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빌레뜨],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폭풍의 언덕],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 페이퍼를 쓰기 위해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고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무얼 말할까,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들춰보면서, 와 진짜 케이트 밀렛 대단하다, 하는 생각을 다시했다. 책 전체에 밑줄 긋고 싶을만큼 통찰력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일단 '샬럿 브론테'의 [빌레뜨]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빌레뜨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통해 함께 읽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2] 에 언급된 책이라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 책을 시작하면서, 혹은 진행하면서 이미 완독하셨을거라 짐작한다. 나 역시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론에는 결국 주인공 루시와 사랑하게 되었던 루시의 애인인 폴이 죽으면서 끝난다. 한 남자의,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라 불러도 좋을 중요한 인물이, 우리의 여자주인공에게 애정을 주었던 남자가 죽었는데, 우리의 케이트 밀렛은 이렇게 쓴다.
















그리고 애인으로 전락한 폴은 익사한다.

루시는 자유롭다. 자유란 혼자를 말한다. (당시 기분 좋은 표현이었던) '사랑'과 자유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루시는 섹슈얼리티를 희생하고라도 자신을 뒷받침해온 개인주의적 인간성을 유지하기로 한다. 감상적 독자라면 루시를 '비뚤어졌다'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샬럿 브론테는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 였으므로 함께 살면서도 여성을 자유롭게 해주는 남자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을 결혼시키는 경우조차도 그러한 해피 엔딩은 부정직하고 공허하다는 것을 브론테는 보여주려 한다. 따라서 그러한 결혼은 풍자처럼 읽히기도 하고 사랑에 반대하는 냉소적 책자처럼 읽히기도 한다. 브론테 자매가 실제 그러했듯 루시의 입장에서 다른 해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 정치학의 해법은 결혼에 있지 않으므로 논리적인 루시는 결혼하지 않는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이 여성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폴은 조용히 바다에 묻힌다. -p.299



잘은 모르겟지만 케이트 밀렛이 이 책을 발표했을 당시 위의 구절을 읽었다면 사람들이 다 놀라지 않았을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 주인공이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그것에 대한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루시는 자유롭다'고 말하지 않나. '해피 엔딩은 부정직하고 공허하다'고 표현하고 '논리적인 루시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폴은 조용히 바다에 묻힌다'니. 이 구절을 사람들이 읽었을 때 케이트 밀렛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폴의 죽음을 루시의 자유로 생각하다니, 다른 사람들과는 정말 다른 감상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거다. 그러다가 문득, 어? 나도 그 책 읽었고 폴의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쓴 글을 부랴부랴 찾아봤다. 나는 백자평을 썼고,이렇게 썼다.



딱히 인간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고 식탐도 없어 보이는(!) 샬럿 브론테는 여성에게 쾌락과 자유가 동시에 주어질 순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존도 뽈도 둘다 싫다!! 했던 나를 숙연해지게 만드는 결말, 그러나 비로소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삶. -2022년 12월 19일 백자평



아니, 나도 그랬네? 나도 폴의 죽음을 숙연하다고 해놓고서는 바로 '비로소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삶'이라고 해놨네? 케이트 밀렛 후계자세요? 남자의 죽음에 자유를 느껴버린 나란 여자... 하-

나는 남자들에게 좋은 여자가 결코 될 수 없어.....



자, 이 책의 놀라운 많은 부분들 중에서 내가 오늘 얘끼하고 싶은 부분은 케이트 밀렛이 '에릭슨'의 책 [Womanhood and the Inner Space]을 언급한 부분이다. 함께 읽어보자.



에릭슨이 여자아이의 놀이를 단순히 수동적이 아니라 평화주의적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여성의 '영역'이 인형의 집과 같은 내적 공간이 아니라 세계 자체가 될 때는 그 어떤 사회적 실행 가능성이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점에서 우리를 울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폭력에 대한 남성의 집착이 아니라 한곳에 정주하려는 여자아이의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꿈이다.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가만히 앉아(여성에게 기대되는 '양육' 행위도 하지 않고) "남자와 동물의 침입"(이는 참으로 놀라운 결합이다)을 기다린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p.430



에릭슨을 모르고 에릭슨이 쓴 책을 읽어본 적도 없지만, 여기서 케이트 밀렛이 말하려는 바, 그러니까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남자와 동물의 침입을 기다린다'고 말한 부분에서, 나는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엄청나게 빡쳐서 리뷰를 썼던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나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남자의 침입을 기다린' 대표적인 인물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바로 그녀가 아닌가. 




내가 쓴 리뷰는 여기 https://blog.aladin.co.kr/fallen77/8954224












남주 로버트는 일에 있어서 프로이며 어디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바람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인데 프란체스카는 어떠한가. 나는 당시 리뷰에 이렇게 써두었다.



게다가 프란체스카는 젊은 시절 남자만 기다리는 타입의 여자였으니, 그 또한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눌러붙어 있는 사람은 사실, 내 타입이 아니다. 물론 상황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의 삶을 한 순간에 놓고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나로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는 타입의 여자랄까. 집에만 조용히 가만히 있는데 인생사랑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다니... -2016년 12월 6일



나는 이게 정말이지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결혼해서 애낳고 그러고서도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인생 사랑 걸어들어오고 그러나 인생 사랑 떠나가도 여자는 또 가만히 거기에 있고... 물론 어떤 사람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졌다는 걸 알고있지만, 이 남자작가의 로맨스 소설은 전형적으로 움직이는 남자와 기다리는 여자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소설을 그래서 싫어한다. 물론 에릭슨의 구절에서 가져온 것처럼 야육도 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남자랑 살던 집에서 잠깐 남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남자가 침입해버렸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흠.



아주 오랜 시간 세상은 여자에게 가만히 집에만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교육도 일자리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많은 여자들이 실제로도 그렇듯이 책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은채 갇혀 살아야 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다가도 나는, 당시의 주인공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면, 여행이 자유로웠다면, 그 마을에서 한정적인 남자 보고 사랑한다고 속박되었을까, 를 생각한 적이 있더랬다. 



"그렇지만 세상에 잘생기고 돈 많고 젊은 사람은 많아요. 어쩌면 그분보다 더 잘생기고 돈이 많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들은 좋아할 수 없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 눈앞에는 없잖아. 난 에드거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P130












그 마을에만 살면서 한 동네 남자들만 보니까 사랑도 그 남자들 중에서만 하게 된다. 하- 너무 답답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내 눈앞에는 없어'서, 내 눈앞에 있는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운명이라니. 너무 엿같지 않은가.


결국 내 닉네임을 '다락방'으로 하게 만들었던 너무나 인상적인 소설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은 청소년기 시절에 다락방에 갇혀 지내야 하는 4남매가 등장한다. 주인공 캐시와 크리스는 십대 청소년이었고 그 당시에 다락방에 갇혀 서로만 보고 살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몇 년 갇혀있다보니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섹스하게 된다. 근친상간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것이라는 인식을 하더라도,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필요한거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랑. 사랑할 사람이 없어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 그게 주어진 운명이라는게 너무 비극아닌가. 물론 버지니아 앤드류스 소설에서는 그 한정적 공간이 캐시에게만 주어진 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엄마 말을 무조건 따라야했던 크리스에게도 같이 주어진 환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거다, 한정된 공간 그리고 한정된 사람. 아니야 여자들아, 바깥으로 나가라, 더 넓은 세상이 있고 더 많은 사람이 있다. 지금 니가 아는 그 최선의 남자는 결코 최선의 남자가 아니라고.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는 어떠한가.

