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로맨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실례인지, 어떤 식의 대화와 행동이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로맨스 소설이야말로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남자들은 사랑을 포르노로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로맨스 소설을 읽음으로써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포르노 까지는 아니지만  '19금 성인영화'라는 걸 보았을 때, 나는 그 안에서 여자가 얼마나 성적대상화 되는지에 당황했었다. 그러니까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사랑을 느끼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게 아니라, 여자는 애초에 성적대상일 뿐인거다. <옥수수>에만 들어가도 그런 영화가 널려있는데, 남자들...이런 영화 보면서 그동안 살았던건가... 여자를 성적대상화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구나. 그 안에서 성적대상화 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어. 맙소사..



그래서 '주드 데브루'의 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게 유감이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서면 괜찮긴 하지만, 남자 주인공 '테이트'가 얼마나 매력적인 영화배우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자 주인공 '케이시'가 얼마나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여자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주드 데브루는 대부분의 여성을 다 골빈여자 취급해 버린다. 연극 <오만과 편견>의 여자주인공 오디션을 보는데, 상대인 테이트 앞에서 아무도 제대로 대사하지도, 연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침만 흘리는 걸로 묘사하는 거다. 물론, 전문 배우들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 중에서 뽑는 오디션이니 연기가 어설프고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당연하달 수 있지만, 어쩌면 다들 그렇게 남자 배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게 만드는가. 여자들이란 잘생긴 남자 앞에서는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의 여주인공 케이시가, 테이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케이시가, 편견으로 인해 테이트에게 매력을 1도 못느끼는 케이시가, 요리사이며 연기에는 관심이 1도 없던 케이시가,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을 맡게 되면서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다. 너무..좀 너무하지 않냐...


너무도 전형적인 패턴이라서 나는 주드 데브루와 나 사이에 세대차이를 느꼈다. 로맨스 소설을 현대를 사는 여성이 현대를 보는 기준으로 써야할 필요를 느꼈다.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을 나는 싫어하면서 생기는 로맨스라니. 게다가 그 남자는 잘생기고 섹시하고 인기도 많은데 돈도 캡 많어....


아무튼 연기나 연극에 대해 주드 데브루는 얼마나 알고 이걸 쓴걸까. 테이트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다아시를 미워하는 엘리자베스 역을 잘한다는 설정이라니, 좀 .. 너무하지 않냐...


게다가 하비 웨인스타인...이라니....





내가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전형적인 패턴-환상적인 남주와 그를 심드렁하게 보는 여자-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 전형적인 패턴보다 더 싫은 건, '특별한 여자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모두 똥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거다. 이러지 마세요, 진짜...



아마도 그간 로맨스 소설을 줄기차게 써온 작가인지라 이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대차이를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그저 나쁜 로맨스 소설이었냐 하면 그건 그렇지가 않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만과 편견>소설 속에서 미성년자와 성인 남자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장면이 있었는가 본데, 그 장면에 대해 현대적 연극에서 재해석을 한다. 미성년자를 꼬이는 건 범죄이며, 그것이 그 당시 미성년자의 '선택'이었다 해도 결코 여자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이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주드 데브루는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이 있는 것처럼 시종일관 얘기하지만, 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를 헷갈리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케이시 스스로가 말한 이 뜨거운 여름의 불장난에 대해, 케이시가 느끼고 결심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와닿는다. 한 남자에 대해 오해를 하고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에게 처음부터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의 말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를 판단했던 것, 거기에 이른 후회까지. 또한, 자신이 그에게 정식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취급되어질까봐 걱정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까지. 한 사람에게 '당당한 옆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거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갈등까지. 사랑에 빠지고 내가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는 건 대부분 다 겪어보는 감정의 흐름이 아닌가. 또한, '상처받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자존감 높은 사람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 하는 것까지, 연애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맞닥뜨리는 감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에 있어서 디테일을 아주 잘 살렸다고 생각한 건, 케이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 '테이트'의 생각 때문이었는데, 테이트가 케이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건,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과 웃음 포인트가 같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이 웃는 부분에서 케이시도 웃는다는 것.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 좋았다. 그걸 표현해준 작가도 좋았고. 또한 육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성적 매력을 서로 풍기도 또 성관계도 만족했던 그들인데, 케이시가 그 육체적 결합도 좋지만, 대화를 나눈 후에 관계가 더 단단하고 안정적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점들도 좋았고.



나 역시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연애를 시작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반하고 사랑에 빠지는 건, 대화가 아닌 다른 것들이어도 가능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어떤 모습에도 사랑에 빠지다가 질려버릴 수 있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데에야 뭐 버릴 게 없다. 나는 사람이란 본디 외로운 존재라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채워줄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혼자인 게 편한 사람도 있고 또 혼자인 게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 사람을 얻기란 너무나 힘든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만났다면 그 손을 놓지 말아야 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뿐만 아니라 상대 역시도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 여길 수 있다. 쭉쭉빵빵하거나 근육이 불룩불룩한 몸을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고,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최우선으로 칠 수도 있다. 이성을 볼 때 돈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고, 얼굴을 가장 먼저 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맞춤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런 상대를 만났어도, 시간이 흐르면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결국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이다. 여기에서 대화라는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어도, 어느 방향을 어떻게,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로에게 말하고 또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엔 엄청 열중해서 읽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 그래서 상처 받을까 두려운 마음,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상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내것 같아서 엄청 열중해서 읽었어.


이래서 로맨스 소설을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여자가 혹은 남자가 괴로운지, 어떤 지점들에서 사랑하는 상대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지또 행복해 하는지를 이런 식으로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집중하는 건 육체와 육체로 맺는 관계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내밀하고 더 친밀한 무엇이 있고, 궁극적으로 그것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심지어 툭하면 팬티를 찢어버리던, '크리스티나 로런'의 《잘생긴 개자식》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니까 참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우리를 얼마나 가깝게 이어주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케이시가 이 여름의 불장난으로 상처 받지 않게 되어서 나는 너무 좋으다...

그래, 당신이라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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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5-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북 활용 잘 하고 계시군요. 저도, 요즘 이북 시즌^^
사랑과 연애의 시작을 아주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칭찬하시니, 이 책도 제 스타일이예요.
전, 연애의 꽃은 썸이라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5-08 11:20   좋아요 0 | URL
이북은 밑줄긋기가 연동이 되어서 세상 편합니다.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이 처음에 여자들을 멍청하다고 후려치기 해서 짜증이 났지만, 막판에 상처받기 싫은 마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거라는 두려운 마음을 잘 그려내서, 그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됐어요. 사랑은 너무 어렵고, 해도 해도 계속 모르는 게 나오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사랑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어쨌든 이북 만세! ㅋㅋㅋㅋㅋ
 
