci, Channel 등의 수많은 명품브랜드를 통해 호평속에서 선보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다다이즘과 과거의 대가와의 조우였다. 다다이즘이란 특별한 의미를 두는 용어는 아니다. 다만 그시대에 일어났던 하나의 예술운동이었는데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방식이었으므로 Fernando Botero의 작품에서도 다다이즘을 엿볼 수 있다. 또한 Fernando Botero는 여러 과거의 화가들에게서 연구를 통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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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8-09-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그림 참 좋았어요.(우헤헤헤헤헤) 바로 앞에서 볼때는 덩치에 비해 앙증맞은 파마컬링, 귀걸이, 손톱, 샌달 그리고 섹쉬한 레이스 속옷이랑 작은 아저씨 얼굴이 그냥 재밌었는데 이게 2관에 있나그렇잖아요. 근데 1관 중간에 서서 2관쪽을 바라보면 멀-리 이 그림이 딱 보이거든요. 뭐 그 때 그냥 좀 머시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설명하면 추레한데 마음속에선 막 귀중하고 슬프고 그런 느낌. 나중에 더 얘기하면 재밌겠다. 그 땐 술 많이 안마실께용 히히히 이히히 이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