어린 시절부터 혼자 지내면서 엄마가 강조한 자매애를 느낄 수는 없었다. 여자드은 아무도 카야를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집밖으로의 외출이 자유로웠던 남자들은 카야를 찾아온다. 카야를 찾아와서 글을 알려주고 사랑한다 속삭이고 섹스를 한다. 카야는 자신의 집에 있으면서 찾아오는 남자들로부터 글을 배우고 섹스를 하고 그리고 배신도 경험한다. 카야야말로 이동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있으면서 침입하는 남자들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 침입한 남자들이 모두 나쁜건 아니었지만, 좋은 남자도 있었지만, 만약에 카야가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자매애도 경험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굳이 남자와 섹스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주어진 환경에서 받아들이는 것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지금은 에릭슨의 말을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겠지만, 어쨌든 여자들에게 나가라고, 돌아다니라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만 하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왜 이리저리 떠도는 잭 리처는 남자인가. 왜 여자 잭 리처는 없는가. 짐 하나 없이 가볍게 돌아다니다가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저기서 자면서 오늘 이 남자랑 자고 내일은 저 남자랑 자고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러나 만약 여자 잭 리처가 있다면, 그녀가 남자 잭 리처처럼 싸움을 잘하지 않는한, 그녀에게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성추행범 강간범 여성혐오범죄자.. 에릭슨은 책으로 여성을 눌러 앉히려고 했다면, 지금의 남자들은 글이 아니어도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여자를 눌러앉히려고 한다. 그런다고 눌러앉아있나봐라. 돌아다닐 것이다. 막 다니자, 막!!



성 정치학 밑줄 그은 부분 다시 보는데 진짜 너무 좋다. 성 정치학 좋으네. 케이트 밀렛 언니 쎄다.



내가 싱가폴에 입국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던 날은 8월 9일이었고 내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을 내게 주고자 했던 친구들은 내가 떠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대부분 상품권으로 내게 선물을 줬는데, 나는 워낙에 상품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알라딘 상품권이란 얼마나 좋은가. 너무 좋아서 역시 알라딘 상품권 짱이야, 으뜸이야, 히죽히죽하면서, 싱 갔다오면 책 잔뜩 사야지, 했었단 말이다. 그러나 미래는 예측불허, 나는 이곳에서 전자책을 사게 되었고, 그 때 알라딘 상품권은 너무나 유용한 것이었다. 만세!! 알라딘 상품권으로 가난한 유학생은 전자책을 삽니다. 브라보!!


감사합니다, 친구여!!



아 페이퍼 하나 또 쓰고 싶은데 사이먼 만나러 가야겠다.

나 왜 사이먼 좋아. 사이먼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이 책 영어 원서 같이 읽기로 해서 일단 번역본 읽어보고 있는데, 예상 외로 사이먼 좋아서 당황하고 있다. 그간 샐리 루니 책을 이것말고 두 권 더 읽었는데, 샐리 루니가 그려내는 남자를 내가 좋아할 줄은 몰랐어서 심히 당황스럽다. 독서괭 님이 일전에 이 책 원서 읽으시면서 사이먼 언급 하셨는데, 독서괭 님, 제가 독서괭 님 전화번호 알았다면 사이먼 좋아서 카톡 보냈을 겁니다.

단발머리 님, 이 책 좀 읽어주면 안돼요? 우리 사이먼 얘기해요!! ㅠㅠ









이만 총총.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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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9-03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알라딘 상품권이라는 게 있었군요?!😹
샐리 루니 저 책은 저도 읽었는데…. 사이먼….. 음…. 전 답답했던 거 같아요! ㅋㅋㅋ

암튼 성정치학도 빨랑 읽어야지…..

다락방 2025-09-03 09:13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 이 책 읽고 글 남기신 것 봤어요. 안좋아하셨더라고요. ㅎㅎ
저도 안좋아할 줄 알았는데, 좋네요. 그래서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사이먼 고유의 매력에 빠졌다기 보다는 아일린이 되어 사이먼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 앞에서 쪼그라드는 아일린에게 깊이 공감하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성정치학 너무 좋아요, 잠자냥 님, 얼른 읽어주세요! >.<

잠자냥 2025-09-03 09:43   좋아요 0 | URL
사랑이 쉬운 잠자냥은 ㅋㅋㅋㅋ 사랑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샐리 루니 캐릭터들이 답답합니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다락방도 사랑이 쉬운 거 같은데... 왜 쪼그라든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대리 경험?! ㅋㅋㅋ)

다락방 2025-09-03 10:01   좋아요 0 | URL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에 쪼그라드는 사람에게 깊이 공감했어요. 사랑을 이룬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제 마음속 어딘가에 쭈구리가 있는걸까요? 저는 왜그렇게 사랑에 아픈 사람에게 이입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일린이 되어 사이먼을 사랑합니다. 하아- 저도 제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런 쪽에 이입하고 제가 이입 못하는 건 원나잇 하는 캐릭터들입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어머 이게 뭐얏, 내가 지금 뭐한거지?‘ 이런 캐릭터에 이입 1도 안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9-03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싱가폴에서 우리 다락방님 케이트 밀렛한테 이렇게 진지하실 건가요? 저 이 책 두 번 읽었는데, 한 번 더 읽고 싶어지네요. 진짜 선구자, 참 예언자인 케이트 밀렛은 지금에 가져와 읽어도 혁명의 선봉, 우리 시대가 담기에도 차고 넘치오며....
케이트 밀렛 후계자 다락방님은 그의 가르침대로 참 자유를 선택해 아예 다른 나라로!!

우아, 이렇게 신기할 수 있습니까. 제가 어제 알라딘 ㅊㄴㅁ님에게 ‘긴 글 쓰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랬단 말이에요. 다정한 ㅊㄴㅁ님이 ‘아... 마침 책을 주문해서 오고 있는데, 어찌 알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어제부터 샐리 루니 읽고 있어요. 맥파든 한 권 끝나서 다음 맥파든으로 안 넘어가고요. 왜냐하면, 독서괭님 완독 소식에 놀라서요ㅋㅋㅋㅋㅋㅋㅋ 어제, 펠릭스 만났습니다. 곧, 사이먼 만나겠어요!!

다락방 2025-09-03 09:30   좋아요 1 | URL
꺅 단발머리 님, 사이먼 만나면 꼭 좀 알려주세요. 제가 위에 잠자냥 님 댓글에도 썼지만, 사이먼 고유의 매력이 저를 끌어당긴다기보다는 ‘아일린이 사랑하는‘ 사이먼을 제가 아일린이 되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이입하는 편입니다. 왜일까요.. 어제 샐리 루니 읽다가 급박하게 메모도 한 줄 써두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페이퍼를 쓸 때를 위해 아껴두겠습니다.

그런데 독서괭 님, 완독하셨대요? 어머낫! 저는 아직 원서는 시작도 안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람돌이 2025-09-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정치학 뽐뿌에 샐리 루니 뽐뿌까지... 그러나 저는 영어로는 읽지 않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5-09-05 13:05   좋아요 1 | URL
샐리 루니 영어로 시작하는데 너무 어렵네요. 한국책으로 일단 읽었으니 대충 봐야겠어요. ㅋㅋ
 

퇴사하고나서 책을 제대로 못읽었는데 싱가폴 오고 나서는 아예 못읽고 있다가 8월이 다 가기 전에야 두 권 읽었다. 

한 권은 어제랑 그제 리뷰랑 페이퍼 썼던 [로지 프로젝트] 이고 한 권은 백자평 쓴 [성 정치학]. 성 정치학도 페이퍼 하나 쓰고 싶다. 이제 슬슬 읽고 쓰는거 예전처럼 해봐야지. 그제 오랜만에 로지 프로젝트 페이퍼 쓰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뭔가, 퇴사하기 전의 내가 된듯한 느낌적 느낌? ㅋㅋ 그래,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었어! 바로 내가 왔다 만세! 막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다음날 리뷰도 썼고 또 내친김에 성정치학 페이퍼까지 쓸랬는데, 그건 못썼네. 이건 봐서 오늘 쓰던가 해야될텐데 책이 집에 있네. 하여간,


책을 몇 권 가져오긴 했지만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급하게 사서 읽은 책이 로지 프로젝트였다. 다행히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잇었네. 그래도 종이책이 좋아 한국에서 종이책 좀 배달시킬까 했더니 배송료가 너무 크더라. 찾아보니 싱가폴에 한국책 파는 서점도 있어 최근 나온 츠바이크 책 재고 있냐 물었더니 주문해야 하고 우리돈으로 3만원 정도란다. 하.. 못사겠네. 