180502Wed

이별이 오면


                                                  문태준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되고 나는 또 개흙눈이 되어서




















여름의 끝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이별

                                     -박연준


천 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그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구두굽으로 그저 모래를 콕콕 찍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슬픔을 염탐하듯
발목에 슬쩍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금세 흠뻑 젖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걸었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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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2-29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다락방님, 방금 전에 시집 다 읽고 독후감 쓰려 검색했거든요.
저도 <이별이 오면>은 반드시 인용하겠다고 마음 팍 먹었는데, 다락방 님도 제일 앞에 소개하셨네요! 무지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용어로 해서... 쒼나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12-29 14:38   좋아요 0 | URL
아니, 폴스타프 님! 2018년 페이퍼에 어쩐 일이세요? ㅋㅋㅋ 아 너무 재미있네요.
저 바지락 씻는 소리 너무 찰지지 않나요. 화악 오는 공감각입니다. 폴스타프 님, 얼른 독후감 써주세요! 폴스타프 님 글에 제가 아는 책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지. 어딘가에서 에로틱하다는 평을 본 것도 같았다. 그래, 에로틱한 걸로 가주자, 하고는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실린 「만」이 동성애 이야기여서 깜짝 놀랐다. 아니, 동성애 이야기였어? 이미 결혼한 여성과 아직 미혼인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미혼 여성이 너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기혼 여성이 반하고...뭐 이러면서 이들 사이에 미혼 여성의 남자 애인이 끼어들어 이들의 사랑을 훼방놓고 질투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거짓말과 오해, 음모..같은 얘기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기혼 여성의 남편이 기혼 여성을 거기서 빼내오려고 하다가 미혼 여성과 또 사랑에 빠지게 되고...여튼 복잡하고 이해가 될듯하다가도 아아 무슨 막장이냐..싶은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아마도 이 책으로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였다는 얘기가 책 뒷편에 실려있다. 대체, 이런 작품을 쓴 것이 왜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것인가.... 하다가, 다음 단편,「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를 읽었다.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시게모토의 어머니는 왜 나오지 않는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처음에 육욕과 방탕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판을 친다. 책에서는 '색욕'으로 표현되는데, 빼어나게 잘생긴 두 미남자가 세상 여자들을 다 건드린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도대체 여기 어디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단 말인가...하고 갸웃거리며 읽고 있었다.



일단 이 책에 첫 등장인물 헤이주는 세상 여자를 다 건드린 바람둥이인데, 그러다가 자기 마음대로 잘 안되는 여자, '지쥬노기미'를 만나게 된다. 아무리 유혹해도 좀처럼 넘어오지 않고, 넘어 와서도 제 맘대로 되지를 않아, 아아, 뭐 이런 여자가 다있담, 하며 그녀를 포기하고자 하는데, 그런데 잘 포기가 안되니까, 아아, 어떻게 그녀를 포기하지, 하다 생각해낸 방법이 그녀의 배설물을 보고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그녀의 배설물을 본다면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 지저분한 걸 배설해내는 사람임을 확 깨닫게 될것이고, 그러니 나는 그녀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하는 생각인 것이다.

.

.

.

.

네?





아아, 이 남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굳이 똥과 오줌을 봐야만 포기가 된다니.... 아, 너무 변태스럽다. 이런 것은 .. 변태가 맞는거겠지? 굳이 왜... 왜 똥과 오줌을... 그것도 변기를 훔쳐내서....그러니까 이 때의 시대적 배경은 책에서 몇 번이나 '덴교 *년' 이러면서 나오는데, 이게 몇 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대가 아닌 엄청 옛날임은 알겠다. 그래서 변기를 치워주는 심부름꾼 아이가 따로 있는 것. 어쨌든 저렇게 마음 먹은 헤이주는 변기를 훔쳐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변기에서는 똥냄새도 오줌 냄새도 나질 않는 거다. 애초에 거기까지 짐작하고 여자는 변기에 오줌과 똥대신 다른 것을 넣어둔 것. 그래서 똥과 오줌에서 향기가 나고 맛도...


아니, 그런데, 헤이주는 몰랐잖아. 일단 포기하려고 똥과 오줌을 본거잖아. 그런데 향기를 맡고 왜 향기롭냐..이러면서 맛까지 보는 거다. 똥과 오줌이라고 알고 있던 그 때에도 찍어서 맛을 봐..


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지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나는 진짜 나를 포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건 좋지만, 나를 포기하기 위해 내 똥과 오줌까지 냄새 맡고 찍어 먹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아 ....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지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그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은 뭘까.

사랑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

헤이주는 이미 그걸 짐작하고 다른 걸 넣어둔 여자의 기지에 그녀를 더욱 원하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그리움만 더 용솟음 친다'고 표현한다. 하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사랑, 그것은 아무리 거부해도 찾아들고 아무리 거부해도 좀체 달아나질 않아.

넌 뭐니..

왜 거기에서 훅 다가와서 이렇듯 머무는 거니..



그러다 완전 기가차는 것이,

헤이주가 이미 그 미모를 증명해낸 불륜 상대 '그 분'에 대해 시헤이가 그 여자를 탐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오십살 연상의 늙은 남편, '구니쓰네'가 있는 것. 남편보다 40세정도 어렸던 시헤이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 그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서 호의를 베풀고, 그 호의에 감사하는 남편에게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으라' 하는 것이다. 이에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를 선물로 내어주는 것이다. 애초에 그 선물을 받기 위해 작정하고 간 것이니만큼 시헤이는 이에 '그 분', 즉 구니쓰네의 아내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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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뭘까?

물론, 이제 스무살이 될까말까한 젊은 여자였고, 남편은 일흔이 넘어 오십살 이상 나이차이가 있다지만, 어떻게 된 게 아내의 의도는 1도 없이... 아내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이렇게 남편이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건넬 수가 있나. 선물..로 줄 수가 있나. 시대적 배경이 옛날..이라,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게다가 더 어이없는 건, 구니쓰네는 자신의 아내를 진짜 너무나 열렬히, 뜨겁게 사랑했던 거다. 너무 사랑해서 좀체 잊지를 못하는데, 그런 아내를 줘버린 거다... 아, 너무 어리석다 진짜...



자기가 가장 필요로 하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면서, 그런데도 그 손을 놔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 삶을 감당하나, 눈물을 주르륵 흘릴거면서 손을 놓는 거다. 아, 너무 바보야.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냈어야지. 계속 자기가 옆에 있었어야지. 왜 보내.


물론 구니쓰네는 자신의 성생활이 예전같지 않음에 젊은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그러니 자신보다 훨씬 젊고 또 신분도 높은 남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잘한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닥쳐온 큰 아픔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오랜만에 심규선의 <아라리>를 듣는데, 젊은 청년1이 내게 '왜그렇게 눈물 나는 노래를 듣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결국 가지말라고 말해서' 라고 답했다. 그래, 심규선은 자신의 노래 <아라리>에서 잘 가라고, 행복하라고 해놓고서는, 사실은 가지말라고,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하는 거다. 아아, 이것이 본마음이다!! 물론, 그렇게 가지말라고 부르짖는 심규선 조차도, 속으로 외치는 말이긴 하지만...








왜 나도, 구니쓰네도, 심규선도, 다 속으로만 울부짖을까. 왜 가지말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저렇게 손을 놓고나서, 그게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한 뒤에, 그러면서 처절하게 우는걸까.