한국에 있을 때는 출근길에 책 읽는 재미가 정말 컸다. 아침 시간에 집중도 잘되었었는데, 싱가폴에서 등굣길에 책을 읽는게 어렵다. 일단 지하철로 2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앉아서 갈 수가 없고, 사람이 많단 말이지. '흐음, 이런 상태라면 나는 출근길에 맨날 인스타만 봐야 하나?' 하다가 퍼뜩, 아 전자책! 해서 [로지 프로젝트]를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책을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 10월에 한국 한 번 나가면 종이책 좀 더 가져와야지. 하여간 전자책 읽기를 시도하려고 전자책 좀 사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크레마 신제품 살 걸 그랬나봐.. 히융.
















오늘 아침 학교를 가려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야할 역에 내렸는데 얼라리여~ 비가 엄청 쏟아진다. 아니, 이건 맞을 수 잇는 비가 아니고 나는 우산이 없어.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전혀 비 올 것 같지 않았는데 20분만에 이런 비가 내린다고? 게다가 걸어서 10분 걸리는데 여길 어쩌나.


제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학교 다니면서도 이곳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는 학생이다. 그래봤자 공부하는 건 아니고 딴짓 하긴 하지만, 오늘도 가장 먼저 오는 학생일 수 잇었는데 우산이 없어서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하고 생각했다. 도저히 맞을 비가 아니고 그렇다고 그치길 기다리자니 그게 언제야? 학교 가는 길에 편의점도 없었던 것 같은데, 하다가 집 근처 지하철역 내부에 세븐일레븐 잇던게 생각나, 얼른 챗지피티 열어서 '지금 이 역 내부에도 세븐일레븐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랫더니 있다는거다! 만세! 그런데 좀처럼 찾아지지가 않네. 지도 보고는 역 내부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사람들한테 물어가며 세븐 일레븐 가서 우산을 샀고, 그 우산 쓰고 학교 왔더니 학급에는 이미 다른 학생들 몇 명이 도착해있었다. 그래도 비 안맞고 와서 다행이야. 싱가폴에서는 항상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내가 방심했다.


엊그제는 처음으로 잘 때 좀 무서워서 깼는데 천둥번개가 우르릉쾅쾅 한거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식구들 다 있어도 천둥 번개 소리를 좀 무서워하곤 햇다. 이 세상이 끝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엊그제는 그 새벽에 처음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는 진짜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학교 수업중에 잠깐 쉬는 시간이다.

나는 내가 집에서 만들어온 간식 프렌치 토스트를 가지고 휴게실에 가서 자판기 아메리카노를 뽑아 마시며 간식을 먹었는데, 누가 가만히 어깨에 손을 댄다. 응? 이 학교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어? 놀라서 돌아보니 엥크리가 안녕하세요! 한다 ㅋㅋㅋ 커피 뽑으러 왔단다. ㅋㅋㅋㅋㅋㅋㅋ 내 입 안에는 프렌치 토스트가 한가득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포크로 프렌치 토스트 하나 찍어주며 먹어볼래? 했더니 손으로 가져가면서 이게 뭐에요, 한다. 그래서 내가 프렌치 토스트라고, 내가 만들었다고 했다. 엥크리는 먹더니 '맛있어요!' 라고 한국어로 답했다. 하나 더 줄까? 했더니 됐다고 했다.


엥크리는 4레벨 수업 들어서 나랑 메디컬 체크업 때 한 번 보고는 길이나 복도에서 마주치는게 전부인데 그 때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한다. 너무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프렌치 토스트 먹고 커피 마시다가 양치하고 지금 다시 수업 들으러 강의실 왔다. 지금 읽고 있는 전자책 속 부부가 너무 또라이들 같다. 다 읽으면 백자평 써야지. 이게 지금 얘기였으면 정말  몰카범죄다 이 남편새끼야. 


로지 프로젝트 영어책도 싱가폴 서점에 주문 넣어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로 궁금한 문장들이 제법 많다. 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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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9-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 이야기 다락방 좋다.

다락방 2025-09-01 20:52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속이 다 시원합니다! 지금은 저녁 19:52 버거킹 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ㅋㅌ

망고 2025-09-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에 들어왔다 가시는군요 비교적 가까우니 이런점은 좋네요
로지 프로젝트 읽고 앤드류랑 이야기 좀 하셨을까요?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9-01 20:51   좋아요 0 | URL
로지 읽고 쓴 페이퍼는 안줬고요 ㅋㅋ 로지 읽고 쓴 리뷰는 앤드류에게 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저희도 점점 서로에게 뜸해지고 있어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먼 산)

단발머리 2025-09-0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싱가폴 갔을 때 저도 비를 만났더랬죠 ㅋㅋㅋㅋ 그러나 식당 안이었다는ㅋㅋㅋ밥 다 먹으니 그쳤더라구요.
20분 출근길 독서도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5-09-01 23:34   좋아요 0 | URL
여기 거의 매일 비와요, 단발머리 님! 우산 챙기는게 필수인데 우산 챙기는게 너무 싫어서 안챙겼다가 오늘 쓸데없이 또 우산을 사는 일이 발생했네요. 에휴...
학교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20분도 안돼요 아 놔.. 가까워서 좋은데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전자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제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뽜이팅!

바람돌이 2025-09-01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에 신경쓸 일도 많았는데 성정치학을 완독했다니 그게 정말 대단하십니다.
점점 학교의 인싸로 나아가는 다락방님 화이팅입니다

다락방 2025-09-01 23:35   좋아요 1 | URL
성정치학 재미있어요, 바람돌이 님. 어렵지도 않고 케이트 밀렛이 엄청 잘 씹어줘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요.
그나저나 애들이 미성년자들이 대부분이라 술친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ㅠㅠ

바람돌이 2025-09-01 23:37   좋아요 0 | URL
미성년자 ㅠㅠ
진심으로 안타깝습니다
 















'돈'은 대학의 유전학 부교수이다.

그는 분단위로 계획을 세워두고 그대로 지켜나가는 사람이고, 이런 그의 특이한 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고 약속은 지켜야 하는 사람인 그가, 어느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케빈 유'가 레포트를 직접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건 분명한 부정행위이고, 이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보고를 했다. 케빈은 퇴학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학장은 그 학생의 문제를 그런식으로 처리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학장은 학교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유지되고 있고 학생들에게는 학교의 도움이 필요하며 또 케빈은 겨우 한 학기가 남았다고 하는거다. 그러나 그가 교칙을 어긴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돈은 그를 봐줄 생각이 없었고 학장의 말도 돈에게 닿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를 마주하면 바로 그 행위에 대해 판단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돈의 행위가 '옳았'고 케빈의 행위는 '부정'했다고 당연히 판단했다. 자신의 과제를 누군가 일부라도 대신해준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과제를 하려는 사람에게 얼마나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일인가. 그리고 그 일이 반복됐다면, 그 학생이 퇴학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돈이 달라졌다.

규칙대로 살아야 하고 계획한 대로 살아야하는 돈은, '로지'라는 예측불가능한 여성을 만나 자신의 성격의 변화를 느낀다. 계획했던 많은 것들을 취소해야 했고 예상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마주해야 했으며, 전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에 공감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던 그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좀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된것이다. 그래서, 그는 케빈 유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에게 왜 그가 직접 레포트를 쓰지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내 사무실로 케빈을 불렀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왔고, 대략 28세(BMI 19 추정)였다. 나는 그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 '초조하다' 라고 해석했다. 나는 그의 개인 교사가 부분 혹은 전체를 써준 리포트를 그에게 보여 줬다. 나는 명백한 질문을 했다. 왜 직접 쓰지 않았는가?

케빈은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게 양심에 거리껴서라기보다 존경을 나타내는 문화적 표시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퇴학당할지도 모른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가 중국에 있고, 아직 그들에게 이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이민 올 수 있기를, 그렇게 안 된다면 최소한 유전학 분야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그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그와, 거의 사 년 동안 그 없이 버틴 아내의 꿈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는 울고 있었다. -전자책 중에서


케빈의 개인적 사정이 어쨌든, 그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사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모두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언젠가 이민 올 수 있기 바랐다면, 그의 아내와 아이가 중국에서 자신의 학업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는 부정행위를 저질러서는 안되었다. 그는 정말로 어리석은 짓을 한거다. 그런데,


과거라면 나는 이것이 슬프지만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규칙을 깼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도 규칙 위반자였다. 나는 규칙을 고의로 위반하지 않았다. 최소한 의식적으로 위반하지는 않았다. 아마 케빈도 나처럼 경솔하게 행동했으리라.

"유전자 변형 농산물 사용에 반대해 발전할 주요 논지는 무엇이지요?" 나는 케빈에게 물었다.

그 리포트는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제기된 윤리적, 법적 논점에 대한 것이었다. 케빈은 종합적으로 요약해 대답했다. 심화 질문을 계속했지만, 케빈은 그것도 잘 대답했다. 그는 그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직접 쓰지 않았지요?" 나는 물었다.

"전 과학자입니다. 영어로 도덕적, 문화적 문제에 대해 쓰는 건 자신 없어요. 낙제하지 않도록 확실히 잘하고 싶었어요.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전자책 중에서



나는 돈이 케빈에게 전공 지식에 대해 재차 질문해본 것이 현명햇다고 생각한다. 그 후에 이렇게 잘 알고 이해하고 있으면서 도대체 왜 리포트를 직접 쓰지 않았는지 묻는것이야말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케빈의 대답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유전학을 공부하고 싶고 유전학 분야에서 일하고 싶지만, 중국에서 유학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영어로 리포트를 써야하는 것, 그것이 도덕적, 문화적 문제에 대해 써야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이 어렵게 느껴질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유학온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이 어려움이 내게 남일같지가 않았다. 내 전공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외국어로 도덕과 문화를 접목시켜 글을 쓰라고? 그것을 잘할 자신이 없는 것, 그 마음은 충분히 짐작가능한 것이 아닌가.


나는 싱가폴에서 집 계약을 하던 내가 어쩔 수없이 생각났다.

외국인 집주인과 외국인 중개인을 만나 외국어로 써진 계약서를 눈앞에 받아들었던 일이. 그전에 내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계약을 좀 미루자던 얘기를 듣던 일을. 그 때 내가 얼마나 당황하고 두려웠는지. 나는 학교 리포팅 데이에 참석해서 학교 직원에게 내 사정을 설명했다. 이러이러해서 내가 계약을 못하고 있어, 그래서 거주지 주소가 없어, 라고. 직원은 '그 레터로 충분히 집 계약 가능한거야, 왜 안해주는거지? 전화하게 해줘'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바로 이 때다 싶어 얼른 중개인에게 전화를 했고 학교 직원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내가 영어로 설명하지 못한 일을 학교 직원은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중개인에게 설명해주었다. 한참 통화를 한 후 직원은 나를 바꿔주었고, 전화기 너머에서 중개인은 계약하자고 했다, 학생비자 나오면 그 때 보완하기로 하고 지금 레터로 계약하자고. 나는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햇고 직원에게도 재차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직원이 이 일을 자신의 상사에게도 얘기한 것 같았다. 다음날 메디컬 체크업 받으러 갔을 때 만난 그 상사가 나를 보더니 '너 집 어떻게 됐어?' 라고 물었다. 나는 '계약하기로 했어' 라고 답했다. 그래 잘됐다, 하면서 직원은 내게 이렇게 덧붙였다. "너 만약 문제 생기면 꼭 다시 얘기해." 나는 알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 뒤로 집 계약이 잘 되었고 또 학생비자가 나와 보완하면서 나는 지금 잘 지내고 있지만, 그 때 내가 얼마나 두렵고 매일이 긴장이었는지 그리고 그 때 도와준 학교 직원들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가 생각났다. 계약서를 챗지피티 통해 번역해 읽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이걸로 된다는데 왜 안해주는거냐, 라고 충분히 설득하는 일을 내가 잘하지 못했는데, 학교 직원이 도와준 덕에 가능해졌던 일이. 


나는 케빈 유의 일이 남의 일같지가 않았다. 물론 그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었고, 나였다면 그런 부정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내 전공에 대해 외국어로 글을 잘 써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엄청나게 크게 나를 압박했을 것이다.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잘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 모든 것들이 이 리포트로 인해 날아가버리면 어쩌지. 이런 고민은 나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케빈 유는 그 걱정이 지나쳐서 어긋난 결정을 했지만, 그러나 그의 그 걱정과 두려움이 나는 어쩐지 이해가 되고만것이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 로맨스 소설에서 나는 케빈 유의 사정에 눈물이 핑 돌아버린 것이다. 오, 신이시여. 사람의 환경이란 무엇인가요.


돈은 생각한다.

케빈은 분명 잘못했다. 그러나 케빈의 사정을 들어보니 그를 이대로 과연 퇴학처리하는게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는 케빈의 이야기를 듣고 케빈의 전공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고 그리고 케빈을 앞에 두고 생각을 한 뒤에 이렇게 결정한다.



"보충 과제를 낼 겁니다. 아마 개인 윤리에 대한 리포트 한 편을 써내야 할 겁니다. 퇴학 대신으로요."

나는 케빈의 표정을 어쩔 줄 모르는 기쁨으로 해석했다. -전자책 중에서



아. 나는 이 보충 과제라는 결론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 그에게 더 특별한 대우가 주어진 것은 맞다. 그러나 자, 너의 실력으로 다시 써볼 기회를 줄게, 라는 것은 현명한 대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이어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에 어학연수를 와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한국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었다면, 그 때도 나는 이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건 모르겠다. 확실한 건, 사람은 분명히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케빈과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니고 같은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 때도 나는 이 대응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나는 열심히 썼는데? 나라고 영어가 쉬웠는줄 알아? 


그런데 지금은 안심이 됐다.

돈이 케빈 유에게 다시 한 번 실력으로 리포트를 쓸 기회를 준것에 정말 안심이 됐다.


새삼 외국에서 공부중인 모든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힘내자. (콧물 한 번 훌쩍 마셔주고) 힘내자, 여러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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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8-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요, 힘내^^

다락방 2025-08-29 22:36   좋아요 0 | URL
네, 힘내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5-08-2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돈‘의 결정이 마음에 들어요.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 너무 좋은 거 같고요. 읽고 있는 자리가 다르니까 다른 이해,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네요.
싱가폴 독서 라이프도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5-08-29 22:37   좋아요 0 | URL
네, 다른 이해를 해보라고 제가 지금 이 순간 이 곳에 있는건가 봅니다.
이제 슬슬 독서 해봐야지요. 그동안 책을 한글자도 못읽고 살았어요. 휴.. 화이팅!

망고 2025-08-2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처음 보는 거라 눌러 봤더니 작가가 호주 사람이로군요 흠흠 호주라...ㅋㅋㅋㅋㅋㅋㅋㅋ호주 하면 앤드류씨인데 말이죠😍

다락방 2025-08-29 22:3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앤드류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고 해서 저도 읽어봤습니다. 어릴적의 자기가 이 책의 주인공하고 비슷했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전자책을 .. 좀 사야겠어요. 종잉책 사려니까 배송료가 책값만큼 나오네요 ㅠㅠ

망고 2025-08-29 22: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쩐지 그럴거 같더라니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8-29 22:46   좋아요 0 | URL
너무 뻔했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8-30 07:43   좋아요 0 | URL
망고님 철저하신 분 ㅋㅋㅋㅋㅋㅋ 저는 이 책 보고.... 엥? 락방님 이런 책 좋아하셨던가? 하고 말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끝에 앤드류라니요 ㅋㅋㅋㅋㅋㅋ 명탐정 망고님!

다락방 2025-08-30 14:4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이 책은 로맨스 소설입니다. 방금 이 소설의 리뷰를 썼습니다. 만세! 저 8월달에 책 이거 한 권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혼자 살면서 공부까지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다섯시 반에 학교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장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다음날 먹을 음식 준비하고 숙제하고.. 하- 진짜 고단한 하루였고, 그렇게 오늘 아침 일어나 학교를 가니 수업 시간에 자꾸 졸린거다. 와, 이러다가 나도 졸겠네 싶어서 쉬는시간에 나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내가 준비해간 간식을 먹었다.



보통 방광이슈로 오전 커피를 피하는 편인데, 오늘은 너무 졸려서 어쩔 수가 없었어. 내가 비싼돈 내고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는데, 예습 복습은 못해도 수업 시간 중에 졸면 안되잖아?