어느 밤, 구니쓰네는 아들에게 이런 시를 들려준다.





아아, 이것은 내가 쓴 시인가요... 나에게로 빙의해 쓴 시인가요.. 어떻게 이런 시가 있지. 이 책에서는 이 시의 제목을 <밤비>라고 말하던데, 구니쓰네가 울 때 나도 운다...심규선도 같이 운다... 엉엉 운다...






구니쓰네는 이별 후의 과정을 충실히 밟는다. 미친듯이 술에 취한다. 그렇게 해야 아내를 잊을 수 있다는 듯. 그렇게해도 아내를 잊을 수가 없어, 그는 이제 불교에 빠져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못해 술의 힘으로 잊으려 해보았으나 술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부처님의 자비심에 의지하려 한 게 아닐까.' (p.293)



나 역시 이별 후의 과정을 충실히 밟았던 적이 있다. 이별 후에 미친듯이, 매일 술을 마셨던 것. 매일 울기도 했고. 덕분에 육체의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었다. 영화 《러브, 비하인드》에서의 여자도 폭음을 하고 폭식을 하고 마약도 한다. 우리는 잊기 위해 이렇게나 기를 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드플레이의 노래에서처럼,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널 잊는 방법은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데 부처님의 자비심이라니! 아아, 나도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야 했던걸까?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댔다면, 나 역시 모든 아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부처님의...자비심은.....그렇게 해주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막장인가, 에로틱인가... 생각하게 만든 이 책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의 끝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바뀌어버린다. 시게모토는 구니쓰네와 아내의 아이인데,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 엄마를 뺏겨버려 평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거다. 어릴 적에야 가끔 엄마를 찾아가 엄마 품에 안기기도 했지만, 엄마가 그 집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는 그 집에 찾아가지도 못하고 평생 그리워하는 것. 이 그리움이 표현되면서부터 책은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데, 야, 이러기 있긔없긔. 비바람에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 아름다운 문장들이 와락 쏟아져 내리는 거다. 그리움과 풍경묘사가 고요하고 아름다워서, 야, 갑자기 이러면 날더러 어떡하랴는 거냐, 싶어지는 거다. 일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으면서도 풍경 묘사에 아름답다 생각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데, 시게모토가 쉰이 넘어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데에는, 와, 정말 '와락' 아름다움이 쏟아지는 거다. 발길을 어머니에게로 이끄는 힘이 느껴지고 그 신비한 힘에 나조차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뭐죠...뭡니까,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의 분위기가 이렇게 갑자기 확 바뀌어도 되는겁니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그 후반부 때문에, 갑자기 좋아지고 말았다.....




기다리던 윤김쌤의 책이 나왔다. 기존에 내가 리뷰를 쓰기도 했던 책, 《헬페미니스트 선언》의 개정판인데, 내용을 더했다고 한다.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다정한 친구가 내게 선물로 보내주었어. 그래서 내게로 오고있다. 꺄울! >.<


















그나저나,

나는 오늘부터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어볼테다.


아라리를 들으면서...

구니쓰네, 같이 들어요.... 이리와서 나랑 아라리를 들읍시다.....




그리도 찬, 서리 같은 마음 어찌 품었나
너는 하오에 부는 바람만큼 온화했는데
우는 날 떼놓고 걸음 어찌 걸었나
하염없이 비 내릴 때 너도 억수처럼 울었나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행복…. 하소

연무처럼 흩어지는 맘 어찌 붙잡나
너는 그믐에 피는 손톱달처럼 저무는데
기어이 돌아서는 널 어찌 탓할까
너는 아무도 몰래 받을 벌을 다 받았는데

떠나가소 아주 가소 지금보다 더 멀리 가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헛된 희망 또 품음이라
나를 두고 가신 임 천리만리 더 멀리 가소
발병일랑 나지 말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소

언약과 증표 가련한 맹세여 다시없을
사람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 멀리 저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끝내 떨치고 가신 임아
돌아보소…


간 밤에 꾼 꿈결인 듯 전부 다 잊고 행복 하소
나를 두고 가신 임아 누구보다 더 행복 하소
행복….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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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5-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입학시험을 모두 다 마치고 릴렉스하려고 락방님 글 찾아들어왔지요 근데 아라리를 들을 수가 없어ㅠ너무 듣고 싶은데ㅠ전에도 유튭이 안들려줘서 못듣고 말았는데ㅠ부처님의 자비심에 저도 기대고 싶을만큼 딱히 생각나는 분이 없다는게 더 마음 아립니다..여긴 여전히 덥고 굿즈 보니 사고싶고 한국말 책보고싶고 그래요♡아라라,아라리두요

다락방 2018-05-14 08:54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 한국어 책 파는 곳 없나요? ㅜㅜ 있으면 탁 찜해두고 우울할 때마다 가보면 될텐데요. 그러면 뭔가 힘도 나고 좋을텐데... (시무룩)

시험 다 마친것 축하합니다. 시험 치르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는 토닥토닥 좀 쉽시다. 릴렉스~
주변에서 한국어책 파는 서점 찾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clavis 2018-05-1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음식 파는곳을 한번씩 보면 심 본듯 기뻐하지만 한국말책은...ㅠㅠ그래서 알라딘님에게 절하는 중이에요 무료 전자책을 무조건 보고 있어요ㅋㅋㅋㅋㅋ
 















내가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작가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사실 딱히 관심도 흥미도 없을뿐더러, 작품을 떠나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질 않는다. 그러니 정미경에 대해서도 책이 아닌 다른 삶, 그녀의 다른 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녀가 세상과 작별하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헌신했었다는 것, 남편과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하고 마지막날까지 사이좋게 지냈다는 것들을 알게 됐다. 이어령이 그녀의 재능을 몹시 아꼈다는데, 이 책속에서 정미경의 남편은, 그 재능을 가정과 가족을 돌보느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건 아닌가 내내 미안해했다. 뒤편에 실린 추모산문중 '정지아'의 글을 읽어도 그녀는 가정에 헌신적이었다. 추모 산문을 기록한 건 본인들에게도 또 고인에게도 의미있는 일이었겠지만, 나는 그 추모산문들을 읽지 않는 쪽이 좋았을거란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타인이 말을 보태서는 안되는 것이니 더 적진 않겠지만, 내게는 추모산문을 읽지 않는 쪽이 정미경을 더 정미경답게-물론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정미경이겠지만- 기억하는 방법이었을 것 같다. 



마지막 산문은 그녀의 남편, '김병종'의 것이었는데, 글 자체로는 역시 정미경의 소설만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나에게는 인상 깊은 산문이었다. 그것은 정미경의 남편이 정미경의 최초의 독자이며 마지막 독자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정미경은 소설을 발표하고 그것을 남편이 읽어주기를 바라고, 또 남편이 그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남편으로부터 별 말이 없다면 '이번 건 별로지?' 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녀는 그녀의 글에 대한 평가에 남편의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물론 저마다 쓰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반드시 읽어줄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읽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쓴다. 즉, 한 사람의 뚜렷한 대상을 두고 쓴다는 것. 그렇기에, 그 사람이 읽으면 이 글을 뭐라고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러니 정미경이 남편의 평가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무언지 너무나 잘 알겠는 거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글을 써오던 사람이니, 어쩌면 정미경에게는 글의 대상이 단순히 남편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난 후부터는 가장 중심적으로 남편을 생각했던 게 아닐까.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대상을 선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불특정 다수가 읽는다는 걸 인지하면서, 그러나 당신에게 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고 글을 쓰는 대상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싶고.



나는 항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는 일이 읽고 쓰는 것 뿐이라면, 읽고 쓰는 걸로 인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잘 쓰려고 꾸미지는 않지만, 내가 솔직하게 쓴 글을 내가 원하는 대상이 제대로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글이 그대로 그 대상에게 가 닿고 제대로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아홉살 조카와 홍콩에 가기로 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지만, 조카가 디즈니랜드를 너무 가고 싶어해서 함께 가기로 했는데, 어제 만난 조카는 내 손을 잡고


"홍콩 가면 이모랑 같이 시를 쓰려고 준비했어."


라고 하는 거다. 시를...쓰다니, 홍콩에서? 아니..거기까지 가서 왜...라고 생각했지만, 일전에 조카와 함께 남동생 결혼에 관해 시를 썼던 것이 조카에게는 꽤 인상깊은 경험이었나보다. 준비했다는 건 무얼 준비했다는 걸까, 그 날의 시의 주제를 준비했다는 걸까. 아니면 전에 그랬듯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라고 색연필을 준비했다는 걸까. 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이번엔 시를 쓰고 와야 한다. 시여...



같이 놀이터에 가던 길, 시를 쓰겠다고 말하고선 이내 내 손을 놓고 제 동생을 향해 달려가던 조카를 보며 내 여동생은 말했다.


"언니, 쟤는 자기가 글 되게 잘 쓰는 줄 알아."


나는 아이의 자신감이 놀라워, "그래?" 라고 되물었는데, 이에 동생은 답했다.


"자기가 글 잘 쓴다는 자신감이 되게 큰데, 그 뒤에 언니가 있어. 이모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자기가 잘 쓰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조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누구 조카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조카는 학교에서 독서왕 상장을 받고서는 내게 전화해 한껏 자랑을 하기도 했다. "역시 이모 조카지?"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어떻게든 조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좋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열심히 글 쓰는 일인데, 그걸로 인해서 어린 조카의 마음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면, 그건 그대로 좋지 않은가.



나는 베스트셀러를 쓸 수도 없는 사람이고 또 쓰지도 못하겠지만, 내 글이 특정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계속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출판사 대표님은 나에게 '글로 덕을 많이 쌓았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그걸 계속 실감하는 바다. 글을 쓰면서 친구를 사귀고 애인을 만났고,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도 받는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글이 좋다는 칭찬을 해주고, 책을 보내주고 커피를 보내주고 간식거리를 보내준다. 팬임을 자처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단지 글만 읽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놀랍고 또 고맙다. 글로 덕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한다. 이것이 내가 가진 복이구나, 생각한다. 내가 좋아 쓰는 글을 좋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뿌듯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상대는, 내 글을 가장 재미있다고 해주었었다. 다른 사람들 글 아무리 다 읽어봐도 나는 네 글이 제일 좋아, 라고. 나는 이정도면 딱 좋다고 생각한다.



정미경이 남편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또 그로부터 나올 평가를 기다리는 그 기분 같은 것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글이란 건 대체 뭘까, 정미경 남편의 산문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정미경의 삶에 대해 조금 알게되는 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정미경의 삶에, 정미경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사람이 함께였다는 건, 사실, 좀 부럽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 글의 가장 큰 응원자가 되어준다는 건, 그렇게 흔하게 가질 수 없는 행운이란 생각을 한다.



나의 엄마는 내 책이 나오면 읽긴 하지만 내가 글 쓰는 이곳까지 찾아오진 않는다.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 내가 어딘가에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예 이런 블로그 쪽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히려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미경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항상 같이 하면서,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미경이 쓰는 글을 가장 먼저 읽고 또 정미경이 가장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꽤 오래 내게 남는 일이다. 정미경에 대한 추모의 글을 읽다가, 정미경이 결혼하지 않고 글만 썼다면 어땠을까를 수십번 생각했는데, 그건 철저히 내 중심적인 생각이라는 걸 안다.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도, 본인의 글을 가장 잘 읽어주고 평가를 해주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부럽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가장 인정받고 싶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늘상 선택 앞에서 '나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선택이, 나의 능력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것인가, 하고.


나는 계속 읽히는 글을 쓰고 싶고, 그 글이 나로부터 나오는 진솔한 것이기를 원한다. 또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으로 내 자신이 가장 기쁘고 편할 것이고.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글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주 가끔은,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는 말을 듣고 펑펑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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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4-30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가족, 친구들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다락방님이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만큼, 주변에서 또 다락방님께 이런 다정한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선순환이네요...

다락방 2018-05-02 15: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인복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건 또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구나...하게 되고 말이지요.
잊지마세요, 2017년에 저에게 좋은 사람으로 쨘- 하교 쇼님이 나타났다는 사실을요!
:)

단발머리 2018-04-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다락방님이 자랑스러워요.

다락방님식 독법, 다락방님식 글쓰기, 다락방님식 유머, 다락방님식 티브이 시청, 다락방님식 요리, 게다가 다락방님식 요가까지.
사랑할 수 밖에요~~~~~~~^^

다락방 2018-05-02 15:31   좋아요 0 | URL
흙흙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님의 애정이 느껴지고 또 제 애정을 그에 못지않게 돌려드립니다. 흙흙 ㅠㅠ 단발머리님은 진짜 최고야! ㅠㅠ


clavis 2018-04-3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는 오늘 락방님 글에서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을 한다˝가 제일 좋았어요 엊그제 한 여성 동지의 미투를 들으면서 락방님께 달려가 이르고 함께 분노하고 싶었는데..글 쓰기 뿐 아니라 ˝빅 시스터˝로서 락방님은 제게 그러한 분이 되셨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락방만만세♥입니다

레와 2018-04-30 15:09   좋아요 0 | URL

어므나, 빅시스터 다락방! 너무 좋네요! ^^


다락방 2018-05-02 15:31   좋아요 0 | URL
크- 멋지네요, 빅 시스터라니..
기대에 부응하는 멋지고 강하고 큰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레와 2018-04-3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 시스터, 내 친구 다락방 ♡

다락방 2018-05-02 15:32   좋아요 0 | URL
응 계속계속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도록 내가 열심히 읽고 쓸게요!!
 
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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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나는 여러가지로 의욕을 상실해서 축 늘어져 있었다. 젖은 휴지처럼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있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달이 다 되어가던 즈음. '아 이대로는 안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바닥을 기고 있는 내 자신이 못마땅했는데, 도무지 의욕을 살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러다가는 더, 더 바닥으로 내려가겠다 싶어 해결방벙을 찾아낸 게 운동이었다.