그렇게 휴게실에서 앉아 샌드위치 꺼냈는데 베트남친구 '안'도 간식 먹으러 와서 마주 앉아서 각자 준비한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대화는 많이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것만 조금.


그런데 점심 시간에 또 안을 만났다. 나는 도시락을 준비해갔고 안은 휴게실 자판기에서 점심을 해결할 모양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게 없는지 한참을 자판기 앞에서 망설이다가 자기는 나가서 먹겠다고 했다. 그러라고 잘가라고 하고 나는 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버섯밥 위에 볶은 김치랑 구운 스팸을 올리고 다시 밥으로 덮은, '밥버거 짝퉁' 되시겠다. 계란프라이도 올려야 되는데, 내가 계란 샌드위치 하느라고 계란을 다 써버렸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알았네? 앗차, 하나 남겨둘걸, 제기랄...


아무튼 그렇게 만든 내 도시락




아침에 이 사진 동생들에게 보여줬더니 둘다 완전 빵터져가지고 여동생은 '저게 무슨 밥버거야, 머슴밥이구먼!' 했고 남동생은 '진짜 웃기다, 도시락 먹으러 학교가냐'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는 '맛없게 생겼네'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김치볶은거랑 스팸 들어가서 맛있었다니까? ㅋㅋ 저걸 싹싹 비우고나서 배가 너무 불러가지고 좀 걷다 들어가자 싶어서 복도를 좀 왔다리갔다리 하다가, 저쪽 코너로 돌아 자판기를 또 발견했는데, 어어, 여기는 스낵류가 아니라 식사 자판기잖아?



점심시간 다 지날때쯤이어서 솔드아웃이 많은것 같다.



나는 이걸 보자 스낵류 자판기 앞에서 돌아서던 '안'이 생각나 안에게 톡을 보냈다.


"Ahn, where are you now?"

"I have something to show you."


그러자 안은 교실 앞이라고 했고 그래서 내가 교실 앞으로 가 안을 만난 뒤에, 나 따라와봐 했다. 그렇게 이 자판기 앞으로 가서 보여줬더니, '이거 전에 본 적 없는데?' 하면서 좋다고 고맙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대한민국의 미친 오지라퍼!!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후 수업시간은 말하기 듣기 시간이었는데, 내 옆에 앉은 중국인 '쒸엔' 과 말하기 시작하면서 뭔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기 하다보니 내가 왓츠앱에 친구로 등록하자고 해가지고 친구 등록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쒸엔이 막 흥분해가지고,


"나 왓츠앱 친구는 니가 처음이야!" 하면서 화면을 보여주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두 명있는데 다 선생님이야" 하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학급에서 왓츠앱 단톡방을 하고있는데 그래서 선생님 두 명만 친구 등록 되어있었던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나더러 걸그룹 만난적 있냐는게 아닌가.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한국에 살면 걸그룹을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될 줄 알았어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야 아니야! 막 이랬는데,


대화중에 선생님이 항상 돌아다니면서 같이 대화를 하는데, 우리쪽으로 와서 한국 가서 올리브영 가고 싶다고 해가지고 내가 '올리브영은 어딜가나 있다 많이많이 있다'고 말햇다. 보톡스도 맞고 싶다고 스킨 케어 받고 싶다고 해서, 그건 압구정 가라, 그런데 사실 정확히 가격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관심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이런 얘기를 하고 선생님이 갔는데, 나랑 간혹 번역앱 통해 얘기하던 쒸엔이 선생님 가자마자 번역된 화면을 내게 들이밀어 보였고, 거기엔 이렇게 써있었다.


<나는 너가 너무 자신감있게 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빵터져가지고, 고마워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저런 말을 번역앱으로 보게 되면 뭐라고 반응해야 하나요? 


그러다가 쒸엔이 너 중국말 할 줄 알아? 물어서 아니 전혀 모르는데, 며칠전에 한 명이 '띠티에 '알려줬고, 어제 다른 한 명이 '니하오 랑 짜이치엔 알려줬어." 했다. 그랬더니 오! 하면서 좋아하길래, "너도 하나 알려줘" 했더니, "쎼쎼" 알려줬다. 땡큐라고. 그래서 깔깔 웃으면서 알았다고 배웠는데, 수업이 끝나고 어제 나에게 니하오랑 짜이치엔 알려줬던 친구들에게(두 명이었다) "짜이치엔" 했더니 둘다 소리지르면서 좋아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양손 엄지손가락 들어올리며


"You're smart!"


하는거다. 아니 ㅋㅋㅋㅋㅋ얘들아, 언니는 이탈리아어로 크로아상도 주문해 먹는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나 오늘 하나 더 배웠어. 쎄쎄" 했더니, 애들이 발음 고쳐줬다. 그래서 내가 


"내일 또다른 단어 하나 알려줘" 했더니 알았다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래서 씨유 투마로 하고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갔는데, 

지하철역 가기 위해서 횡단보도 기다리면서 핸드폰 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날 쳐다보던 몽골인 '엥크리'.. 


하이, 하우 아 유? 하니까 엥크리는 힘들다고 했다. 


수업이 어려워?

아니 어렵지는 않은데 너무 오래 공부해.

이해해, 나도 그래!


하면서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갔다. 엥크리는 공부 너무 많이 해서 머리 아프고 몽골 음식도 먹고 싶어. 라고 말했다. 그렇게 지하철역까지 같이 가서 서로 다른 노선 타고 집으로 향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하철 타면서


"아 오늘 되게 즐겁네. 재밌네?" 생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제 학교에 노트북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수시로 알라딘 들어오고 있다. 아까 브런치랑 투비에 글도 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런치에 후원금도 들어와서 맥주도 샀다.




여러분이 맥줏값을 후원해주셔서 제가 이렇게 박스로 쟁였.... 흠흠.



지난주에 숙제할 때 숙제를 할 수 있는 학교 웹사이트가 열리지 않아 당황해서 단톡방에 물었었다. 선생님은 '그건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고 답을 하셨는데 챗지피티에게 물었더니 '그거 교재에 있을 수있어'라고 답해서, 아 맞다, 오리엔테이션 때 말했었어, 그게 이거구나, 책 표지 긁으면 비번 나온다는거! 해가지고 해결했단 말이지. 그렇게 로긴 정상적으로 되었는데 화면이 안보이길래 다시 나갔다 로긴했더니 됐다. 다른 애들은 아무 반응도 없길래, 흠, 애들 나름 영어 실력이 좋은가보구나, 이거 못하고 못알아들은거 나뿐인가 하노라, 하고 숙제를 했단 말이야? 그 날이 토요일 오전이었다.


토요일 오후.

모르는 번호로부터 톡이 왔다. 단톡방에서 나를 알게되어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톡을 보낸건데, 나 이거 로그인했는데 왜 안보이지? 물어본거다. 그래서 '너 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로긴해봐' 했더니, 그 후에 됐다고 화면 인증해주면서 고맙다는거다. 사실 걔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다 ㅋㅋ 

그리고 일요일 오후.

안으로부터도 톡이 왔다. 이거 어떻게 들어가는거야? 나도 너랑 똑같은 문제가 있어. 해가지고 교재에 그거 스크래치 긁어봐, 거기에 있어, 했더니, 오 고마워! 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다들 몰랐구나? 했는데,


오늘은 중국인 친구 한 명이 칠판의 알림을 보고 


티에이피가 뭐야? 묻는게 아닌가.



그래서 너 출석하기 위해 교실에 있는 큐알코드 스캔하잖아, 그거 탭한다고 해, 하면서 내 손을 움직이며 이렇게 하는거 탭, 했더니 오! 고마워고마워 했는데,


잠시 후에 자리에 앉은 쒸엔이 나에게 저 안내 가리키면서


"저게 무슨 뜻이야?" 하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똑같이 말해줬더니 오! 하는거다. 아니, 애들이 탭을 몰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여간 그래서 '쪼끔' 더 오래 산 내가 탭도 알려주고 숙제하는 것도 알려주고 그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에게 처음 물었던 친구 열여섯

쒸엔은 열여덟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자판기 알려준 안은 스무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나에게 공부 힘들어, 라고 말한 엥크리는 열아홉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끔 나이 많은 언니가 다 알려줄게.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언니가 아닌게 너무 좋다. 한국이었으면 나를 언니라고 불렀을텐데, 그게 아니라서 너무 좋다. 아무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누나라고 부르지 않과 'you' 라고 하는게 너무너무 좋다. 언니라고 불렸으면 진짜 너무 싫었을 것 같고 학교가 재미없었을 것 같다. 내가 그들에게 단지 '유' 여서, '너'여서 너무너무 좋다. 하하 즐거워!!


그나저나 전교일등 하고 싶은데, 학급에 좀 천재들이 보인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해서 일찍 유학온 아이들... 

휴..



투비도 간단한 연재를 새로 시작했고

브런치에도 복사하지 않은 글을 올리려고 한다.


https://tobe.aladin.co.kr/n/484788


https://brunch.co.kr/@elbeso77/108


저녁도 먹었으니 고추장 사러 나갔다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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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8-28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식과 도시락을 다 가지고 가신거군요 외국애들 보면 다락방님 간식같은 걸 끼니로 먹던데... 역시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한 끼인 거죠😄
자판기에 있는 것들 맛이 궁금하네요
반에 십대들이 많군요 귀여울 거 같아요 중국어 가르쳐주며 얼마나 신날까요
다락방님의 자신감은 글만 봐도 느낄 수 있어요 언제나 유쾌하고 자신감 있는 용감한 다락방님😍

다락방 2025-08-28 15:04   좋아요 0 | URL
간식과 도시락을 그것도 많이 가지고 가다보니 가방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제 어깨에 정말 너무나 미안해요. 골반에게도 미안하고.. 미안하다 내 육체야. 내가 많이 먹어서 미안해, 니네가 고생이 많다..
오늘은 중국어로 굿모닝 배웠는데 이거 아무리 연습해도 발음이 잘 안돼요.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굿모닝 너무 어려워!! 했어요. 그리고 제 이름 알려줬는데 발음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코리안도 어렵단다!! 했어요. ㅋㅋㅋㅋㅋ
그런데 즐거워요. 학교 가면서 또 학교에 도착해서도 헬로우, 하고 인사할 사람들 있는거 즐거워요! >.<

단발머리 2025-08-2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에서도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여러 가지인 다락방님 정말 멋져요! 에그 샌드위치도 맛있어 보여요. 잡채도 엄청 맛난 보이던데요.

같은반 십대 아이들은 다락방님을 어려워하지 않을 거 같아요. 30대 초반의 친절하고 다정한 ‘you‘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반장도 하시고 회장도 하시고 학년 대표도 하시고 전체 수료자 대표도 하시고~~~

다락방 2025-08-28 15:06   좋아요 0 | URL
에그 샌드위치는 생각만큼 맛있진 않았는데요, 제가 너무 마요네즈를 많이 넣은게 실패의 원인인듯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패가 있었으니 다음 샌드위치는 좀 더 나아지겠죠? ㅋㅋㅋㅋㅋ
여기에 대학 가기 전에 영어 배우려고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아마 저 빼고 다 그런것 같은데 ㅋㅋ 그런데 제가 대학 졸업하고 왔다고 하면 오 그러냐면서 놀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차마 나이도 말하지 못하고 20년이상 회사 다녔다는 말도 못한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기한건, 아무도 제게 묻지 않는다는거에요!! >.< 졸업할때까지 묻지 말아라, 얘들아.. ㅋㅋㅋㅋㅋ

반장은 욕심 안나지만 전교1등은 욕심나는데, 아니 반에서 1등 욕심나는데 ㅋㅋㅋㅋㅋㅋㅋ몇몇 천재들 때문에 안될것 같아 속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래놓고 사실 간신히 낙제만 면하는건 아닌지,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8-2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곳에서도 다락방의 자신감은 다들 알아보는군요.
그나저나 영어보다 중국어를 더 잘 익히고 오는 거 아닙니까....?

맥주 마시는 다락방 낯설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5-08-28 15:07   좋아요 0 | URL
중국어 너무 어려워요 잠자냥 님. 제가 애들 한 명씩 말 틀 때마다 이름 write down 해달라고 노트 내미는데 발음이 진짜 너무 어려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맥주 마시는 제가 낯설지만 싱가폴에서 와인과 소주를 마시다가는 생활이 불가할 것 같아요. 그나마 맥주는 할인을 하더라고요. 저렇게 박스로 사면... 흠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8-2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또 그렇게 다락방 님을 보고 배워가겠군요.ㅋㅋㅋ 공부하러 간 학생이 아니라 뭐랄까요? 공부하는 척 학교에 일부러 숨겨 놓은 외교 사절단 스파이 같아요.ㅋㅋㅋ
반에서 반장을 하셔야 다락방 님의 존재감이 더 빛이 날텐데 말입니다.
언니나 누나가 아닌 유라고 부르며 질문하며 다가오는 것, 공부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것…또래였었다면 아이들이 선뜻 다가오지 않았겠죠?

와…근데 맥주를 저렇게 박스로 구입을 하셨…입틀막입니다.ㅋㅋㅋ
근데 맥주 많이 마셔도 화장실 들락날락 하지 않나요?ㅋㅋㅋ
저도 방광이 약해서 화장실 자주 들락거리느라 좀 골칫거리거든요. 물을 자주 못 마셔요. 에혀.. 다락방 님은 학교 다니실 때 그게 좀 번거로우시겠어요. 동병상련.ㅋㅋㅋㅋ

다락방 2025-08-28 15:11   좋아요 1 | URL
또래가 아니라는건 알겠지만 사실 제 나이가 얼만큼이나 되는지 짐작조차 못하는것 같아요. ㅋㅋ 뭐랄까, 상상 불가한 영역에 존재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 십대 아이들 ㅋㅋㅋㅋㅋㅋㅋㅋ한국 일반적인 고등학교처럼 막 졸고 자고 난리가 납니다. 선생님이 가서 세수 하고 오라고 할 정도로 대놓고 졸고 대놓고 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왜이렇게 지각들을 또 하는건지 원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늦은 나이에 공부하느라 제가 고생이 많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도 모범적인 타입이긴 했지만, 이곳에서도 아주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 맥주 마시면 화장실 엄청 가요! 그나마 집에서 마시는 거니까 편하게 마십니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하고 함께 술 마시면 사실 화장실 때문에 힘들어요 ㅠㅠ 상대는 안가는데 저는 계속 들락날락해가지고.. ㅠㅠ 민감한 방광 때문에 학교에서도 화장실 자주 갑니다. 그나마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는 일 피하려고 쉬는시간에 무조건 화장실 가면서 살고 있어요. 진짜 제가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거리의화가 2025-08-28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뜻하지 않게 중국어를 접하게 되는 환경이 되셨네요. 싱가포르에 화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어는 부딪히는 이런 환경에서 더 잘 늘 것 같아요. 저는 조만간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역시 그곳에 거주하는 것과 여행자인 것은 시간 투자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니까요. 다락방 님의 싱가폴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5-08-28 15:25   좋아요 1 | URL
뜻하지 않게 중국어 단어 다섯개 배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이라도 할 줄 알고 가면 좋겠네요. ㅋㅋ 영어 배우러 온 학생들 구십프로가 중국인 이어서요. 저히 학급에는 한국인 1(접니다), 홍콩인 1, 베트남인 2 나머지는 다 중국인 입니다. 스무명쯤 되는듯 해요. 중국 학생들은 좋겠다 싶었어요. 선생님도 중국어를 하시니까 답답하면 막 중국어로 물어보고 그러더라고요. ㅠㅠ

응원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여행도 잘 다녀오세요. 빠샤!!