그간 운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헬쓰장에도 등록해 다녔었고 기체조에도 등록해 다녔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가지 않을 핑계들을 수십개씩 만들어 가지 않았고, 가서도 열심히 운동한다기 보다는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와서는 '운동을 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집에서 운동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3년쯤 전이었나,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집에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그 때 내 몸의 변화는 그전에 다녔던 헬쓰장이나 기체조보다 더 보기 좋게 찾아왔었다. 그러나 홈트는 오래가지 못했고, 내 몸은 다시 제멋대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작년 5월, 도무지 집에서 운동할 의욕도 생기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한 고집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운동하고 싶진 않았는데, 할거면 혼자 제대로 해야지!라고 늘 생각해왔는데, 작년 이맘때는 나 혼자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도 없었던 거다. 그래, 이럴 때는 도움을 받는거야. 그렇게 생각한 게 개인피티였고 요가였다. 둘 중 어떤 걸 할까 고민하는데 내 고민에 어떤 친구는 피티를 하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요가를 하라고 했다. 어쩔까, 생각하다가, 나는 지금 마음도 시끄러우니(이별을 했고, 선거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가만한 명상으로 나를 다스리자, 로 결론을 내리게 됐고, 그래서 나는 '가만한 명상'을 하기 위해 요가에 등록했다.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나야 의욕이 생길테고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한 거다. 아, 얼마나 나는 요가에 대해 무지했던가!



그렇게 요가에 등록하고 제일 처음 들어간 수업은 '빈야사' 시간이었다. 양반다리 하고 손을 합장하고 조용한 음악에 맞춰 흐음~ 하며 명상하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강도높은 근육운동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아니, 사실은 그 강도 높은 근육운동에 놀랐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비루한 육체에 당황했다는 게 더 정확할테다. 내 몸은 쭉 펴는 것도 접는 것도 하지 못했고 균형 잡는 데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간 나는 내 몸이 남들보다 유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요가를 시작하면서도 '회원님은 요가가 처음이라면서 엄청 잘하시는데요?!'라는 말을 들을거라고 당연히 기대한 거다. 그러나 내 몸은 한 쪽 다리로 서라고 하면 피식피식 쓰러졌고, 조금이라도 힘든 동작을 하면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빨개졌고 온 몸에 열이 올랐으며, 트위스트 동작들을 할 때마다 허리가 요란하게 울어댔고, 심지어 런지 자세에서도 버티지 못했다. 빈야사 시간에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 다운독은 어찌나 힘들던지, 빈야사로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난 뒤의 나는 곧 쓰러질 것 처럼 되었고, 내 옆에서 운동하시던 분은 그 때 나를 보며 '처음부터 힘든 수업 들으셨네' 하셨다. 아, 이게 유독 힘든거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다른 수업이라고 쉽지 않았다. 온도를 높여놓고 하는 비크람 수업 시간을 맞닥뜨리고서는 다음날이 토요일이기에 망정이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펠비스는 골반 운동인데, 이건 숫제 눈물을 참아야 했다. '요가 그거 그냥 스트레칭이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요가의 y 도 모르는 거'라고 대꾸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근육통이 무언지 경험해본 적이 많았지만, 요가를 시작하고난 뒤의 근육통은 그간 내가 알아온 근육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허벅지 근육통 배 근육통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온 몸의 근육통' 이었다. 나는 온 몸이 동시에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요가를 마치고 집에 와 미친듯이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많이 먹어야 했어. 안그러면 버틸 수가 없었지.



이 책, 《아무튼, 피트니스》의 '류은숙'은 비만한 몸을 갖고 있었고 육체적으로 위험신호가 와 피티를 받게 된다. 그전에 류은숙도 나처럼 헬쓰장에 설렁설렁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가 피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던 류은숙은 피티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나이 오십이 다 된 시점에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거다. 남들이 보기에 있어보이는 멋진 근육운동을 하고 싶지만, 그걸 하기에 앞서 일단 자기 몸을 그렇게 운동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먼저였고, 그렇게 처음에는 팔벌려 뛰기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동작들을 해 나간다. 피티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몸을 만들기에 또 그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비싼 금액도 아니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돈을 주고...'라고 말하지만, 하는 사람들은 '이 돈을 주고 해야했다'. 나에게 요가도 그랬다. 3개월을 등록하면서 아아, 이 돈이면...하는 생각을 안한 게 아니었지만, 필요하므로 나는 카드를 건넸다. 그렇게 나의 요가가 시작됐고 류은숙의 헬쓰가 시작됐다.



기초적인 동작들을 만들고 피티와 대화를 하면서 운동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는 류은숙은, 데드 리프트를 몇 번의 실패끝에 성공하면서 기쁨을 느끼고 가슴운동을 하면서는 큰 해방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엄마는 늘 나에게 여자애가 왜 그렇게 가슴을 떡 젖히고 다니느냐며, '얌전하게 숙이고 다녀!'라고 타박했다. 얌전하지 못하다는 말, 몸가짐이 조심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영 싫었다. 가슴을 마음껏 젖힐 수 있다는 해방감, 내가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체스트프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내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그 말이 그러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무거운 바벨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와 누워서 번쩍 밀어 올리는 체스트프레스는 그 기분이 다르다.

체스트프레스를 하다 보면 하늘을 떠받친 헤라클레스가 된 느낌이다. (p.58)



'체스트프레스'라는 용어는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단어일테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하고 도전한 이상 내가 도전하게 되는 바로 그 자세이기도 하다. 류은숙은 체스트프레스를 하면서 힘 좋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것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운동을 반복할수록 힘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고 균형이 잡히는 것 역시 당연할 터. 내가 무언가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내고 그래서 어떤 성과를 눈 앞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일인가!



나는 여중,여고,여대를 다녔고, 중학교 시절에는 '무용'시간이 있었다. 무용 쌤은 발레 전공이었고, 우리에게 기본적 발레 자세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때 나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나비자세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허리를 숙여 손바닥이 발에 닿는 것은 어렵지가 않아서, 나는 내 몸이 유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 몸은 전혀 유연하지 않고 굉장히 많이 굳어 있으며 신체 부위 하나하나 모두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팔과 다리힘은 물론이요 특히나 코어의 힘은 전무한 실정. 코어에 힘이 없으면 요가의 모든 자세를 해내기가 힘이 든다. 나무자세를 못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절망했는지. 어떻게 이게 안될수가 있지? 이거 너무 쉬워보이는데?


나보다 5년먼저 요가를 시작해 계속 하고 있던 여동생은 우리집에 올때면 이제 요가에 관심 갖기 시작한 내게 이 동작 저 동작을 알려주는데, 내가 너무 다 못하는 걸 보고 '이것도 안돼?' 하고 놀랐더랬다. 되는 게 없는 나였던 거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나, 내가 나무자세에 버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와- 하니까 됐어, 오래 걸렸지만 나 이제 나무자세 버텨!! 하고 놀랬다가, 몇 주전에는 드디어 요가를 시작한지 10개월만에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하게 됐다. 두 팔에 무릎을 기대고 지탱해 발을 바닥에서 떼네는 건데, 발이든 엉덩이든 바닥에서 떼내는 동작을 도전할 때마다 나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겸손을 알고 내 육체의 비루함을 인정하게 된 나는, 이런 게 될 리 없다는 생각을 했고, 도전할 때마다 열심히 시도해보지만, 내 발이, 내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운지만 깨달을 뿐이었다. 내 발과 엉덩이는 땅에서 아주 강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고 있어서 절대 떨어지질 않아... 그러나 몇 주전에 또다시 수업 중에 바카사나에 도전하는데, 정식 바카사나는 아니지만 그 전에 해보게 된 이지 바카사나(까마귀 자세)에서, 어어? 나 들릴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들더니, 옆에 쌤이 와서 지켜봐주는데, 어라? 다리가 들리는 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들렸어. 쌤이 옆에서 보면서 머리를 바닥에 대라고 말해 머리를 바닥에 댔더니 발이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다.



된다!

된다!

나 바카사나가 된다!!



아직 정식 바카사나는 못하겠지만 이지 바카사나가 됐다는 기쁨에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선생님을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나 무거웠던 내 발이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건 어마어마한 희열이었다. 세상에 소리쳐 말하고 싶었다. 그리도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구오구 우쭈쭈 부둥부둥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요가 센터 안에서 조용히, 혼자, 속으로 기뻐할 뿐이었다.



유명한 언덕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 비싼 전차비까지 내고 올라갔더니만, 동네 뒷산에서 보이는 경관만 못했다. 꽃구경도 못 갔다며 한탄하던 어느 날에는 잠깐 짬을 내 산책하다가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며 '이렇게 지척에 장관을 놔두고 무슨 꽃구경?' 했던 적도 있다. 내 몸에 필요한 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 같은 빡센 운동, 그리고 그 성취감이 아니라 뒷산을 실실 마실하듯 몸을 길들이는 운동, 그리고 그 호젓한 변화가 아닐까. (p.76)



'샘, 그녀들을 모델로 삼으면 나는 운동을 할 수가 없다고요. 나는 전교1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그런 학생이 되고 싶은 거라고요. 몸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오후 돼도 처지지 않고, 아침부터 천근만근이지 않고, 좋아하는 술 계속 마실 수 있고, 친구가 푸념하고 고민을 털어 놓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체력을 원하는 거라고요.' (p.113-114)



류은숙이 원하는 건 전교1등이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 운동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 더 편하고 싶다는 거다.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데 지장이 없었으면 한다. 류은숙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피티로부터 금주에 대해서도 많이 권유 받았다고 하는데, 나 역시 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 술을 마시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건강이 필수일테다. 또한 나는 요가쌤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이 몸이 앞으로 백년을 요가한다 한들 요가쌤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피로한 어느 날, 몸이 찌뿌둥한 어느 날 자연스레 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요가를 내 일상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은 일 주일에 고작 2-3회 가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간이 쌓이다보면 요가가 내 습관이 되지 않을까. 요가를 하고 나서는 일상에서 이 동작 저 동작을 한 번씩 해보곤 한다. 가장 손쉽게는 손가락을 깍지 껴서 하늘로 쭉 뻗거나 등을 숙여 깍지 낀 손을 올리는 일 같은 것. 요가를 알기 전에는 할 생각도 없었던, 아주 사소한 동작들.



또한 나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이지 바카사나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그냥 바카사나에도 성공하고 싶다. 아직도 내 다리와 엉덩이는 너무 무거워서 좀처럼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하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떨어지지 않을까.


류은숙은 운동을 지속하면서 비만에서 과체중이 되었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요가를 일 년 가까이 해왔지만 '놀랍게도 살이 쫙쫙 빠졌어요!'하는 극적인 변화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의 나와 시작하고 난 후의 내 모습은 육체적으로 사실 변화가 없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요가 자체만으로는 살이 빠지질 않는다. 내가 요가를 하면서 뭔가 먹는 걸 거시기하게 조절한다면, 술을 끊는다면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내가 운동을 시작한 목적이 어떤 극적인 몸의 변화를 바라서는 아니었다. 나는 의욕없는 내 자신을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리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고 또 아는 만큼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권운동을 업으로 삼았던 류은숙은 피티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운동을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으로 인해 긍적적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증거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너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나에게 좋았던 것이 남들에게도 다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 자신의 것을 찾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운동은 했으면 좋게다는 것.



나는 여기가 아닌 내 개인 블로그에 자주 요가일기를 쓴다. 한 친구는 내게 '요가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계속 하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요가를 하고나면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와서 막 털어놓고 싶어진다. 나는 친구들에게 '요가를 하라'고 권유한 건 아니지만, 내 일기를 읽던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요가를 시작했다. 한 친구는 요가를 시작하고나서 자신의 인생 운동을 찾았다고 했고, 자기가 삶에서 기대하는 건 요즘 요가 밖에 없다고도 했다. 다른 친구도 며칠전 요가를 하기 위해 상담을 받았다 했고, 또다른 친구는 요가를 등록하지 않은 상태로 요가매트만 일단 주문했다고 했다. 외적으로 변한 건 없지만 이제 나무자세와 바카사나 자세가 조금 되는 내 코어의 힘이 느껴지고, 이 느껴짐이 외부로도 전달됐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보였던 게 아닐까 싶다.



무기력은 변덕스런 날씨처럼 고개를 치켜든다. 갑작스런 비처럼, 거짓말 같은 활짝 갬처럼, 기력과 기분은 시소를 탄다. 다른 일이 꼬였는데 운동만 잘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활의 힘이 골고루 안배되어야 운동도 해나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눈 뜨면 이부터 닦는 일, 잘 씻고 갖춰 입는 일, 아무리 재촉하는 일이 있어도 제때 끼니와 잠을 챙기는 일, 이런 걸 유지해야 운동을 해 나갈 힘이 생긴다. (p.121)



내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삶을 살면 건강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병이나 장애가 없을 것이라 확실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쪽 길에 들어서건, 그 길마다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p.151)