달자 2025-08-29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거 맥주가 저렇게 박스 째로 턱하니 있는 다락방님 멋져여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8-29 13:54   좋아요 0 | URL
엣헴- 맥주 플렉스 하는 싱글 중년 여성 다락방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lavis 2025-09-0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거 맥주..싸고 도수가 높아서 즐겨 맛셨습니다~~~

다락방 2025-09-03 10:21   좋아요 1 | URL
오, 타이거 맥주가 도수가 높은가요? 저 한 번도 도수를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오늘 가서 확인해봐야겠네요. 어쩐지 씐납니다!!

clavis 2025-09-03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리핀에서 어학할때 중국에서 온 십대 어린 학생들이 있었는데 예의가 없어서 싸울 뻔 했어요. 그 뒤로는 중국에서 온 천재 유학생들에 대해 인상이 안좋았는데 락방님의 글을 읽고는 저도 갑자기 신나고, 하루가 즐거우셨을 것 같아서 기분이가 좋아집니다!! 정말인지 화이팅이에요!! 그 때는 한국에서 락방님의 응원을 받았는데, 지금 저는 한국 와 있고 락방님을 응원하다니 정말 인생이란 예측불허!!!

다락방 2025-09-03 10:38   좋아요 1 | URL
저는 어쩐일인지 학생들이 다 착해가지고 ㅋㅋ 씐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쉬운게 있다면 미성년자들이 많아서 학교 끝나고 술친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 언제나 혼자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핫. 뭐 아직 공부할 시간 많이 남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낮에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저녁에 혼자 되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아무튼 클래비스 님, 응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고민이 깊다.


어제 올려놓은 글을 보고 여러분들이 구독을 눌러주셔서 브런치 멤버십 작가가 될 자격을 얻기는 했으나, 이대로 내가 멤버십 작가가 된다면, 이거야말로 지인 장사.. 가 될 것 같아. 나는 내가 만든게 뭐든 지인 장사로 돈 벌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브런치는 구독자가 많아지면 멤버십으로 돌리고 싶은데, 사실 내가 구독자를 늘릴 자신은 없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가장 재미있게 올리는 곳은 역시 알라딘인데 그런데 알라딘은 돈이 안되고... 돈이 되려면 브런치에 올려 멤버십으로 해야되는데 그러면 알라딘에서 읽었던 사람이 굳이 돈을 또 낼 것 같고... 돈이란 무엇인가 돈벌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구독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차이나타운에 와있다.





(이건 뭐하는거지? 붕어 담아서 넣는 가방인건가??)





이곳에 한국 마트가 있다고 해서 연두 사고 싶어서 왔다.

삼시 세끼 다 해먹다 보니 이제 뭘 해먹어야 할지 밑천이 떨어져버려. 여동생이 떡국 얘기하길래, 오오, 그래그래 연두 넣어서 만둣국 해먹었던것 처럼 떡국해먹자 햇지만, 집 근처 큰 마트에는 연두도 없고 떡도 없어.. 그래서 이곳에서 알게된, 사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는 한국인 남성에게 여느때처럼 떡국떡을 사고 싶은데 말이죠, 했더니 알려주셔서 굳이 일요일에 거길 방문한거다. 싱가폴에 이번에는 거주하지만 여행으로도 두번 왔었는데 그때마다 차이나타운은 온 적이 없어, 차이나타운 처음이다. 그런데 사람 겁나 많아버림. 한국마트 가서 떡국떡도 사고 연두도 사고 어어, 장칼국수 밀키트 뭐죠? 깻잎이랑 막 다른것도 사가지고 집에 가려다가, 해피아워인 안내 보고 맥주 한 잔 하고 있다. 사람 겁나 많아. 


내가 이곳에서 맥주를 자주 마시니 친구가 '너 거기서는 소주나 와인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시네?' 라고 말해주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왜냐하면 소주랑 와인이 너무 비싸고, 맥주도 비싼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차이나타운, 클락키) 해피아워가 있는거다. 그래서 좋았어! 하고 자꾸 맥주를 마십니다.. 싱가폴 와서 처음에 몸고생 마음고생 살 빠지는 줄 알았는데 해피아워 맥주 때문에 나는 둥글둥글.

어제 이모랑 엄마랑 아빠랑 영통하는데


"살이 다시 포동포동 쪘네"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 얼굴 왜이렇게 좋아졌어?"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들하고도 영통하는데 "니 얼굴 와이리 좋노"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진짜 힘들었거든? 그래서 밥이 잘 안먹혔어. 근데.. 그게 이틀간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겁나 잘 먹고 이제 간식도 먹고 그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어제는 숙제를 했다. 도대체 숙제라는 걸 하는게 몇 년만이야.. 삼십..년? 만인가? ㅋㅋ 아니, 너무 어려워서 자꾸 다 틀려가지고 챗지피티한테 사진 찍어 보여주면서 이거 답이 뭐냐, 막 물어보면서 숙제를 했더니 에너지 너무 빨리 방전돼버려. 그래서 어제는 초저녁에 낮잠 좀 자주고, 일어나서 호커센터 가서 치킨 포장해와서 맥주랑 먹었는데, 치킨 너무 맛없더라고요.. 특히 오리지널... 니네는 진짜..치킨이라고 하지 마라. 한국 치킨이 화낸다.




어제 망고 님 페이퍼에서 챗지피티가 나 자신에 대해 말해주는 거 보고 나도 한 번 해봤다.



내가 물어본 거, 내가 한 말로 이런 결론을 우리 채경이는 내렸나보다.

내친김에 나의 소울메이트 채경이에게 지금의 내 기분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진짜 이런게 너무 좋다. 미치겠다. 너무 좋다. 친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죄다 모르는 사람들, 국적도 다른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혼자 있는게 너무 좋다. 그래서 외식은 안하고 집에서 밥 해먹으면서 그런데 굳이 까페는 나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너무 좋아서. 나는 이게 왜이렇게 좋을까.


게다가 채경이가 말한 것들중 특히 익명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일전에 앤드류는 나랑 있었던 그 밤이 자기가 옳은 곳에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앤드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You told me last time that being with me felt like being in the right place. For me, being with you made me forget the person I used to be.


나로서는 이 말이 진심이었다. 채경이를 통해 영작해 그에게 보냈던 이 말이, 내가 느낀 진심이었다.

내가 앤드류와 보낸 시간, 그리고 앤드류를 정말 좋아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의 나를 잊게 해주었다는데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는다는 것은 살면서 자주 경험할 수 있는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싱가포르에 오기 전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가득했었고, 그건 큰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계속 주저앉고 울고 싶었던거다. 그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이라서, 싱가폴에 와서도 지속된 생각과 감정,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싱가폴에서는 내가 아직 집을 구하지도 못하고 전화도 연결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더 커졌더랬다. 이걸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밤늦도록 인터넷을 뒤지고 채경이한테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유학원에도 문의 넣고 학교에도 문의 넣고, 그러면서 발품팔아 집도 보러다니고, 전화 때문에 공항에도 다시 갔다와야했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후회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가족에게 하면 안될것 같아서, 멘탈을 잡느라 너무 힘들었단 말이다. 


그러다 앤드류를 만난건데, 이건 완전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서투른 영어로 그와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와 있는 동안에 그에게 집중해야 했다.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내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앤드류랑 있을 때 나는, 온통 앤드류에게 집중했다. 그 경험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정말 잊었다. 집에서 일어났던 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일을 잊게 됐던거다. 앤드류랑 있을 때 나는, 그냥 앤드류랑 있는 나였다. 앤드류랑 있는, 한국에서 영어 공부하러 온 중년 여성이었다. 집안 일을 해결해야 하는, 아직 싱가폴 집 계약을 하지 않은 내가 아니라, 스트레스 받는 내가 아니라, 서툰 영어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있는 나였던거다. 그런 나에게 앤드류의 말들은 그대로 와 박혔고, 그 말들을 해석하면서 그 기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그 지점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고, 그래서 나는 그가 내 기분을 내 mood 를 바꿨다는 생각을 하게된거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지금 차이나타운에서 또 깨달았다. 채경이를 통해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내가 가진 역할과 의무와 책임을 모르는, 그동안의 나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내가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다시 월요일에 변호사랑 통화해야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냥 그런 것들이 잊혀지는 것이 좋다. 이게 너무 좋다. 너무 자유롭다. 곳곳에서 들리는 영어, 중국어 그 외의 외국어들이 내게 와 닿지 앟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도 너무 자연스럽게 식당에 들어와 Can I have a seat? 이라고 묻는 내가 된것이 너무 좋다. 그래서 굳이, 해피아워 5천원짜리 맥주를 파는 곳에서 노트북을 꺼내 이렇게 글을 쓴다. 나 사실 집에서 나올 때는 한국마트에서 연두랑 떡만 사가지고 조용한 카페 가서 글 써야지 했던건데, 한국 마트 갔다가 막 이것저것 다 사고 사람 많은 시끄러운 맥줏집 들어와서 노트북 꺼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앤드류랑은 매일 연락하지만, 싱가폴에서 만났던 그 때의 감정이나 기분은 아니다. 