내가 바닥에 있는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고, 그 요가가 분명 그런 상태의 나를 지상으로 데려다놓기까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게 무기력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로 어제도 그리고 금요일에도 무기력이 나를 갑자기 찾아들어 나는 다시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울고, 어제는 침대에 누워 울었다. 내가 요가를 하는 삶을 살게 됐다고 해서 매일매일이 해피하고 건강한 일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울함도 찾아들도 무기력함도 찾아든다. 내가 어느 시점에 균형을 잃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균형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무기력이 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나 건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도 역시 사실이다. 생리때가 되면 종아리가 뻐근해서 맛사지기 까지 사다두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리전의 그 다리 뻐근함이 거의 찾아들지 않는다. 아직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무기력까지 컨트럴 할 순 없지만, 아무튼, 요가가, 요가 전의 나보다 더 활력 있는 삶을 살게 해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이 운동에 대해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가, 또 운동을 경험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다. 우리가 비록 선택한 운동은 다르지만, 그녀가 겪었던 일들과 그 감정들이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 운동을 해나갈 생각이나 다짐에 대한 것도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동안의 내 요가라이프를 다시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됐으며 또 앞으로의 요가 라이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의 운동기라 그런지, 운동을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같이 적어놓은 게 내게는 큰 즐거움을 줬다. 나 역시 운동을 하면서 단순히 몸의 움직임보다는, 그것들이 가져오는 다른 생각들과 감정들을 충실히 생각해내는 편이라 유독 반가웠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겠지만 요가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매일 빡세게 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일주일에 두 세번이 고작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다. 어느 날에는 바카사나를 성공하고 어느 날에는 나바사나에서 오래 버티기가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지금은 부들부들 떨기만 하지 버티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실은 꿈이 있다. 마흔 다섯쯤이 되었을 때, 머리서기가 가능해지는 것. 이것은 좀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고 머리서기를 해서 인증사진을 찍고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흔 다섯에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 가급적이면 마흔 다섯까지는 그게 됐으면 좋겠는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은 다리랑 엉덩이 너무 무거워 쌤이 도와줘도 못하고 있지만, 같은 센터에 다니는 나보다 훌쩍 나이 많으신 분이 머리 서기에 성공하는 걸 지난 주에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능할거야 , 어쩌면 나도!



요가를 한다는 건 그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을 하나 늘려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요가를 하는 사람, 요가를 아는 사람과 또 요가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요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대화할 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달까. 물론 이미 요가를 잘하는(여동생과 칠봉이가 내 주변에서 요가를 전문가처럼 잘해낸다) 사람들과 하는 대화도 즐겁지만, 요가를 모르는 사람들과 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즐겁다. 류은숙의 사무실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요즘 류은숙은 운동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요가에 대한 얘기를 요즘 자주 하게 된다. 요가 얘기를 하면서 또 실제로 요가를 하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내고 싶다. 도전이라는 말에 설레어 하면서 그 도전에 성공해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나바사나를, 머리서기를 할 수 있게 되겠지.



책 뒤에는 <여성, 중년, 비혼, 비만, 활동가>라고 저자의 삶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활동가'만 빼면 모두 다 내 얘기다. 내 삶과 다르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었지만, 여성이 아니어도 중년이 아니어도, 비혼과 비만이 아니어도 이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운동의 의욕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작과 진행중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담인데, 이 부분에서 완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한번은, 여느 때처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소설을 읽는 중이었다. 소설에 너무나 뭉클한 장면이 나왔다. 슬픈 건 아니었다. 너무 감동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쳤다. 헬스장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우는 여자라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내 모습이 너무 괴기스러워 보일 것만 같았다. 운동 시간을 채 다 채우지 못했지만, 그날은 황급히 자전거에서 내려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p.83)



몇 년 전 나도, 집에 있는 헬쓰용 자전거를 타면서 소설을 집중해 읽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 때 내가 자전거 위에서 애를 태우며 읽었던 소설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일곱 번째 파도》였다.



팔 운동은 그런 뽀빠이 만화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지루한 반복의 지겨운 연속이다. 게다가 근육을 단련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이 운동을 거르지 않고 자주 해줘야 한다. 그 지루함을 버텨야 모찌모찌가 알통이 되고, 힘주면 단단해지는 근육이 된다. 공부 또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까지 기나긴 지루함의 시간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역, 니은, 디귿, a, b, c, 한 자 한 자 익혀서 단어를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고 어려운 텍스트를 술술 읽고 판단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되기까지, 지난한 기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팔운동을 하다 보니 내가 평생 공부를 해온 느낌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여겨졌다. (p.68)

게다가 운동의 과정마다 나는 땀 냄새가 다르다. 워밍업을 할 때는 송글송글 맺히고 샴푸 냄새 같은 게 난다. 본 운동을 할 때는 땀이 폭포처럼 쏟아지는데 그 땀에선 간밤에 내가 먹은 것들의 냄새가 나는 듯하다. 정리 운동을 할 때는 땀이 식어가는 쉰내를 맡아야 한다. 이 쉰내를 맡기가 그렇게 싫다. 쉰내를 맡는 대신 내 몸의 땀 냄새를 얼른 지우고 싶어 정리 운동을 건너뛰고 샤워실로 돌진한다. 하도 안하니 나이스는(피티쌤 별칭)정리 운동 하고 나서 검사 받고 가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p.73)

삶이 지루하다고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도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p.81)

어느 날부터 나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습관처럼 운동을 권하기 시작했다. 일단 해보니까 좋다, 이 좋은 기분을 너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연다. 하나둘 따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느 때부턴가 동료들은 나를 ‘운동 전도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꼭 나처럼 피트니스를 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해서 좋다고 해서, 내가 해서 효과를 봤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자기 상황과 취향에 따라 맞는 건 제각각이다. 나에게 피트니스가 여러 면에서 적합했을 뿐이다. (p.117)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어디 운동뿐이겠는가. 「인권 정책 마련 지침」같은 데서 권고하는 사항이 있다. ‘큰 사건이 생기기 전, 평화 시에 정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큰 사건이 일어나고 관련자들이 모두 격앙된 상황에서는 공통의 약속을 만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기나 재난이 일어나기 전 차분한 상태에서 미리 약속을 만들어두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보니 운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몸과 정신에 큰일이 닥치기 전에,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될 때에, 찬찬히 자기와의 약속을 만들어야 지킬 수 있는 차분한 약속을 만들고 몸에 새길 수 있다. (p.118-119)

세상의 잣대가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을 체력장이 가르쳐줬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몸을 계발하고 몸에 대해 알아갈수록 다양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생각 없이 몸에만 신경 쓰는 이들이라고 폄하했던 사람들이 실은 최선을 다해 자기를 다듬고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그렇든 아니든 저마다의 사연과 내력이 있을 테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 그런 것들을 체육관에서 배웠다. (p.134-135)

나이스는 피트니스를 군대에서 배우고 시작했다고 한다. 군대에선 축구가 최고 아니냐 했더니 자기는 축구가 질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축구도 떼로 하는 것이다. 집단생활에서 잠시나마 떨어져 나와 구석진 체육관에서 나이스는 혼자 묵묵히 시간을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면서 자기의 살아있음을 찾는 반전이 ‘군대 헬스‘에 있지 않았을까?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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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4-23 10:52   좋아요 0 | URL
후훗. 술렁술렁 잘도 넘어갑니다. 읽어보세요! >.<

유부만두 2018-04-23 10:53   좋아요 0 | URL
운동까지 가야죠 ㅋㅋ

유부만두 2018-04-23 11:00   좋아요 0 | URL
주문완료.

다락방 2018-04-23 11:02   좋아요 0 | URL
오오, 주문도 하셨으니 읽으시고 이제 운동도 가시고!! 후훗.

유부만두 2018-04-23 11:07   좋아요 0 | URL
그래야죠. 아무튼 택시 읽고 택시도 탔었으니까요.

감은빛 2018-04-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참 좋았지만, 다락방님 글이 훨씬 더 좋네요.