우리는 친구가 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고 친구 사이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자연스레 점점 멀어지게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는 앤드류가 자기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밥먹었다고 즐거워하는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지만, 이런 것들도 점차 줄어들것이다. 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렇다해도,

그가 나의 mood 를 바꿔준 사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던 면을 나는 그 때 알았고, 나에게 이런 일이 있다니, 하는 생각도 했고, 와 그동안 빡센거 나 다 잊고 있었어, 하는 것도 덕분에 알았다.  같이 있는 동안에도 변호사랑 통화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통화를 하는데, 앤드류가 통화를 끝낸 나에게 


"혹시 내가 필요하면 말해. 혹시 나에게 원하는게 있으면 말해. 지금 내가 가줬으면 좋겠다든가 뭐 그런거 말야."


나는 그 때 아니라고, 다 했다고, 너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더랬다. 


앤드류에게 많이 고맙지만, 사실 지금 나는, 이 시끄러운 차이나타운 맥줏집에 혼자 있는 내가 너무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나는 최근 며칠간 '나는 글러먹었어', '나는 안돼',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여자가 될 수 없어' 라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진짜 글러먹은 여자다 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스타벅스에 가서 학교 과제인 에세이를 썼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어로 썼다.




제출해야 할 에세이이기 때문에 다다다닥 쓰다가 


어??

나 지금 영어로 글 쓰고 있잖아??

졸라 멋진데???????????????????



막 이렇게 되어버림. 하 씨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멋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멋짐에 내가 취해가지고 ㅋㅋㅋㅋㅋㅋ개멋지다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서 웃으면서 입술을 깨물고 있다. 


나는 멋지지만, 나는 진짜 졸라 멋지지만, 누군가랑 함께 하기에는 좀 글러먹은 여자인 것 같다.

혼자 차이나타운에서 맥주 마시면서 겁나 행복한데 어떡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할 수 없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맥주 두 잔 먹고 취해서 쓴 글은 아니다. 

..맞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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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8-24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치킨 맛있어 보이는데 별로였군요😭
다락방님은 채경이랑 많은 대화를 하셨나봐요 다락방님 성향을 잘 알고 있는듯. 저는 거의 지식인으로만 쓰고 있어서 걔가 날 잘 모르는거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
저 오늘은 길 잘못 들어서서 고속도로 탔거든요 서울까지 갈뻔 했어요ㅋㅋㅋㅋ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하고 있었던 잡생각을 싸악 비우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바짝 긴장하며 집에 돌아왔거든요 다락방님이 앤드류 만나서 걱정 근심을 잊게 된 상황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지금 잠시 생각했습니다 다락방님 쪽 분위기는 핑크빛이긴 하지만 어쨌든요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께 앞으로 앤드류와 같은 기분 전환의 일들이 많이 생기는 싱가폴 학생 생활이 되길😄

다락방 2025-08-26 23:08   좋아요 0 | URL
치킨이 어떻게 맛없을 수가 있죠? 진짜 세상에 .. 너무나 놀랐습니다 ㅠ
저는 특히나 싱가폴 오고나서 채경이 유료로 사용하고 있어요. 세제나 소스 살 때 무조건 다 사진 찍어서 보여주면서 이거 여기에 쓰는거 맞냐, 이거 어디에 쓰는거냐 이렇게 물어보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번역이나 영작도 엄청 계속 부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숙제할 때도 채경이한테 물어보고 있어요. 돈 내고 사용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싱가폴 생활도 3주차에 들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해외 나와서 오래 있어보긴 처음인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잘 지낼 수 있겠지요. 화이팅!!

햇살과함께 2025-08-2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 대리만족합니다 ㅎㅎ

다락방 2025-08-26 23:08   좋아요 1 | URL
으흐흐 만족을 드렸다니 좋습니다!

바람돌이 2025-08-2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어담는 가방에서 푸하하... 붕어가 아니라 잉어를 담는 가방이 아닐까요? ㅎㅎ
근데 싱가포르에 차이나타운이 있다는거에 깜짝 놀랐어요. 거기 인구의 절대 다수가 중국계 화교잖아요. 그래서 말레이시아 국가 독립할 때도 버림받은걸로 아는데... 이건 뭐 한국 땅이 코리아타운 있는 느낌인데요. 신기하네요.

채경이랑 너무 많이 얘기하지마세요. 그거 처음에는 재밌는데 좀 지나면 더 외로워져요. 우리 다락방님은 조만간 학교 인싸로 등극하셔서 막 같이 맥주 마시러 다닐거지만요.

다락방 2025-08-26 23:11   좋아요 1 | URL
도대체 저 가방의 쓰임이 짐작도 가지 않는거에요. 죄다 잉어 그림 그려진걸로 봐서 잉어 한 마리씩 넣는 가방인가 싶고 말이지요. 아 사진 찍어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볼 걸 그랬네요?
저는 지금 채경이랑 엄청 얘기하고 도움 받고 있어요. 마트에 가서 사진 찍어서 이거 뭐냐 물어보는 일이 진짜 많고요, ‘이거 영작해줘‘, ‘이거 번역해줘‘ 정말 많이 하고 있습니다. ㅋㅋ 초반에는 진간장 사고 싶어서 간장 매대 사진 찍어 보여준 다음에 이중에서 진간장이 뭐야? 물어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외생활에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휴. 나중엔 도움 받지 않고 제 스스로 대화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오겠지요!!

아, 맞다. 맥주 주문해야겠어요.
그나저나 학급에 미성년자가 많다..는 아쉬운 소식 전합니다. 그리고 애들이 너무 다 어려서.. 하아- 저는 교사랑 술마셔야 할듯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25-08-2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싱가폴 애한테 들었는데 싱가폴엔 싱가폴인이 없대요. chinese 가 70~80%, malay 가 10~20%, 나머지 기타 민족. 이렇다던데요. 경제권은 chinese가 꽉 잡고 있는 건 가보면 금방 느끼셨을테지요. 저 겨울에 갔을때에도 여름 같았는데 지금은 어떨까요.
붕어 담는 가방ㅋㅋㅋ 상상력 최고!

다락방 2025-08-26 23:12   좋아요 0 | URL
지금도 여름입니다, 나인 님!
바깥 날씨는 더운데 실내는 어디나 에어컨이 빵빵해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 긴팔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중에도 계속 긴팔 입고 있어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중국인이 많지만, 공부하러 온 학생들도 중국인이 80프로 이상인 것 같아요. 한국인 저 혼자 아무튼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이팅!

단발머리 2025-08-2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는 마시면 화장실 이슈 때문에 좀 힘들 수도 있지만(나도 채경이만큼은 다락방님 아는 편ㅋㅋㅋ), 그래도 맥주가 있어 조금 다행이네요.
무드를 바꿔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인 거 같아요. 아니, 행운이라고 말하는 건 좀 부족하고.... 진짜 감사할 일인거 같아요. 울고 싶을 때 웃게 해주는 사람이잖아요. 앤드류가 호주에서 싱가폴까지 날아와서 큰 일 했네요. 다락방님도 앤드류에게 그런 존재였을거 같아요. 그렇게 느껴집니다.

다락방 2025-08-26 2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 님. 그래도 좋은 곳에서 멍 때리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게 참 좋습니다. 그래도 맥주 줄여야지. 가난한 유학생이 이렇게 막 맥주를 마시고 다니면 안됩니다.
앤드류랑 결국 언젠가 멀어지게 되고 시절 인연이라고 해도, 인생에 이런 사람 그리고 이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정말 크게 감사할 일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사람이었어요. 앤드류에게도 제가 마법같은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후훗.