다락방 2018-04-23 11:0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운동 얘기인지라 감은빛님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시나 생각했는데 이미 읽으셨군요! 데드리프트는 당연히 하실테고, 체스트프레스도 하십니까? 흐흐흐

별족 2018-04-2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79110, 왜 갑자기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으나, 이미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으나.

다락방 2018-04-23 16:36   좋아요 1 | URL
이미 읽다뇨 ㅋㅋㅋㅋㅋㅋㅋㅋ 보기도 처음 보는 책입니다.
근데 쪽수가 어마어마하네요.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 슝-

moonnight 2018-04-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운동과 안 친해도 너무 안 친한 저주받은 몸ㅠㅠ;

다락방 2018-04-23 16:37   좋아요 0 | URL
저도 운동하고 딱히 친한 몸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가만 있는 것도 뭐랄까 불편해 하는 사람이라서 뭔가 항상 꼼지락거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문나잇님,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십쇼! 으하하하핫. 운동에 뽐뿌질을 할 지도 모릅니다.

비연 2018-04-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좋아요 ㅎㅎ 예전에 했었는데.. 예전에 예전에 ㅜㅜ 정말 이게 내 몸인가 싶을 정도로 좋아졌었죠.
가끔 발리나 이런 데 가서 매일매일 요가만 하며 지내면 어떨까 싶어요.

다락방 2018-04-23 16:38   좋아요 0 | URL
저도 요가를 하고나니까 동남아가 더 좋아지면서(응?) 동남아에 집 마련해서 거기서 요가쌤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제 몸이 얼마나 비루한지 깨달으면서 요가쌤은 어림도 없다...그저 휴가때 휴양지에 가서 머리서기를 해보자!! 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도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비연님. 그런데 현실은.... 인생....삶...............Orz

비연 2018-04-23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저도... 그런 여유로운 삶... ㅠㅠㅠㅠ 언제쯤 그런 날이 오려나요 으헝 ㅜ

단발머리 2018-04-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워낙 운동과 담쌓고 사는 사람인지라, 정확히는 운동과 적대적인 삶을 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운동에 대한 전도와 간증 들은 것들 중, 다락방님 오늘 페이퍼가 최고예요.
다락방님 말씀하신 자세들... 사실 뭔지 모르지만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진짜 완전 기대되네요~~~~~~~~~~~~~
요가매트 꺼내서 닦아야겠어요^^

다락방 2018-04-23 16:39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최고라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일전에 누구더라..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나는..질리안...이었나... 그 분의 운동 DVD 리뷰를 썼을 때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죠.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 DVD 를 검색하고 제 리뷰에 힘입어 구매하고...

지금 그 DVD 가 어디있는지 제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

비키니 머리서기 사진은 마흔다섯살 때까지 꼭!! 찍어서 보내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주 마시려고 했는데 요가가야겠어요. 오늘이 바로 그 빈야사 시간입니다. 우하하하핫. 아자!!

책읽는나무 2018-04-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멋집니다.
마흔다섯에 비키니 입고 해변가에서 물구나무 서기 요가자세란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운동 한다는 것 자체가 멋집니다^^
작년 효리민박편에서 이효리가 해변가에서 요가하던 탄탄한 몸매에 정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바라봤었는데...운동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해봤지 목표로 삼을 생각은 감히 해보질 못했거든요!

요가매트를 늘 거실에 펼쳐만 놓구선 요가수업은 듣지 않고 있는데~~다락방님의 페이퍼는 무척 고무적입니다.요가 열심히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 몸 여기저기 말썽인 곳이 많아져 운동의 시급함을 느끼곤 하는데 운동을 시작하는게 참 쉽지 않아요.
저도 이제 1년밖에 안남았겠지만 마흔다섯이 된다면 팔,다리에 근육이 예쁘게 붙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요.이걸 목표로 삼아 볼까,싶네요^^

다락방 2018-04-24 09:50   좋아요 0 | URL
제 여동생이 지금 햇수로 6년차거든요. 요가요. 동생은 요가 덕분에 몸도 탄탄해지고 유연해지고 힘도 좋아지고 근육도 붙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운동했구나‘를 알아보는 몸이 되었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요가는 하지만 ... 늘 잘 먹고 잘 마시고 다녀가지고, 누가 봐도 운동하는 걸로는 안보일거예요. 하하. 그래서 ‘마흔다섯에 비키니입고 이국의 해변에서 머리서기‘라는 구체적 목표가 과연 실현이 될런지...라고 ㅠㅠ 저초자도 저를 의심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한 번 해볼랍니다. 해보자, 해보는거야!! 제가 하게 되면 이 공간에 인증하겠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상만해도 넘나 멋지지요? 정말 그렇게 되어야할텐데....


요가쌤들 너무 멋지고 근사한게요, 몸에 근육이 있어요. 막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작은 근육들이 팔에 붙어있는 걸 보면 세상 근사하더라고요. 요가 자세를 이미 알고 있다면 집에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요가 센터로 가서 직접 수업을 듣는 걸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처음에 바른자세 잡는 데 많이 도움이 되니까요. 히히. 책나무님, 우리 건강하게 지내요! 그래서 저는 머리서기 성공하고 책나무님은 팔,다리에 예쁜 근육 붙게합시다!!!

transient-guest 2018-04-24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오래 꾸준히, 그리고 다양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먹는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ㅎ 요가는 생각보다 꾸준하지 못해서 이제 겨우 두 번 했네요. 이번 주에는 좀더 분발해볼 생각입니다. 근데 확실히 학원만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는 않고 그냥 좋은 운동을 하는 기분입니다. 근데 요가를 하는 아침이 참 다른게, 매우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하루의 시작을 맞게 됩니다. 기분이 묘해요. 이거 좋아하게 되면 아마 제대로 배울 곳을 찾아야 할텐데, 아직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쓸 요가매트를 하나 샀다는 정도...

다락방 2018-04-24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뭔가 막 새롭게 배워보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아마도 앞으로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이미 시작한 요가에 대해서라면 좀 성실히, 꾸준히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가에 있어서라면 오래하고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싶어요. 물론 아무리 그래도 요가쌤은 될 수 없는 비루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요....

저희 센터가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있거든요. 평일 저녁의 수업도 좋지만 저는 이 토요일 오전의 수업이 특히 더 좋더라고요. 환한 오전에 몸을 한껏 움직이고 땀을 내고 그리고 사바사나 휴식자세를 취하면, 와, 행복하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거예요. 그래서 가급적 토요일 오전 요가는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랍니다. 아마도 이 느낌을 트랜님도 요가를 하는 아침에 받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요가를 시작하고나서....제대로된 매트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j1309 2018-04-2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가를 하고 있거든요. 제가 하면서 느꼈던게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신기하고 그래요 ㅎㅎ 개인 블로그에 있는 요가 관련 글도 볼 수 있을까요? 많이 궁금하거든요^^

2018-04-30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4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5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dialtone 2018-06-0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한 사람이 요가 시작했는데 어쩜 똑같은 여정을 걷는 걸까요. 쓸만한 매트를 하나 더 산것까지...친한 사람의 내면을 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